<사진 출처: http://www.koreanart21.com>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아 / 지금은 사라진 동무들 모여 /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 반딧불 쫓아서 즐기었건만 /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실향민은 주로 북에 고향을 두고 온 분들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죠. 실향민에게 가곡 꿈 속의 고향은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는 노래일 것 같아요. 그러나 정작 그 고향에 가보게 됐을 때 느끼는 심정은 어떠할까요

  

오래도록 애모해왔던 사람을 실제 만나면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다른 모습 때문에 많이 실망하게 된다고 하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내가 변했듯이 상대도 변한 게 당연하련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실향민의 심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어요. 하여 어쩌면 이런 말을 절로 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꿈속에 그릴 때가 좋았어~”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 북에 고향을 두고 온 분들만 실향민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북에 고향을 두고 온 분들은 물리적으로 가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물리적으로 가볼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실향민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야 옳을 거예요

  

죄송한 말이지만, 북에 고향을 둬 물리적으로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이 남에 고향을 둔 실향민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고향은 꿈속에 그릴 때가 행복할 것 같기에 말이죠.

  

사진은 조선 전기 3대 초서가의 한사람으로 평가받는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시예요. 꿈 속의 고향가사의 원형 같은 느낌을 주는 시예요.

  

山水情老更新 산수정회노경신   산수에 대한 그리움 나이 들수록 더해

如何長作未여하장작미귀인   어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신세로 계속 있으리

桃花下靑蓮舍 벽도화하청련사   예 놀던 벽도화 아래 청련사

臺入夢 경도요대입몽두   경도(瓊島) 요대() 자주 꿈속에서 본다오

  

학성에서 친구에게[鶴城寄友人]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노경에 지은 시로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어요. 양사언은 40여 년 동안 환로(宦路)를 걸었던 사람이에요. 평생을 외지로 떠돌았으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을 거예요. 꿈속에서 만나는 고향의 정경 표현이 그 그리움의 정도를 잘 말해주고 있어요.

  

양사언은 해배(解配)길에 객사했다고 해요. 그토록 그리던 고향을 죽어서야 돌아간 것인데, 눈을 감을 때 회한의 감정이 많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회한의 감정이 많았기에 행복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향을 평생토록 아스라한 그리움으로 간직할 수 있었기에 말이죠.

  

이 시에 등장하는 시어 벽도화 · 청련 · 경도 · 요대 등은 도가적 경향이 강한 시어예요. 도가적 경향이 있는 사람은 탈속을 지향하죠. 이 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 것이지만 은연중에 양사언의 가치관도 드러내고 있어요. 양사언은 40여 동안 환로를 걸으면서 축재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해요. 이는 그의 도가적 경향성과 무관치 않아 보여요. 아울러 이 글씨에서도 그의 도가적 경향성이 엿보여요. 문외한인 제가 봐도 시원시원한 기풍이 탈속적인 풍모를 여실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글씨는 곧 그 사람이다라고 하는데 과시 틀리지 않는 말이에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懷 忄(마음심)(품을 회)의 합자예요. 물건을 품속에 간직하듯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한다는 의미예요. 품을 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懷抱(회포), 懷妊(회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시집가다는 뜻이에요. 여성은 시집을 가야 평생토록 머물 장소를 얻게 된다는 의미로 (그칠지)를 주 의미로 삼고, 시집을 가면 아내가 된다는 의미로 (아내부)의 약자로 부 의미를 삼았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시집갈 귀. 의미를 부연하여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해요. 돌아갈 귀.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歸家(귀가), 歸還(귀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변형, 구슬 옥)의 약자와 (돌 석)(흰 백)의 합자예요. 옥과 흡사하며 창백한 빛이 도는 돌이란 의미예요. 구슬 벽. 푸를 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碧眼(벽안), 碧玉(벽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적색의 값진 구슬이란 의미예요. (의 변형, 구슬 옥)의 약자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옥 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瓊田(경전, 좋은 밭), 瓊室(경실, 화려한 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머리 혈)(의 약자, 건널 섭)의 합자예요. 물을 건널 적에는 위험하지 않을까 되풀이하여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예요. 자주 빈.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頻繁(빈번), 頻度(빈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양사언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진면모는, 앞서 언급한대로, 초서의 대가라는 점에 있어요. 조선 전기 초서 3대가의 한사람으로, 혹은 조선 전기 4대 명필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죠. 과거의 지식인은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었기에 오늘날의 시각 - 한 분야에 정통한 것이 지식인이라는 - 으로 과거의 지식인을 평가하면 자칫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양사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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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하신지요? 그간 주물럭 거렸던 무거리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냈습니다. 지난 번에는 『길에서 주운 한자』란 제호를 달았는데, 이번에는 『길에서 만난 한자』라는 제호를 달았습니다. 전작(前作)이 한자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생각 중심이라 제호에 약간 변화를 주었습니다.

 

전작에서 서평을 부탁드렸던 벗님들의 격려와 충고가 이번 책을 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자 중심보다 생각 중심으로 책을 내게 된 것도 그 도움의 일단입니다(순오기 님의 충고). 이제는 더 이상 제 블로그를 찾지 않으시는(흑흑, 제게는 몹시 슬픈 일입니다) 한 벗님의 충고, 저자 자신보다 독자를 우선시하라는 충고도 이번 책에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격려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과찬에 가까운 서평을 해주신 벗님의 서평이 이번 책을 내는데 큰 힘이 됐다는 것도 고백합니다(양철나무꾼 님의 격려).

 

충고든 격려든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다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번 책에 대한 벗님들의 충고와 격려를 듣고 싶습니다. 주소와 성함을 남겨 주시면 책을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공으로 책을 받으면 부담스러워 서평쓰기 어렵다며 마다하시는 분도 많으신 것, 잘 압니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없다고 봅니다. 나쁜 면과 좋은 면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고, 이는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부담갖지 마시고 서평용 책을 요청해 주셨으면 합니다. 바쁜 시간 쪼개어 서평을 해주시는 것, 그것 자체가 제게는 보내드린 책을 상회하는 큰 보답입니다.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내내 건승하시길 기원드리며

 

2019. 4. 21(일)

 

찔레꽃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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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1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찔레꽃 2020-01-02 11:06   좋아요 0 | URL
네! ^ ^ 주소를 알려 주시겠어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요`~ ^ ^

2020-01-02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3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3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이란 글의 일절이에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투사(鬪士)로 살았던 분이 민족의 사업으로 힘주어 말한 것이 강성대국(强盛大國)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문화국이었다는 것이 놀라워요. 거대한 땅과 폭력을 추구하는 야만의 독재 시대를 청산하고 작은 땅과 문화라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협력과 공존의 시대를 지향했던 선생에게선 정치가적 면모보다는 지사로서의 면모가 더 두드러져 보여요

  

정치인들 중에 그를 좋아하면서도 정치가로서는 후한 점수를 매기지 않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선생의 면모가 큰 요인이라고 해요. 복마전 같았던 해방정국을 해쳐 나가기 위해서는 여우의 지혜도 필요했는데 선생은 우직한 곰과 같은 면모만 보였다는 거죠.

  

그러나 그런 우직한 면모를 가졌던 분이었기에 세월이 흐를수록 그 분의 가치가 더 빛나는 것 같아요. 당시 노회한 술수로 정국을 헤쳐 갔던 많은 이들 대표적인 인물이 김일성과 이승만이죠 이 역사의 매서운 평가에 부침(浮沈)하는 것을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죠. 물론 김구 선생에 대한 평가도 긍정 일색인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여러 인물에 비교해보면 긍정 우위를 점하는 건 확실해요.

  

사진은 김구 선생이 환국하기 전날 저녁에 쓰신 휘호예요. 불변응만변 을유추반국전석 백범 김구(不變應萬變 乙酉秋返國前夕 白凡 金九)라고 읽어요. “변하지 않는 것으로 온갖 변화에 대응하자 / 을유년(1945) 가을 고국으로 돌아가긴 전날 저녁 백범 김구 쓰다라고 풀이해요.해방된 고국으로 돌아가는 노 독립투사의 만감(萬感)이 서린 휘호예요. 자력으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온갖 이념과 노선으로 갈가리 나뉜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죠. 여기 불변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요. 바로 민족이죠. ‘만변역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요. 바로 혼란한 해방 정국을 가리키죠. 이 휘호에서도 선생의 우직한 면모가 느껴져요

  

당시 많은 이들이 선생과 마찬가지로 민족을 부르짖었지만 이면에는 자신(自身)’자당(自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했죠. 이는 선생 역시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자신과 임정(臨政)이 중심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하셨겠죠. 그러나 그 강도, 즉 자신과 자당이 민족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는 마음은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더 약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협상이 결렬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북의 김일성을 만나러 간 것이 그 한 증좌(證佐)예요. 확실히 선생은 정치가적 면모보다는 지사로서의 면모가 강했어요. 사진의 글씨도 그런 면모를 보여줘요. 다소 거칠지만 결기에 찬 아우라를 발산하는 글씨예요.

  

두자만 자세히 살펴볼까요?

  

은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여 변화 시키다란 의미예요, (칠 복)을 사용하여 의미를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변할 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急變(급변), 變貌(변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음 심)(기러기 안)의 합자예요. 뜻이 모아진다는 의미예요. 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흐트러짐 없이 무리지어 나르는 기러기처럼 뜻이 모아졌다는 의미로요. 합할(응할) .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應接(응접), 相應(상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사진은 JTBC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김병기 교수가 한 강의 중에 등장한 거예요. 이 휘호는 현재 상해 임시정부 청사 건물에 있다고 해요. 김 교수는 많은 이들이 한자 한문에 무관심하다보니 선열들이 남겨놓은 유묵을 그저 아무개 글씨래정도로만 여기고 그 의미나 가치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그 한 사례로 이 휘호를 들었어요. 출연자 중 한 사람도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갔었는데 이 글씨를 봤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자책을 하더군요. 십분 공감되는 강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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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짝 푸른 시내 흙과 돌이 가로막아 / 가득히 고인 물이 막혀서 돌아들 때 / 긴 삽 들고 일어나서 일시에 터뜨리니 / 우레처럼 소리치며 쏜살같이 흘러간다 /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송재소 역, 다산시선, 118)

  

다산의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不亦快哉行]란 연작시 중 한 수예요. 답답하게 고여 있던 시내 둑을 터뜨려 흘려보내면서 느끼는 통쾌함을 그렸어요.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연작시는 오랜 유배생활로 심신이 답답했을 다산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답답한 일들이 일거에 해소되는 내용들을 그리면서 자신의 처지도 그같이 해소되었으면 하는 기원을 담고 있어요

  

살다보면 이런저런 인정(人情)과 세사(世事)에 얽매이기 마련이죠. 그물에 걸린 새와 같은 처지라고나 할까요? 답답함이 바로 삶의 본질 아닐까, 라는 생각조차 들죠. 이런 삶에서 이따금 가뭄의 단비처럼 자신의 뜻대로 성취되는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쾌재(快哉)를 부를 거예요. 그러나 과연 그런 일이 얼마나 될까요? 다산 역시도 쾌재를 부르고 싶었지만 끝내 쾌재를 부르지 못했잖아요?

  

사진은 쾌재정(快哉亭)이라고 읽어요. 나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가 머물던 정자 이름이에요. ‘쾌재, 알려진 대로,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되어 만족스럽게 여기거나 혹은 그럴 때에 내는 소리라는 의미예요. 채수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주로 성종 · 연산군 · 중종시기에 벼슬을 했던 사람이에요. 임금들의 이름이 말해주듯 정치적 명암이 교차하던 시기를 살았기에 환로(宦路)를 걸었던 그로서는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여요. 이 정자는 그가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상주에 은거할 적에 지은 거예요. 쾌재정에 걸린 시를 보면 그가 왜 정자 이름을 쾌재라고 붙였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내 나이 금년 예순여섯 / 지난일 생각하니 모두가 아득키만 / 소년 시절 재주 출중했고 / 중년엔 공명 또한 뛰어났지 / 무정한 세월 흘러 이제는 탄식만 / 청운의 길 아득한데 말 걸음은 제자리 / 어찌하면 티끌세상 일 다 던지고 / 봉래산 신선과 벗이 될 수 있을지

  

정자 이름을 쾌재라고 지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렇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거예요. 그의 불쾌재한 심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시 내용 만으로 보면 출중한 능력을 자부하는 자신이 현실에서 그런 능력을 제대로 펴지 못했던 데서 오는 울울함이 불쾌재의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그 원인의 뿌리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삶 자체가, 앞서 말했던 대로, 인정과 세사에 얽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시의 마지막 두 구절 어찌하면 티끌세상 일 다 던지고 / 봉래산 신선과 벗이 될 수 있을지는 이런 추정이 무리 없다는 것을 말해줘요. 아울러 두 구절은 그가 생각한 진정한 쾌재가 무엇인지도 말해줘요. 바로 인정과 세사의 그물을 벗어버릴 때 가능한 것이라는 거죠. 쾌재정의 쾌재는 채수의 현실과 이상을 반영한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마음 심)(터놓을 쾌)의 합자예요. 일이 뜻대로 되어 기쁘다는 의미예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뜻대로 일이 성사되어 파안대소(破顔大笑)한다는 의미로요. 쾌할 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爽快(상쾌), 欣快(흔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입 구)(재앙 재)의 고자(古字)가 합쳐진 거예요. 문장의 중간이나 말미에 사용되는 감탄 어미(語尾)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의 고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천재(天災)처럼 분명하게 감탄의 의미를 표현하는 어미가 라는 의미로요. 어조사 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哀哉(애재, 슬프구나!), 賢哉(현재, 어질도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높을 고)(의 약자, 못 정)의 합자예요. 못처럼 길쭉하게 높은 곳에 설치한 건물이란 의미예요. 정자 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樓亭(누정), 亭子(정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살면서 인정과 세사의 그물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요? 불교의 무아(無我)나 유교의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그것 아닐까, 생각해 봐요. 인정과 세사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면 욕구의 충족보다는 욕구의 극복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욕구의 극복은 결코 허무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적극적으로 살기 위한 진취적인 것이라 생각해요. 만일 무아나 극기복례가 허무적인 것이었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덕목일리 없었겠죠. 비록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도 그것이 분명 의미 있는 덕목이라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기에 오랜 세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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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운()이요 격()이다. 많은 것이 제일 아니요, 크다 하여 좋을 것 없다. 있을 곳에 있어야 하고, 놓일 때에 놓여야 한다. 비로소 그 향기-향내 가 나고, 까닭에 그 품위-격이 있는 것이다.

    

 

월탄 박종화(1901~1981) 선생의 수선화(水仙花)란 수필 일부분이에요. 무리지어 핀 수선화보다 함초롬히 핀 두어 송이 수선화가 더 품위 있어 보인다고 말하고 있어요. 수선화는 무리지어 필 때도 아름답지만 사진의 수선화처럼 외로이 피어있는 모습도 그 못지않게 아름다워요. 아름다움은 약간의 고독과 도도함이 더해질 때 더 빛을 발하는 것 같거든요. 정호승 시인의 유명한 시 수선화에게도 외롭게 피어있는 수선화를 보고 지은 듯해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수스(Narciss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해요. 이 소년은 샘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다 물에 빠져죽었고, 그 자리에서 피어 난 꽃이 수선화라고 하죠. 자기애(自己愛)라는 꽃말도 여기서 연유한 것이고요. 수선화라는 한자명 역시 물가의 선녀 같은 꽃이라는 라는 뜻이 말해주듯 아름다움과 상관성이 깊어요. 황정견(黃庭堅, 10451105)수선화란 시를 보면,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조식(曹植, 192232)낙신부(洛神賦)일부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경국지색이란 성어를 원용하고 있어요(1구와 5). 낙신부는 고래로 미인의 묘사에 대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그 내용을 원용했다는 것은 수선화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죠. 경국지색의 원용 역시 매한가지구요.

 

 

凌波仙子生塵襪 능파선자생진말   물결 타고 걷는 선녀 가벼운 포말을 일으키며

水上盈盈步微月 수상영영보미월   물 위를 사뿐사뿐 희미한 달빛 아래 걷는 듯

是誰招此斷腸魂 시수초차단장혼   그 누가 이 애끓는 혼 불러다

種作寒花寄愁絶 종작한화기수절   차가운 꽃 만들고 애절한 시름 붙였는가

含香體素欲傾城 함향체소욕경성   향기 품은 하얀 몸 경국지색 미인이니

山礬是弟梅是兄 산반시제매시형   산반화는 아우요 매화는 형이로다

坐對眞成被花惱 좌대진성피화뇌   앉아서 보노라니 참으로 아찔하여

出門一笑大江橫 출문일소대강횡   문 나서 크게 웃자 대강(大江)은 유유히

 

 

그런데 정작 황정견의 시에서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것은 고사의 원용을 통한 묘사보다는 마지막 문 나서 크게 웃자 대강은 유유히란 구절이에요. 이 구절은 장대한 강물과 같은 웅혼함을 간직해야 할 사대부인 자신이 잠시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혼미한 상태에 있었음을 반성하는 내용이에요. 역설적으로 수선화의 아름다움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저도 황량한 마당 한 켠을 환하게 밝혀준 수선화가 고마워 시 한 수를 지었어요. 막상 지어놓고 보니 너무 엄숙한 분위기가 풍겨 산뜻한 미감을 전달하지 못하는 졸작이 되고 말았어요.

 

 

德必有隣古來及 덕필유린고래급   예부터 이르길 덕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知音一壓百不知 지음일압백부지   한 사람의 지인이 무정한 백 사람 보다 나은 법

勿悲斜丘獨開爛 물비사구독개난   비탈진 어덕에 홀로 피었다 슬퍼 마소

吾認汝形最上姿 오인여형최상자   나는 그대가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소

 

 

수선화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 암컷만 꽃을 피워요. 사진에서 보면 매화나무 밑에 있는 녀석들이 수컷인데 무리지어 있기만 하지 꽃은 없어요. 반면 암컷은 떨어져서 저렇게 도도하게 꽃을 피우고 있구요. 저 수컷들 애간장이 탈 것 같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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