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 개정판
법정 지음 / 이레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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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두막 편지

-살아가는 길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앉아서 책 이야기를 한다. 분위기에 잘 맞는 음악도 선정했다. 다만 낡은 컴퓨터인지 새로 바꾼 스피커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지직, 지잉, 하는 잡음이 신경에 거슬릴 뿐이다.

 

법정 스님의 조언대로 하자면 이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지나가야 하는 것을. 나는 여전히 마음을 비우기는 어려운가보다. 웃자고 하는 말이긴해도 어딘지 씁쓸함이 돈다. 이 책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자리를 틀고 앉는다. 나도 그처럼 사람 발길 드문 곳에 들어가 작고 아담한 오두막 하나 짓고 혼자만의 생각을 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이는 욕심일까? 스님은 모든 것을 비우고 정진하는 삶을 위해 오두막을 짓고 산중에 들어갔는데, 왜 내게는 그러한 삶을 꿈꾸는 것조차 욕심이고 사치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스님과 내가 속한 현실과 선택한 길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답일지도 모르겠다. 스님은 스님의 삶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는 내가 속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기 때문이겠지.

오두막을 지으며 벽지와 바닥 온돌을 올리고 아궁이를 옮기는 작업까지 세세하고 꼼꼼한 작업과 일정을 기록하며 일상을 정리해가는 법정 스님의 이야기 안을 좀 들여다보면 어떨까.

스님이 글을 썼을 무렵은 아마도 97년도 IMF가 있던 시절이었는지 위급했던 경제상황과 위정자들의 부조리와 그에 따른 민초들의 어려운 삶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스님의 진지한 일상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책임과 의무. 더불어 한없이 무거운 삶의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고 걸어가야 할지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는 때론 죽비소리처럼 시원스레 명징하기도 하고, 때론 뜨끈한 구들처럼 따뜻하며 온화해 부드럽다.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쓰는 글도 어쩐지 스님의 글이 풍기는 분위기를 배워가는가도 싶다.

 

각설하고 책은 계절의 흐름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삶을 살아가는 이치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는 자연에 대한 진리와 흐름이라고 할까. 내가 혹은 우리가 접하고 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는 어쩌면 인류가 태어나기 그 이전부터 그들만이 지녀왔던 생명력이 있었기에,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부터가 삶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했던 부분들도 많았던 것 같다.

하찮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친구가 되고, 의지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나름 큰 힘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자주 하지 않았을까.

딴은 그러기 위해서는 말이다. 내가 가진 것을 비워내야 하는 것이고, 내 주머니가 가벼워야 하는 것이며, 그 가벼운 주머니 역시 곱디고운 게 아니라 거칠고 투박해야 한다는 의미를 스님은 책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도 든다.

 

세상의 모든 생각과 그 느낌들이 봄,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 안에 들고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새삼 소중해보였다. 달과 별과 나무와 새와 이 모든 것을 품어내는 공기와 하늘이 그저 그런 것들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부터가 바로 내 안의 화두를 만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세상은 이렇게도 의심스럽고 수상하며, 수선스럽고, 위태하고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흔들림 속에서도 잡아줄 수 있는 힘과 의지는 결국은 내 안에 있는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 책은 그 의미를 말해주고 있었다.

 

-움직임이 없으면 그건 바람 일 수 없다.P48-

-우주의 호흡과 같은 이런 움직임과 흐름이 없다면 사람 또한 살아갈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멈추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멈춤과 고정됨은 곧 죽음을 뜻한다.

그러니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 움직임과 흐름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것은 변화를 거치면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P49-

 

-‘나는 누구인가?’ 하고 안으로 진지하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 있다. 때때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 없다면 우리 마음은 황무지가 되고 말 것이다.

명상하라. 그 힘으로 삶을 다지라.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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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1-27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찮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친구가 되고..˝ 새롭게 다가오네요. 중요한 것들과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쉽게 부여되어지는 의미들. 소소한 것과 하찮은 사물에게로 확장되면 친구의 폭도 훨씬 넓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월천예진 2021-01-27 13: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멀리 계신 곳에서 꼭 건강하시기를 ♡♡♡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뿐이다 - 주광첸 산문집
주광첸 지음, 이에스더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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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1222일이다. 2020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화요일이다. 아무래도 이 서평이 올해 마지막 서평이 되리라 생각한다. 올해는 부지런하게 다독하지 못한 한해였던 것 같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무언가 기분좋은 추억과 좋은 글을 남기고 싶은 건 보통 사람들이 갖는 소소한 욕심인가. 올해 마지막으로 읽고 싶었던 책은 중국의 노학자 주광첸의 산문집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뿐이다였다 그저 뭐랄까. 책 제목에 끌렸나보다.

나는 그를 모른다. 아니 몰랐다. 책을 읽고 나서도 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 보인다. 다만 이 노학자의 열정과 열의로 빛나는 충실한 삶에 부족하나마 외경심을 담아 보내고 싶어졌다. 그의 방대한 사상과 철학과 논리로 가득찬 드넓은 장에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어서 발이 저리면서도 즐거웠던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시작하는 표현으로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책은 읽기에 쉽지 않았다. 물론 개인차가 있는 문제이기도 하며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대한 차이일 수 있다. 또 번역과 편집의 문제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마호가니 빛이나 비로드 천을 기억하게 되는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같은 분위기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그런 수필을 기대했던가보다.

제목에 끌려서 어떤 분위기일 것이다, 라고 추측하고 첫 장을 열었다면 자세를 고쳐잡아야 할 것을 미리 귀띔해주고 싶어진다. 발이 저렸다는 표현은 그만큼 깊이감으로 난해함과 마주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즐거웠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건함과 함께 유연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학자 주광첸의 이야기 속에 잠시 머무를 수 있었다는 소소한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책에는 미학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미의 기준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 미학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많은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에 대한 답으로 주광첸은 하나하나 주제를 담아 자신의 이론과 사상을 여러 가지로 비교분석하는 방식을 택해 풀어가고 있다.

조금만 더 들어가보자.(아주 조금만 들어가야 한다. 많이 들어가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책은 미학을 기본으로 문학과 예술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대해 언급한다.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 교육, 사회학과 심리학, 자연철학과 과학, 정치(전체주의, 사회주의)와 특히 그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마르크스 이론과 예술의 연계성과 같이 저자가 평생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모든 사상과 이론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저자는 아는 게 많은 백과사전 같은 박학다식한 학자다. 이번 책은 작가이면서 동시에 학자인 주광첸이 일생을 통해 습득하고 흥미를 갖고 연구해온 모든 학문을, 미학이라는 한 가지의 주제 안에 풀어내고자 했던 그만의 혼이 담긴 노력이 돋보였던 책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딴은 그런 이점(장점)들을 바라보면서도 일정부분 우려하게 되는 부분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소회는 그렇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소견이다. 그의 책이 갖는 많은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글을 읽는 이들이 주광첸의 이야기를 쫒아가기에는 숨이 달리지는 않을까. 몰입함에 있어 약간의 어려움을 갖지 않을지 소심한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가지 어쩌면 그가 말하는 이론 체계를 갖춘 그만의 학문에 딴지 걸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갖는 약간의 반대의식들도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은 그렇다. 그의 학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어찌보면 이것은 그만의 세계이며 그만의 학문적 사상과 개념이 쌓아올린 거대한 성이다. 부분적으로는 그가 예로 들고 있는 모든 예시에 대해 다 공감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 또한 긍정적인 결과로 생각하려한다. 학자가 연구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일구어낸 다양한 사상은 언제나 보편성과 대중의 인식에 근거한 가치판단의 검열을(전문적이거나 혹은 비전문적인) 받기 나름이기도 하며, 이 또한 주광첸 역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중화사상과 함께 다소 그만의 자기주장이 강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크게 봤을 때 이토록 광범위하면서 동시에 섬세하게 자신의 주장을 풀어내는 작가의 열정과 전문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그만의 헌신과 노력은 잠시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책에는 중국의 옛 고전에서 발췌한 주옥같은 글들도 많이 실렸다. 이와 함께 중국이라는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각계의 많은 학자들의 이론을 가져와 서로 비교하면서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미학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제목에서 풍기는 여유롭고 한가한 분위기 안에 담진 안정감과는 다르게, 책은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논하기보다는 그가 살아내면서 일궈낸 학문과 철학을 쉽게 풀어내고자 했던 주광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이란 원래 삶과 자연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다. 만약 예술의 가장 높은 목표가 단지 삶과 자연을 따라 하는 것뿐이라면, 우리에게 이미 삶과 자연이 주어져 있는데 예술이 과연 필요한가? p12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바로 움직이고 살아 있는 느낌이며, 분투하여 성공해야만 얻는 기쁨과 위안이다. 세상이 완벽하다면 어떻게 성공의 기쁨과 위안을 맛볼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부족함이 있고 희망의 기회가 있고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 부족함이 있어서 부족함을 채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있는 상태가 곧 무언의 아름다움이다. p287

 

 

사족이다.

한해가 끝나가는 요즘이다. 예수의 탄생이 주는 겸허함도 따뜻함으로 데워진 사랑도 아쉬운 그렇게 유난히 춥고 유난히 조용하고 외로운 겨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여전히 기승이기도 하지만 시간은 유예를 주지 않는 듯 2020년도 끝나간다. 건강하게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모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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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23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한해 좋은 리뷰 감사했습니다. 월천예진님!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

월천예진 2020-12-23 13: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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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사회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편견과 모성애의 갈등에 대해 생각한다. 편견이란 무엇일까. 일방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편견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부분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따라서 사람들이 말하는 편견이란 부정적인 것의 일부분일 수도, 혹은 그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잃는 동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이 짧은 분량의 소설을 왜 자꾸 시간을 끌면서 읽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는 중이다. 때때로 새벽까지 이 책을 붙잡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찾아들기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무언가 불편한 느낌이라고 할까. 피곤증에 빠져 토막잠을 자면서까지 나는 소설의 영향을 받곤 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은근 읽는 이에게 알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는 소설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오판일까.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몰입했던가보다.

 

소설 속에는 평범한 부부가 등장한다. 자식을 많이 낳아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순수한 욕심. 밉지 않은 평범한 욕심을 이뤄보고 싶었기에 두 사람은 미래의 그들의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큰 저택을 구입한다. 그리고 한명 두명 그들의 아이들 루크. 헬렌, 제인 폴이 태어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벤이라는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는 안도감은 어떤 것일까.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이들에게서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동질감과 함께 또 그들이 서로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적인 것들은 연상하게 된다. 당연한 일 아닌가. 가족은 개개인의 울타리 같은 가치를 지녔으며 실제로도 거대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부분이다. 또 그들의 친척과 친구들도 일정부분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뭉치기 용이한 집단에 속해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이해집단(이익집단)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순탄해보이는 이 흐름에 파문이 일어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가장 완벽하고 가장 든든했던 가정이 흔들리게 되고,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았던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 채 증오하며 결국에는 흩어지게 된다. 또 가족을 벗어나서 그들을 믿고 따랐던 주변인들의 외면을 감당하게 된다면,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소설은 벤이라는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질문과 생각들로 독자들을 자극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출생 후의 성장과정, 작가가 그려낸 이 아이 벤은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마치 원시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로 정신적, 육체적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길들여질 수 없는 강인하지만 상당히 불편한 존재로 그려가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가족 구성원들과 그들의 지인들이 이 기괴한 특별함을 갖고 태어난 불편한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면서고 분석적이며 딴은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주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벤을 그들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추방할 것을 강요하고 기관에 보낼 것을 강요했지만 어머니의 존재인 해리엇을 망설인다. 소설에서는 잠시 모성애가 사회적 편견에 무릎을 꿇는 듯 벤이 기관에 보내지는 대목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벤은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의 귀환으로 인해 가정의 평화는 재차 위협받게 된다.

소설 속 해리엇은 말한다. 벤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이것은 강인한 모성애의 발현에서 나온 감성적 발언인가.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소심함이 가지고 온 변명일까. 그녀는 또 이런 불평을 하기도 한다. 벤을 낳았기 때문에 내가 죄인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고. 나는 죄인이라고. 사람들이 나를 죄인으로 취급하며 바라보는 시선이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해리엇은 벤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삶을 선택한다. 자신의 다른 아이들을 포기하고 벤에게 몰입한다. 그러나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은 듯 보인다.

 

생각해보면 작품 안에서 모성애는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 듯하다. 어쩌면 대다수가 생각하는 인식의 틀이 갖는 거대하고 강압적인 힘에 이끌려서, 소수의 힘이(모성애를 포함한 가족애)갖고자 했던 그 무엇마저도 거부당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더 많이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해리엇의 가족에게 있어 거부당하는 벤의 존재감은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인식의 틀에서도 거부당할 것이라는 불편한 추측이 불행하게도 아니 씁쓸하게도 소설의 마지막을 강조한다.

 

벤과 같은 존재감에 대해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라는 것은 사회학자 혹은 인류학자들이 더 잘 아는 문제겠지만 딴은 모두가 함께 생각하기에는 쉽지 않은 난제임에는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그들과 비슷한 종족들을 찾아나서고 그들만의 사회를 구성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이를 지켜보는 사회는 또 그들의 존재감을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이중적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 듯하다.

가볍지 않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책 다섯째 아이. 무엇이 진리이며 진정한 해답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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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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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삶이 아름다운 이유.

 

오랜만에 부제를 달았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 상징적이다. 평범하게 쓰고는 상징적이라고 말하려한다. 고집인가.

혁명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구시대를 지나 새로운 신세계를 꿈꾸고 지향하는 강렬한 의지와 행동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할까. 아니면 피와 눈물과 절망과 아련한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지나간 과거의 낡은 유물이라고 해서 꼭 깨끗하게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닐텐데말이다. 왜 그래야했을까. 그들 아니 혹은 우리는 왜 혁명이라는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그렇게 다가올 것에 대한 기대심리로 지나간 것들을 애써 부정해야 하는 경향이 우리 인간을 변모하게 하는 또다른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에 혁명의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에 귀족의 신분이었던 한 사내가 가택연금을 당한다. 그가 살고 있던 곳은 메트로폴 호텔이었다. 그는 더 이상 넓은 호텔방에서 여유롭게 생활할 수 없었으며 호텔 밖으로는 한걸음도 나갈 수 없는 갇힌 신세로 전락한다. 좁은 다락방에서의 새로운 생활. 에꾸눈 고양이. 이따금 방의 창문으로 볼 수 있는 비둘기들. 혁명은 한명의 귀족이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저 평범한 이 사람의 삶의 방향성을 흔들어놓는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호텔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귀족의 품위를 잃지 않고 점잖고 책임감 있으며 위엄 있는 백작으로 통한다.

혁명의 초기에는 하나의 조직도, 조직의 구성원들도, 그 형명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평범한 이들도 모두 조금은 어설펐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에 따라 혁명의 강도는 더 강렬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느날 부터는 이 사람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에게 더 이상 백작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음을 각인시키는가 하면, 또 어느해부터는 그러저런 구시대식 계급의 표현보다 ‘동무’라는 수평적인 표현을 강조해가며 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혼란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에서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작아져가는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과 함께 처연함으로 가려진 강한 인내의 내적 모습을 한 주인공이 지닌 양면의 이미지 같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버텨낼 수 있었던 까닭은 공간적 배경이 된 호텔 메트로폴과 그 안을 지키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외부로부터의 출입에서 자유를 잃었으나 그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늘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동고동락했던 절친한 친구 미시카는 조금은 다른 분류에 속하겠지만 호텔에서 가장 먼저 친구가 되어준 어린 소녀 니나가 그랬고, 에밀과 안드레이, 그리고 안나와 마리나. 가장 마지막에는 니나의 딸 소피야가 그랬다. 후에 소피야는 백작의 딸로 성장하게 된다.

 

한 인간이 자유를 잃어버리고 감금이라는 억압된 상황에 처했을 때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반응들을 떠올려본다. 분노와 공포. 아니다. 공포와 분노라고 해야겠다. 차라리 공포심을 느낀 이후에 분노를 하는 것이 그나마 스스로를 견뎌내기 쉬울지도 모른다. 딴은 우울감과 충동적인 생각으로 죽음을 준비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로스토프 역시 암울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가는 묘하게도 그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선물하고 있었다. 크고 멋들어진 것이 아닌 잔잔하고 애잔하며 향수 가득한 그런 선물. 마지막을 생각했던 이에게는 너무나 큰 감정(회안과 그리움과 애틋함)을 불러일으킬만한 그런 선물 말이다. 멀리 고향땅에서 가져온 향긋한 꽃향기. 그 향기로움 속에 달콤한 꿀내음. 작은 벌들의 의미 있는 여정이 그에게 또다른 삶의 목적을 보여주었을까.

 

주인공 로스토프는 구시대의 인물이라는 딱지를 뒤로하고 호텔의 웨이터 주임으로 현실과 함께 살아간다. 이것을 타협이라고 해야할지, 적응이라고 해야할지 혹은 순응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극복이라고 해야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어쨌든 그는 꿋꿋하게 생존해간다.

소설이 단순히 한 인물이 혁명의 흐름에 휩쓸려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았다, 라고 했다면 이 책의 끌림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현실에 순응하는 삶, 현실에 안착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도전적이고 호전적이며 적극적인 삶. 소설에서 자주 강조하며 언급되는 주제가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그에 맞게 작가는 주인공에게 그런 현실에 안주하지 않은 이를테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로 살아가야하는 의무와 당위성을 부여한다.

스포일러는 딱 한 개만 하기로 하자. 그는 결국 자유를 찾아간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딱 하나의 스포일러다.

 

딴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혁명에 대한 사심이다. 인간에게 파멸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다시 인간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하기도 했던 이 이중적 성격의 혁명이 지니는 가치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다. 고인 물은 썩기 때문에 혁명을 불가피하다, 라고 그들은 말해왔다. 물론 고인 물을 썩는다. 물의 자유로운 흐름은 모든 물의 생명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물의 생명력을 위해 또다른 것을 부정하고 해체하려하는 극단적 흐름을 강요해야한다는 것이 지금 까지 있어왔던 혁명이 지닌 한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책은 정치적 시선 혹은 역사적 시선으로 접근해보아도 좋은 요소를 포함한다. 어쩌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분야의 것들을 찾아내는 일도 소소한 재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정치와 역사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건재해온 연약하나 강인한 존재,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모든 생각이 집약되지 않을까도 싶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다소 교훈적인 분위기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차치하고 재미있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해 바라보는 혁명의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쇼생크탈출을 보는 듯도 하고, 안네의 일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맛깔스러운 대사처리에서 걸리는 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번역도, 속독에 힘을 더한다. 오랜만에 부담 없이 만족하며 읽은 책이다.



-삶의 상황이 우리 자신의 꿈을 추구하지 못하게 할 경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 꿈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p529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발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p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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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10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확실성을 온전히 껴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는 글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

월천예진 2020-12-11 07:34   좋아요 0 | URL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욱 그런것 같아요. 제가 사는 곳은 오늘도 미세먼지가 심하고 안개가 많네요. 어둡고 탁해요. 그래도 금요일이라 다행입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멈춤 - 바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마주하기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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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멈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로 두 번째 만남이었던 것 같다. 권태기라는 표현을 빌려와 하는 말로 책태기라는 말이 있더라. 어쩌면 내게도 책태기가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책이 잘 들어오지 않는 몇 개월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유유자작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문제도 있고해서 책을 통한 위로를 생각할만한 여유가 부족한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변명이지만 이 또한 현실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시리즈-멈춤을 며칠 들고 다녔다보다. 재미있는 듯, 혹은 살짝 몰입이 되지 않는 듯했지만 어쨌든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일랑은 조금이라도 채워가는 시간이지 않았을까도 싶다.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보자. 생존과 공존에서 강안이 펼쳐내는 이야기 ‘너와 나 그리고 우리’와, 대중과 문화에서 최은의 ‘스크린으로 부활한 천재들’, 안나미의 ‘조선의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허전한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문학창작 강의를 해왔으며 전업작가로 동화와 에세이를 쓰며 영화인문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통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는 강안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왔는가에 대한 이유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느낌이란 이렇게 오묘한 것인가. 누군가가 그랬듯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글은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강안은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영화를 통해 대중의 폭력성, 개인의 무력감, 집단의 히스테리가 만들어내는 공포, 살벌하게도 냉혹하기만한 개인주의, 물질만능 주의의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어두운 그늘 등등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저마다의 긍정의 요소인 희망을 노래하는 이상적인 존재라는 것을 재확인하며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는 것인가.

이를테면 ‘이 세상 누군가 울고 있다’(118p)와 같은 상황과 마주했을 때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울고 있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함에서부터 출발하는 인간 본연의 당위성을 상기하게끔 한다. 그러니까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인 선한 심성과 따뜻한 시선이 만들어내는 가볍지 않은 울림을 살짝 엿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강인의 이야기는 그런 배려가 담겨있다.

 

그런가하면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내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최은의 이야기 역시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인간이기에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갈 권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뜨겁게 피워내는 그들의 예술혼을 볼 때, 어찌보면 보통의 삶에서 터무니없이 날카롭게 상충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한 상황을 굴레라고 한다면 그 굴레는 자의적일 수도 있고 타의적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굴레에 갇혀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나오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카소의 여인들과 조각과 로댕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가 그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흑백사진으로 된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을 찾는다. 우수에 찬 듯한 깊은 눈매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무거워보이지만 오히려 한없이 가냘픈 그녀의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완벽하지 못했던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반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그녀의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는 그런 면면들만 보이는가싶다. 아니다 몇 가지가 더 있다.

한문학자인 안나미가 소개하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안나미는 조선의 한류를 소개하고 있었다. 물론 당대의 문화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만 분명하게도 당시 중국과 조선의 문화교류가 활발히 오고갔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될 듯하다. 매화꽃이 등장하고, 시가 등장하며, 문인 이정귀가 등장하고, 여기에 허균과 허날선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어우야담에 등장한다는 조선인어의 이야기, 다시 등장하는 풍운아 허균의 색다른 이력(도문대작-1611년 허균이 전국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하여 적은 책/네이버 )을 알아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늘날로 치면 백종원 정도의 격으로 이해가능할지 모르겠다.

 

그 외 책은 자연과 생존, 연극, 경제, 종교와 철학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성애와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좋은 주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런데 제출용 리포트가 아닌이상 이만큼만 하자. 속속들이 알고 싶은 호기심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말줄임표가 필요하지 않을까.

 

책태기를 걷고 있는 요즘 쓴다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시기가 왔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읽는 일이 힘들게 다가오기 시작하면 이 역시 사심이 가득차서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오늘은 날이 좋다. 좀 걷다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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