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맛있다 - 군침 도는 이스탄불 뒷골목 맛집 기행 여행인 시리즈 7
안셀 멀린스.이갈 슐라이퍼 지음, 나은희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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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 두 번째 서평

터키는 맛있다-나은희 옮김

 

음식으로 만나는 터키

 

  터키는 친근한 곳이다. 결혼을 하고 첫해 남편은 다니던 직장에서 첫 해외출장을 터키로 떠났다. 집에는 아직도 그가 쓰고 남긴 채 가지고 온 터키 화폐가 남아있다. 책 후반에 실린 부록에서 다양한 터키의 통화를 보고 있자니 가벼운 웃음이 흘러나온다.

열흘넘게 양고기만 먹었다고 투정을 부렸던 십년 전의 남편얼굴이 이번 책 ‘터키는 맛있다’와 자꾸만 오버랩되는 것을 느낀다.

 

  사설은 여기까지. 이제 책이 품고 있는 매력에 대해 들여다볼 차례다. 책은 두명의 저자가 공동저술의 형식으로 집필했고 역자 ‘나은희’에 의해 번역되었다. 책에 대한 총체적인 느낌은 한마디로 말해서 ‘맛집 소개’라고 볼 수 있다. 지리적 배경이 터키로 한정되고 있을 뿐 그 내용은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에서 방송되고 있는 각종 맛집 프로그램을 연상케 하는 듯하다. 전국 방방곡곡의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면서 대표적인 요리와 요리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말이다. 신문지상에서는 누구누구의 ‘맛 칼럼’이라는 소제목으로 적당한 분량의 칼럼이 실리는 것과 전체적으로 책의 느낌이 일정부분 닮아있다.

 

  두명의 저자 ‘안셀 멀린스’와 ‘이갈 슐라이퍼’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 책의 의도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단순히 맛있는 집의 소개라는 차원 그 너머의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적어보자.

 

[이스탄불에서 ‘뒷골목에 이토록 다양한 먹을거리와 보석 같은 식당들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찾기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터키의 진짜 맛을 알리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 나와 친구들은 Istanbuleats.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책에서는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훌륭한 음식을 대접하는 작지만 좋은 식당들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용한 글은 프롤로그 형식의 글에서 발췌한 글이다. 책은 엄밀히 말해서 프롤로그라는 어휘를 쓰지 않았다. 다만 본문에 앞서 두 저자의 소개문(서문) 형식으로 비교적 짧고 명확하게 저술하고 있는 형식을 취했다. 책이 갖는 전반적인 구성과 편집이 주는 느낌이 규격에 딱 들어맞게 엄격한 형식을 갖추고 있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러운 편집이 눈에 띈다. 일반적인 책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특별한 목적(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와 식도락가들을 위한 소개)을 갖고 있는 책이기에, 구성과 형식면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컨셉을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어쩌면 책속에 담긴 내용 하나하나에서도 묘하게 색다른 멋이 느껴지는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터키는 맛있다’는 이들 두 명의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책은 터키의 음식 문화와 전통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과거와 함께 이어온 현대라는 시점에서 서로 맞물려 어떤 식으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가는 가에 대해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이어간다.

터키의 이색적이면서도 그들만의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다양한 요리법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는 부분에서(p12) 꼼꼼함이 묻어나는 친절함에 만족해했던 책 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책은 터키를 크게 6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식당을 소개하고 있는데(저자들의 주관적인 판단도 많이 가미된 듯) 이 과정에서 각 식당의 가장 인기 있는 음식과 그 조리법을 설명하기도 한다. 때로는 길거리 음식을 소개하기도 하고, 서민들이 즐겨 찾는 재래시장 한쪽에 위치한 식당으로 안내하기도 하며,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가기도 하는 이번 여정은 그만큼 신선했으며 이채로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앞에서도 자주 언급한 부분인데 특히나 눈에 띄었던 부분은 음식의 조리방법과 맛의 특색까지도 친절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다양한 재료로 식당을 찾는 이들의 입맛을 돋우는 케밥과 더불어 숯불이나 화덕 등 조리에 필요한 환경이나 굽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구분해서 명시한 점, 한가지의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속 내용물로 들어가는 재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는 점까지 여러가지로 시선을 붙잡는 대목이 많았던 것 같다. 굽는 방법을 이용하는 고추요리가 자주 소개되고 있는데 구워먹는 고추요리는 정말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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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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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한번째 서평

칼 마르크스-이사야 벌린. 안규남 옮김

 

혁명을 뛰어넘은 이상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 할 분야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책 표지에 실린 마르크스의 얼굴은 강렬한 느낌을 주는 듯하다. 강직하게만 보이는 깊은 눈매로 갈무리된 두 눈은 어디를 응시하고 있을까. 눈썹과 양미간의 깊이가 유난히 깊어보이고 굳게 다문 입술은 양쪽 귀를 덮으면서 이어지는 구레나룻와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다부지다.

 

이사야 벌린에 의해 저술된 칼 마르크스의 평전을 읽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따라오겠지만 우선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이미지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사상이 가져오는 무게감도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긴 호흡의 번역문장으로 인해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다시 봐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문제들은 초반에 버그적 거렸을 뿐 중반부 이후의 책읽기에는 그다지 큰 문제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책이 갖는 가치를 생각할 때 두 가지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적으로 책은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책 표지에 소개되고 있는 추천사를 비롯해서 번역을 한 안규남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책을 저술한 이사야 벌린에 대한 중요성과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세간이 쏟아내고 있는 이사야 벌린의 가치는 이념과 사상의 편중됨 없이 중립적인 사고의 바탕 안에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한 채 저술했다는데 많은 의의를 두는 듯하다. 어찌보면 책은 마르크스를 정면에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기실 마르크스와 함께 이사야 벌린이라는 두 사람을 동시에 세상에 등장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생애와 시대’라는 타이틀로 시작하고는 있지만 생애를 다루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으로 그 양이 미흡해보인다. 그 대신 책의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 있다. 사상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어색한 표현이 될까. 어쨌든 마르크스가 그 스스로 자신만의 사상을 온전히 성립하기 이전의 시기부터 시작해서 공산당 선언을 선포하는 과정, 자본론을 저술하고, 혁명가로서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책 속에는 흡사 철학개론을 방불케 하는 듯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그의 사상을 구축하기 이전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던 헤겔철학을 비롯해서(후기로 갈수록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과 분명한 선을 긋는 듯하다)각각의 진보성향 내지는 사회주의 성향의 철학자들이 갖는 이론과 개념들을 응용해서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가는데 있어 주목할 것은 ‘이용가치에 따른 냉혹한 판단과 선택’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서 마르크스는 당대 현실에 맞게 어느 철학과 개념들을 선택했다가도 또 어느 시점에서 냉혹하리만큼 그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청년시절의 마르크스가 지닌 이념들이 몇 번의 역사적 사건(현실 인식의 차원)을 거치고 성숙하는 과정을 통해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마르크스 그 자신이 개인적인 감정과 정서적인 것에 연연해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에 그는 감정 자체가 결여된 냉정하고 비판의식이 강한 언변과 글로 분명하게 획을 긋는 것을 즐겨 했던 것 같다. 감상적인 것은 혁명과 투쟁의 길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마르크스의 정신세계를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오로지 방어를 위한 공격성으로 똘똘 뭉친 인성의 소유자처럼 보이게 하는 그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를 비롯해 다른 인근 지역의 사회주의 흐름을 통찰하고 있다. 혹자는 이사야 벌린의 저술이 지니는 가치를 중립적 사고, 객관적 시각에 비중을 두는 가도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사야 벌린의 폭넓은 접근 방법에 더 많은 긍정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 중에 첫째는 전자에 밝힌바 있듯이 다른 사념이 개입되지 않은 채 오로지 철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주의 내지는 사회주의 성향의 철학사적인 개념과 마르크스 이론의 연계성을 순차적으로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일예로 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인근 주변국들의 사회주의(후기에 와서는 공산주의)흐름의 변천과정과 사건들을,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집단(정당)과 개인(마르크스)간의 상호작용의 개입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데 주목하게 된다. 이는 분명하게도 혁명과 투쟁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일종의 ‘필요가치’에 의해 많은 작용을 주고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두가지의 이야기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고 강하며 지역성을 따져보더라도 그 영향력의 폭이 넓었다는 데 기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에 항거하는 가장 낮은 계급의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과 해방을 위해 이론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실행으로 옮겨왔던 행동하는 철학자이자 혁명가였던 칼 마르크스. 그는 스스로 이룩하고자 했던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위해 전 생을 아낌없이 희생했다. 책속에는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평생을 마르크스와 한길을 걸었던 엥겔스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실려있다. 엥겔스라는 인물이 갖는 비중이 작지는 않았을 법한데 책속에 등장하는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조력자 역할에만 만족하고 있는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지독한 빈곤 속에서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마르크스의 정신적 지지대였을 그의 온전한 사상은 시대를 뛰어넘어 고전 중에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책 속에서 생시몽을 처음 알게 되었고,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에 호감을 갖게 된 듯하다.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로 대학 강의실에서 들었던 모 교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던 생시몽의 이론은 결과적으로 어쩌며 세상의 그 어떤 강력한 사상과 개념도 결국에는 온전히 하나로 완벽해지기 어렵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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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2 2 - 혼자 살다 갈 수도 있겠구나…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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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 번째 서평

낢이 사는 이야기 2 -서나래

 

살아가다 보면....

 

  카툰집이다. 만화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하지만 누구누구의 이야기처럼 독특하지 않은가.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일이다. 언젠가 한번 스마트 폰으로 이리저리 손가락을 굴려가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서나래의 카툰을 본적이 있었다. 유난히 큰 머리와 소소한 일상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이 보는 허무맹랑한 무협만화보다야 스케일도 크지 않고, 내용도 잔잔하지만 그게 보통 사람들, 우리들이 사는 모습이 아닐까. 괜히 물위를 건너다니고 손바닥에서 바람이 나와 집 한 채를 쓰러뜨리는 식의 과장된 이야기는 그다지 구미를 자극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쯤되면 무협만화 신봉자들에게 몰매를 맞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개인의 취향은 그렇게 다 다른 거란 말이다. 남편과 내가 서로 다르듯이.

 

  카툰집 한권을 봤을 때 전체적으로 여백이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도 가능하면 한명 내지는 두 명, 배경으로 주변 인물로 스케치할 때를 제외하고는 강조할 주인공 수는 많지 않다. 물론 주인공은 작가 자신. 서나래의 카툰집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 모음이다. 그런 까닭에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쉬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틈틈이 감초 역할로 등장하는 남동생과 부모님 그리고 또 하나의 가족들인 고양이 가족과 손톱만한 크기였을 때 입양한 달팽이 둥글레씨의 존재감도 사뭇 진중하다.

 

  소설이나 희곡 장르처럼 어떤 반전이나 극에 달하는 절정과 같은 구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한 분위기가 친근하다. 꾸밈없는 날것으로의 순수성이 우회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어쩌면 서나래의 작가정신과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 ‘우리들은 실수쟁이들’을 보면 사회초년생들이 직장생활과 업무에서 경험하게 되는 자잘한 실수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측은지심의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사회초년생들의 동질감을 끌어내는데 어렵지 않게 접근하고 있어 보인다. 작가가 마지막에 써놓은 문구는 과히 씁쓸하면서도 겸허하기까지 하다.

 

[우리네들은 이렇게 사회에서 제 몫의 실수를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P54)

 

  ‘심야 택시’의 내용은 작가가 우연히 야심한 시간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지인에게 전화를 하는 것처럼 연극 아닌 연극을 하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는 이야기는 코믹함 가운데 사회적 풍자도 살며시 들어간 듯한 인상을 준다. 카툰이 갖는 본연의 역할을 잘 이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사회적 비판 같은 것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척, 처음부터 끝까지 순진하게만 보이는 듯한 작가의 멘트에 힘이 실린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반어법과 언중유골의 조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세요. 아저씨. 나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답니다. 없어지면 누가 찾을 거에요. 그러니 부디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 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은 좀 편해졌지만 동시에 좀 슬펐다] (P125)

 

  중간중간에 ‘싱글라이프’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일상을 담아내는 코너가 실린 것도 눈에 띈다. 카툰을 읽으면서 쉬어가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접했던 부분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식용달팽이 둥글레 씨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관찰일지처럼 보여주는 작가의 사소하면서도 진실된 이야기. 어쩌면 그런 평범하면서도 섬세한 면모들이 서나래 그녀가 추구하는 그녀만의 세계의 장점이자 가장 강한 무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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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교토 - 느릿느릿 즐기는 골목 산책 시공사 시크릿 시리즈
박미희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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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아홉 번째 서평

시크릿 교토-박미희지음

 

교토를 예찬하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하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늘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내게 있어 여행이란 어휘 자체만으로도 조금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다가온다. 불현듯 배낭을 꾸려 떠날 수 있을까. 걸리는 게 너무나 많은데 정말 떠날 수 있을까. 문득 자문한다. 기화가 있을 때마다 한번씩 외국에 나가시는 부모님의 명언 하나가 기억난다. ‘한번 나가봐라. 또 가고 싶지.’

  여권을 준비하고 비자를 챙기고 트렁크를 챙기는 분주함 대신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책을 선택한다. 책으로 얼마만큼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늘 하는 말인즉 ‘책도 책 나름’ 이지 않은가 말이다.

 

  박미희의 <시크릿 교토>는 보석처럼 이쁘고 아담하면서도 빛이 나는 책이다. 여행자들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한 정보의 메모 그리고 다양한 사진과 더불어 곳곳의 감상을 족집게 강사처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이 작은 섬나라라고만 생각했다면 박미희의 책을 통해 굳어져있던 하나의 통념을 깰 좋은 기회로 다가서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섬나라 일본 그 중에서도 교토. 저자는 교토의 구석구석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대며 발품을 팔아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초보여행자들의 길을 안내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교토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쩌면 가이드를 직접 수행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교토는 저자 박미희가 새롭게 정하고 있는 인식의 흐름에 의해 나누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조용하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돌아보면 좋을 곳, ‘철학의 길’로 유명한 지역의 산책하기 좋은 곳, 가장 볼거리가 많은 명소가 집중된 곳, 소설 설국으로 처음 알게 된 ‘게이샤(게이코)’와 게이코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에 있는 ‘마이코’를 만날 수 있는 곳(하나미코지), 그 외에도 교토에서 가장 번화가를 이루고 있는 곳과 더불어 유명사찰 내지는 차로 유명한 지역의 소개까지 박미희의 교토 소개는 이채로운 동시에 다양하다.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의 수고로 매번 새롭게 눈앞에 펼쳐지는 운치 있는 교토를 만난다. 각각의 지역마다 세심하면서도 다정하기까지 한 저자의 시선을 따라 섬나라 일본의 숨은 보석을 들여다보는 기회인 셈이다.

여행객을 위한 책인만큼 크고 작은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는 것이 호기심과 여행을 향한 의욕을 자극하는데 한 몫을 더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목욕탕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 ‘사라사니시진’(p229)과 직접 화과자를 만드는 체험을 해볼 수 있는 화과자점 ‘간슌도히가시텐(p281)’. 카페, 갤러리, 호텔이 한곳에 모인 신개념 '아파토텔인 ‘프린츠’(p63). 신비주의의 한 획을 긋는 듯한 분위기의 이끼로 둘러싸인 사찰 ‘사이호지’(p307) 등이 기억에 남는다.

 

  명소마다 찾아가는 길에 대한 정보와 각각의 상점이 오픈하는 시간대, 연락처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같이 명시하고 있으며 부록으로 지도와 간단한 일본어 회화까지 함께 싣고 있어 책은 실제로 여행길에서 다른 안내 책자 없이도 요긴하게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유난히 사찰문화가 발달한 일본인만큼 책속에는 고즈넉하면서도 운치 있는 사찰이 상당히 많이 소개되고 있다.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곳도 많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도 여럿 눈에 띈다. 사찰과 쌉싸름한 맛이 난다는 차, 그리고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음식점과 잡화점 카페 등을 통해 여행을 위한 목적으로서의 일차적인 목적을 인정하게 된다. 더불어 한편으로는 일본의 다양한 문화적 컨텐츠로서의 의미를 생각하며 폭넓은 가이드 역할을 우직하게 끌어가고 있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 볼일이다.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고 눈이 호사를 누렸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넓어지고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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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로 생각 리셋
이정숙 지음 / 나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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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여덟 번째 서평

좋은 엄마로 생각리셋-이정숙

 

그래도 소신 있는 엄마가 좋더라

 

  집에서 전업주부로 연년생 남매를 키우다보니 결혼 전에는 소형 마이크를 사용하면서 이야기하자고 요구해왔을 정도로 작았던 목소리가, 결혼생활 십년만에 기차 화통 삶아먹은 소리처럼 억세고 우렁차게 변했다. 사실 이 부분은 약간의 자조가 섞였다. 하지만 긍정의 변화라고 믿고 있다. 어쩐지 상황에 있어 구리구리한 과장이 섞인 냄새가 풍기지만 결국 아이들이 자라는 동시에 엄마도 변화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육아서는 잘 보지 않는다. 못된 엄마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솔직해지기로 하자면, 약간의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내가 갖는 그 부담감들이 현실적으로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의 교육과 양육이라는 문제 앞에서 슬그머니 뒷걸음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골치아픈 것은 절대 사절이다. 그런데 문득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자기 회의와 의문들이 쪼그라들어버린 엄마의 양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비굴하게도 약간의 위축이 자극제가 되었던 까닭이겠지만 접어두었던 관심분야의 책을 집어들었다. 그것이 이정숙의 책이다.

부모가 또는 엄마들이 육아서를 끼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또 왜 여느 엄마들처럼 이 주제에 홀깃해서 이정숙의 책을 접하고 있는 것일까. 늘 되풀이되는 이야기. 그들이 말하는 내용과 정리하는 결론은 다들 비슷비슷했다. 그런 까닭에 매번 복습만 하는 기분이 든다.

  어쩌다 누군가 새로운 이론과 학설로 재무장해 책 한권을 내면, 다들 그와 비슷한 아류의 책들을 찍어낸다. 결국 원조격인 책과 후발주자로서의 출간된 책이 서점에서 같이 경쟁하면서 내용의 평준화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딴은 이 문제가 어디 교육관련 양육서적에 한한 일일까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생각을 읽어줄 때 가슴을 그 마음을 먼저 읽어줘야 한다는 것처럼 책을 만들어내는 저자와 관계자들이 형식과 기준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보통의 엄마들이 쉽게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 방식을 자주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포장을 바꾸고 약간의 상황설정의 변화를 가져와 새 책인 듯 내놓는 방식에 동조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나는 나름의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또한 알고 있다. 과연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많은 얼마나 다양한 육아서를 읽었나 하는 비판이 그것이다.

 

  ‘스펙’의 사전적 의미는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네이버 사전에서 점 하나 빼지 않고 고대로 인용한 표현이다. 방송인이라는 직업을 접어두고 두 아들을 데리고 유학을 떠났던 책의 저자 이정숙의 교육관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책 ‘생각리셋’ 안에는 유난히 ‘스펙’이라는 신조어가 자주 등장한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나는 신조어 ‘스펙’ 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어휘를 두고 우습지 않게 반감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스펙이 어쨌다는 건가, 라는 식이다. 글로벌 시대에 ‘모셔가는 인재(개인적으로 모셔가는 인재라는 표현이 좋아보이지 않는다)로 만들기 위한 교육지침서’라는 특명을 지닌 이번 이정숙의 책은 저자의 경험을 근저에 깔고 시작하고 있어, 보통의 엄마들에게서 신뢰감과 친근함을 끌어내는데 용이하다고 본다. 저자는 오래전 친정어머니를 대신에서 동생들을 키우고 가르쳤던 경험과 자신의 두 아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배워온 실제 경험들을 토대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어머니상과 동시에 바른 교육관을 피력하고 있다.

 

  개인적인 식견중 하나지만 모든 분야에 있어 나름의 비판 없는 수용은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정숙의 책 역시 비판과 동조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읽어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의견과 판단에 무조건적으로 동조는 하지 않는다. 다만 저자가 자신의 책에서 말했듯이, 육아는 예습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닌 것이기에 경험자들의 진실된 조언과 몸소 겪었던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내 아이의 상황을 보다 긍정적 차원으로 전환시키는 데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믿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교육방송에서 하는 ‘마더쇼크’ 라는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마더쇼크’를 본 것은 행운이었다. 비단 그것을 대중매체가 갖는 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에서는 책과 달리 유연성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이 개인의 경험(물론 경험의 가치를 간과할 수는 없다)과 사고에서 기인하는 긍정의 마인드로 집약이 됐다면, 방송에서는 다양한 실험군의 비교와 이론이 뒷받침되는 과정을 통해 차분하게 방송의 주된 목적(자녀와의 관계에서 찾아야 하는 현명한 어머니상)을 인지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점이 그 차이점이지 않은가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묘한 반감에 사로잡혀있던 나는 그 반감의 근저가 되는 원인을 ‘일반화의 오류’라는 나만의 독단적 사고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다. 어쩌면 지나친 삐딱선을 탔는가도 싶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하는 다양한 사례 역시, 각각의 문제상황을 구격화한 문제의 틀 안에서 풀이하고 해석하는 듯한 느낌에서 자연스레 갑갑증을 느꼈던 것 같다. 제시하고 있는 문제들과 해결책으로 과연 매 순간과 각각의 상황에 따라 무수히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백프로 다 담아내고 정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차였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사례가 갖는 특성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갖는 일반적이고 가장 보편적이라기보다는, 그들 중에서도 특히 학업 내지는 학업과 연계된 인성,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갖는 학생들이 갖는 그들만의 고충과 그들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책을 읽는 독자의 자리에 서있는 부모와 특히 그 중에서도 주요 타겟인 엄마들은 지나치게 일반적이며 대중적인 동시에 또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굳이 책이 갖는 문제점이라는 표현을 들기는 그렇지만, 비교 실험이라고 했을 때 실험군과 대조군의 한계와 구분이 명학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글로벌 시대에 부응하는 인재육성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이론은 내 아이를 잘 키워내기 위한 유능한 엄마로 환골탈태하자는 데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가장 명확한 주장이지 싶다.

 

  저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나는 사뭇 삐딱하고, 쉽게 말해서 더 공부를 해야 할 엄마로 낙인이 찍힐만하다. 엄마의 마인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를 십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자연주의에 근접하는 양육관 내지는 모성애에 더 많은 끌림의 작용을 중요시하고 있는 나는 딴은 아직도 갈길이 먼 과정에 이미 들어서버린 것은 아닌가. 이를테면 허접한 소신이 만들어낸 아집이다. 당분간은 소신의 의미를 되새겨 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에서 거론하고 있는 내용은 숙지하고 아이들과 같이 생활 속에서 경험해가며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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