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는 무얼 하는 공간인가?

내 종이?

 

음....

처음치고 딱딱한 이야기를 쓰는게 좀 안됐다 싶다.

 

책의 진정한 가치란....

책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다보니 어느 책을 보게 되었는데, 이 책에 대한 정말 수많은 서평들과 이야기들이 컴퓨터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을 볼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좀 허탈감... 같은 기분이 들더라.

 

물론 좋을 책은 많은 대중들에게 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여러가지 방법과 방향으로 독자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임에는 분명하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양질의 책을 접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해야겠다는 말이다.

 

 

좋은 책은... 독자들의 안목에 의해 걸러지기 마련이다.

때론.. 출판사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독자들의 냉혹한 판단에 의해

걸러지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모습에서

책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이해하며, 무엇으로 위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책의 가치, 혹은 진정한 책 읽기의 가치를 생각해봐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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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주 -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에 가까운 이야기, 2018년 뉴베리 대상 수상작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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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주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에 가까운 이야기

 

 

작품 ‘안녕, 우주’ 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신비로운 우주의 섭리에 따라 운명과 같은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모티브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소심하고 외소한 주인공 버질은 필리핀에서 이주한 아시아계 소년이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쌍둥이 형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세계에서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는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소년이다.

 

-‘거북’은 가족들이 버질을 부르는 별명이었다. 버질이 좀처럼 ‘껍데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버질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

 

나약하고 쉽게 상처받는 소년 버질을 도와주는 자매가 카오리와 여동생 겔이다. 특히 카오리는 우주의 신비로움을 믿으며 자칭 점성술사 역할을 하는데, ‘인연은 절대 그냥 생겨나는 게 아니다’ 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새로운 고객을 환영하는 명함을 만들면서 어른은 사절한다는 문구는 이 작품에서, 아이들만의 독특함과 재치가 돋보이도록 끌고가는 작가의 위트가 유쾌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점성술사 관련한 명함을 보고 카오리 자매 앞에 나타난 소녀는 청각장애로 보청기를 끼고 이는 발렌시아였다. 사실 버질은 발렌시아를 좋아했지만 소심한 성격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퍼즐이 맞춰지듯 버질이 우물이 빠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아이들은 한 곳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우연처럼 아니 정해진 인연처럼. 우주의 신비함이 만들어낸 만남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빠질 수 없는 감초 역할의 쳇은 늘 버질 곁에서 버질을 괴롭히는 나쁜 악당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소설 속에서 약자를 놀리기 좋아하는 이 소년 역시 11살이라는 나이에 맞게 순수하고 두려움과 자존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의 평범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두 명의 인물 즉 버질과 발렌시아는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많은 부분 공감대를 형성해왔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 작가는 두 인물이 처음부터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알려주기 위해 독자들에게 선물 같은 힌트를 곳곳에 배치하고 있었다.

버질이 할머니에게 전해들은 많은 전설 같은 이야기는 신화처럼, 단순한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다가오지만, 결국 주인공 버질이 한 단계 성숙해가는 과정에 깊이 관계하며 결정적인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작품은 각각의 장마다 시점이 3인칭에서 1인칭으로, 혹은 각각의 주인공의 시선으로 다양하게 바뀌는 시점을 구성으로 하고 있다. 스토리 전개가 빨라서 지루하지 않게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알아, 알아. 세상엔 우연이란 없어.

 

아이들이 생각하는 세상은 빛나는 밤하늘의 신비로움과 고즈넉함처럼 때론 그렇게도 낭만적인가보다. 소설은 사춘기 아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우정, 그 나이에 맞는 풋풋한 이성에 대한 감정, 그리고 자아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때가 되면 우주가 말해줄 거야.

 

라고, 말하는 이 아이들은 또 얼마나 철학적인가.

아들이 중학교 입학을 위한 서류 준비를 하고 있는 요즘, 아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듯 싶은 책...안녕, 우주. ∼∼∼∼

 

우주야.. 정말 안녕한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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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한 장면 - 러시아문학에서 청춘을 단련하다 한국러시아문학회 총서 1
한국러시아문학회 엮음 / 써네스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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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한 장면(러시아 문학에서 청춘을 단련하다)

 

책은 러시아 문학(시, 소설, 희곡)을 소개하는 동시에 해설과 비평을 같이 실었다. 무엇보다 표지가 눈길을 잡는 까닭은 클래식한 분위기 때문이다. 무언가 심각하게 고뇌하며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고전미가 돋보이는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얼굴 한쪽을 밝히고 있는 빛으로 인해 여인의 얼굴은 적절한 수준의 그림자가 입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왠지 모르게 깊은 사색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은,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러시아 문학의 무게감과 깊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 이제 책 표지가 아닌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책은 여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 각각의 작품을 분류하여 싣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저자에 대한 해설을 싣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1장은, 사랑합니다. 2장은 고뇌와 갈망, 3장은 이상과 현실, 4장은 삶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삶, 5장은 진정한 삶을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6장은 세상을 바라보다, 의 작은 타이틀을 정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소개한다. 또한 한명의 저자가 아닌 여러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작업을 했다는 데 또다른 의미를 갖는 책이기도 하다. 각각의 이야기는 주로 이 작품을 번역한 역자들 혹은 이들을 포함하여 관심 있는 27명의 필자들이 작품에 대한 분석과 다양한 생각들을 저술하는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었다.

 

 

책은 우선 짧은 분량으로나마 먼저 작품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부터 이론이나 사설로만으로 만나는 지루한 글보다, 작품을 살짝 미리 엿보는 식의 ‘미리 읽어보기’의 형식을 빌려왔기 때문에 사실감 내지는 현실감을 포함하여 깊이 있는 공감을 느끼는데 용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꼭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바로 ‘다양한 작품의 소개’가 아니었나 싶다. 러시아 문학하면 누구나 알 수 있을만한 잘 알려진 작품에서부터 시작해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작가들의 작품과 다양한 장르까지, 편파적이지 않게 고루 실고 있다는 데에서 사실 이번 책을 출간한 근본적인 목적에 충실했던 편집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할만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은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형식과 텍스트의 책이 지니는 문제점은 바로 장점을 오용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야 달리 걱정할 것은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어찌보면 이 책 한권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읽어냈다는 식의 오판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노파심이 생겨난다.

    

 

책은 독자들에게 짧게나마 미리 작품을 선보이는 역할을 하는데까지 그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 이상의 역할과 노력은 독자의 몫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꼭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을 필히 꼭 완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이 책 안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과 각각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27명의 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책을 읽는 기쁨을 만끽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직접 작품을 읽었을 때의 감흥은 다른이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을 이야기하고 싶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마트로나의 집>을 소개하는 ‘희생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할머니’ 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는 까닭은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인간본연의 정서에 깔린 애잔한 정서를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서구 러시아의 문학이면서 동시에 동양적인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나누어 주고, 하나 남은 집의 자재들까지 남들이 가져가버리는 불행한 환경에 홀로 서 있는 주인공이 있다. 철도에서 사고로 죽음을 맞고 나서도 지인에게 남은 것들을 빼앗기는 가여움과 안쓰러움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주인공 마트료나의 모습은 동서양을 떠나 삶에 대해 수동적으로 살아가야 했던 많은 가려한 여인들의 모습을 연상시켰던 부분이기도 하다. 책은 마트료나를 소개하면서 이런 표현을 남기고 있다.

    

 

-어쨌든 마트료나의 죄는 절름발이 고양이보다 가벼웠으리라.

고양이는 쥐라도 죽였으니까.... - (p93 마트료나의 집)

 

 

그런가하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 “허위로 가득 찬 세상, 영혼의 자유를 찾아서” 라는 글도 많은 생각을 남긴 작품이다. 주인공 친친나트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허구라는 설정이 독특한 작품으로 더욱더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이 허구의 세상에서 사형을 당하게 된다. 사형을 언도받고 죽음을 기다리는데 모순적이게도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두려움에 떨며 불안해한다.

   

 

-결국에는 실체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친친나트는 그들 모두가 허위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불투명함이 발각된 상황에서 그만이 실재적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p200 사형장으로의 초대)

    

 

이 외에도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귀향>을 소개했던 “전쟁이 안 겨 준 고통 무엇으로 치유할 것인가?” 와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갈등”을 이야기한 글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의 죽음, 그리고 아들의 묘를 찾아온 노부모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이 글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 ‘이항재’의 글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를 대표하는 구세대(아버지 세대)와 아들을 대표하는 신세대 젊은 세대를 작 품 속으로 가지고 와 상징화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던 원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이론과 사상을 다정한 시선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데에서 끌림이 더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작품이 기억에 남는가, 라는 문제는 개인의 취향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러시아 문학의 깊은 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은 어쩔 수 없이 당시 외면할 수 없었던 사회적 사상인 레닌, 볼세비키와 같은 구소련의 공산주의와 관련한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작가들은 당시 시대적으로 대두되었던 사상에 동조하거나 혹은 외면하고, 타국으로 쫓겨나기도 하는 식의 고충을 겪으면서 역작을 만들어냈다.

다행스럽게도 책은 90년대 이후 러시아 문학계에서 외면해왔던 작가와 작품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주기도 한다.

    

 

러시아 문학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책을 통해 러시아 문학에 대한 끌림이 더해져 가는 것은 즐겁고도 좋은 고백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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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2
김탁환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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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2

 

-허균, 반역의 자리에서 지다.

 

김탁환의 소설 허균, 최후의 19일 1, 2권을 완독했다. 작가 김탁환을 통해 허균을 새롭게 다시 만나면서 교산 허균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

허균은 진정한 개혁을 꿈꾸었던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방종 속에서 살다간 인물이었을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싸움에서 승자는 표면적으로 허균과 각을 세웠던 인물인 이이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광해군일기와 같은 기록을 보면 광해군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허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적잖은 애련함을 찾아볼 수가 있다. 결국 당시 역사의 기록에서도 오롯하게 이이첨이 승자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1부의 마지막장의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2부 이야기를 해보자. 1부 마지막장에서 광해군은 허균을 찾아가 밀서를 건네며 미래를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허균의 딸 해경을 세자의 후궁으로 들이는 소원의 자리에 올릴 것을 약속하며 굳은 신임을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광해군은 허균을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소설의 흐름은 2부에서부터 빠르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2부의 시작은 옥에 갇힌 허균의 모습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허균을 따르는 무리들이 허균을 찾아와 탈출을 감행하자 했지만, 허균은 광해의 약속을 믿었고 끝내 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소설 속 인간 허균은 내적 갈등과 불안감에 휘둘리며 흔들리게 된다. 먼저 세상을 등진 큰형 허성, 둘째형 허봉, 누이 허난설헌이 꿈인 듯 환영인 듯 나타나 그에게 진정한 이상향과 꿈이 무엇이냐, 다시 시로 돌아올 수는 없겠는가, 물어보며 질책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소설은 주인공 허균이 꿈꾸었던 본연의 것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2부의 분위기는 법정에 선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최후진술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허균이 반역을 원했던 진정한 목적에 대해서, 임금이 없는 나라(용상이 없는 정치!)를 꿈꾸게 된 이유에 대해서, 차별이 없는 모두가 잘 사는 평등한 나라를 꿈꾸었던 인물 허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양반이라야지만 된다는 명분도 사라지는 것이다. 임금이 임금답고 양반이 양반답고 백성이 백성다운가를 따지기 전에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P270

 

-그렇다면 구태여 이런 일을 벌일 필요가 있었어? 이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네가 시로 되돌아오는 것을 마찬가지인 것을 ……반역의 자리에서 너는 행복하니? -P273

 

감옥에 갇힌 허균과 그를 따랐던 인물들(우경방, 현응민, 하인준, 김윤황)은 결국 이이첨의 계획에 따라 능지처참을 당한다. 사실 이이첨의 지략도 지략이었지만 허균의 죽음에 결정적 원인제공을 한 것은 함께 반역을 꿈꾸었던 이재영이라는 인물의 고변 때문이었다. 이재영의 선택은 나름의 진지한 동기를 떠나 결과적으로 허균을 죽음으로 떠밀어넣었다. 그리고 많은 죽음을 야기시켰다.

 

소설 속 허균의 말처럼 이재영이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배신을 했을 거라는 대목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거대한 반역의 끝에는 또다른 반역이 뒤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굳이 그 까닭을 묻는다면 처음부터 불안한 반역의 기틀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에서는 허균을 따르는 무리가 허균의 죽음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허균의 아들 허굉은 반역을 함께 도모했던 허균의 지인 박치의를 따라 길을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되고 있다.

 

역사가 기록하고 역사가 기억하는 교산 허균, 그는 어떤 인물인가. 아니 어떤 인물이어야 했던 것일까.

그를 믿었고, 다시 그를 의심했고, 그를 의심해서 슬퍼하던 조선 광해의 역사는 여전히 많은 의혹을 건네지만 늘 그렇듯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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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 상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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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1권

 

꿈과 현실.

 

“잃어버린 꿈과 같다네, 되살리기에는 너무나도 멀어져버린,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되살려 현실로 바꾸고 싶은 꿈!”

---------------- p337

 

누구나 꿈을 꾼다. 이상향을 그리고 그 이상향 안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개인의 꿈은 소소한 것에서 그치는 것도 있고, 어느 시기의 어느 누구처럼 원대한 꿈을 꾸는 이도 있을 법하다. 허균. 그는 그런 크고 원대하고 한편으로는 위험한 꿈을 그렸던 사람이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선조와 광해군 시절을 살다간 허균에 대한 세간의 평은 지극히 양분되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진실인지, 어떤 사설이 맞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 시절에 살았다 한들 어느 세력, 어느 시류에 의탁하는가에 따라, 개인이 판단하는 역사는 너무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김탁환 저 허균 최후의 19일은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1권의 서평을 기록으로 남긴다.

   

 

교산 허균, 그는 일이 끝난 후에는 변산으로 가기를 원했으나 결국 갈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다가 드나드는 갯벌에서 양반의 체신과 자존심 따위야 쉽게 내려놓고 맨발로 겅중겅중 뛰며, 미끄덩거리는 감촉을 밟으며 살아가고자 했던 허균의 꿈은 정말 꿈에서 멈추어버린 것이다.

   

 

책은 변산에서 허균이 옛 친구 파암 박치의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새로운 나라를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종용하며 행동으로 옮기자 하는 박치의에게 허균은 짐짓 이런 말을 남긴다.

    

 

“ 허나 지금은 칼날을 숨길 때라네. 오래 참는 법을, 외곽으로 돌아가는 법을, 분노를 가라앉히는 법을, 작아지는 법을, 그리하여 비굴해지는 법을 배우게. 이제 우리는 봉우리에서 하산하는 거야.” p17

    

 

 1권에서는 허균을 지략가인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었다. 변산의 갯벌에서 무리와 무리를 떠나 세상을 외면한 채 개인의 안분지족으로 살 것인가, 더러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다시 그 곳으로 걸어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선택하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성으로 돌아와 북인을 대표하는 이이첨 무리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 허균은 좌참찬, 이이첨은 판의금부사의 직분으로 왕인 광해의 좌우의 자리에서 견제와 더불어서 불편한 비호까지 함께 하게 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교산은 겉으로는 대론을 지지하고, 인목대비(인목왕후)를 서궁으로 내모는데 앞장을 서며 이이첨과 행동을 같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의 왕인 광해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역모를 꿈꾸는 위험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지, 안쓰럽다 해야 할지. 교산 허균과 광해의 두터운 인연이 앞으로 펼쳐질 이 두 막역지우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허균의 이상향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작가는 꼼꼼한 문체와 서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가면서도 인물들의 행동과, 서로 각을 이루는 두 인물 허균과 이이첨의 복잡한 심리묘사와 갈등을 서두르지 않으면서 잘 그려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또한 이 두 사람 사이에서 광해의 선택도 흥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왕은 두 신하를 믿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완벽하게 믿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했으며 왕 역시 이 두 사람을 믿는 동시에 견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는 둘 중 하나를 버려야만 했다. 누구를 버릴 것인가. 이의첨의 계략에 의해 광해는 먼저 교산을 의금부로 불러들이면서 1권이 마무리된다.

    

 

아비를 위해 스승을 배반하고, 스승을 위해 아비를 외면해야만했던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군상들은 때론 측은하기도 하고 때론 야박하기도 하고 때론 우매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사연들이 안타깝게 다가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 제 5일 편에 등장하는 하남대장군이 왕을 벌하러 온다는 내용의 벽서를 두고 작가는 허균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한 일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벽서사건이 교산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다른 상반되는 역사적인 의견을 찾아보고 있노라면 역사란 판단하는 게 아닌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은 김탁환의 비교적 초기작인 듯하다. 지인으로부터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가 1999년도이니까 근 이십년 가까이 낡은 책장에서 먼지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출판사도 달라졌고 물론 책값도 조금 올랐다. 말해서 무엇할까마는 어쩌자고 나는 이런 책을 이십년 가까이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남은 2권을 읽어야 할 일이 남았다. 그런데 마음이 무겁다. 허균의 의지와 이상향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읽어내야 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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