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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한번째 서평
칼 마르크스-이사야 벌린. 안규남 옮김
혁명을 뛰어넘은 이상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 할 분야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책 표지에 실린 마르크스의 얼굴은 강렬한 느낌을 주는 듯하다. 강직하게만 보이는 깊은 눈매로 갈무리된 두 눈은 어디를 응시하고 있을까. 눈썹과 양미간의 깊이가 유난히 깊어보이고 굳게 다문 입술은 양쪽 귀를 덮으면서 이어지는 구레나룻와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다부지다.
이사야 벌린에 의해 저술된 칼 마르크스의 평전을 읽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따라오겠지만 우선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이미지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사상이 가져오는 무게감도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긴 호흡의 번역문장으로 인해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다시 봐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문제들은 초반에 버그적 거렸을 뿐 중반부 이후의 책읽기에는 그다지 큰 문제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책이 갖는 가치를 생각할 때 두 가지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적으로 책은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책 표지에 소개되고 있는 추천사를 비롯해서 번역을 한 안규남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책을 저술한 이사야 벌린에 대한 중요성과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세간이 쏟아내고 있는 이사야 벌린의 가치는 이념과 사상의 편중됨 없이 중립적인 사고의 바탕 안에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한 채 저술했다는데 많은 의의를 두는 듯하다. 어찌보면 책은 마르크스를 정면에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기실 마르크스와 함께 이사야 벌린이라는 두 사람을 동시에 세상에 등장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생애와 시대’라는 타이틀로 시작하고는 있지만 생애를 다루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으로 그 양이 미흡해보인다. 그 대신 책의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 있다. 사상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어색한 표현이 될까. 어쨌든 마르크스가 그 스스로 자신만의 사상을 온전히 성립하기 이전의 시기부터 시작해서 공산당 선언을 선포하는 과정, 자본론을 저술하고, 혁명가로서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책 속에는 흡사 철학개론을 방불케 하는 듯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그의 사상을 구축하기 이전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던 헤겔철학을 비롯해서(후기로 갈수록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과 분명한 선을 긋는 듯하다)각각의 진보성향 내지는 사회주의 성향의 철학자들이 갖는 이론과 개념들을 응용해서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가는데 있어 주목할 것은 ‘이용가치에 따른 냉혹한 판단과 선택’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서 마르크스는 당대 현실에 맞게 어느 철학과 개념들을 선택했다가도 또 어느 시점에서 냉혹하리만큼 그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청년시절의 마르크스가 지닌 이념들이 몇 번의 역사적 사건(현실 인식의 차원)을 거치고 성숙하는 과정을 통해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마르크스 그 자신이 개인적인 감정과 정서적인 것에 연연해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에 그는 감정 자체가 결여된 냉정하고 비판의식이 강한 언변과 글로 분명하게 획을 긋는 것을 즐겨 했던 것 같다. 감상적인 것은 혁명과 투쟁의 길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마르크스의 정신세계를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오로지 방어를 위한 공격성으로 똘똘 뭉친 인성의 소유자처럼 보이게 하는 그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를 비롯해 다른 인근 지역의 사회주의 흐름을 통찰하고 있다. 혹자는 이사야 벌린의 저술이 지니는 가치를 중립적 사고, 객관적 시각에 비중을 두는 가도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사야 벌린의 폭넓은 접근 방법에 더 많은 긍정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 중에 첫째는 전자에 밝힌바 있듯이 다른 사념이 개입되지 않은 채 오로지 철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주의 내지는 사회주의 성향의 철학사적인 개념과 마르크스 이론의 연계성을 순차적으로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일예로 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인근 주변국들의 사회주의(후기에 와서는 공산주의)흐름의 변천과정과 사건들을,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집단(정당)과 개인(마르크스)간의 상호작용의 개입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데 주목하게 된다. 이는 분명하게도 혁명과 투쟁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일종의 ‘필요가치’에 의해 많은 작용을 주고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두가지의 이야기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고 강하며 지역성을 따져보더라도 그 영향력의 폭이 넓었다는 데 기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에 항거하는 가장 낮은 계급의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과 해방을 위해 이론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실행으로 옮겨왔던 행동하는 철학자이자 혁명가였던 칼 마르크스. 그는 스스로 이룩하고자 했던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위해 전 생을 아낌없이 희생했다. 책속에는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평생을 마르크스와 한길을 걸었던 엥겔스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실려있다. 엥겔스라는 인물이 갖는 비중이 작지는 않았을 법한데 책속에 등장하는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조력자 역할에만 만족하고 있는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지독한 빈곤 속에서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마르크스의 정신적 지지대였을 그의 온전한 사상은 시대를 뛰어넘어 고전 중에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책 속에서 생시몽을 처음 알게 되었고,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에 호감을 갖게 된 듯하다.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로 대학 강의실에서 들었던 모 교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던 생시몽의 이론은 결과적으로 어쩌며 세상의 그 어떤 강력한 사상과 개념도 결국에는 온전히 하나로 완벽해지기 어렵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