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뿐이다 - 주광첸 산문집
주광첸 지음, 이에스더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1222일이다. 2020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화요일이다. 아무래도 이 서평이 올해 마지막 서평이 되리라 생각한다. 올해는 부지런하게 다독하지 못한 한해였던 것 같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무언가 기분좋은 추억과 좋은 글을 남기고 싶은 건 보통 사람들이 갖는 소소한 욕심인가. 올해 마지막으로 읽고 싶었던 책은 중국의 노학자 주광첸의 산문집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뿐이다였다 그저 뭐랄까. 책 제목에 끌렸나보다.

나는 그를 모른다. 아니 몰랐다. 책을 읽고 나서도 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 보인다. 다만 이 노학자의 열정과 열의로 빛나는 충실한 삶에 부족하나마 외경심을 담아 보내고 싶어졌다. 그의 방대한 사상과 철학과 논리로 가득찬 드넓은 장에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어서 발이 저리면서도 즐거웠던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시작하는 표현으로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책은 읽기에 쉽지 않았다. 물론 개인차가 있는 문제이기도 하며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대한 차이일 수 있다. 또 번역과 편집의 문제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마호가니 빛이나 비로드 천을 기억하게 되는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같은 분위기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그런 수필을 기대했던가보다.

제목에 끌려서 어떤 분위기일 것이다, 라고 추측하고 첫 장을 열었다면 자세를 고쳐잡아야 할 것을 미리 귀띔해주고 싶어진다. 발이 저렸다는 표현은 그만큼 깊이감으로 난해함과 마주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즐거웠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건함과 함께 유연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학자 주광첸의 이야기 속에 잠시 머무를 수 있었다는 소소한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책에는 미학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미의 기준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 미학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많은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에 대한 답으로 주광첸은 하나하나 주제를 담아 자신의 이론과 사상을 여러 가지로 비교분석하는 방식을 택해 풀어가고 있다.

조금만 더 들어가보자.(아주 조금만 들어가야 한다. 많이 들어가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책은 미학을 기본으로 문학과 예술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대해 언급한다.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 교육, 사회학과 심리학, 자연철학과 과학, 정치(전체주의, 사회주의)와 특히 그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마르크스 이론과 예술의 연계성과 같이 저자가 평생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모든 사상과 이론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저자는 아는 게 많은 백과사전 같은 박학다식한 학자다. 이번 책은 작가이면서 동시에 학자인 주광첸이 일생을 통해 습득하고 흥미를 갖고 연구해온 모든 학문을, 미학이라는 한 가지의 주제 안에 풀어내고자 했던 그만의 혼이 담긴 노력이 돋보였던 책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딴은 그런 이점(장점)들을 바라보면서도 일정부분 우려하게 되는 부분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소회는 그렇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소견이다. 그의 책이 갖는 많은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글을 읽는 이들이 주광첸의 이야기를 쫒아가기에는 숨이 달리지는 않을까. 몰입함에 있어 약간의 어려움을 갖지 않을지 소심한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가지 어쩌면 그가 말하는 이론 체계를 갖춘 그만의 학문에 딴지 걸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갖는 약간의 반대의식들도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은 그렇다. 그의 학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어찌보면 이것은 그만의 세계이며 그만의 학문적 사상과 개념이 쌓아올린 거대한 성이다. 부분적으로는 그가 예로 들고 있는 모든 예시에 대해 다 공감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 또한 긍정적인 결과로 생각하려한다. 학자가 연구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일구어낸 다양한 사상은 언제나 보편성과 대중의 인식에 근거한 가치판단의 검열을(전문적이거나 혹은 비전문적인) 받기 나름이기도 하며, 이 또한 주광첸 역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중화사상과 함께 다소 그만의 자기주장이 강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크게 봤을 때 이토록 광범위하면서 동시에 섬세하게 자신의 주장을 풀어내는 작가의 열정과 전문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그만의 헌신과 노력은 잠시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책에는 중국의 옛 고전에서 발췌한 주옥같은 글들도 많이 실렸다. 이와 함께 중국이라는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각계의 많은 학자들의 이론을 가져와 서로 비교하면서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미학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제목에서 풍기는 여유롭고 한가한 분위기 안에 담진 안정감과는 다르게, 책은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논하기보다는 그가 살아내면서 일궈낸 학문과 철학을 쉽게 풀어내고자 했던 주광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이란 원래 삶과 자연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다. 만약 예술의 가장 높은 목표가 단지 삶과 자연을 따라 하는 것뿐이라면, 우리에게 이미 삶과 자연이 주어져 있는데 예술이 과연 필요한가? p12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바로 움직이고 살아 있는 느낌이며, 분투하여 성공해야만 얻는 기쁨과 위안이다. 세상이 완벽하다면 어떻게 성공의 기쁨과 위안을 맛볼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부족함이 있고 희망의 기회가 있고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 부족함이 있어서 부족함을 채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있는 상태가 곧 무언의 아름다움이다. p287

 

 

사족이다.

한해가 끝나가는 요즘이다. 예수의 탄생이 주는 겸허함도 따뜻함으로 데워진 사랑도 아쉬운 그렇게 유난히 춥고 유난히 조용하고 외로운 겨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여전히 기승이기도 하지만 시간은 유예를 주지 않는 듯 2020년도 끝나간다. 건강하게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모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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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23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한해 좋은 리뷰 감사했습니다. 월천예진님!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

월천예진 2020-12-23 13: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