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을 그리다 - 문학과 회화의 경계
위안싱페이 지음, 김수연 옮김 / 태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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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서른 일곱 번째 서평

도연명을 그리다-위안싱페이, 김수연 역

 

이상과 꿈을 그리다

 

  제목이 ‘도연명을 그리다’이다. 제목이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다, 라는 어휘가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먼저 회화기법이 생각난다. 그림을 그리다, 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연명이라는 인물을 그리워하며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넓은 의미에서 ‘그리다’(그리워하다) 라는 표현으로 또 하나의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제목이 주는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까닭이다.

 

  책은 도연명에 대한 그림과 글, 각각의 작품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림을 그린 화가 내지는 글을 써 완성한 작가들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제공을 하고 있다.

  깊이감으로 따지자면 결코 가볍지 않다. 꼼꼼하면서도 상세하게 각각의 시대 순으로 비교분석하면서 작품을 해석하고 있다는 데 저자의 성실함과 노력이 여실하게 드러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연명과 관계하여 회화작품을 놓고 이야기하는 저자 위안싱페이의 글은 마치 미술평론가의 면모를 보는 듯하다. 그림 하나하나 기본적인 설명을 시작으로 해서 주변풍경의 상하좌우 그리고 핵심인물의 위치와 동작과 동선의 절묘한 묘사까지 저자의 시선은 부드러운 동시에 날카롭다.

  한발 더 가까이 접근해 보는 과정을 살펴보면 구체적인 회화기법을 논하는데 있어 당대 또는 전 후 시대와의 비교와 분석을 통해 차별성을 찾아내곤 한다.

  도연명을 소재로 한 시와 문장 소개에 있어서도 역시 회화에 대한 접근성과 동일하다. 문장과 회화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위안싱페이 그만의 분석적인 시선이 동일한 패턴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송대이전, 송대, 원, 명, 명말 청초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회화기법의 변화양상을 구체적으로 작품을 대상으로 비교분석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책 속에는 무수히 많은 작가들의 그림과 글이 소개되어 있다. 그 중에는 저자 역시 이야기했듯이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 받은 까닭에 일정부분 비슷한 면모를 갖고 있는 듯한 작품도 있으며, 명말 청초시대 화가였던 ‘진흥수’의 도연명처럼 독특한 화가 자신의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 또한 발견 할 수 있다.

 

  도연명이라는 한 사람이 지니는 문화적 영향력의 크기가 어느정도일까. 책 속에서 간간이 문화적 콘텐츠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대중의 인지도를 위한 콘텐츠활용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고차원적인 문화의 인식이 일반의 대중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다소 그 가치를 폄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듯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설하고, 도연명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아우라도 그러하거니와, 시간이 흐를수록 도연명의 그림자를 더욱더 강하게 추종하려하는 후대인들의 다소 맹목적일 정도로 보이는 듯한 그 심리 또한 묘한 끌림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유행일까? 우리는 이 유행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괜찮은 문화는 인위적인 작용의 맛을 보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순응하면서 지속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늘 현실에서의 반감으로 현실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을 추종하는 묘하면서도 삐딱한 심리를 갖는다. 도연명의 삶에서 인간은 스스로가 꿈꾸던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어쩌면 나 조차도.....

그런 까닭에 굳이.. 문화적 콘텐츠나 유행 따위의 세속적 어휘를 가져다붙이지 않는다하더라도 어쩌면 도연명, 그에 대한 그리움은 계속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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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하시겠습니까? -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김미월.김사과.김애란.손아람.손홍규.염승숙.조해진.최진영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기획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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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서른 여섯 번째 서평

포맷하시겠습니까?-민족문학연구소 기획 소설집

 

포맷, 준비된 용기

 

  소설집을 선택한 건 ‘민족문학연구소’라는 이름에 끌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익히 많이 들어봤을 법한 문구다. 오래전 내가 아는 사람 누군가도 그곳 단체에 적을 두고 있었던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설이다. 무엇보다도 소설책 말미에 실린 좌담 형식의 이야기가 무척이가 궁금했던가보다. 예전에 문학계간지에서 보곤 했던 말과 말 그리고 또 다른 말말말이 가져오는 말의 향연에 동참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기획의도는 자못 진지했다. 이 또한 ‘민족문학연구소’에서 추구해왔던 그들만의 어떤 기류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번 소설집을 20-30대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담론의 일부로 받아들여도 좋을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실 2000년대 이후의 출간된 소설과 작가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던 내게 이번 소설집은 일정부분 현대소설의 맥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어떤 식으로 글을 쓸까. 그들이 지니는 생각의 흐름은 어떤 색을 지녔을까. 어떤 식으로 문제해결에 접근하고 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만으로 현대 작가들의 성향을 파악하기에는 일반화의 오류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각설하고, 나름대로 의미와 진정성이 돋보이면서 동시에 기성세대(기성 문인)들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문제제기를 들이대는 식의 소설은, 수족관에서 바로 꺼낸 직후 살아 꿈틀대는 생선처럼 생동감과 신선미가 돋보였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현대의 주류일 듯한 이런 소설보다는 서사성이 돋보이는 소설이 더 좋아 보이는 것 까지 어이하랴.

 

  모두 8편의 소설이 실렸다. 좌담 부분에서도 논의된 바 있지만 전문가들의 식견은 잠시 배제하고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손아람 작 ‘문학의 새로운 세대’가 기억에 남는다. 신춘문예라는 하나의 정해진 양식과 틀 속에서 작가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전체적으로 작품에서 받았던 느낌이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풍자의 묘미에 비판의 겉치레가 살짝 가려졌지만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았다, 라고 말이다.

  문학의 새로운 흐름과 기존 문학이 지닌 보편성과의 거리 사이에서 고민하고 노력해가는 작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잠시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글 중에서 ‘시대가 바뀐다 해도 말이다.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작품을 문학이라 불러야 되지 않겠나.’(133P) 라는 말에 동조를 하는 나라는 사람은 이미 기성세대의 인식 그 끝자락에 묻어가는 사람으로서 한 시대를 접고 뒤로 물어나야 하는 것일까, 잠시 고민한다.

 

  손아람의 작품에서는 분명 문단의 표면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첫 번째 역할을 제시하는 동시에 앞으로 문단이 지향해야 할 어떤 정해진 방향성을 제시하는 듯한 인상을 직설적으로 받게 되는 듯하다.

  좌담부분에서 서영인이 말하기를 ‘문단 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맥락을 놓치고, 오히려 독자가 너무 직접적인 대상의 한계 속에 갇히는 결과가 되는 거죠.’라는 표현을 썼다.(314P) 그러나 이 또한 해석하기 나름의 문제이다. 서영인이 지적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맥락을 간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단의 문제 앞에서 이어지는 유쾌한 비판은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신춘문예 당선작을 발표하고 당선자에게 들었던 한마디가 참 아이러니하다.

 

“글쎄요. 한국소설은 그리 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서....”

 

-문학의 새로운 세대: 한국소설은 별로 안 읽었다 함.-

--- (140p)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포맷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와 그에 상응하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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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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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서른 다섯 번째 서평

경성탐정 이상-김재희 지음

 

상상과 추리

 

  책 속에는 모던걸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모던걸. 여느 책에서는 신여성이라는 표현으로 익숙했던 표현일까. 프록코트와 모던걸이라는 단어가 친근하다. 책속에 자주 등장해서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책은 535페이지의 제법 두툼한 두께를 자랑한다. 듬직하다. 제목에서처럼 이상이 등장하고, 청계천 주변을 배경으로 한 소설작품 천변풍경의 작가 구보 박태원이 등장한다. 그 외 1930년대 전후로 문화전반에 걸쳐 이름 석자로 유명세를 떨쳤을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재희의 책 ‘경성탐정 이상’은 이상과 구보를 주인공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물이다. 이 책이 지닌 특징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등장인물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를 되짚어 시간의 추이를 거슬러야만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비단 문학계 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실존 인물들을 전자에 앞세워 스토리를 만들어간다는 것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적당한 몫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그런 뜻에서 이상이라는 인물이 갖는 중요성을 또다시 생각하게 되는 듯하다. 그가 당대에도 그렇고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인물로 기억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개성 넘치는 문학성도 그렇고, 난해하기까지 한 그의 작품도 그렇고, 금홍과의 인연이 담긴 그의 삶도 묘한 끌림이 있다. 어쨌든간에 김재희가 선택한 이상의 케릭터가 어쩐지 책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책은 1910년대에서 1930년대 전후로 종로와 그 주변 상황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간다. 모두 일곱 가지의 이야기가 실렸는데 동성애라든지, 명성황후에 관한 소재를 끌어오기도 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책이 지니는 힘을 받쳐주는 듯하다. 책은 비교적 탄탄한 구성을 갖추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추리물을 많이 접해보질 못해서 사실상, 비교와 분석에서 올곧게 말할 처지는 못 된다. 그러나 각설하고 책을 읽으면서 구성이라든지 인물에 대해 크게 의문을 삼지 않고 무난하게 읽었던 것 같다.

  이상과 구보를 등장인물로 내세우는 것과 더불어, 염상섭, 김유정, 윤심덕, 명성황후, 석재명과 같은 시대적 배경과 당대 문화적 배경에 어울리는 듯한 인물들을 주인공 내지는 주변인으로 대거 등장시키면서 사건을 연계하여 풀어가는 구성에서도 역시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전체적으로 어딘지 모르게 ‘염상섭의 삼대’나 ‘구보의 천변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문장의 맛이 나는 듯하다.

 

  추리물이기 때문에 추리물이 지니는 특성으로 해석해야 함이 마땅하겠지만, 보편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철저하고 섬세한 사전조사의 노력이 돋보였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의학지식과 더불어, 카메라 관련, 혹은 구체관절인형 관련, 레코드 관련한 정보 등 다양한 소재와 그와 관련한 지식과 정보를 완전한 퍼즐조각처럼 작품 속에서 잘 맞춰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소설을 접하면서 셜록홈즈 시리즈를 연상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어쩌면 셜록홈즈 자리에 이상을, 그의 절친한 친구인 왓슨 박사의 자리에 구보를, 셜록홈즈와 쌍벽을 이루는 악의 이미지인 모리아츠 교수의 자리에 류 다마치 자작을 매치한 듯한 인상 때문일까.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이상과는 달리 곁에서 딴은 수동적으로 조력자 역할에 만족하고 있는 듯한 구보라는 인물이 지닌 이미지에 대해 소심한 불만을 갖게 되는가 싶다.

 

 

  사건의 개연성에서 조금 더 치밀한 구성이 아쉽다, 라는 것이 추리물을 읽고 난후 갖는 느낌인가보다. 그러나 그것이 추리물만의 특성이 아닌가 하는 것이 솔직한 지금의 심정이다. 김재희의 책 역시 사건과, 사건을 풀어가는 인물들의 행동과, 사고의 연계성에서 무엇보다도 속도감 있는 전개가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셜록홈즈 시리즈물을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구성과 소재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여담이기도 하고 욕심이기도 한 이 말은 정말 실언이어야 하는 걸까. 누구 말처럼 아직도 배가 고픈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읽게 될 추리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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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처럼 -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
송인혁.은유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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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서른 네 번째 서평

황제처럼- 송인혁 사진. 은유 글

 

황제펭귄의 초대

 

  주인공은 펭귄이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고담시의 지하도시 어딘가에서 모략을 꿈꾸며, 자괴감으로 지리리 궁상을 떠는 그런 펭귄이 아니다. 눈과 빙하가 마주하고 있는 곳 바로 남극에 사는 펭귄이 책의 주인공이다. 퇴화한 날개는 더 이상 하늘을 날아오를 수는 없었지만, 날렵한 유선형의 몸체로 물속에서 재빠르게 물고기를 낚아채는 동물 이야기다. 이 낯설면서도 신기한 동물에게 사람들은 황제라는 칭호를 붙였다. 황제 펭귄.

 

  책은 두 가지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 우선 생물학적이며 생태학적인 관점이 그것이다. 자연다큐멘터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펭귄의 세계. 생존과 번식이라는 거대 테마 안에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순응하는 펭귄들의 세계를 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책은 자연의 눈으로 살펴보는 펭귄만을 다루지 않아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감상적이면서도, 감성이 묻어는 이 책의 글과 사진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이것은 한 생명에 대한 기록이면서 살아있음, 그 품격에 관한 이야기이다.”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띠지 인용)

 

  두 번째로 접근하게 되는 관점은 생태적 접근이 아닌 사회 문화적 관점의 접근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책은 펭귄의 일생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본성과 더불어 가장 이상적인 인간성에 대한 갈망 내지는 깊이 있는 사색이 곁들여져 있었다.

  그것은 펭귄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던 고된 작업을 이행해온 두 사람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고독감, 내지는 그리움이라는 사변적인 요소가 그것이다. 그들만의 고백 속에 등장하는 ‘멜랑콜리’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의 펭귄이 무리를 이루는 것을 ‘루커리’라 했다. 혼자서 살수 없는 존재의 의미에서 어딘지 모르게 인간의 사회성을 보는 듯하다. 남극의 극심한 추위 때문에라도 펭귄은 본능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는가보다. 집단(루커리)을 이루고 짝을 찾고, 알을 낳으며 다시 그 알을 품는 과정에서 우리는 남극에 사는 황제라 불리는 거대펭귄의 일대사를 보게 된다.

  알을 낳아 품어 새끼를 기르는 일, 집단의 안정성을 확인하는 펭귄무리의 ‘루커리’와 무리의 가장 외곽에 있는 펭귄과 안쪽에 있는 펭귄의 무리가 일정한 룰에 의해 위치를 바꿔간다는 ‘허들링’과 같은 행동들은 사실 본능과 집단에서의 사회성 양자 간에 어느 쪽으로 확고하게 단정 짓기에는 좀 그 경계가 무르다

이를테면 일련의 과정들은 생명체의 본능인 동시에, 집단 내지는 조직과 사회적 측면에서도 쉽게 이해가능한 일종의 정해진 사회성과도 일면 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설하고 암컷에게 알을 넘겨받은 수컷의 부성애만큼은 외면하기 어렵다. 4개월 동안 이들 수컷들은 본의 아니게 단식을 하게 된다. 그들 스스로는 단식을 하면서도 겨울을 나기 위해 미리 뱃속에 저장해두었던 먹이를 새로 태어난 새끼에게 아낌없이 내어준다. 제 살과 뼈를 으깨어 새끼에게 나누어주는 셈이다.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측은하다. 그러나 무척 대견해보인다. 대자연의 위대한 존엄을 알리는 듯한 남극이 간직한 풍광에 눈이 시리다. 펭귄의 삶을 인간의 그것과 견주어 생각하면서 책은 한권의 시집처럼, 한권의 명상록처럼, 독자에게 유연한 침장沈潛의 심오한 정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들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에필로그가 실렸다. 펭귄의 삶을 기록하는 것 또한 사람의 몫인지라 사람 이야기가 들어가야 제 맛인가 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이런 것이 아닐까. 에필로그를 접하고 있노라면, 이 책의 기획 의도가 혹은 목적의식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정리할 때 어디까지 열린 결말로 한정을 지어야 한다는 규제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해지지 않은 자유 선택에 의한 결말과 결론이 가져오는 관대함과 더불어 약간의 혼돈이 개인적으로는 생각의 꼬리를 연이어 잇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가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에서 기인하는 말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책에 대한 해석은 시종 자유로워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보이는 그대로의 책, 보이는 그대로의 이야기만으로도 생각은 나날이 풍성해질 수 있다. 굳이 친절한 설명이나 부연이 아니더라도 독자는 그들만의 상상력과 깊이감 있는 사고의 이중주를 통해 독자 나름의 공간을 확보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대화를 제외한다면 책은 분명 진정성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미루어 짐작한다.

  잠시 황제펭귄의 초대에 열일 제쳐 두고 앞만 보면서 남극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다시 생각해보니 고놈들 참 의연하게 잘도 생겼더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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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50마일 시공 청소년 문학 49
조단 소넨블릭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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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서른 세 번째 서평

너를 위한 50마일- 조단 소넨블릭 지음

 

너를 위한 보우 제스트

 

  갑자기 ‘청소년’이라는 뜻이 궁금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이라는 뜻을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뜬금없이 ‘청소년’이라는 어휘에 집착 하게 된다.

청소년(靑少年)이란다. 네이버 지식백과와 한자 사전을 검색해보면 ‘청년과 소년(어린이) 사이의 중간 개념’이라고 명시한다. 어딘지 모르게 재미가 없는 표현이다.

  딱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자. ‘청’의 뜻은 푸르다, 젊다 등 다양하다. 그런데 청소년의 청(靑)의 의미를 ‘젊다’라는 의미로만 못을 박지는 말자는 말이다. 푸르고 또 푸르다의 의미를 지닌 청을 선두에 세우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나는 청소년기를 삶에 있어 푸름이 만발하는 시기라고 믿는다. 어쩐지 젊다, 라고만 하는 것보다 푸르다, 라는 의미가 더 생동감이 느껴지는 건 혼자만의 생각인가.

 

  조단 소넨블릭의 ‘너를 위한 50마일’ 겉표지에는 ‘청소년 문학’ 이라는 문구가 실렸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많이 읽어보질 못해서 일정부분 선입견도 작용했던 것 같다. 연애 내지는 학교 폭력, 자살 혹은 성적과 입시에 따른 크고 작은 사건들의 모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광범위한 의미의 ‘성숙’이라는 모티브가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청소년 문학의 보편적인 한계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단 소넨블릭의 ‘너를 위한 50마일’은 이 보편성을 살짝 아주 살짝 비껴간다. 소설은 비극보다는 희극, 부정보다는 긍정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그런 작품이다. 앞에서 중얼중얼 한소리 또 하고 또 해댔던 까닭이 아마도 이런 요소 때문이 아닐까. 긍정의 힘.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단지 젊기 때문이 아니라 푸름을 간직할 줄 알고, 꿈을 꿀 줄 아는 이상적인 이미지로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암에 걸린 두 소년이 있다. 제프와 그의 절친한 친구 태드가 주인공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제프가 풀어가는 이야기에 소설이 전개되는 형식을 갖췄다. 암에 걸렸고, 사람들의 측은한 관심 속에서 투병과정을 거치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며 의기소침해하는 제프. 역시 암에 걸렸던 과거의 경험이 있으며 투병을 했고 현재는 걷기보다는 휠체어를 고집하는 태드. 두 친구의 이야기는 슬플 것 같으면서도 유머러스하다. 걸을 때 혀를 내밀고 이상한 표정으로 걷는다, 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은 태드. 그 이야기를 한 같은 반 여자친구에게 ‘여드름 고릴라’ 라는 치명적인 말로 되받아친 이후 자존심 때문에라도 휠체어만을 고집하는 태드라는 인물상은, 작품 속에서 시종일관 시니컬한 이미지를 유지한다. 제프가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경향과 함께 소심하고 여성적인 면을 보이는 반면, 태드는 독립적이면서도 늘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서로 다른 이미지를 창조하는 두 주인공이긴 하지만, 묘하게도 잘 어울린다. 두 개의 톱니가 각각의 홈에 잘 들어가서 무리 없이 매끈하게 돌아가듯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서로만이 간직할 수 있는 우정을 쌓아간다. 그것은 어쩌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하나의 핸디캡과 같은 암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다. 동색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이미 이들은 같은 배에 올라서 지금까지 줄곧 같은 방향으로 항해를 해오지 않았나.

  태드는 수학 과목 때문에 힘들어하는 제프를 위해 수학과외를 자청하면서 8학년을 졸업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을 약속한다. 더불어 두 소년은 휠체어 신세를 지는 태드를 위해 자전거 운동을 하면서 ‘졸업식 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자’,라는 하나의 목표를 갖는다. 서로가 세운 목표의 외적인 구성 요소는 달랐지만, 결국 이들은 같은 목표를 지닌 셈이다.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자기극복 내지는 자아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둘만의 보우 제스트(아름다운 몸짓)가 인상적이다.

  간단명료하면서도 거두절미식의 그들 10대들의 어휘와 표현들이 어쩐지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를 발랄하면서도 상큼하게 이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소설이 청소년 소설인 동시에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까닭은 기실 마지막 부분에서 부각되는 듯하다. 미리 이야기하면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역시나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학생들이 읽으면 일정부분 공감과 혹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감? 역시 공유할 만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수학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소설 속 제프가 수학문제 때문에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위로가 섞인 유머에 공감하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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