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인들이 소인들의 마음을 이렇게도 잘 알까?"
정수리에 얼음물 세례를 받은 느낌이었다. 수업을 담당하시던 분이 결강을 하게 되었다. 육십을 넘긴 도인 풍모의 노인이 보강을 하셨다. 학식의 깊이는 원수업 담당자보다 못하지만 생각의 깊이는 그 분만 못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란 말씀은 내게 충격이었다. 성인(군자)과 소인의 대비적 언급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 수업 시간 내내 머리속에는 저 말만이 맴돌았다. 30 여년 전의 경험.
성인들이 소인들의 마음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인들의 마음에도 소인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닐까? 반대도 가능하다. 소인들의 마음에도 성인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닐까? 성인과 소인의 마음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다. 그러면 성인이 성인된 所以(소이)와 소인이 소인된 소이는 무엇일까?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확대해보자. 고통과 기쁨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통의 이면이 기쁨이고, 기쁨의 이면이 고통이다. 이 역시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보강을 나왔던 노인의 自問(자문)은 이러한 이치를 자신도 모르게 누설한 것이다. 깊은 생각의 결과일 것이다. 30 여년이 지난 뒤 드는 생각.
사진의 한자를 읽어 보자. 낙관 부분은 생략한다. 설중화도리(雪中花桃李) 용화불원재(龍華不遠在) 멸도무집고(滅度無集苦) 아정유상락(我淨有常樂). 이런 뜻이다. 눈 속에 도리화 피어나니 / 용화세계 먼 곳에 있지 않네 / 열반은 고통 없는 자리 / 내 마음 맑으면 항상 기쁘리.
눈 속에서 복숭아와 오얏 꽃이 필까? 불가능하다. 비유이다. 눈은 시련 혹은 고통을, 복숭아와 오얏 꽃은 행복 혹은 기쁨을 비유한 것이다. 첫째 구는 이런 뜻이다. 행복과 기쁨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생긴다! 둘째 구, 용화세계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낙원은 저 멀리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이 사바 세계에 있다는 것! 셋째 구 열반의 의미도 매 한가지이다. 고통이 끊긴 자리, 거기가 열반이지 별도의 열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 격의 넷째 구는 무슨 의미일까? 이렇듯 聖俗(성속)이 不二(불이)한 삶과 세계에서 항상 기쁠 수 있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무엇일까?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맑고 고요한 물처럼!
유교는 행복과 기쁨 그리고 고통과 시련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성인의 길과 소인의 길을 말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몫이다. 불교는 성인의 길과 소인의 길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행복과 기쁨의 길 그리고 고통과 시련의 길을 말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몫이다.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지만 주체의 자각적 선택이란 점에서는 두 가르침이 일치한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얻었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0201&docId=332381825 사진을 게시한 분의 사전 허락은 받지 않았다. 내용이 좋아 인용했다. 사진을 올린 분이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 보자.
滅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烕(없앨 혈)의 합자이다. 지상의 물이 햇빛에 말라 다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멸할 멸. 滅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消滅(소멸), 滅亡(멸망) 등을 들 수 있겠다.
執은 무릎 꿇은 죄수의 두 손에 수갑 채운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잡을 집. 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執行(집행), 執權(집권) 등을 들 수 있겠다.
淨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爭(다툴 쟁)의 합자이다.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氵로 뜻을 표현했다. 爭은 음(쟁→정)을 담당한다. 깨끗할 정. 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淨化(정화), 淸淨(청정) 등을 들 수 있겠다.
常은 巾(수건 건)과 尙(숭상할 상)의 합자이다. 깃발이란 의미이다. 巾은 뜻을, 尙은 음을 담당한다. 깃발 상. 항상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유추된 뜻이다. 천자와 제후 장군 등 귀한 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항상 세워놓는 것이 깃발이란 의미로. 항상 상. 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通常(통상), 常識(상식)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그간 경어체로 글을 썼는데 평어체로 바꿔 봤어요. 어떠신지요? 아울러 어려운 용어의 경우, 그간은 한글을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해봤어요. 한자를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으로. 이유가 있어요.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해봤자 많은 이들이 한자를 모르기에 무의미한 표기란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럴 바엔 차라리 한자를 쓰고 괄호 안에 한글을 병기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경우도 한자를 못읽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괄호 안의 한글을 통해 한자를 인식하는 효과는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