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와 죽을 때 - 을지세계문학선 18
E.M.레마르크 지음 / 을지출판사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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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마스크를 쓰고 책을 읽은 건 처음인가 싶다. 아들이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나와서 묻는다. 왜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어색해진 나는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만히 웃어준다.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냄새는 줄곧 기관지 천식으로 골골거리는 나를 자극해왔다. 그 때문에라도 서둘러 완독을 해야했는데, 자꾸만 일들이 생기다보니 시간이 자꾸만 지나가고 있었던가보다. 읽기가 거의 끝나가는데 더 참지 못하고 오늘 아예 덴탈 마스크를 쓰고 책을 완독했던 것을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으려한다.

매캐한 먼지 냄새와 낡은 종이 냄새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까. 작년에 오래된 책을 좀 골라서 처분했었는데 이 책은 예외였던가보다. 1992년이면 언제적인지. 근 삼십년 전 출간된 책인데 용케도 내 집에 숨어 있던 책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신간으로 새롭게 출간된 책을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시작은 언제나 사담으로 시작하는 중이다. 지금도 이렇게....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자. 책은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전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을 전혀 읽어보지 못한 것도 아닌데, 레마르크의 소설은 처음인가 싶다. 강렬한 첫 인상은 뛰어난 묘사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인물의 심리묘사, 전쟁이라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해가는 작가의 필력에 나는 뭐랄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줄곧 빠져들곤 했었다. 폭탄을 맞고 갈갈이 찢긴 육신. 그것은 고귀한 생명체인 인간의 육체가 아닌 그냥 단순한 덩어리일뿐이고, 화염에 타버리고 그을린 고기 덩어리와 같은 것들로 묘사된다. 전쟁은 인간이 지닌 이성을 빼앗아가는가도 싶다. 이들에게 생명의 가치란 무엇일까. 전쟁의 잔인함과 함께 극한으로 치닫는 폭력 앞에서 무너져내리고 상실되어가는 인간 본연의 이성이라는 감정을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말이다. 이상하게도 레마르크의 소설을 읽으면서 묘하게 오래전 읽었던 소설 한 권을 떠올리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이라는 그 소설을 말이다. 깊은 여운과 울림으로 남아있는 그 소설이 자꾸만 기억이 나는 그 이유를 또 여러 번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센티해졌다. 각설하고 레마르크의 소설로 돌아와보자. 주인공 그레버는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병사였다. 최전방에서 기적처럼 선물 같은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가족들은 이미 떠나버리고 고향 마을은 폭격으로 인해 폐허로 변해버렸다. 절망 가운데서 작가는 주인공 그레버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만들어주는데 바로 사랑의 감정이다.

주인공 그레버가 겪어가는 육체적 혹은 내면의 변화는 소설에서 단순히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그레버를 통해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 더 나아가 특수한 상황에서조차 성장해가고 성숙해가는 인간 존재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종단에는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 살고자 하는 욕망과 희망의 근원이 바로 진솔한 사랑이었으니 말이다.

 

또 한가지 소설의 시점이 어쩌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봐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주인공 그레버는 히틀러가 이끌고 있는 독일군 병사이고 소련군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점에서 그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병사이기 이전 보통의 젊은이인 동시에, 잔인한 전쟁의 포효 속에서 살아남고 싶은 욕망을 끌어안고 하루하루 버텨내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렇다는 거다. 나는 늘 서평을 쓸 때마다 이 표현(그렇다는 거다)을 잘 쓰는가도 싶다. 할 말은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을 때 변명처럼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하니까. 어쨌든 소설은 빠른 전개와 인물과 상황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지막 엔딩에 있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작가의 깊은 뜻을 너무나 잘 이해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딴은 이 결말이기에 작품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한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소심한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최근에 출간된 책으로 레마르크의 소설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다시 구입하고, 새로 정리한 책꽂이에 꽂아두고 싶다는 것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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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4-15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쟁과 관련된 소설을 거의 읽어본적이 없었는데, 지난달에 이창래의 [생존자]를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뒤로 전쟁과 관련된 작품에 눈이 가기 시작하면서 [깊은강]이라는 작품도 알게 되고 이번주의 레마르크책 [서부 전선은 이상없다] 읽기 시작했는데...ㅎㅎ 월천예진님이 리뷰에서 언급하시니...반가웠어요. 깊은강이랑 사랑할때와 죽을때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리뷰 잘 읽었습니다.

월천예진 2021-04-15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깊은강이라서요. ^^;; 저도 알려주신 생존자와 서부전선 ~~~ 꼭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당선언 고전의 세계 리커버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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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글을 쓰는 걸 더 좋아했던가 보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강하게 밀고 있는 중이다. 이따금 나를 찾아오는 책 중에는 아름다운 책도 있고, 슬픈 책도 있으며, 가끔은 도대체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어떤 나락, 저 끝간데 없이 암울한 밑바닥으로 밀어버리는 그런 난해한 책들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내가 쓰는 그렇고 그런 글들은 (물론 거의 책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편안하게 쓰고 싶은 소심한 욕심을 우악스럽게 아니 아니다. 그 욕심일랑은 그냥 티나지 않게 슬그머니 살짝 올려놓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나보다.

 

미세먼지가 극성이긴한데 해가 참 좋다. 그리고 여러 번 선택을 바꾼 끝에 결정한 이 음악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당장 뭔가를 쓰고 싶다, 라는 생각에 허튼 바람을 마구 불어넣는데 한몫을 하는가도 싶다.

다 좋은데 책이 어렵다. . 왜 나는 이 책을 골랐을까. 나이가 들면 이해하기가 조금은 쉬울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포기할 수가 없다. 이유를 따지고 보자면 한번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또 한가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나는 이미 오래전 이 책을 읽다가 도망을 쳤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마 지금보다는 조금 더 어린 시절이었지 아마.

 

현대 사회와 정치에 문외한일 수는 있지만 뭐랄까, 세계사와 혹은 문학사에 등장하는 정치와 사상에 대한 호기심도 전무하지는 않았던가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한 공산당 선언의 전문을 읽는다고해서 흑백논리에 빠져버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알고 싶은 호기심은 여전한데 반해 이해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아쉬운 순간임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이제 기억나는 것들을 몇가지 적어보자.

 

책은 공산당선언과 공산주의의 원칙을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부연 설명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보인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및 해설이 그 시작이다. 오래전 기억을 끌어오자면 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표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웠던 기억이 있다. 이후 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었는데 이를테면 무조건 다 치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주목했던 부분은 사회주의를 더 작게 세부적으로 구분하여 구체화하는 부분이었다. 반동적 사회주의, 보수적 또는 부르주아 사회주의, 비판적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그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는 상업혁명(산업혁명을 포함한 의미로 이야기해보자)을 시작으로 공산주의의 시작을 거론한다. 산업혁명이 가져오게 되는 흑백논리 중 하나가 바로 공산주의라는 말이 되는 것일까. 그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부르주아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모든 산업은 기계의 출현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기능을 대체, 이전까지 수공업에 의존하던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손을 필요치 않게 되는 게 가장 큰 변화인 동시에 중요한 문제의 시작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책에서는 메뉴팩처, 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매뉴팩처라는 건 무슨 뜻일까.

네이버를 찾아보니 [자본주의 생산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성립한 과도적 경영양식인 공장제 수공업]이라 정의하고 있다. 매뉴팩처의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노동자의 환경을 더 어렵게 했었던가보다.

노동자가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여기서 산업사회가 가져오는 사회적 대립은 유산자로서 자본을 모으고 확장해가는 부류와 함께, 이들에게 종속된 상태에서 또 그들끼리 극한의 경쟁이라는 불합리한 상태로 전락해가는 무산자들의 등장을 막을 수가 없었다는 이론으로 정리 가능한 것인가?

 

유럽의 봉건 사회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이 사상이 왜 지금까지도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깊이 숨어들어 발현하게 되는걸까. 책을 읽다보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나라마다, 시대마다 차이를 두고 차이를 두면서 각각의 상황에 맞게 자리를 잡아가는지에 대해 이해가능하게 설명한다. 물론 이 이론들은 마르크스가 자신들의 이론에 반기를 드는 이들에게 항거하는 강한 주장과 논박이 그 근거에 입각해서 함께 피력하는 듯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늘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면화?의 과정을 피할 수가 없는 부분인데, 이 책은 좀 더 심각해질 것 같은 분위기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늘 생각하는 화두는 나는 과연 어느 부류인가, 에 대한 질문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쩌면 이미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해버렸는가, 라는 질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종래 하층의 중간 신분들, 소기업가들, 상인과 연금 생활자들, 수공업자들과 농부들, 이 모든 계급은 프롤레타리아 전락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소자본이 대규모 공업의 경영에 충분치 않아 대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패하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숙련성이 새로운 방식의 등장으로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프롤레타리아는 모든 계급의 주민들로 충원된다.- p25-26 부분인용

 

책에 담긴 마르크스의 주장은 사실 정확하게 현대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과 마주보고 있다고 쓰려던 참이다. 쉽게 말해서 그가 말한대로 변모해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이미 많은 것이 마르크스의 말처럼 변해왔다. 인용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극히 일부이지만 과거의 시선으로 바라본 미래의 모습은 정확해보인다. 그래서일까. 마르크스의 예상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많은 부분 찾아볼 수 있는 측면이 된지 이미 오래인 듯하다.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왜 그의 이론은 좀 더 강력하게 더 오래도록 유지되지 못했을까. 이토록 분석적인 동시에 그들 나름의 합리성과 논리성을 갖춘 완벽해보이는 이론이 왜 늘 반대파의 비판과 충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무언가 허점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완전하게 사라지지도 않은 것일까.

사실 책을 읽었지만 표현하기가 좀 어렵다. 잘 이해한게 맞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나는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어떤 한가지라도 허점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생각이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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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
한국역사인문교육원(미래학교) 지음 / 창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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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

-한 권으로 읽어보는 궁 이야기.

 

 

햇살은 영락없이 봄이다. 다만 황사와 미세먼지가 불어서 아쉽고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조금은 더 슬픈 시절이다. 그래도 햇살만큼은 넉넉하다. 34월을 시작으로 도시 근교 어느 지역쯤 봄바람에 취한 상춘객들로 인해 분주해질 무렵, 도심 한가운데서도 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고궁이 아닐까. 사실 궁이란 공간은 사계절 어느 시기에 찾아도 멋진 곳임에는 틀림없는 곳이긴하지만 말이다.

 

 

책은 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궁궐 그리고 궁궐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생각해보자. 궁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물론 왕과 왕비, 또는 왕세자 내지는 세자빈과 같은 왕족이 주류를 이뤄 생활했던 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궁이다. 그런데 책은 이들 이외에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궁녀와 내시들이 그들이다. 개인적으로 궁녀들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져왔다고 생각했지만, 환관이나 내시들에 대한 정보는 이번 책을 통해 더 새롭게 알게 된 것 같다. 내시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들의 생활과 정치적인 입지에서 보는 지위까지. 책에는 단순하지만은 않은 내시로서의 삶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다. 양자를 들이면서까지 스스로가 선택한 내시가문을 유지해갔던 그들의 이중적 선택과 그 선택의 가치를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까.

더불어 왕족을 곁에서 보필하는 자리라는 공통분모 차원에서 이들 궁녀와 내시를 비교했을 때도, 궁녀(상궁)보다는 내시가 더 높은 직위와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책은 왕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순서대로 치자면 왕이 제일이다. 그렇기는 한데 왕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이 알려진 부분이지 않은가. 누군가가 조선시대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절대 왕은 하지 않겠다던 우스갯소리가 기억난다. 잠도 못자고 하루종일 격무에 시달리며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보다, 가난하지만 마음 편한 평민의 삶을 택하고 싶다던 그니의 말은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허튼소리는 아닌 듯하다. 빽빽한 왕의 일과는 개의치 않으니 무소불위의 권력이 좋다,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당연 왕이 될 @@이다, 라는 말을 할 만하지 않을까.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사실 책은 궁과 관련해 사람의 이야기,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 조선의 건국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 유학사상에 근저를 이루고 있는 사상과 여기에서 파생된 예()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나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활용되었는지 각각의 부분별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길례(吉禮)는 대사, 중사, 소사 등의 각종 제사를 말하고, 가례(嘉禮)는 국왕의 즉위, 책봉, 관례 국혼, 진연 등의 경축행사이며, 빈례(賓禮)는 사대교린 외교, 외국 사신 접대이고, (이하 생략)” p55

 

 

책은 조선의 궁에서 행해졌던 모든 예식이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책은 국조오례의 편찬과 관련된 인물로 신숙주와 정척을 소개한다. 계유정난 같은 시대적 사건과 함께 늘 거론되던, 말 많고 탈 많은 인물 신숙주가 사실은 조선조 초기 역사에서 꽤 중요한 임무를 완성했다는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아이러니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번 책은 여러 명의 저자가 궁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잡아 저술한 책이다. 어느정도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중복되는 내용이 없지 않다. 또한 조선 즉 우리의 역사가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정치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는 한계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부분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해두자.

 

 

궁에서 시작되는 삶. 그리고 그 삶을 영위하는 순간들. 마지막 죽음(왕릉, 종묘)에 대한 이야기까지 책은 다양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딴은 궁과 함께했던 모든 것들의 처음과 마무리를 보여주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각각의 내용마다 사진자료를 싣고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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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각본집 - 용기를 내는 게 당연한 나이
임선애 지음 / 소시민워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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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그래서 아름답다.

 

 

영화 69세의 각본집이다. 내게는 각본집이라는 표현보다 극본집 내지는 희곡집이란 표현이 더 익숙한듯하다. 어쨌든 다 비슷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대략 두 가지 정도다. 우선은 각본집에 대한 이야기와,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나눠봐야 할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이 영화를 직접 보지 못했다. 그렇긴한데 책의 구성상 각본집과 더불어 영화 속 장면과 스토리보드까지 곁들여 싣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영화를 직접 보지 않았다고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이 작품은 임선애라는 여성에 의해 먼저 글로 숨을 쉬기 시작했고, 영화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된 작품이다. 그녀는 감독이자 작가로 자신이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읽으면서 했던 생각들을 정리해보자. 우선 쳐지는 감 없이 명료하면서 동시에 속도감이 느껴지는 빠른 스토리의 흐름이, 개인적으로는 강한 흡입력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각본집이 서사와 산문 위주의 소설과는 다른 분야이고, 그런 까닭에 서로 다른 형식에서 나오는 나름의 독특한 메리트가 있음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차치하고 읽는다고해도, 이번 각본집은 자칫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범주까지 객관적 시선이 오롯하게 잘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가 싶다. 때문에 인물의 심리묘사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감정선은 질척이지 않으면서도 진지하다. 더불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주제와의 연결성과 강조점은 과하지 않으면서 허투루 보이지 않게 다가온다.

 

작품은 젊은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69세의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실 이 작품은 여성과 성폭행이라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이야기로 우리의 시선을 가장 먼저 붙잡는가 싶다. 그만큼 무거운 주제와 소재를 선택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가하면 조금 더 나아가 작품이 시사하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사람들의 의해 고착화된 편견과 사회적 인식과의 과감한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인공 효정은 성폭행을 당한 것을 숨기지 않고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신분으로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그녀에게 쏟아지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치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오해와 불편한 의심을 받기도 하고, 몸 조심을 하지 그랬냐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 상처받기도 한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 역시 고소인(피해자)에게 유리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를 더 생각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법조계의 판단과 편견과 모순 속에서,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 효정의 모습은 사회적 약자의 어두운 민낯을 보는 듯 씁쓸함을 자아낸다.

고형사와 나누는 대화 중 젊은 여자였으면 그 사람이 구속이 됐을까요....?” 라는 효정의 대사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젊다는 것과 나이 든다는 것이 무슨 기준이 되는지. 나이가 여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지.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각설하고 주인공 효정의 마지막 결정은 무척이나 건강?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게 결론이다.

 

이 작품에 대한 사족 아닌 사족이라고 한다면 효정과 동거인으로 등장하는 동인의 주변에서 등장하는 세대간의 갈등을 안팎으로 깊이 깔고 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세대간의 갈등은 기본으로 본다고해도 노령화 시대, 여성 노인 인구의 성폭력 피해 증가에 대한 사회적 이슈라든지 그런 부분을 가져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은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하나의 작품이 한가지 이야기로만 갈 수는 없으니 단단한 뼈대 위에 근육도 붙이고, 인대도 붙이고, 피부도 올리는게 정석이다. 작품에서는 각각의 인물이 그려내는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가족의 이야기가 눈에 보인다. 이에 대해 해결책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등장 인물의 선택에 맡기는 듯하다.

 

다만, 가해자로 등장하는 이중호와 이 인물을 둘러싼 제 3의 구성원들의 선택은 좀 묘하다. 이 또한 인물들의 선택에 맡기는 게 정답이기는 한데, 그 결말이 사뭇 의아스럽고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제 얘기가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보는 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p119

 

마지막으로 스크린이 아닌 책으로, 책 속에 사진으로, 만나는 효정을 연기한 배우 예수정에 대해 생각한다. 먹먹할 정도로 깊은 그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삶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눈빛과 그녀의 표정이, 효정의 이야기를 대신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예수정)으로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듯하다는 말을 남긴다.

 

삶은 매 순간 진지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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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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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이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잠시 인턴으로 일하던 곳에서 옆자리에 있던 나이든 선배가 챙겨준 책일 듯싶다. 당시 작가 김연수는 막 떠오르는 신인 작가였고, 나는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일부로 내게 챙겨준 책이었는데도 참 오래도록 묵혔다. 초판인쇄가 2001년이니 꼬박 이십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서야 게으른 내가 이 책을 읽는다.

 

한때 책을 좋아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던 시기가 있었을 때, 그때 꾿빠이, 이상을 보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다른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갈 수 있었을까. 마흔을 넘어 다가올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읽는 이 소설은, 사실 네게 적잖이 묵직한 무게감을 던져준다. 나이가 들면서 복잡한 것보다는 담백한 것들에 더 눈길이 머물고, 치열한 열정보다는 따뜻한 온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글을 선호하게 되는 변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데드마스크’. ‘잃어버린 꽃’. ‘새’. 라는 제목을 각각 달았다. 첫 번째 이야기 데드마스크는 이상이 죽었을 때 곁에 있던 세 사람 중 한명이 죽음 진정의 이상의 얼굴을 떴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이야기는 허구다. 그런데 읽다보면 실제로 데드마스크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어디까지나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김해경, 아니 이상의 죽음을 상징하는 데드마스크는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이 마스크를 뜬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소설은 데드마스크와 이상과 함께 했던 주변 인물. 그리고 왜곡된 미스테리의 진위여부를 쫒아 스토리를 구성한다.

사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데드마스크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이 소설이 이상을 중심으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지만, 이상의 삶과 죽음 이후 다시 분분하게 모여들었다가 흩어지는 인물들, 다시 말해서 1930년대 한국 문학계와 미술계의 중심 인물들에 대한 사료와 추론에 대한 정보들이었던 것 같다. 마치 1930년대 한국 문학사와 미술사 수업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두 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꽃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욱 힘을 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말이다. 초반에는 어리석게도 자꾸만 첫 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기자와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화자가 동일 인물이 아닐까, 라는 혼자만의 착각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작가 김연수는 이상을 동경하고, 이상의 삶과 이상의 문학을 추구하고, 모방하며 이상과 닮아가고 싶어하던 어느 나이든 사내를 창조해낸다. 그리고 이 가상의 인물로 하여금 이상의 일본행이 담고 있는 의미를 밝혀내는 형식을 만든다. 여기에서 질문들이 이어진다. 이 질문은 이 가상의 인물 서혁민의 질문인 동시에, 책을 읽는 독자의 질문일 수고, 책을 쓴 작가의 질문일 수고 있지 않을까. 각설하고 잃어버린 꽃에서는 조선이 아닌 일본에서의 이상의 모습과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김해경은 이상이고, 이상은 김해경이다. 동일인 동시에 동일하지 않다. 책에는 가상의 이상이, 진짜인 김해경과 보이지 않는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진짜 김해경이 가짜 이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은 @@ 이다. 그러나 결국 진짜 김해경은 성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소설은 이어지고 있다. 아니다. 어쩌면 이 귀결 자체가 그의 성공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걸 이야기하면 너무 진부하니까.

두 번째 이야기와 세 번째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진실에 대한 생각들이다. 진짜와 가짜. 이상의 유작에 대해 진위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때, 남겨진 숙제는 결국 우리 스스로가 내릴 수밖에 없는 가치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쓰고보니 어렵다. 김연수의 책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책은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르뽀 양식을 담은 소설인 듯하면서도 요즘 같아서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상의 문학, 그의 사상과 행적,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이야기까지 책은 많은 정보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책을 쓰기 위해 준비했던 과정에서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상을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을 읽으면서 이상에 대해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남과 북이 갈라진 어수선한 시기에, 글과 그림을 사랑했던 많은 예술가들의 선택과 그 삶의 여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하다.

아. 그런데 이상의 시처럼, 김연수의 소설 ‘꾿빠이, 이상’ 역시 조금은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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