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최후의 19일 - 상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허균, 최후의 19일 1권

 

꿈과 현실.

 

“잃어버린 꿈과 같다네, 되살리기에는 너무나도 멀어져버린,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되살려 현실로 바꾸고 싶은 꿈!”

---------------- p337

 

누구나 꿈을 꾼다. 이상향을 그리고 그 이상향 안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개인의 꿈은 소소한 것에서 그치는 것도 있고, 어느 시기의 어느 누구처럼 원대한 꿈을 꾸는 이도 있을 법하다. 허균. 그는 그런 크고 원대하고 한편으로는 위험한 꿈을 그렸던 사람이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선조와 광해군 시절을 살다간 허균에 대한 세간의 평은 지극히 양분되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진실인지, 어떤 사설이 맞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 시절에 살았다 한들 어느 세력, 어느 시류에 의탁하는가에 따라, 개인이 판단하는 역사는 너무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김탁환 저 허균 최후의 19일은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1권의 서평을 기록으로 남긴다.

   

 

교산 허균, 그는 일이 끝난 후에는 변산으로 가기를 원했으나 결국 갈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다가 드나드는 갯벌에서 양반의 체신과 자존심 따위야 쉽게 내려놓고 맨발로 겅중겅중 뛰며, 미끄덩거리는 감촉을 밟으며 살아가고자 했던 허균의 꿈은 정말 꿈에서 멈추어버린 것이다.

   

 

책은 변산에서 허균이 옛 친구 파암 박치의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새로운 나라를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종용하며 행동으로 옮기자 하는 박치의에게 허균은 짐짓 이런 말을 남긴다.

    

 

“ 허나 지금은 칼날을 숨길 때라네. 오래 참는 법을, 외곽으로 돌아가는 법을, 분노를 가라앉히는 법을, 작아지는 법을, 그리하여 비굴해지는 법을 배우게. 이제 우리는 봉우리에서 하산하는 거야.” p17

    

 

 1권에서는 허균을 지략가인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었다. 변산의 갯벌에서 무리와 무리를 떠나 세상을 외면한 채 개인의 안분지족으로 살 것인가, 더러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다시 그 곳으로 걸어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선택하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성으로 돌아와 북인을 대표하는 이이첨 무리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 허균은 좌참찬, 이이첨은 판의금부사의 직분으로 왕인 광해의 좌우의 자리에서 견제와 더불어서 불편한 비호까지 함께 하게 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교산은 겉으로는 대론을 지지하고, 인목대비(인목왕후)를 서궁으로 내모는데 앞장을 서며 이이첨과 행동을 같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의 왕인 광해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역모를 꿈꾸는 위험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지, 안쓰럽다 해야 할지. 교산 허균과 광해의 두터운 인연이 앞으로 펼쳐질 이 두 막역지우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허균의 이상향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작가는 꼼꼼한 문체와 서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가면서도 인물들의 행동과, 서로 각을 이루는 두 인물 허균과 이이첨의 복잡한 심리묘사와 갈등을 서두르지 않으면서 잘 그려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또한 이 두 사람 사이에서 광해의 선택도 흥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왕은 두 신하를 믿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완벽하게 믿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했으며 왕 역시 이 두 사람을 믿는 동시에 견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는 둘 중 하나를 버려야만 했다. 누구를 버릴 것인가. 이의첨의 계략에 의해 광해는 먼저 교산을 의금부로 불러들이면서 1권이 마무리된다.

    

 

아비를 위해 스승을 배반하고, 스승을 위해 아비를 외면해야만했던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군상들은 때론 측은하기도 하고 때론 야박하기도 하고 때론 우매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사연들이 안타깝게 다가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 제 5일 편에 등장하는 하남대장군이 왕을 벌하러 온다는 내용의 벽서를 두고 작가는 허균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한 일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벽서사건이 교산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다른 상반되는 역사적인 의견을 찾아보고 있노라면 역사란 판단하는 게 아닌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은 김탁환의 비교적 초기작인 듯하다. 지인으로부터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가 1999년도이니까 근 이십년 가까이 낡은 책장에서 먼지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출판사도 달라졌고 물론 책값도 조금 올랐다. 말해서 무엇할까마는 어쩌자고 나는 이런 책을 이십년 가까이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남은 2권을 읽어야 할 일이 남았다. 그런데 마음이 무겁다. 허균의 의지와 이상향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읽어내야 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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