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 일곱 번째 서평

출항1.2 -버지니아 울프

 

무엇을 위한 출항일까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와 부조니의 샤콘느는 닮은 꼴이다. 바흐의 원곡을 부조니가 편곡해서 새로 편집해 내놓은 곡이기 때문이다. 이들 샤콘느의 특징은 비슷한 선율로 시작하면서 서로 다른 음색을 자랑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서로가 비슷한 분위기의 마무리를 만들어간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다르면서도 같다는 말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말은 엄밀히 말했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원곡과 편곡 후의 곡을 차례대로 듣는 일은 나름 의미 있는 일 중에 하나이다.

  샤콘느와 버지니아의 소설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에 대한 이미지는 바흐와 부조니의 음악처럼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서로가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큰 맥락에서 봤을 때 같은 점성을 유지해가면서도, 세밀하게는 깊은 심연에서 각각의 것들이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끊어졌다가는 다시 이어지는 울프만의 글 쓰기가 어딘지 모르게 이들 샤콘느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가싶다.

 

  버지니아를 읽어내겠다고 한 것은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목마와 숙녀에서 살짝 등장했던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이미지는 시종일관 센티멘탈 수준에서 고정되었던가 싶다. 어떤 계기나 동기부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전에 알게 된 작가 전혜린을 생각하면 늘 버지니아가 따라다녔다. 왜였을까.

전혜린의 글을 접하면서 그만의 강한 작가적 향취를 따라가다 보면 늘 종착점은 ‘목아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고 노래했던 노천명이 아닌, 버지니아라는 사실에 종종 낯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소설 ‘출항’을 읽어내는 일은 길고긴 여정이었고 솔직히 이 여정 속에 한동안 갇혀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고하게도 무언가를 보고 느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은 여느 번역물에서 보이는 자잘한 문제점들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늘어지는 호흡으로 길어지는 문장, 같은 어휘의 남용이 전체 소설 중에서 몇 군데가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소설은 아주 원대하고도 큰 이상을 품고 있으며, 작가 스스로가 꿈꾸었을 무언가를 실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절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목하고 싶은 점은 작가 버지니아의 작가적 고충이다. 한편의 작품을 두고 세인들은 늘 그렇듯 여러말을 주워섬긴다. 비평가들은 그들 각자의 식견에 따라 작품을 해부하고 살을 붙이며 이를테면 독자에게 책을 이해하는 지름길을 가르쳐주기 바쁜데 버지니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출항을 두고 이 작품이 의미하는 주제와 작가적 페이소스에 대한 생각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도 많았던 것 같다. 다만 버지니아의 작품을 페미니즘 성향으로 논하거나, 비교적 진보성향의 이미지를 빌려왔다는 이야기에 사뿐히 너무나도 가볍게 편승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원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나는 욕심을 부리는가. 타인의 것이 아닌 나만의 것으로 바라보는 버지니아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모든 익숙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전혀 새로운 버지니아를 그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참 힘이 들었다고 엄살을 떨고 싶어진다. 어느 날은 해가 비치고 또 어느 날은 우울하게도 하늘이 온 종일 흐리다가 어느 날은 급기야 폭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버지니아의 소설은 다양한 색감을 지녔다.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을 읽어냈을 때와 깊이 정독했을 때의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트릭에서 벗어났을 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작가는 독자에게 끊임없는 주문을 제시한다. 그녀는 쉽게 말하지 않으면서 긴요한 상황을 침착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사실 책을 읽는 독자는 작가가 펼쳐내는 독심술과 같은 느낌의 이 길고도 까다로운 트릭을 하나씩 벗겨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성이 담긴 작가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버지니아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만큼 애정이 가는 작가라는 사실에는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책은 대화나 서사 외에도 상당부분 묘사가 등장하는데, 인물이나 각인물의 심리묘사를 그려감에 있어 배경과 적절히 접목해 가며 묘사하고 서술해가는 방식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여전히 가볍게 편승하기는 싫지만 각설하고, 패미니즘에 입각한 시각으로 보는 시점에서 주인공 레이첼의 시선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러한 요소를 반영하는 현실이라는 문제 앞에서 주저와 갈등 그리고 비판을 주고받는 주인공들의 미묘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점에서 작가 버지니아의 열정을 여실히 보고 느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러니하게 소설은 사랑이라는 어떤 클래식한 섬세함 속에서도 부단하게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차별과 이에 대한 극복이라는 인식을, 여성이라는 주체에 투영해가며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버지니아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는 비판적인 생각을 작중 주인공 여성 레이첼이 아닌 남성인 약혼자 휴잇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책의 말미에 수록된 해설을 읽어본다면 보다 명확하게 이유를 알 수 있다. 제목인 출항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도전일까. 인식에 대한 새로운 혁명일까. 해설 부분에서도 제목이 상징하는 바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출항의 의미를 고착화된 인식에서 벗어나는 탈출의 이미지로 생각하고 싶어진다.

  뒷부분에 실린 옮긴이 진명희님의 해설부분도 꼭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는 해설 부분을 모두 추종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시각에 따른 비평이 지속적인 자극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다시 버지니아를 만날 수 있을까. 물론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 될 일이다. 그렇긴 한데 쉽게 내뱉지 않은 진중한 매력을 지닌 버지니아의 글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설레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와의 기싸움 - 사랑과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부부싸움보다 힘겨운 전쟁
메리 커신카 지음, 안진희 옮김 / 북라이프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 여섯 번째.

아이와의 기싸움-메리 커신카

 

끊임없이 바라보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밥 먹이고 씻기고 가르치는 식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가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비록 내 속에서 나고 자란 작은 아이지만 결국은 한 사람의 인격체를 키워내는 일이다. 매순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어려운 일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양육서에 대한 편견이 있기는 하지만 메리 커신카의 책은 개인적으로 굳어있던 편견의 한쪽 귀퉁이를 속 시원하게 날려주는 책이었다. 일정부분 속이 후련하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책을 보지 못한 까닭에 객관적 비교를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접해왔던 책과는 분명 그 접근법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꼈던 것 같다.

  책이 주는 분위기는 진중하며 깊이감이 있다. 쉽게 서술하고 있지만 가볍거나 혹은 너무 무겁지 않은 흐름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다양한 사례를 들어서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놓은 점도 저자만의 글이 지니는 장점이 아닐까.

 

  책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세밀한 시각으로 들여다보며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론만을 앞세우며, ‘이런 상황일 때는 이렇게 해라~ ’는 식의 단순하고 획일적인 양육서와는 달리 저자 메리 커신카는 눈앞에 드러나는 문제행동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제시하는 방법은 책에서 저자가 직접 언급했듯이 ‘문제행동의 바다 그 아래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가의 현실적인 문제를 확인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책 속에서 저자가 심리적 측면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 방법을 이야기 할 때면 마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을 아주 부드럽고 쉽게 풀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문제행동의 원인을 여러 가지 환경요인과 더불어 심리적 요인에서 찾아 아이가 갖는 상처와 아픔과 힘겨움을 읽어내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감하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역시 각각의 상황에 맞는 심리적 분석과 조언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저자는 부모라는 이름의 다 큰 어른(여전히 자녀 때문에 상처받고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성인이 된 아이)에게도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는다.

  아이와 늘 함께 부딪치는 대상은 부모이고, 아이가 전쟁을 시작한다면 그 적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모일 가능성이 제일 다분하다. 전쟁이 나면 어느 쪽이든 승패가 있고 상처가 나기 마련이다. 아이가 아프고 상처받았다고 한다면 부모 역시 상처받는다는 점에서, 아이와 부모를 동일한 선에서 같이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시각에 동조하게 된다.

  실제로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감정코칭’에 있어 아이의 기질을 설명하는 3장에서 그런 저자의 이론과 성향이 다른 장에 비해 더 많이 눈에 띈다는 생각이 든다. ‘내향성과 외향성’ 혹은 ‘사고형과 감정형’으로 나누어 내 아이의 성향을 접목시키고 알아가려할 때, 그보다 먼저 내 자신을 먼저 네 가지 성향에 따라 구분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저자는 아이를 알기위해서는 부모가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 메리 커신카는 무엇보다 ‘기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람마다 아이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 해결 역시 그 기질에 맞는 각각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책이 다른 양육서와 비교해서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요소는 어쩌면 저자의 기본적인 마인드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아이와 힘들게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모든 부모에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문제해결을 위한 심리적 접근방법을 용이하게 해주는 의학 내지는 과학적인 증명과 이론이 무엇보다 저자의 책에서 느끼는 신뢰감의 근저가 되는 요소들이다.

 

  내 아이의 문제를 알고 그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내는 게 문제해결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가는 방법을 세부적으로 분석해서 담고 있는 책이 ‘아이와의 기싸움’이다. 차근차근 읽어보면 부모라는 자리에 선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아이와의 기 싸움에서 서로 낭패감에 빠지는 패자 없이 양측 다 만족할만한 성취감을 얻기 위한 방책은 서로 마주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내 아이의 마음을 그리고 내 마음을 지치지 말고 끊임없이 읽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 - 조선 최고의 공부 달인들이 알려주는 학문의 비법
이수광 지음 / 해냄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다섯번째 서평

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 이수광 지음

 

공부. 왜 할까

 

 

 

  제목이 상당히 시니컬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질문이 생겨난다. 뻔한 질문이고 어쩌면 뻔한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인데 그래도 다시 자문한다. 공부. 왜 할까? 무엇을 찾으려고, 무엇을 얻으려고 아등바등 목을 매는 걸까.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은 비교적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부담 없이 다가온다. 무엇보다 무겁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손목의 힘과 책의 무게를 생각하는 것은 분명 사심이고 사족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싶다.

  일절하고 조선사와 관련된 책은 이미 수없이 많이 출간되어 왔었다. 동일한 시대적 배경과 혹은 비교적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책이라 하더라도 ‘어떤 기획의도를 가지고 주제를 정했는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미 안정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조선조 역사와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하나의 맹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주제로 접근하지 않은 이상 그 내용은 기존에 대중과 독자들에게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 된다.

 

  이수광의 ‘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이 지니는 책의 접근성과 기획의도는 신선했을까. 책이 갖는 주제와 의미라든지 다소 길게 느껴지는 제목을 보면 이색적인 끌림이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속에 등장하는 몇몇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이미 친숙한 인물들. 그들의 일생과 업적을 다루고 있다는 데서 이수광의 책은 여느 조선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과 큰 차별성은 없어 보인다.

책이 갖는 장단점에 대해 고민한다. ‘공부에 미친 16인의~~~~’이 갖는 장점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장점이 단점이며 단점이 장점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어 보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늘 생각했던 점이 바로 그 문구였던 것 같다.

 

  우선 장점부터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주는 친근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직과 이황, 이이와 조식, 정약용과 박지원, 유득공과 같은 인물은 이미 대중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학문이라는 틀에 국한시켜 굳이 ‘공부 차원’으로 일축하기에는, 거론되고 있는 이들이 지니는 역사적 존재가치와 의미가 너무 광범위하다. 소개된 인물들은 ‘학문과 공부’라는 틀에서 재론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당론이라든지, 왕권과 관련해서 혹은 개인적 사상과 학문체계의 완성도 높은 추구라는 측면에서 수없이 많이 거론되었던 인물들이다. 그럼 점에서 책의 절반이 넘는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는 위의 인물들을 열심히 공부한 선비라는 조금은 비좁은 형식적인 틀에 가두고 있는 듯한 이번 설정을 책이 지닌 단점으로 생각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찌보면 책은 공부 달인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보다는 전자에 언급한 인물들의 삶과 학문 혹은 정치적 업적을 요약해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몇몇 이들은 꼭 제외해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외 대부분의 이들은 열심히 살았고 후세에 남길만한 업적도 쌓았으며 그 과정에서 공부에도 열심히 매진했다는 식으로 정리하면 간단명료할 듯하다.

 

  책이 조선조 여류문화를 엿볼 수 있는 몇몇의 여류문인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 잠시 주목하게 된다. 유교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여성이면서도 꾸준히 책을 가까이 하고 창작을 해왔던 인물과, 반면에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를 꿈꾸던 인물로 저자는 빙허각 이씨, 난설헌 허초희, 금원 김씨, 정일당 강씨등 네 명의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관심을 끌었던 여류 문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기존에 이미 다뤄진 이야기여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듯하다.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마지막 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야기인데 천한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또는 극복하기 위해 애쓰며 고군분투하는 중인과 노비를 대상으로 소개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나는 마지막 장과 같은 이야기를 더 많이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이 주는 아쉬움은 이를테면 조선의 공부벌레들을 소개함에 있어 각각의 대표주자 선정을 지나치게 대중성과 보편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게 된다.

  구태여 딴지를 걸자면 엄밀하게 볼 때 제목과 내용은 서로 약간의 이질감을 갖는 듯하다. 제목이 내용을 다 받쳐주지 못하는 듯 하고, 내용이 제목을 품어주기에는 그 범위가 넓다.

미주알고주알 많이 뜯어놓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에필로그에서 언급하고 있는 저자의 사려깊은 의도까지 쉽게 간과하는 일은 예의가 아닐 듯싶다.

 

‘공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열정이다.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도 성공을 이룬다.’p307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맥이 담긴 구절이다. 가난해서 혹은 양반이 아니어서, 남자가 아닌 여자이기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한 자만이 그 너머의 학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풀이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현실 극복이며 열정일 듯하다.

 

  책은 깊이감 보다는 포괄적이면서도 쉬운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깊이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각각의 인물을 대상으로 출간된 기존의 책을 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반면 그런 책들에 부담감을 느낀다면 이수광의 ‘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을 권한다. 공부 이야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전치적인 기획의도를 떠나서 조선의 이런 멋있는 사람들이 살았었다는 것을 알아가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 독서가 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네번째 서평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음악과 이야기가 있는 책

 

  책을 볼 때는 언제나 음악을 듣는다. 서평을 쓸 때도 일기를 쓸 때도 잡다한 습작을 할 때도 음악은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다. 남편은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하는 내게 집중이 가능한가 묻는다. 생각해보면 정말 몰입해서 집중할 때면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다. 음악소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 외에는 읽는 책이 풍기는 느낌과 분위기에 따라, 써야 할 것들의 성격에 따라 음악 선별도 다양하다. 장르를 특별히 가리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쉽게 말해서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 역시 잡식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년 연말께 한동안 나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헨델의 오라토리오 중 할렐루야에 필이 꽂혀 현관문 밖에까지 소리가 넘쳐날 정도로 조금은 요란한 음악 감상에 젖어있었다. 올해는 샤콘느의 매력에 푹 빠져 작곡가별 샤콘느를 비교 감상하는데 재미를 더해가곤 했다. 처음 샤콘느를 알게 된 것은 바흐의 샤콘느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심취했던 것은 바흐의 곡을 편곡해 세상에 내놓은 부조니의 샤콘느였다. 비장한듯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이 강한 음악인지라 새벽시간에 감상하기 좋은 음악이다.

 

  홍승찬이 펴낸 ‘클래식이 필요한순간들’은 잡식성으로 기울어진 까닭에 편향적인 음악취향에 물든 내게 괜찮은 멘토 역할을 해주지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던 책이었다. 무언지 모를 음악적 깊이감을 원했고, 전문성보다는 대중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음악적 감수성을 배워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책을 대하면서 일일이 음악을 찾아보고 저자와 관련한 사이트를 찾는 분주한 시간을 접했다. 책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ceo들에게 휴식과 영감을 선사한다는 문구는 좋아보이지 않는다. 굳이 회사를 비유한다고 해도 음악은 ceo뿐 아니라 일반 말단 직원에게까지 충분히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는 세계 공통의 예술적 언어다.

  ceo만을 거론하는 조건이 어진지 모르게 음악이 함유하는 관대한 예술성에서 살짝 곁다리로 빠지는 듯한 기분을 조성하는 것 같다면 너무 예민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책은 각 예술 사조별로 구분했다기보다는, 널리 알려진 음악가들 혹은 음악과 함께 하는 주변 상황과 배경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홍승찬이 펴낸 책이 갖는 긍정의 힘은 전문성을 함유한 유연함에서 출발한다. 저자가 풀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음악작품과 음악가들과 관련해 잘 몰랐던 사소하면서도 인간적인 세밀한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음악적 전문지식을 배워가는 이를테면 클래식분야의 반짝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사심 없이 소박하게 풀어내는 홍승찬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애정, 열정과 관심이 일반 독자와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하고 있는가,라는 점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음악 특히 클래식을 대하는 일반 대중들의 선입견을 기꺼이 허물고, 거부감 없이 편안함과 친근함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데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책이 지니는 긍정의 힘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통해 알게된 음악 <슈베르트의 ‘리타나이’>는 계속 듣고 있으면 중독성이 작용한다. 음악이 갖는 배경을 알아가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리타나이가 갖는 음악적 배경은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다.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지금처럼 봄을 맞아 우리네 진달래꽃 같은 히스 꽃이 만발하면 마을 처녀들이 그 꽃을 꺾어 처녀로 죽은 이의 무덤에 뿌리며 노래와 춤으로 그 영혼을 달랬다는데, 그것이 바로 리타나이라고 합니다. ‘모든 영혼이여, 평화 속에 잠들라’로 시작하는 그 말뜻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p201-

 

  장래식장에서 들리던 타이슨의 ‘명상곡’을 연주하던 바이올린 소리, 총포가 빗발치는 사라예보 한 곳에서 적군과 아군 서로의 가슴을 적시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켜는 첼로소리, 그런가하면 무수히 많은 인파 속에서 어떤 소박한 정의를 찾아내고 싶은 까닭에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던 피호영의 바이올린이 내는 소리는 책 속에서 청각이 반응하는 음향으로 다가오지는 못했을지언정 가슴에 긴 울림으로 남는 듯하다.

 

  사람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것의 외형적인 형체나 느낌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다만 형식적인 것을 떠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번지는 울림이 전해주는 감흥은 어느정도 보편성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개인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해 홍승찬의 책 안에서도 유난히 집착했던 부분이 특별히 더 있었던 것 같다. 번잡하고 소란스런 하루하루를 뒤로 하고 저자가 소개하는 음악을 귀담아 들으면서 천천히 소박한 여유 한자락정도는 부려도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 열세 번째 서평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전민식

 

삶이 그대를 속이고 배신할지라도

 

  오랜만에 나름 안정감 있는 소설을 접했다. 감투를 보자면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란다. 어느정도 믿고 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이런걸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일정부분 기본점수를 확보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말인즉 그렇다는 거다. 문장이나 흐름 내지는 표현과 기교 따위를 신경쓰지 않더라도 물 흐르듯 잘 흘러가는 글에 대한 점수는 그렇지 못한 글에 대한 점수보다 당연히 후한편이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저자를 알지 못한다. 수상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통해서 처음 접했다. 오래전 소설가 김형경의 소설 중 ‘담배 피는 여자’라는 제목이 있은 직후 ‘무슨무슨 여자, 남자’식의 제목이 잠시 여럿 눈에 띄던 것이 생각난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제목만큼은 그다지 강렬한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이다. 일단 소설을 접한 후의 느낌들을 정리해보자. 전민식의 이번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블랙코미디의 냄새를 풍기는 듯하다. 아주 소란스럽다거나 요란한 웃음을 끌어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끝간데없이 깊은 수렁에 빠져 자맥질하듯 모든 것을 우울모드가 삼켜버리는 식의 소설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조금은 가볍거나 혹은 조금은 무거운 블랙코미디에 문학이 갖는 깊이감을 가미한 작품이 아닐까. 이것 또한 작가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알맞은 조성으로 끌어가는 힘 말이다.

 

  ‘천천히 가기’ 개인적으로 이 천천히 가기라는 표현을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딴에는 무언가를 쓸 때 늘 조급증에 시달리기 때문에 항상 천천히 라든지 느리게 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쉽게 말해서 조급증을 방어하기위한 천천히 가기가 부득불 가져오는 역효과 또한 간과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사족의 연발이라든지, 쓸데없는 묘사의 늘어짐 따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선에서 끊고 어디까지 이어 쓸 것인가가 항상 문제였다.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의실에서 열변을 토해내던 젊은 교수의 직언은 그 모든 것을 일종의 작가가 지니고 있는 문학성으로 결론짓고 있었다.

  그것이 작가가 그의 작품이 품어내는 아우라일까. 짐짓 여유를 부리는듯하면서도 흐름에 방해되지 않은 채 문장이나 문맥의 앞과 뒤를 잘 이어간다거나, 장면의 전환에 있어 순간순간 독자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작가는 가능하면 늑장을 부리며 식탁에 제일 늦게 나타나 군림하는 자의 거드름이 섞인 여유감이 녹아드는 듯한 이미지다. 전민식은 짐짓 노련한 숙련공처럼 소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설하고 이번 소설의 매력은 가독성이다. 빠르게 잘 읽힌다는 장점을 소유했다. 소설은 속도감 있는 진행으로 독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추락과 비상의 대립 위에서 보통의 인간이 지니게 되는 많은 사심에 대해 생각한다. 책속의 주인공 임도랑은 잘 나가던 컨설턴트 회사에서 스파이혐의로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소설은 임도랑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인물의 관계 속에서 스토리를 이어가는 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 또한 눈여결 볼 만하다.

  소설은 순탄하기만 했던 삶의 어느 순간에서 모든 것을 잃고 주위의 비난을 감내하며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든 나약한 자아를 응수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완성해놓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정한 위치에서 추락하게 되는 순간 움츠러들고 이그러지는 상처에서 주저하거나 혹은 벗어나 살아내기 위한 상처받은 인물군상들을 조명하는 듯하다. 그들 주변에는 늘 질척이는 현실과 동시에 화려했던 과거가 꿈틀댄다. 그리고 다시 비상을 꿈꾸는 측은한 내면의 고군분투과정이 읽는 이에게 아리게 다가온다.

 

  임도랑에게 스파이 혐의를 씌우고 돌연 사라진 진주, 역할대행업을 하면서 가까워진 의문의 인물 삼손,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채 사랑을 쫒으려다 실패로 좌절하는 인물 은주, 등장인물 중에서도 그나마 비교적 자아를 잘 유지하고 있는 듯한 인물 미향과 여전히 상처받고 좌절하며 힘겨워하는 주변인물로 몽몽원장과 라마의 주인 미라가 등장한다.

  이들 인물들이 갖는 성향과 특성이 지니는 전체적인 조화는, 전민식의 소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의 주제와 절묘하게 잘 들어맞고 있다.

 

  이들은 좌절과 패배 그리고 추락을 접하게 되는 인물들을 상징한다. 그런가하면 이들 인물들을 세 가지 성향으로 구분해서본다면 소설의 재미를 배로 느껴볼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첫째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 주저하고 포기하는 수동적인 인물상과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는 적극적인 인물상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인물상은 주인공들 각자 스스로가 가장 무난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듯한 단계이며 주인공들이 선호하는 인물상인데, 바로 타협과 안주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 뒤로 슬그머니 숨어버리는 인물상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인물상에 나는 과감하게 소설 속 몽몽원장과 미라를 접목시킨다.

 

  그렇다면 주인공 임도랑은 어떤 성향의 인물상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세 가지 인물상을 골고루 다 지닌 인물로 묘사되는 듯하다. 수동적이었다가 다시 우연한 계기로 재기를 꿈꾸며 적극적으로 변화되면서도 그 자신의 가족문제 앞에서, 또는 소설의 결말이 가져오는 상황 앞에서 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만의 복잡한 심리 변화 속에서 흔들리는 듯 보인다.

 

  장편소설이 선사하는 서사의 힘보다는 줄기차게 에너지를 뿜어내며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무난한 연계성이 어쩌면 더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개인적으로 삼손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그들만의 모임이 갖는 의미가, 전체적으로 소설에서 어느정도 조화를 이뤘는가 하는 부분에 생각이 멈춘다. 생각하기에 따라 삼손과 관계되는 집단이 주는 에피소드는 주제와 깊은 관계를 갖는 듯하다. 그렇긴 한데 왜 자꾸 생각이 많아지는지...이쯤 되서는 응집성이 떨어지는 약간의 산만함을 인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푸슈킨의 시가 이렇게까지 전민식의 소설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배신할지라도. 혹은 삶이 천연덕스럽게도 그대의 뒤통수를 갈긴다해도 결코 좌절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결국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순간순간 변화 속에서 카멜레온처럼 온 정신을 무장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연민과 애틋함이 묻어나는 것까지 어쩔 수는 없어 보인다.

 

괜찮은 소설.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일은 유쾌하다. 그리고 그 소설에 대해 생각을 하고 혼자만의 상상을 이어가는 일도 역시 유쾌한 일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잠시 유쾌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