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인 이 한 장면 - 러시아문학에서 청춘을 단련하다 한국러시아문학회 총서 1
한국러시아문학회 엮음 / 써네스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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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한 장면(러시아 문학에서 청춘을 단련하다)

 

책은 러시아 문학(시, 소설, 희곡)을 소개하는 동시에 해설과 비평을 같이 실었다. 무엇보다 표지가 눈길을 잡는 까닭은 클래식한 분위기 때문이다. 무언가 심각하게 고뇌하며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고전미가 돋보이는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얼굴 한쪽을 밝히고 있는 빛으로 인해 여인의 얼굴은 적절한 수준의 그림자가 입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왠지 모르게 깊은 사색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은,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러시아 문학의 무게감과 깊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 이제 책 표지가 아닌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책은 여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 각각의 작품을 분류하여 싣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저자에 대한 해설을 싣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1장은, 사랑합니다. 2장은 고뇌와 갈망, 3장은 이상과 현실, 4장은 삶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삶, 5장은 진정한 삶을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6장은 세상을 바라보다, 의 작은 타이틀을 정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소개한다. 또한 한명의 저자가 아닌 여러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작업을 했다는 데 또다른 의미를 갖는 책이기도 하다. 각각의 이야기는 주로 이 작품을 번역한 역자들 혹은 이들을 포함하여 관심 있는 27명의 필자들이 작품에 대한 분석과 다양한 생각들을 저술하는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었다.

 

 

책은 우선 짧은 분량으로나마 먼저 작품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부터 이론이나 사설로만으로 만나는 지루한 글보다, 작품을 살짝 미리 엿보는 식의 ‘미리 읽어보기’의 형식을 빌려왔기 때문에 사실감 내지는 현실감을 포함하여 깊이 있는 공감을 느끼는데 용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꼭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바로 ‘다양한 작품의 소개’가 아니었나 싶다. 러시아 문학하면 누구나 알 수 있을만한 잘 알려진 작품에서부터 시작해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작가들의 작품과 다양한 장르까지, 편파적이지 않게 고루 실고 있다는 데에서 사실 이번 책을 출간한 근본적인 목적에 충실했던 편집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할만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은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형식과 텍스트의 책이 지니는 문제점은 바로 장점을 오용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야 달리 걱정할 것은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어찌보면 이 책 한권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읽어냈다는 식의 오판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노파심이 생겨난다.

    

 

책은 독자들에게 짧게나마 미리 작품을 선보이는 역할을 하는데까지 그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 이상의 역할과 노력은 독자의 몫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꼭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을 필히 꼭 완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이 책 안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과 각각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27명의 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책을 읽는 기쁨을 만끽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직접 작품을 읽었을 때의 감흥은 다른이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을 이야기하고 싶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마트로나의 집>을 소개하는 ‘희생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할머니’ 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는 까닭은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인간본연의 정서에 깔린 애잔한 정서를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서구 러시아의 문학이면서 동시에 동양적인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나누어 주고, 하나 남은 집의 자재들까지 남들이 가져가버리는 불행한 환경에 홀로 서 있는 주인공이 있다. 철도에서 사고로 죽음을 맞고 나서도 지인에게 남은 것들을 빼앗기는 가여움과 안쓰러움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주인공 마트료나의 모습은 동서양을 떠나 삶에 대해 수동적으로 살아가야 했던 많은 가려한 여인들의 모습을 연상시켰던 부분이기도 하다. 책은 마트료나를 소개하면서 이런 표현을 남기고 있다.

    

 

-어쨌든 마트료나의 죄는 절름발이 고양이보다 가벼웠으리라.

고양이는 쥐라도 죽였으니까.... - (p93 마트료나의 집)

 

 

그런가하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 “허위로 가득 찬 세상, 영혼의 자유를 찾아서” 라는 글도 많은 생각을 남긴 작품이다. 주인공 친친나트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허구라는 설정이 독특한 작품으로 더욱더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이 허구의 세상에서 사형을 당하게 된다. 사형을 언도받고 죽음을 기다리는데 모순적이게도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두려움에 떨며 불안해한다.

   

 

-결국에는 실체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친친나트는 그들 모두가 허위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불투명함이 발각된 상황에서 그만이 실재적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p200 사형장으로의 초대)

    

 

이 외에도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귀향>을 소개했던 “전쟁이 안 겨 준 고통 무엇으로 치유할 것인가?” 와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갈등”을 이야기한 글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의 죽음, 그리고 아들의 묘를 찾아온 노부모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이 글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 ‘이항재’의 글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를 대표하는 구세대(아버지 세대)와 아들을 대표하는 신세대 젊은 세대를 작 품 속으로 가지고 와 상징화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던 원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이론과 사상을 다정한 시선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데에서 끌림이 더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작품이 기억에 남는가, 라는 문제는 개인의 취향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러시아 문학의 깊은 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은 어쩔 수 없이 당시 외면할 수 없었던 사회적 사상인 레닌, 볼세비키와 같은 구소련의 공산주의와 관련한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작가들은 당시 시대적으로 대두되었던 사상에 동조하거나 혹은 외면하고, 타국으로 쫓겨나기도 하는 식의 고충을 겪으면서 역작을 만들어냈다.

다행스럽게도 책은 90년대 이후 러시아 문학계에서 외면해왔던 작가와 작품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주기도 한다.

    

 

러시아 문학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책을 통해 러시아 문학에 대한 끌림이 더해져 가는 것은 즐겁고도 좋은 고백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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