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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백 열세 번째 서평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전민식
삶이 그대를 속이고 배신할지라도
오랜만에 나름 안정감 있는 소설을 접했다. 감투를 보자면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란다. 어느정도 믿고 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이런걸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일정부분 기본점수를 확보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말인즉 그렇다는 거다. 문장이나 흐름 내지는 표현과 기교 따위를 신경쓰지 않더라도 물 흐르듯 잘 흘러가는 글에 대한 점수는 그렇지 못한 글에 대한 점수보다 당연히 후한편이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저자를 알지 못한다. 수상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통해서 처음 접했다. 오래전 소설가 김형경의 소설 중 ‘담배 피는 여자’라는 제목이 있은 직후 ‘무슨무슨 여자, 남자’식의 제목이 잠시 여럿 눈에 띄던 것이 생각난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제목만큼은 그다지 강렬한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이다. 일단 소설을 접한 후의 느낌들을 정리해보자. 전민식의 이번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블랙코미디의 냄새를 풍기는 듯하다. 아주 소란스럽다거나 요란한 웃음을 끌어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끝간데없이 깊은 수렁에 빠져 자맥질하듯 모든 것을 우울모드가 삼켜버리는 식의 소설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조금은 가볍거나 혹은 조금은 무거운 블랙코미디에 문학이 갖는 깊이감을 가미한 작품이 아닐까. 이것 또한 작가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알맞은 조성으로 끌어가는 힘 말이다.
‘천천히 가기’ 개인적으로 이 천천히 가기라는 표현을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딴에는 무언가를 쓸 때 늘 조급증에 시달리기 때문에 항상 천천히 라든지 느리게 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쉽게 말해서 조급증을 방어하기위한 천천히 가기가 부득불 가져오는 역효과 또한 간과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사족의 연발이라든지, 쓸데없는 묘사의 늘어짐 따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선에서 끊고 어디까지 이어 쓸 것인가가 항상 문제였다.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의실에서 열변을 토해내던 젊은 교수의 직언은 그 모든 것을 일종의 작가가 지니고 있는 문학성으로 결론짓고 있었다.
그것이 작가가 그의 작품이 품어내는 아우라일까. 짐짓 여유를 부리는듯하면서도 흐름에 방해되지 않은 채 문장이나 문맥의 앞과 뒤를 잘 이어간다거나, 장면의 전환에 있어 순간순간 독자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작가는 가능하면 늑장을 부리며 식탁에 제일 늦게 나타나 군림하는 자의 거드름이 섞인 여유감이 녹아드는 듯한 이미지다. 전민식은 짐짓 노련한 숙련공처럼 소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설하고 이번 소설의 매력은 가독성이다. 빠르게 잘 읽힌다는 장점을 소유했다. 소설은 속도감 있는 진행으로 독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추락과 비상의 대립 위에서 보통의 인간이 지니게 되는 많은 사심에 대해 생각한다. 책속의 주인공 임도랑은 잘 나가던 컨설턴트 회사에서 스파이혐의로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소설은 임도랑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인물의 관계 속에서 스토리를 이어가는 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 또한 눈여결 볼 만하다.
소설은 순탄하기만 했던 삶의 어느 순간에서 모든 것을 잃고 주위의 비난을 감내하며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든 나약한 자아를 응수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완성해놓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정한 위치에서 추락하게 되는 순간 움츠러들고 이그러지는 상처에서 주저하거나 혹은 벗어나 살아내기 위한 상처받은 인물군상들을 조명하는 듯하다. 그들 주변에는 늘 질척이는 현실과 동시에 화려했던 과거가 꿈틀댄다. 그리고 다시 비상을 꿈꾸는 측은한 내면의 고군분투과정이 읽는 이에게 아리게 다가온다.
임도랑에게 스파이 혐의를 씌우고 돌연 사라진 진주, 역할대행업을 하면서 가까워진 의문의 인물 삼손,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채 사랑을 쫒으려다 실패로 좌절하는 인물 은주, 등장인물 중에서도 그나마 비교적 자아를 잘 유지하고 있는 듯한 인물 미향과 여전히 상처받고 좌절하며 힘겨워하는 주변인물로 몽몽원장과 라마의 주인 미라가 등장한다.
이들 인물들이 갖는 성향과 특성이 지니는 전체적인 조화는, 전민식의 소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의 주제와 절묘하게 잘 들어맞고 있다.
이들은 좌절과 패배 그리고 추락을 접하게 되는 인물들을 상징한다. 그런가하면 이들 인물들을 세 가지 성향으로 구분해서본다면 소설의 재미를 배로 느껴볼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첫째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 주저하고 포기하는 수동적인 인물상과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는 적극적인 인물상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인물상은 주인공들 각자 스스로가 가장 무난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듯한 단계이며 주인공들이 선호하는 인물상인데, 바로 타협과 안주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 뒤로 슬그머니 숨어버리는 인물상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인물상에 나는 과감하게 소설 속 몽몽원장과 미라를 접목시킨다.
그렇다면 주인공 임도랑은 어떤 성향의 인물상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세 가지 인물상을 골고루 다 지닌 인물로 묘사되는 듯하다. 수동적이었다가 다시 우연한 계기로 재기를 꿈꾸며 적극적으로 변화되면서도 그 자신의 가족문제 앞에서, 또는 소설의 결말이 가져오는 상황 앞에서 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만의 복잡한 심리 변화 속에서 흔들리는 듯 보인다.
장편소설이 선사하는 서사의 힘보다는 줄기차게 에너지를 뿜어내며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무난한 연계성이 어쩌면 더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개인적으로 삼손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그들만의 모임이 갖는 의미가, 전체적으로 소설에서 어느정도 조화를 이뤘는가 하는 부분에 생각이 멈춘다. 생각하기에 따라 삼손과 관계되는 집단이 주는 에피소드는 주제와 깊은 관계를 갖는 듯하다. 그렇긴 한데 왜 자꾸 생각이 많아지는지...이쯤 되서는 응집성이 떨어지는 약간의 산만함을 인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푸슈킨의 시가 이렇게까지 전민식의 소설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배신할지라도. 혹은 삶이 천연덕스럽게도 그대의 뒤통수를 갈긴다해도 결코 좌절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결국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순간순간 변화 속에서 카멜레온처럼 온 정신을 무장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연민과 애틋함이 묻어나는 것까지 어쩔 수는 없어 보인다.
괜찮은 소설.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일은 유쾌하다. 그리고 그 소설에 대해 생각을 하고 혼자만의 상상을 이어가는 일도 역시 유쾌한 일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잠시 유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