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 인간의 잔혹함으로 지옥을 만든 소설
빅토르 위고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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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이다. 장 발장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한데, 사실 온전하게 정독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가보다. 책 표지가 무척이나 익숙하다. 어디에서 한번은 보았던 것 같은 그림이다. 남루한 옷가지를 걸친 채 자기 키보다도 더 큰 비를 들고, 맨발로 물이 들어찬 거리를 쓸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검은 펜촉을 사용해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만 완성되어 있다. 이 어린 아이는 누구일까?

 


장 발장은 누구나 익숙한 이름이다. 그는 배가 고파서, 굶주리고 있는 어린 조카들에게 나누어줄 빵을 훔치다가 잡혀 감옥으로 가게 된다. 책은 장 발장이라는 사람의 가족사와 전체적인 배경을 서두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의 결과였던 ‘빵을 훔치는 도둑질’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아닌, 장 발장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소설이 장 발장이라는 인물에서 국한되는 게 아닌, 장 발장과 함께 주변 인물과 상황으로까지 이어지는 폭넓은 시점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장 발장 그는 왜 자꾸 감옥에서 탈출하려 했던 것일까.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가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을 실행으로 옮길 때마다 그의 형벌은 무거워졌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그저 탈옥수였고, 범죄자였으며 전과자로서 죄인의 삶으로 굳혀가려 했을까.

 


사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미리엘 신부(주교)는 상징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기본적인 상념 안에서 볼 때, 신부는 단지 종교적인 상황을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도 온전한 선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신부가 선이라면 장 발장은 악이라는 입장에서 서게 되는 구조다.

신부가 장 발장에게 보여주었던 선은, 악의 이미지를 갖고 살아가는 한 인간을 변화시킨다.. 장 발장이 훔친 물건과 신부가 더 가져가라고 내주었던 은촛대는 이를테면 선의 상징이며 나아가서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신의 축복인 셈이다. 그리고 그 순간 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장 발장이다.

 


“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미 악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오. 선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영혼에 대해 내가 값을 치렀어요. 나는 당신의 영혼을 어두운 생각과 절망에서 구출하여 하느님께 바치려 합니다.” -P61

 


이후의 이야기는 사실 잘 몰랐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코제트. 어린 소녀는 책 표지를 장식하는 불쌍한 소녀의 이야기는 읽는 동안 마음을 다급하게 몰아가곤 했다. 코제트의 엄마 팡틴의 이야기와 함께, 장 발장이라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 인물 샹마티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죄와 벌’ 과 ‘부활’을 떠올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아무런 죄 없는 가려한 인물 쏘냐의 삶과, 카튜사가 재판석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을 떠올렸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어린 코제트를 맡아 주기로 한 부부는 악을 상징하는 두 번째 이미지다. 이들 부부와 가족은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극한으로 달려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교활하고 간교하며, 기회주의자 사기꾼의 이미지로 더욱 강조된다. 반면에 장 발장은 코제트와 얽힌 이들 악의 이미지와 지속적으로 대응한다.

 


작품 안에서 선과 악의 대립에서 벗어나 살짝 외로 틀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은 프랑스가 떠안아야만했던 시대적, 정치적 격동의 시기가 아닐까싶다. 사실 장 발장이라는 소설 안에서 바리케이트가 난무하는 정부군과 반란군과의 대립이라는 소재는 선과 악의 대립과 인간성이라는 커다란 맥락에서 볼 때 조금 성격이 다른?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가 다분하게 들어간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견이기도 하다만 말이다.

 


이제 다시 사설이다. 열 네 살. 중학생 딸과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아이는 성악설을 주장했었다. 반면에 나는 끝까지 성선설을 주장했고 꼭 그래야만 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악한 이들은 아이의 주장처럼 성악설에 들어맞는 이야기이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선함을 품고 태어났으며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내 믿음은 소설 속에서도 빛을 내주지 않았던가.

장 발장도 그를 쫒는 자베르 형사도, 그리고 작은 소년 가브로슈도 어찌보면 신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선함을 대변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고전을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라고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책.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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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와이프 - 어느 날 나는 사라졌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에게서
킴벌리 벨 지음, 최영열 옮김 / 위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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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와이프

 


처음에는 그랬다. 그녀가 그 여자였을거라고 생각했다.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나려는 여자. 베스가 그 여자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 역시 하나의 트릭이었을까.

이번 책은 킴벌리 벨의 소설 디어 와이프. 소설은 가해자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한 소설이다. 가해자인 남편의 시각, 피해자인 아내의 시각. 그리고 주변 인물로 아내의 쌍둥이 언니, 사건을 맡은 경찰 그리고 덧붙이자면 새로운 곳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 조금 등장한다.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아내(사빈)는 남편(제프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기간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이름을 바꾸고, 사용 중이던 핸드폰을 버리고, 그나마 바꾼 핸드폰마저 흔적을 은닉하려 한다. 돈은 무조건 흔적이 남지 않는 현금으로만 쓰고,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바꿔간다. 그렇게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의 고군분투 과정이 이어진다. 그녀의 가상 이름은 베스 머피였다. 금발로 염색을 하고 남편이 좋아하던 긴 머리를 짧게 잘라내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실은 늘 불안에 떨며 악몽에 시달리는 그녀다.

아내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남편 제프리와 그런 제부를 증오하는 쌍둥이 언니의 대립각이, 어찌보면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트릭에 큰 축을 이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반전이라는 단어를 말하기 전까지 말이다.

 


한편 경찰로 등장하는 마커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소설의 전반과 후반에 따라 양상이 많이 달라진다. 생각해보면 사건 해결을 위한 마커스 형사의 집요한 접근이 작가의 트릭에 믿음을 주기도 하지만, 허점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마커스가 성급하게 혼자만의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이미지도 그렇고, 또한가지 사건을 해결해가는 인물을 지나치게 중심 인물처럼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갖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개연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이 끝나갈 때까지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마커스를 계속 등장시키는 작가의 의도가 의심스럽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나는 범인 추종에 실패했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트릭에 결국은 헤어나지 못한 순간이다. 사빈이 살해된 채 시체로 발견되고, 그 방송을 멀리서 접하게 되는 베스. 그리고 마지막까지 범인을 쫒는 마커스의 독백 부분에서 갑자기 튕겨나오는 거친 욕설 부분에서 소설은 급반전의 물살을 타게 된다.

 


이제는 소설의 마지막부분을 좀 생각해보자. 주인공 베스는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가해자를 유인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단순히 가해자의 사과를 받기 위해서였을까?만을 생각하니 갑자기 소설이 너무 가벼워보일 것만 같다. 아니다. 작가는 좀 더 의미 있는 마무리를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자리에 모아두었는지도 모른다. 잔인할 수도 있어보이는 이 장면에서 우리의 주인공 베스는 누구보다도 용감했다는 말을 적어보려 한다.

도망만이 아닌 당당하게 맞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 인물의 심리적 변화에 조금은 더 진중한 시선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개인적인 사담이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세간의 평이 있어서 말이다. 세간의 평가 중 현대인의 결혼생활에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띈다. 문득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폭력의 장면들이 흘러간다. 머리채를 잡혀 끌려다니고, 손가락이 부러지고, 주먹으로든, 손등으로든, 손바닥으로든 가격을 당하고, 사사건건 언어 폭력에 시달리고, 위협당하는 삶이 그저 그런 식의 현대인의 결혼생활이라는 언어적 표현으로 대체 가능한 걸까? 라는 시비를 붙이고 싶은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더란 말이다. 어쨌든 세간의 평가 중에는 괜찮은 것도, 괜찮지 않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결론이다. 작가적 시점이 아닌 인물의 시점으로 봤을 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가운데 스릴러도 역시 빛이 났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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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그녀의 마지막 여름 - 코네티컷 살인 사건의 비밀
루앤 라이스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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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그녀의 마지막 여름

  


새벽 세시까지 책을 잡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범인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겠지. 작가 루앤 라이스의 장편소설 ‘완벽한 그녀의 마지막 여름’은 제목처럼 더운 여름밤을 잘 견디게 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새벽까지 책을 읽는다는 건 십년 전만큼 익숙한 패턴이 아니다. 그러나 범인이 누구일까? 라는 호기심과 의문은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포기할 수 없는 궁금증인가보다.


 

비교적 부유한 마을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어느 미술관을 둘러싸고, 미술관과 관계된 한 가족에게 펼쳐지는 사건은 처음부터 트릭에 가까운 설정이었다. 과거에 어느 시점에 엄마와 두 딸이 괴한에 의해 지하실에 감금되었던 사건이 남편이자 아버지의 교사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설정은 사실 소설의 전개에 대한 작가의 의도였다. 이 트릭에 깊이 몰입하면 끝까지 그것만 생각하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될 것도 같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책은 독자들이 사고를 확장시켜 펼쳐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시한다.

 


등장하는 인물로는 베스와 케이트(자매) 와 그녀들의 친구들인 룰루와 스코티, 경찰인 코너와 그의 형 톰, 그리고 주변인물들이다. 소설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단순히 부유하고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겨진 가족사 같은 것일까?

소설은 베스의 죽음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임신한 몸으로 두개골이 부서지고 교살된 채 성폭행이 연상되는 모습으로 발견된 베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는 베스의 죽음이 과거 그녀들과 엄마의 지하실 감금사건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설정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고착화시키는데 성공하는 듯하다. 크게 봤을 때는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사랑과 배신 그리고 불륜이라는 요소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동성애가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과 우정이 불러오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이 질투와 분노가 등장한다는 데에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작가와 함께 두뇌싸움을 하기 위해는 말이다.


 

사실 진짜 범인이 등장하면서부터 눈에 띄게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불안한 심리. 그 안에서 격동적으로 몰아가는 분노와 피해의식의 망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여기에서 범인을 언급하면 고약한 스포일러가 되는 것이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러워진다.

책을 읽으면서 범인을 예측했었을까. 단지 의심은 갔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라는 안일함으로 인해 범인을 찾지는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설정 내지는 과정들을 두고 무슨 말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대부분의 범죄에 있어 범인이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은 사실 높은 확률로 적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도 같은데 말이다. 따지고보면 작가는 그녀의 처음 의도를 너무 과하게 밀어붙이고 있었기에, 한편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다른 방향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물마다 포커스를 맞추고 서술해가는 방식이나, 죽은 베스가 유령의 존재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면 등은 지루하지 않는 분위기를 선사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마무리가 좀 아쉬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범인의 살해 동기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동기부여와 인과관계가 장편소설치고는 조금 허술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까닭은, 어디까지나 생각하기 좋아해서 잡생각이 많은 그저 그런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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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8-20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까지 읽으셨다니..ㅎㅎ 궁금해지네요. 요즘에는 범인이 누구인지..너무 궁금해 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쓰는 사람, 이은정 -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
이은정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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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이은정

-이은정 작가의 건투를 빈다.

 


 

책 표지에 실린 ‘문학, 목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 라는 표현이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정말 많이도 들었던 말이 아닌가. 그럼에도 여전히 무겁고 진중하게 다가온다.

작가 이은정은 역시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문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새롭게 알게 되어서 내심 반가워하는 중이다.

그녀는 중년이라는 표현을 자주 언급하고 있었다. 사담이지만 나도 중년언저리 어디쯤에 있으니 어쩌면 동년배일 수도 있겠다싶다. 그게 뭐가 중요한 가. 그래도 그냥 반갑다.

 


책은 시골로 돌아가 혼자 생활하는 작가 이은정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치스러움 하나 없이 소박하고, 거추장스러운 겉치레도 하나 없다. 그래서 더 친근하다. 자신의 삶의 모습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작가 이은정에서 머물지 않고 사람 이은정이라는 존재감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하는 듯하다.

 


결국 문학은 사람의 이야기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기는 하지만 기실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장르라는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인간미가 느껴지고 솔직하게 다가서는 그런 글, 그런 문학이 가장 좋은 문학이라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은정의 이야기는 봄날 흐드러지게 핀 만개한 꽃같이 오롯한 문학으로, 또 천천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하기만 한 그녀의 이야기가 자주 나를 달뜨게 하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었다. 도대체 왜였을까. 나는 왜 혼자 달뜬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는 지금까지 그녀가 안고 살아온 상처와 눈물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꼬깃꼬깃 접어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가 덤덤한 고백처럼 펼쳐지고 이웃집 고집불통 할머니의 이야기, 군고마를 팔던 아저씨와의 흐뭇한 교감, 손을 흔들어주는 이웃의 아이들, 첫사랑의 상처와 극복의 과정,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까지. 이야기 속에는 진솔한 그녀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었다. 그녀가 그려가는 삶의 모습은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잔잔하고 따뜻하다.

 


생각해보면 작가 이은정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고 보통 사람들의 사는 모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그녀는 강하다. 사실은 여린 듯 하면서도 강하다. 삶이, 그녀의 선택이, 그녀를 더욱 강인하게 이끌어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여림과 강인함의 조화를 잘 알고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다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순간의 과정들을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성숙’이라고 불러보고 싶어진다.

어쩌면 말이다. 딴은 모든 존재란 끊임없이 성장과 성숙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고되고 거친 삶의 여로에서 흔들리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의 바람대로 글을 쓰고, 문학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싶어진다. 쓰는 사람, 이은정 작가의 건투를 빈다.

 


-

생각해보면 외로움이나 불행의 근원은 주체가 나여야 한다는 문제에서 발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가 아니라 ‘너’가 되어도 충분히 행복할, 부르고 불리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다. 나를 불러주는 사림이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내가 부를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축복이라는 걸 기억하며 그리움을 모은다. 목청을 가다듬는다.

p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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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이주형 지음 / Storehouse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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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요즘은 거실 바닥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뱅이책상을 끼고 책을 읽는다. 거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연결시켜 놓은 결과인 것 같기는 한데 나름 장단점이 있다.

시작부터 조용히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바닥에 앉은 자세로 너무 오래 버티지는 말자는 것. 고관절과 점액낭염을 걱정해야 할 일들이 생기기도 하더라. 그래서 어제부터 아들 방을 빌려 책도 보고 끄적거리는 중이다.


 

이주형의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책은 에세이다. 평범하면서도 어쩐지 친근하게 다가선다. 한때는 소설만 눈에 들어오고, 또 한 시절에는 시집만 들어오더니, 이도저도 아닌 어느 시기에는 그저 인문학만 들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괜스레 에세이만 읽고 싶어진다. 무언가 위로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일까.


 

책에는 짧지만 여운이 긴 이야기들이 실렸다. 굳이 평범한 일상의 에세이를 읽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쉽게는 그저 위로받고 싶은 속 좁은 심리를 운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과 답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내가 견디고 버텨내야 하는 일상의 모습들이, 비겁하게 오로지 내게만 비수를 들고 들이대는 것만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다소 자의적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안도감이 들고 또 공감대가 생겨난다. 사는 게 뭐 벌건가. 다 거기서 거기지.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50을 넘긴 중년의 삶을 살아간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쓸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주지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그의 중학생 아들이, 택배기사가, 나이드신 아버지가, 후배와 일면식 없는 젊은이와 울고 있는 여인도 등장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작가 자신이 등장한다.

한편으로 그가 마주하는 상황은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어느 순간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와 오버랩 된다.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가 아직 아물지 않은 내 상처를 건드린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은 작가의 토닥거림처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흘러갈 일들이었을 뿐이었을까. 그랬던가 보다.

 


조근조근 나직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에서 용기를 찾게 되고, 희망을 보여주는 듯했다. 문득 이런 사람 한명쯤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 들수록 좋은 사람이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적당하게

과하지 않게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 현명하지요.

이것이 참 어려워요.

 

적당한 거리와 적절한 선이 사람마다 달라서 늘 어렵고

힘들지만 한편으로 그 다름으로 인해 또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니 참 아이러니긴 합니다.

(-p111 약간의 거리를 두고. 부분 발췌-)

 


어제 짧은 편지 두 통을 보냈다. 내게 편지를 써보는 게 어떠니, 제안을 했던 이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만, 자꾸 밀어내는 느낌이 들어 다가서기 어렵다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편지를 받은 누군가는 당황했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귀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도 내게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는 아니 그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린 다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걸어갈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그 거리감. 적절한 선이 지금 사춘기 남매에게 무엇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두 녀석의 싸움이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

우린 모두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요.

초보인데 잘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이상하죠.

그렇게 생각하면 초보라서 오히려 다행인 것 같네요.

초행길인데 오늘 하루 잘 건너오느라 수고하셨어요

오늘 하루 살아내느라 고생하셨어요.

p159


 

오늘을 견뎌줄 위로의 말 한마디.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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