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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열네번째 서평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음악과 이야기가 있는 책
책을 볼 때는 언제나 음악을 듣는다. 서평을 쓸 때도 일기를 쓸 때도 잡다한 습작을 할 때도 음악은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다. 남편은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하는 내게 집중이 가능한가 묻는다. 생각해보면 정말 몰입해서 집중할 때면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다. 음악소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 외에는 읽는 책이 풍기는 느낌과 분위기에 따라, 써야 할 것들의 성격에 따라 음악 선별도 다양하다. 장르를 특별히 가리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쉽게 말해서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 역시 잡식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년 연말께 한동안 나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헨델의 오라토리오 중 할렐루야에 필이 꽂혀 현관문 밖에까지 소리가 넘쳐날 정도로 조금은 요란한 음악 감상에 젖어있었다. 올해는 샤콘느의 매력에 푹 빠져 작곡가별 샤콘느를 비교 감상하는데 재미를 더해가곤 했다. 처음 샤콘느를 알게 된 것은 바흐의 샤콘느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심취했던 것은 바흐의 곡을 편곡해 세상에 내놓은 부조니의 샤콘느였다. 비장한듯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이 강한 음악인지라 새벽시간에 감상하기 좋은 음악이다.
홍승찬이 펴낸 ‘클래식이 필요한순간들’은 잡식성으로 기울어진 까닭에 편향적인 음악취향에 물든 내게 괜찮은 멘토 역할을 해주지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던 책이었다. 무언지 모를 음악적 깊이감을 원했고, 전문성보다는 대중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음악적 감수성을 배워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책을 대하면서 일일이 음악을 찾아보고 저자와 관련한 사이트를 찾는 분주한 시간을 접했다. 책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ceo들에게 휴식과 영감을 선사한다는 문구는 좋아보이지 않는다. 굳이 회사를 비유한다고 해도 음악은 ceo뿐 아니라 일반 말단 직원에게까지 충분히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는 세계 공통의 예술적 언어다.
ceo만을 거론하는 조건이 어진지 모르게 음악이 함유하는 관대한 예술성에서 살짝 곁다리로 빠지는 듯한 기분을 조성하는 것 같다면 너무 예민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책은 각 예술 사조별로 구분했다기보다는, 널리 알려진 음악가들 혹은 음악과 함께 하는 주변 상황과 배경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홍승찬이 펴낸 책이 갖는 긍정의 힘은 전문성을 함유한 유연함에서 출발한다. 저자가 풀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음악작품과 음악가들과 관련해 잘 몰랐던 사소하면서도 인간적인 세밀한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음악적 전문지식을 배워가는 이를테면 클래식분야의 반짝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사심 없이 소박하게 풀어내는 홍승찬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애정, 열정과 관심이 일반 독자와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하고 있는가,라는 점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음악 특히 클래식을 대하는 일반 대중들의 선입견을 기꺼이 허물고, 거부감 없이 편안함과 친근함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데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책이 지니는 긍정의 힘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통해 알게된 음악 <슈베르트의 ‘리타나이’>는 계속 듣고 있으면 중독성이 작용한다. 음악이 갖는 배경을 알아가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리타나이가 갖는 음악적 배경은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다.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지금처럼 봄을 맞아 우리네 진달래꽃 같은 히스 꽃이 만발하면 마을 처녀들이 그 꽃을 꺾어 처녀로 죽은 이의 무덤에 뿌리며 노래와 춤으로 그 영혼을 달랬다는데, 그것이 바로 리타나이라고 합니다. ‘모든 영혼이여, 평화 속에 잠들라’로 시작하는 그 말뜻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p201-
장래식장에서 들리던 타이슨의 ‘명상곡’을 연주하던 바이올린 소리, 총포가 빗발치는 사라예보 한 곳에서 적군과 아군 서로의 가슴을 적시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켜는 첼로소리, 그런가하면 무수히 많은 인파 속에서 어떤 소박한 정의를 찾아내고 싶은 까닭에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던 피호영의 바이올린이 내는 소리는 책 속에서 청각이 반응하는 음향으로 다가오지는 못했을지언정 가슴에 긴 울림으로 남는 듯하다.
사람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것의 외형적인 형체나 느낌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다만 형식적인 것을 떠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번지는 울림이 전해주는 감흥은 어느정도 보편성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개인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해 홍승찬의 책 안에서도 유난히 집착했던 부분이 특별히 더 있었던 것 같다. 번잡하고 소란스런 하루하루를 뒤로 하고 저자가 소개하는 음악을 귀담아 들으면서 천천히 소박한 여유 한자락정도는 부려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