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백 마흔 한 번째

잠복-마쓰모토 세이초

 

들여다볼 수 있는 눈

 

  사회파 소설이란 트릭이나 범죄 자체에 매달리지 않고,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내서 인간의 문제를 파고드는 추리소설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앞 표지 인용)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처음 접한다. 그가 어떤 작가인지, 어떤 장르에 속하고 있으며 어떠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 추리

문학의 대가. 혹은 사회파라는 독특한 장르의 창시자.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력은 평이하지 않았다.

 

  이번 소설집 잠복에는 모두 여덟 가지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잠복은 작가 자신이 말했던 ‘사회파 소설’을 모티브로 한 작가의 처녀작이다. 일반적으로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트릭과 사건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장르문학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세계는, 작가가 생전에 남겼던 이야기라든지 역자 후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내가 읽고 싶은 신성한 추리소설”이란, 소재와 인물은 일상에서 찾고 심리묘사를 중시하며 그것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문체로 표현하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략) (390 역자후기에서 인용)

-----트릭 중심이던 기존의 추리소설과 구별되는 세이초 추리소설의 원형이 이 단편소설 속에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 자체보다 각 등장인물들의 인생담에 초점을 맞춰서, 고달프고 굴절된 혹은 욕망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390 역자후기에서 인용)

 

  작가의 말처럼, 소재와 인물을 일상에서 찾으며, 하나의 사건 역시 사회적 동기 안에서 문제제기를 통해 구체화하는 것이 바로 마쓰모토가 남긴 이야기들의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번에 출간된 잠복은 어떤 해석으로 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범죄물 내지는 추리물을 대할 때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하곤 한다. 하나는 마쓰모토의 핵심 이론이 되는 ‘사회적 동기와 범죄’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불온한 심리와 범죄’의 측면이 그것이다.

인간의 불온한 심리 역시 크게 봐서는 사회적 동기안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양자 간에는 약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의 내용인 불온한 심리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작품을 대한다는 생각도 외면하기 어렵다.

 

  모든 인간은 보다 나은 것의 추구를 갈망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각자가 추구하는 욕망 내지는 갈망이 현실로 형상화화는 과정에서 좌초하게 될 때자잘한 감정의 변화는 차치하고서라도 자절 혹은 극복이라는 상반된 감정 위에 서게 된다.

 

  여기서 범죄로 이어지는 원인을 나는 프로이트 이론 중 유아기 시절의 경험하게 되는 무의식의<상처>에 대한 고착 내지는 융의 원형이론으로 비유해 생각하곤 한다.

사실 이러한 형식적인 이론의 절차는 이미 익숙한 해석이다. 그런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사회파 경향의 소설이 결과적으로는 심리학으로 보는 범죄구성의 대한 해석에 있어 그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새로운 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허점이 드러나며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프로이트를 비롯한 심리학자들에게 기인해 인간심리를 분석하는 일은 개인적인 식견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건재하다고 본다.

어쨌든 장황한 낭설을 뒤로하고 작품 속 소설을 살펴보자.

 

  마쓰모토의 글은 장르문학인 일반적 추리소설보다 어쩌면 순수문학적 요소를 더 많이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인물들의 내면이 담긴 심리묘사이다. 이 심리묘사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 따로 구분하지 않고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즉 피해를 입은 사람이나 사건을 해결하려는 자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범죄자의 입장에서도 동일하다. 여느 추리물이나 범죄물 소설처럼 흑백논리, 권선징악 내지는 선과악의 자리를 규정하는 것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하나의 사건을 강조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스토리의 구성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한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속전속결로 겅중 뛰어넘는 스토리전개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인물들의 심리와 사건의 연계성을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듯 끝까지 스토리를 끌고 가는 힘이 이 작가의 힘인가보다. ‘귀축’과 ‘일년 반만 기다려’는 추리라는 기본 바탕위에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본성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가미된 듯 보이고,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와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결론이 조금 평이한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잘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회적 동기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기실 사회적 동기란 사회라는 조직체계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그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개인의 생활영역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사적인 사고가 아닌 주변의 사회적 구성요소들과 끊임없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영향을 교류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사상보다는 사회와 조직이라는 테두리 안에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실체인 동시에, 일종의 알력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점들 때문이 아닌가. 인간의 내면심리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일과 함께, 그만의 작가적 세계관에 사회적 추리라는 장르를 덧붙였다는 점도 그의 작가적 명성에 한 몫을 한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이 구조안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범죄의 결과만을 보지 않고 그 사건의 동기도 함께 생각하는 작가의 인간적인 시선이 무척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보통의 여성상과 대립을 이루면 자주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술집, 요정, 클럽에 나가는 여성>에 대해서는 어쩌면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다소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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