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꾿빠이, 이상

 

이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잠시 인턴으로 일하던 곳에서 옆자리에 있던 나이든 선배가 챙겨준 책일 듯싶다. 당시 작가 김연수는 막 떠오르는 신인 작가였고, 나는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일부로 내게 챙겨준 책이었는데도 참 오래도록 묵혔다. 초판인쇄가 2001년이니 꼬박 이십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서야 게으른 내가 이 책을 읽는다.

 

한때 책을 좋아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던 시기가 있었을 때, 그때 꾿빠이, 이상을 보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다른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갈 수 있었을까. 마흔을 넘어 다가올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읽는 이 소설은, 사실 네게 적잖이 묵직한 무게감을 던져준다. 나이가 들면서 복잡한 것보다는 담백한 것들에 더 눈길이 머물고, 치열한 열정보다는 따뜻한 온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글을 선호하게 되는 변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데드마스크’. ‘잃어버린 꽃’. ‘새’. 라는 제목을 각각 달았다. 첫 번째 이야기 데드마스크는 이상이 죽었을 때 곁에 있던 세 사람 중 한명이 죽음 진정의 이상의 얼굴을 떴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이야기는 허구다. 그런데 읽다보면 실제로 데드마스크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어디까지나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김해경, 아니 이상의 죽음을 상징하는 데드마스크는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이 마스크를 뜬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소설은 데드마스크와 이상과 함께 했던 주변 인물. 그리고 왜곡된 미스테리의 진위여부를 쫒아 스토리를 구성한다.

사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데드마스크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이 소설이 이상을 중심으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지만, 이상의 삶과 죽음 이후 다시 분분하게 모여들었다가 흩어지는 인물들, 다시 말해서 1930년대 한국 문학계와 미술계의 중심 인물들에 대한 사료와 추론에 대한 정보들이었던 것 같다. 마치 1930년대 한국 문학사와 미술사 수업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두 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꽃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욱 힘을 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말이다. 초반에는 어리석게도 자꾸만 첫 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기자와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화자가 동일 인물이 아닐까, 라는 혼자만의 착각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작가 김연수는 이상을 동경하고, 이상의 삶과 이상의 문학을 추구하고, 모방하며 이상과 닮아가고 싶어하던 어느 나이든 사내를 창조해낸다. 그리고 이 가상의 인물로 하여금 이상의 일본행이 담고 있는 의미를 밝혀내는 형식을 만든다. 여기에서 질문들이 이어진다. 이 질문은 이 가상의 인물 서혁민의 질문인 동시에, 책을 읽는 독자의 질문일 수고, 책을 쓴 작가의 질문일 수고 있지 않을까. 각설하고 잃어버린 꽃에서는 조선이 아닌 일본에서의 이상의 모습과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김해경은 이상이고, 이상은 김해경이다. 동일인 동시에 동일하지 않다. 책에는 가상의 이상이, 진짜인 김해경과 보이지 않는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진짜 김해경이 가짜 이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은 @@ 이다. 그러나 결국 진짜 김해경은 성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소설은 이어지고 있다. 아니다. 어쩌면 이 귀결 자체가 그의 성공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걸 이야기하면 너무 진부하니까.

두 번째 이야기와 세 번째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진실에 대한 생각들이다. 진짜와 가짜. 이상의 유작에 대해 진위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때, 남겨진 숙제는 결국 우리 스스로가 내릴 수밖에 없는 가치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쓰고보니 어렵다. 김연수의 책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책은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르뽀 양식을 담은 소설인 듯하면서도 요즘 같아서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상의 문학, 그의 사상과 행적,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이야기까지 책은 많은 정보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책을 쓰기 위해 준비했던 과정에서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상을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을 읽으면서 이상에 대해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남과 북이 갈라진 어수선한 시기에, 글과 그림을 사랑했던 많은 예술가들의 선택과 그 삶의 여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하다.

아. 그런데 이상의 시처럼, 김연수의 소설 ‘꾿빠이, 이상’ 역시 조금은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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