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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 ㅣ 고전의 세계 리커버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평점 :
공산당 선언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글을 쓰는 걸 더 좋아했던가 보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강하게 밀고 있는 중이다. 이따금 나를 찾아오는 책 중에는 아름다운 책도 있고, 슬픈 책도 있으며, 가끔은 도대체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어떤 나락, 저 끝간데 없이 암울한 밑바닥으로 밀어버리는 그런 난해한 책들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내가 쓰는 그렇고 그런 글들은 (물론 거의 책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편안하게 쓰고 싶은 소심한 욕심을 우악스럽게 아니 아니다. 그 욕심일랑은 그냥 티나지 않게 슬그머니 살짝 올려놓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나보다.
미세먼지가 극성이긴한데 해가 참 좋다. 그리고 여러 번 선택을 바꾼 끝에 결정한 이 음악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당장 뭔가를 쓰고 싶다, 라는 생각에 허튼 바람을 마구 불어넣는데 한몫을 하는가도 싶다.
다 좋은데 책이 어렵다. 아. 왜 나는 이 책을 골랐을까. 나이가 들면 이해하기가 조금은 쉬울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포기할 수가 없다. 이유를 따지고 보자면 한번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또 한가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나는 이미 오래전 이 책을 읽다가 도망을 쳤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마 지금보다는 조금 더 어린 시절이었지 아마.
현대 사회와 정치에 문외한일 수는 있지만 뭐랄까, 세계사와 혹은 문학사에 등장하는 정치와 사상에 대한 호기심도 전무하지는 않았던가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한 공산당 선언의 전문을 읽는다고해서 흑백논리에 빠져버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알고 싶은 호기심은 여전한데 반해 이해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아쉬운 순간임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이제 기억나는 것들을 몇가지 적어보자.
책은 공산당선언과 공산주의의 원칙을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부연 설명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보인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및 해설이 그 시작이다. 오래전 기억을 끌어오자면 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표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웠던 기억이 있다. 이후 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었는데 이를테면 무조건 다 치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주목했던 부분은 사회주의를 더 작게 세부적으로 구분하여 구체화하는 부분이었다. 반동적 사회주의, 보수적 또는 부르주아 사회주의, 비판적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그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는 상업혁명(산업혁명을 포함한 의미로 이야기해보자)을 시작으로 공산주의의 시작을 거론한다. 산업혁명이 가져오게 되는 흑백논리 중 하나가 바로 공산주의라는 말이 되는 것일까. 그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부르주아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모든 산업은 기계의 출현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기능을 대체, 이전까지 수공업에 의존하던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손을 필요치 않게 되는 게 가장 큰 변화인 동시에 중요한 문제의 시작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책에서는 메뉴팩처, 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매뉴팩처라는 건 무슨 뜻일까.
네이버를 찾아보니 [자본주의 생산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성립한 과도적 경영양식인 공장제 수공업]이라 정의하고 있다. 매뉴팩처의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노동자의 환경을 더 어렵게 했었던가보다.
노동자가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여기서 산업사회가 가져오는 사회적 대립은 유산자로서 자본을 모으고 확장해가는 부류와 함께, 이들에게 종속된 상태에서 또 그들끼리 극한의 경쟁이라는 불합리한 상태로 전락해가는 무산자들의 등장을 막을 수가 없었다는 이론으로 정리 가능한 것인가?
유럽의 봉건 사회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이 사상이 왜 지금까지도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깊이 숨어들어 발현하게 되는걸까. 책을 읽다보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나라마다, 시대마다 차이를 두고 차이를 두면서 각각의 상황에 맞게 자리를 잡아가는지에 대해 이해가능하게 설명한다. 물론 이 이론들은 마르크스가 자신들의 이론에 반기를 드는 이들에게 항거하는 강한 주장과 논박이 그 근거에 입각해서 함께 피력하는 듯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늘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면화?의 과정을 피할 수가 없는 부분인데, 이 책은 좀 더 심각해질 것 같은 분위기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늘 생각하는 화두는 나는 과연 어느 부류인가, 에 대한 질문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쩌면 이미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해버렸는가, 라는 질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종래 하층의 중간 신분들, 소기업가들, 상인과 연금 생활자들, 수공업자들과 농부들, 이 모든 계급은 프롤레타리아 전락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소자본이 대규모 공업의 경영에 충분치 않아 대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패하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숙련성이 새로운 방식의 등장으로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프롤레타리아는 모든 계급의 주민들로 충원된다.- p25-26 부분인용
책에 담긴 마르크스의 주장은 사실 정확하게 현대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과 마주보고 있다고 쓰려던 참이다. 쉽게 말해서 그가 말한대로 변모해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이미 많은 것이 마르크스의 말처럼 변해왔다. 인용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극히 일부이지만 과거의 시선으로 바라본 미래의 모습은 정확해보인다. 그래서일까. 마르크스의 예상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많은 부분 찾아볼 수 있는 측면이 된지 이미 오래인 듯하다.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왜 그의 이론은 좀 더 강력하게 더 오래도록 유지되지 못했을까. 이토록 분석적인 동시에 그들 나름의 합리성과 논리성을 갖춘 완벽해보이는 이론이 왜 늘 반대파의 비판과 충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무언가 허점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완전하게 사라지지도 않은 것일까.
사실 책을 읽었지만 표현하기가 좀 어렵다. 잘 이해한게 맞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나는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어떤 한가지라도 허점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생각이 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