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조네스의 나라에서 북소리 사막까지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1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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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백 마흔 두 번째 서평

오르배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1( 아마조네스의 나라에서 북소리 사막까지)

 

환상 속에서 더 빛나는 인간미

 

  오르배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1권에는 4가지 이야기가 실렸다. A에서 시작해서 B.C. D의 순서로 이어진다. 단순히 알파벳 순서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는 형식이긴 하지만, 각각의 스토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독특함과 묘하게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분위기는 책 속에서 독자를 압도하는 듯하다.

 

  책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마치 천일야화의 그것과 같이 야기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영원히 이어질 듯하다. 신탁으로 몸부림치는 신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비롯해, 인디언 부족의 이야기가 연상되는 듯도 하고, 과거 원시 부족사회에서의 충돌을 엿보는 듯도 하다. 이따금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나디아 연대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용이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다니던 장면이 뒤미처 따라오기도 한다.

 

  모든 것은 환상이다. 꿈이고 상상력이다. 환상과 상상력으로 하나의 세계가 생겨나고 그 안에서 끈적이고, 후끈하면서도 뜨거운 생명력이 꿈틀대는 말 그대로의 살아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바로 오르배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안에 가득 들어차 있다. 이쯤되면 작가가 궁금해질 법도 하다.

 

  ‘프랑수아 플라스’ 그는 작가인 동시에 책 속에 그림 삽화까지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림은 얇은 펜촉으로 그려낸 듯 선의 경계가 뚜렷하면서도 세부사항까지 꼼꼼하게 묘사한다. 한편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등장했던 배경이나 인물들을 독립적으로 구분하여 따로 소개하는 형식을 띄고 있는데 그림과 함께 부연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문장은 어떨까. 현실세계와는 다른 그 어떤 과거로 이어지는, 미지의 세계로의 긴 여행 앞에서 불쑥 생겨나는 독자의 갈망은 무엇일까.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한 세한 묘사일까. 묘사를 뛰어넘는 스토리의 힘일까.

책은 두 가지 요소를 잘 접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엇보다도 환상과 상상이 뿜어내는 마력에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행복한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빠른 전개와 마치 지금 눈에 보이는 듯한 상황 묘사는 감각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말들은 흘러가는 구름과 시합이라도 하듯 힘차게 내달려 풀숲 사이에 가느다란 고랑을 만들어놓았어.” 14P

 

  "곰 노인은 무당의 망토를 벗어 사내의 발치에 떨어뜨렸다. 망토는 죽음을 맞을 때의 경련처럼, 혹은 분노할 때의 발작처럼 부르르 떨었다.” 42P

 

  개인적으로 ‘B 쌍둥이 호수가 있는 바일라바이칼’과 ‘D 북소리 사막’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이 두 이야기는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적인 이야기 전개와 함께 무언가 짧게 생각해볼만한 요소가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바일라 바이칼에서 볼 수 있는 대목이 그렇지 않을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위기와 상황에서 소개되고 있는 성경이 그것이며, 이 성경이 갖는 문화적 특성이 소설 속 이야기의 핵심에서 어떤 영향력을 부여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자못 흥미롭다. 새로운 문화의 수용과 흡수, 이러한 동기부여를 위해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수용과 동시에 일정부분 포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꿈보다 해몽이다.

 

  둥둥둥 환청처럼 이어지는 북소리를 소재로 한 ‘북소리 사막’은 진시황 능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더불어, 사카르라는 인물에 대해 몇자 기록한다. 그는 특별한 주인공도 아니고 매력을 끌만한 인물로 앞에 나서지는 않는다. 다만 그에게 느껴지는 품위는 전통과 역사 혹은 고단한 삶의 경험자라는 수식어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 고단한 삶의 경험자라는 것이 어쩌면 그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청동산의 북소리가 영원히 잠들어버릴까봐 두려웠고, 쓸모없는 노인네가 된 자신의 늙은 심장이 어느 순간 박동을 멈춰버릴까봐 걱정스러웠다” 76P

 

  전자에 등장하는 성경이 가져오는 파급효과와 결과, 그리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것을 수호하려하는 인물인 사카르의 이미지에서 무언가 엇비슷한 그림을 그려보게 되는 건 정말이지 말 그대로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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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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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흔 한 번째

잠복-마쓰모토 세이초

 

들여다볼 수 있는 눈

 

  사회파 소설이란 트릭이나 범죄 자체에 매달리지 않고,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내서 인간의 문제를 파고드는 추리소설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앞 표지 인용)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처음 접한다. 그가 어떤 작가인지, 어떤 장르에 속하고 있으며 어떠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 추리

문학의 대가. 혹은 사회파라는 독특한 장르의 창시자.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력은 평이하지 않았다.

 

  이번 소설집 잠복에는 모두 여덟 가지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잠복은 작가 자신이 말했던 ‘사회파 소설’을 모티브로 한 작가의 처녀작이다. 일반적으로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트릭과 사건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장르문학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세계는, 작가가 생전에 남겼던 이야기라든지 역자 후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내가 읽고 싶은 신성한 추리소설”이란, 소재와 인물은 일상에서 찾고 심리묘사를 중시하며 그것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문체로 표현하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략) (390 역자후기에서 인용)

-----트릭 중심이던 기존의 추리소설과 구별되는 세이초 추리소설의 원형이 이 단편소설 속에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 자체보다 각 등장인물들의 인생담에 초점을 맞춰서, 고달프고 굴절된 혹은 욕망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390 역자후기에서 인용)

 

  작가의 말처럼, 소재와 인물을 일상에서 찾으며, 하나의 사건 역시 사회적 동기 안에서 문제제기를 통해 구체화하는 것이 바로 마쓰모토가 남긴 이야기들의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번에 출간된 잠복은 어떤 해석으로 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범죄물 내지는 추리물을 대할 때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하곤 한다. 하나는 마쓰모토의 핵심 이론이 되는 ‘사회적 동기와 범죄’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불온한 심리와 범죄’의 측면이 그것이다.

인간의 불온한 심리 역시 크게 봐서는 사회적 동기안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양자 간에는 약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의 내용인 불온한 심리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작품을 대한다는 생각도 외면하기 어렵다.

 

  모든 인간은 보다 나은 것의 추구를 갈망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각자가 추구하는 욕망 내지는 갈망이 현실로 형상화화는 과정에서 좌초하게 될 때자잘한 감정의 변화는 차치하고서라도 자절 혹은 극복이라는 상반된 감정 위에 서게 된다.

 

  여기서 범죄로 이어지는 원인을 나는 프로이트 이론 중 유아기 시절의 경험하게 되는 무의식의<상처>에 대한 고착 내지는 융의 원형이론으로 비유해 생각하곤 한다.

사실 이러한 형식적인 이론의 절차는 이미 익숙한 해석이다. 그런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사회파 경향의 소설이 결과적으로는 심리학으로 보는 범죄구성의 대한 해석에 있어 그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새로운 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허점이 드러나며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프로이트를 비롯한 심리학자들에게 기인해 인간심리를 분석하는 일은 개인적인 식견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건재하다고 본다.

어쨌든 장황한 낭설을 뒤로하고 작품 속 소설을 살펴보자.

 

  마쓰모토의 글은 장르문학인 일반적 추리소설보다 어쩌면 순수문학적 요소를 더 많이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인물들의 내면이 담긴 심리묘사이다. 이 심리묘사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 따로 구분하지 않고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즉 피해를 입은 사람이나 사건을 해결하려는 자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범죄자의 입장에서도 동일하다. 여느 추리물이나 범죄물 소설처럼 흑백논리, 권선징악 내지는 선과악의 자리를 규정하는 것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하나의 사건을 강조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스토리의 구성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한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속전속결로 겅중 뛰어넘는 스토리전개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인물들의 심리와 사건의 연계성을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듯 끝까지 스토리를 끌고 가는 힘이 이 작가의 힘인가보다. ‘귀축’과 ‘일년 반만 기다려’는 추리라는 기본 바탕위에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본성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가미된 듯 보이고,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와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결론이 조금 평이한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잘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회적 동기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기실 사회적 동기란 사회라는 조직체계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그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개인의 생활영역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사적인 사고가 아닌 주변의 사회적 구성요소들과 끊임없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영향을 교류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사상보다는 사회와 조직이라는 테두리 안에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실체인 동시에, 일종의 알력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점들 때문이 아닌가. 인간의 내면심리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일과 함께, 그만의 작가적 세계관에 사회적 추리라는 장르를 덧붙였다는 점도 그의 작가적 명성에 한 몫을 한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이 구조안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범죄의 결과만을 보지 않고 그 사건의 동기도 함께 생각하는 작가의 인간적인 시선이 무척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보통의 여성상과 대립을 이루면 자주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술집, 요정, 클럽에 나가는 여성>에 대해서는 어쩌면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다소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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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테이키 作庭記 - 일본 정원의 미학
다치바나노 도시쓰나 지음, 김승윤 옮김, 다케이 지로 주해 / 연암서가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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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습니다.

 

 

 

마흔 번째 서평

 

일본정원의 미학 사쿠테이키-다치바나노 도시쓰나

 

 

원칙으로 짓다.<그들만의 요산요수>

 

 

  독특한 책이다. 정원에 대해 이렇게 상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을 전문 서적이 아닌 일반 교양서 수준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물론 유감스럽다거나 조금은 미안한 일도 존재한다. 그것은 처음에 품었던 어떤 환상이 같은 것들이 빗겨가는 현실과 대면하는 일이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정원은 크지도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으며 아담하고 소박했다. 대문 바로 옆에는 장미나무가 있고, 그 옆에 석류나무가 있었으며, 비교적 키가 컸던 이 나무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앉은뱅이 꽃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정원은 그냥 검소하기 짝이 없었던 꽃밭의 모양새 그 자체였다. 맨 앞줄에는 꽃잎을 떼면 꿀이 맺힌다던 붉은 색의 수술이 달린 꽃들이 있었고, 그 뒤로 분꽃이나 봉숭아가 저마다 피고지고를 반복했다. 그 정원이 일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그 집이 일제시대에 지어졌으며, 해방이 되기 전까지 일본인이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했었는지도 모른다.

 

 

  사쿠테이키. 책은 내 환상을 보기 좋게 뒤틀어 버렸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정보와 지식을 쏟아내는 듯하다. 책은 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진 책으로 정원 만들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알려진 책이다.(24p) 이번 일본정원의 미학이라는 다소 현학적 냄새를 품기는 책의 구성은 비교적 간단하다. 사쿠테이키의 번역과 주석, 그 다음으로 해설이 실려 있어 이해를 돕고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일본어로 쓰인 원본이 실렸다. 따라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번역과 주석 부분에 비해 뒤따라 나오는 해설 부분은 반복과 강조 혹은 부연설명의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사쿠테이키의 시작은 명료하면서도 강단 있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정원을 만드는 일은 먼저 그 요지를 심득해야 한다’(33p) 여기에서 '정원을 만드는 일은 ‘돌을 놓는 일’로 표현되어 있다(33p 각주부분 인용)

 

 

  책 속에는 정원을 구성하는 구성요소와 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를테면 돌이나 기둥, 흙, 물의 흐름과 방향, 폭포의 유형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정보를 거론하고 있으며 수치상으로도 정확한 계측과 계량의 결과로 분석적인 인상을 풍기는 듯 하다. 그러나 반면에 기복신앙과의 주술적인 관점에서 정원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식의 인식은, 풍수에 의존하는 부분이나 금기사항을 준수하는 것과 함께 비교적 까다롭게 규정한다. 비단 정원을 구성하는 일이 미적인 만족도를 위해 준비되고 형상화되는 수준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것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인 듯하다.

 

 

  돌의 모양과 위치, 돌을 세울 것인지, 눕힐 것인지, 나무의 종류와 나무를 옮겨놓을 위치와 같이 구체적으로 정원과 관련 있는 부분들 뿐 아니라 주변의 건물들과 융화되는 조화로움 역시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감상만을 위한 정원이 아닌 정원의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돌 하나, 바람 한 자락, 물 한 줄기에게도 의미를 부여하고, 신성시하는 인식의 에서 개인과 가족을 위한 기복신앙과 혹은 토테미즘이 가미된 믿음과 신뢰가 돋보이는 듯 하다.

 

  사쿠테이키... 어쩌면 책을 보고 감상하는 이들이나, 연구하고 땅 위에 정원을 수놓는 사람들이나 모두 그들 내면에서 나름대로의 정원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만의 요산요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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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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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서른 아홉 번째 서평

수박향기-에쿠니 가오리 / 김난주 역

 

순수. 냉정. 혹은 야살스런

 

  에쿠니 가오리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일본작가라는 사실 하나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의 작가론이나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을 접해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에쿠니 가오리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열렬한 팬도 많아 보인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 없이 무작정 소설 읽기를 시작했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내게 도움을 주는 일인지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일인지 잠시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 작가의 이전 작품이 지니는 성격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무지하면서도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작가를 만나는 일은 어설픔과 묘한 흥분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미묘함. 작가는 짧은 단편 소설의 모음으로 구성된 이번 소설집에서 미묘함이라는 단어의 표현과, 작품 안에서 이 단어가 주위의 것들과 어울리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복잡한 교감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11편의 단편이 실렸고, 대부분의 소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비슷하게 이어지는 듯하다. 물론 대부분의 이들이 동일시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요소인 이 작가의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간과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대체적으로 감각적이다. 시처럼 간결하게 리듬이 느껴지는가 하면, 때로는 밉지 않게 오감을 흔드는 자극적인 요소를 발산한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감각적인 단어와 문장을 적절한 타이밍에 잘 맞춰 넣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은 스토리가 갖는 서사성 보다는 사건을 중심으로 몰입해간다는 것과 감각적 문장이 받쳐주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오정희의 작품들이 생각난다. ‘유년의 뜰’, ‘새’ 혹은 ‘중국인 거리’와 같은 소설의 제목이 불쑥 튀어나오는 까닭은 아무래도 에쿠니의 문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긴 한데 소설을 읽으면서 각각의 작품이 품고 있는 주제를 찾아내기가 참 묘하더란 말이다. 물론 굳이 정석대로 분석해서 붙인다면 할 말이야 많긴 하겠지만, 시크하면서도 유니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이 작품집에 정석대로 주제를 붙이기에는 어딘지 어색하지 않을까.

  밑도 끝도 없이 예쁘게 감각적이다, 일반적인 스토리의 전체적인 개연성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몰입하는 정도가 강하다, 는 것이 내가 읽은 에쿠니의 ‘수박향기’의 전체적인 인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이 이 작가의 매력인가도 싶다.

 

  작가는 그녀의 소설에서 그녀의 문장에서 그녀가 만들어내고 배열하는 모든 어휘에서 질서와 안도감을 찾아 느끼는 것일까. 문득 작품 속에서 내 시선을 붙잡고 늘어지던 표현 하나가 생각난다.

-보송보송한 타월은 따뜻했고, 질서와 안도의 냄새가 났다-(134P)

 

  해설부분에 실린 가와카미 히로미의 글은 냉정함을 살짝 상실한 듯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편단심 문장에 대한 극찬이 이어지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객관성이 흔들리는 듯한 인상이다. 개인적으로는 역자 김난주의 이야기가 더 신뢰가 간다.

 

  김난주가 언급했던 ‘감정의 원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원형이라는 말에 융이 생각이 난다. 칼 구스타프 융의 ‘원형이론’을 접목해서 에쿠니의 작품을 다시 읽어본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 보인다. 원형이론으로 다시 만나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한층 더 깊이감 있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어딘지 모르게 야살스러워 보이는 이 미묘한 내면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 은근한 중독성에 긴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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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스케치 노트 스케치 노트
아가트 아베르만스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진선아트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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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서른 여덟 번째서평

식물 스케치 노트-아가트 아베르만스

 

그림 그리는 그림책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본적이 있을까. 여학교시절 점심시간에 늘 도서관 서고로 도망을 다녔다. 점심을 먹고 난후 대운동장으로 나와 운동 할 것을 강요하던 선생님들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까닭이다. 책을 아주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몽둥이 하나 들고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체육선생님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좋은 곳이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누드 크로키에 관한 책을.

  하필이면 누드 크로키가 뭐란 말인가. 사춘기에 막 접어들었던 여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일반 스케치북보다도 더 컸던 그 책을 대여해서 집에 가지고 갈 요량으로 버스에 올랐을 때 그 낯 뜨거웠던 기억이란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가보다.

 

  화실이란 곳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것도 딱 일주일만큼의 시간만 할애했다. 처음 화실에 들어갔을 때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석고상이 주는 분위기에 압도당했고, 다음으로는 화실에서 느껴지는 묘한 냄새에 흠뻑 취했던 기억이 난다. 4b연필의 냄새였는지, 제법 두꺼웠던 4절지 크기의 종이에서 나오는 냄새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석고상에서 나는 냄새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원형의자에 앉아 허리를 세우고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척 힘이 들었지만 정말이지 뿌듯하게도 비너스도 그리고 줄리앙도 그렸던가보다.

  하지만 소설처럼 드라마처럼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던 꿈은 일주일 만에 깨끗하게 접히고 뒤로 버려졌다. 고가의 물감을 사라고 강요하던, 고가의 연필을 사야 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겠지. 그때 나는 윤리선생님이 이야기하던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상대성을 비교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책 이야기 좀 해보자. 지루할 만큼 늘어난 사설도 이쯤에서 정리하고 아가트 아베르만스의 책 ‘식물 스케치노트’에 집중할 일이다.책의 초입과 말미에서는 스케치와 세밀화의 유래라고 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한 역사를 잠시 짧게나마 소개하고 있다.

 

  책은 쉽게 말해서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재료의 소개와, 사용법을 시작으로 다양한 ‘그리기 기법’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본문에서 본격적으로 재료와 사용법 그리고 스케치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기본 형태를 잡고 볼륨 내지는 음영과 같은 중요하면서도 기초적인 내용을 먼저 숙지한 이후에 실질적으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디테일한 부분을 알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보인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있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 중에 ‘관찰’을 강조한다. 세밀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관찰이 이루어졌는가가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일이라는 말이 된다. 집중해서 관찰하기가 먼저이고 집중해서 그림으로 표현해내기가 차선의 일인 셈이다.

  색을 다루는 법에 있어 물감과 물의 비율이라든지, 색과 색의 혼합비율에 대해, 그리고 종이 위에 색을 입히는 방법과 그 과정 또한 시종일관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한층 더 유연하게 읽히는 듯하다.

익숙하지 않은 갖가지 꽃과 풀들이 등장하면서 책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도감과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단 하나의 간결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그리는 이의 끈기가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누군가 성격 급한 사람이라면 저자의 책을 보면서 따라하다가도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지는 않을까. 가벼운 근심 한 자락 남겨볼 일이다.

  책은 꼼꼼하고 섬세하며 어딘지 모르게 전체적인 분위기가 낭창낭창하다. 예쁘고 정성스럽다. 독특한 향기가 나는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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