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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모스크바의 신사
-삶이 아름다운 이유.
오랜만에 부제를 달았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 상징적이다. 평범하게 쓰고는 상징적이라고 말하려한다. 고집인가.
혁명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구시대를 지나 새로운 신세계를 꿈꾸고 지향하는 강렬한 의지와 행동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할까. 아니면 피와 눈물과 절망과 아련한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지나간 과거의 낡은 유물이라고 해서 꼭 깨끗하게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닐텐데말이다. 왜 그래야했을까. 그들 아니 혹은 우리는 왜 혁명이라는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그렇게 다가올 것에 대한 기대심리로 지나간 것들을 애써 부정해야 하는 경향이 우리 인간을 변모하게 하는 또다른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에 혁명의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에 귀족의 신분이었던 한 사내가 가택연금을 당한다. 그가 살고 있던 곳은 메트로폴 호텔이었다. 그는 더 이상 넓은 호텔방에서 여유롭게 생활할 수 없었으며 호텔 밖으로는 한걸음도 나갈 수 없는 갇힌 신세로 전락한다. 좁은 다락방에서의 새로운 생활. 에꾸눈 고양이. 이따금 방의 창문으로 볼 수 있는 비둘기들. 혁명은 한명의 귀족이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저 평범한 이 사람의 삶의 방향성을 흔들어놓는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호텔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귀족의 품위를 잃지 않고 점잖고 책임감 있으며 위엄 있는 백작으로 통한다.
혁명의 초기에는 하나의 조직도, 조직의 구성원들도, 그 형명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평범한 이들도 모두 조금은 어설펐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에 따라 혁명의 강도는 더 강렬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느날 부터는 이 사람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에게 더 이상 백작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음을 각인시키는가 하면, 또 어느해부터는 그러저런 구시대식 계급의 표현보다 ‘동무’라는 수평적인 표현을 강조해가며 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혼란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에서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작아져가는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과 함께 처연함으로 가려진 강한 인내의 내적 모습을 한 주인공이 지닌 양면의 이미지 같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버텨낼 수 있었던 까닭은 공간적 배경이 된 호텔 메트로폴과 그 안을 지키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외부로부터의 출입에서 자유를 잃었으나 그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늘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동고동락했던 절친한 친구 미시카는 조금은 다른 분류에 속하겠지만 호텔에서 가장 먼저 친구가 되어준 어린 소녀 니나가 그랬고, 에밀과 안드레이, 그리고 안나와 마리나. 가장 마지막에는 니나의 딸 소피야가 그랬다. 후에 소피야는 백작의 딸로 성장하게 된다.
한 인간이 자유를 잃어버리고 감금이라는 억압된 상황에 처했을 때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반응들을 떠올려본다. 분노와 공포. 아니다. 공포와 분노라고 해야겠다. 차라리 공포심을 느낀 이후에 분노를 하는 것이 그나마 스스로를 견뎌내기 쉬울지도 모른다. 딴은 우울감과 충동적인 생각으로 죽음을 준비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로스토프 역시 암울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가는 묘하게도 그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선물하고 있었다. 크고 멋들어진 것이 아닌 잔잔하고 애잔하며 향수 가득한 그런 선물. 마지막을 생각했던 이에게는 너무나 큰 감정(회안과 그리움과 애틋함)을 불러일으킬만한 그런 선물 말이다. 멀리 고향땅에서 가져온 향긋한 꽃향기. 그 향기로움 속에 달콤한 꿀내음. 작은 벌들의 의미 있는 여정이 그에게 또다른 삶의 목적을 보여주었을까.
주인공 로스토프는 구시대의 인물이라는 딱지를 뒤로하고 호텔의 웨이터 주임으로 현실과 함께 살아간다. 이것을 타협이라고 해야할지, 적응이라고 해야할지 혹은 순응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극복이라고 해야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어쨌든 그는 꿋꿋하게 생존해간다.
소설이 단순히 한 인물이 혁명의 흐름에 휩쓸려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았다, 라고 했다면 이 책의 끌림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현실에 순응하는 삶, 현실에 안착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도전적이고 호전적이며 적극적인 삶. 소설에서 자주 강조하며 언급되는 주제가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그에 맞게 작가는 주인공에게 그런 현실에 안주하지 않은 이를테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로 살아가야하는 의무와 당위성을 부여한다.
스포일러는 딱 한 개만 하기로 하자. 그는 결국 자유를 찾아간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딱 하나의 스포일러다.
딴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혁명에 대한 사심이다. 인간에게 파멸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다시 인간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하기도 했던 이 이중적 성격의 혁명이 지니는 가치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다. 고인 물은 썩기 때문에 혁명을 불가피하다, 라고 그들은 말해왔다. 물론 고인 물을 썩는다. 물의 자유로운 흐름은 모든 물의 생명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물의 생명력을 위해 또다른 것을 부정하고 해체하려하는 극단적 흐름을 강요해야한다는 것이 지금 까지 있어왔던 혁명이 지닌 한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책은 정치적 시선 혹은 역사적 시선으로 접근해보아도 좋은 요소를 포함한다. 어쩌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분야의 것들을 찾아내는 일도 소소한 재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정치와 역사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건재해온 연약하나 강인한 존재,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모든 생각이 집약되지 않을까도 싶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다소 교훈적인 분위기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차치하고 재미있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해 바라보는 혁명의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쇼생크탈출을 보는 듯도 하고, 안네의 일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맛깔스러운 대사처리에서 걸리는 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번역도, 속독에 힘을 더한다. 오랜만에 부담 없이 만족하며 읽은 책이다.
-삶의 상황이 우리 자신의 꿈을 추구하지 못하게 할 경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 꿈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p529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발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p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