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인문학 수업 : 멈춤 - 바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마주하기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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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멈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로 두 번째 만남이었던 것 같다. 권태기라는 표현을 빌려와 하는 말로 책태기라는 말이 있더라. 어쩌면 내게도 책태기가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책이 잘 들어오지 않는 몇 개월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유유자작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문제도 있고해서 책을 통한 위로를 생각할만한 여유가 부족한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변명이지만 이 또한 현실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시리즈-멈춤을 며칠 들고 다녔다보다. 재미있는 듯, 혹은 살짝 몰입이 되지 않는 듯했지만 어쨌든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일랑은 조금이라도 채워가는 시간이지 않았을까도 싶다.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보자. 생존과 공존에서 강안이 펼쳐내는 이야기 ‘너와 나 그리고 우리’와, 대중과 문화에서 최은의 ‘스크린으로 부활한 천재들’, 안나미의 ‘조선의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허전한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문학창작 강의를 해왔으며 전업작가로 동화와 에세이를 쓰며 영화인문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통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는 강안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왔는가에 대한 이유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느낌이란 이렇게 오묘한 것인가. 누군가가 그랬듯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글은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강안은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영화를 통해 대중의 폭력성, 개인의 무력감, 집단의 히스테리가 만들어내는 공포, 살벌하게도 냉혹하기만한 개인주의, 물질만능 주의의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어두운 그늘 등등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저마다의 긍정의 요소인 희망을 노래하는 이상적인 존재라는 것을 재확인하며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는 것인가.

이를테면 ‘이 세상 누군가 울고 있다’(118p)와 같은 상황과 마주했을 때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울고 있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함에서부터 출발하는 인간 본연의 당위성을 상기하게끔 한다. 그러니까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인 선한 심성과 따뜻한 시선이 만들어내는 가볍지 않은 울림을 살짝 엿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강인의 이야기는 그런 배려가 담겨있다.

 

그런가하면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내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최은의 이야기 역시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인간이기에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갈 권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뜨겁게 피워내는 그들의 예술혼을 볼 때, 어찌보면 보통의 삶에서 터무니없이 날카롭게 상충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한 상황을 굴레라고 한다면 그 굴레는 자의적일 수도 있고 타의적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굴레에 갇혀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나오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카소의 여인들과 조각과 로댕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가 그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흑백사진으로 된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을 찾는다. 우수에 찬 듯한 깊은 눈매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무거워보이지만 오히려 한없이 가냘픈 그녀의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완벽하지 못했던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반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그녀의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는 그런 면면들만 보이는가싶다. 아니다 몇 가지가 더 있다.

한문학자인 안나미가 소개하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안나미는 조선의 한류를 소개하고 있었다. 물론 당대의 문화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만 분명하게도 당시 중국과 조선의 문화교류가 활발히 오고갔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될 듯하다. 매화꽃이 등장하고, 시가 등장하며, 문인 이정귀가 등장하고, 여기에 허균과 허날선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어우야담에 등장한다는 조선인어의 이야기, 다시 등장하는 풍운아 허균의 색다른 이력(도문대작-1611년 허균이 전국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하여 적은 책/네이버 )을 알아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늘날로 치면 백종원 정도의 격으로 이해가능할지 모르겠다.

 

그 외 책은 자연과 생존, 연극, 경제, 종교와 철학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성애와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좋은 주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런데 제출용 리포트가 아닌이상 이만큼만 하자. 속속들이 알고 싶은 호기심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말줄임표가 필요하지 않을까.

 

책태기를 걷고 있는 요즘 쓴다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시기가 왔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읽는 일이 힘들게 다가오기 시작하면 이 역시 사심이 가득차서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오늘은 날이 좋다. 좀 걷다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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