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악아 지음 / 봄름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이 땅의 동기들에게,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책을 설 지나고 볼걸 그랬나보다. 아쉽다. 뭐가 그리 아쉬운가. 그냥 마음이 편치가 않은 것 같다. 시집살이는 어느 집이건 녹녹치 않은가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무슨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이들의 관계를 우리는 고부관계라고 말하곤 한다. 이 관계를 잘 들여다보면 승자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반드시 패자가 있다. 당연하게 승자의 쾌감이 공기의 흐름을 점령하게 되면, 한 곁에서는 패자의 낭패감과 분노와 서글픔이 질척인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질문을 할 차례다. 당신은 이 질긴 싸움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까.?

 

과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존재하는 걸까.

책을 쓴 저자는 악아라는 예명으로 글을 썼다. 악아는 아가라는 소리에서 파생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듣는 입장에서는 아가와 악아가 비슷한 발음으로 들리기도 해서 아가가 악아로 뒤바뀌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 쉬운 변화일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악아를 惡兒(나쁜 아이)로 스스로 이미 번역을 완결 짓고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남기는 지금 이 순간 나는 고민한다. 책에 대한 느낌과 평가만을 오롯하게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저자가 풀어놓은 이야기에 몰입한나머지 내 안에 있는 온갖 스트레스를 다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런데 나는 이 고민이 가지고 올 윤리적 딜레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벌써부터 짐짓 뒤로 내빼려는 모양새인가.

 

매순간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순응하거나 불순응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세월을 살아간다. 결혼 역시 선택이다. 과거의 결혼처럼 집안이 짝을 맺어주거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현대에 와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좋아서 결혼을 했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어왔고 나 역시 수없이 경험해왔다. 사실 결혼이라는 선택은 상당히 많은 결과물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투쟁하듯 극복해야하는 것인 동시에 받아들이고 순응해야하는 우울한 결과물의 대부분의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저자가 이야기하듯 장성한 남녀의 결혼생활에 개입하려드는 시월드의 부조리함일지도 모른다. 별의별 시어머니들도 많은가보더라. 그냥 단순히 ‘∼하더라’, 라고 넘어가는 까닭은 일일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혼한 여자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말이다.

 

저자는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신참 며느리였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바라본 결혼생활과 며느리생활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하다. 때로는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하면서도 근엄하기까지 하다.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선을 유지해가는 게 지혜롭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결혼생활 16년차인 나에게도 그 적절한 선이란 무척 중요한 것으로 다가온다. 어느 사회나 어느 조직이나 너무 깊이 들어가다보면 문제점들이 자꾸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까닭에 보기 싫으면 외면하면 그만이라고 잘라 말하지는 말자. 책을 읽다보면 단박에 알 수가 있는 분위기는 이런 분위기다. 그 말은 너무 무책임한 표현이라는 분노의 반론과 함께 냉소에 푹푹 절은 비웃음을 살수도 있는 다소 무서운 분위기를 말이다.

 

이제 살짝 지혜를 더 모아보자. 시간을 약으로 삼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아무리 시간이 가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도 들어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상대가 변하든지 아니면 차선책으로 내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변화를 포기로 받아들일지, 실패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최후의 승리로 받아들일지는 그야말로 어려운 내적 선택의 문제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자기안의 상처에서 결국은 걸어나와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책은 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암울한 분노와 부조리에 대한 고발로 시작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악아는 점차 악아(惡兒)가 아닌 아가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건 어쩌면 단순히 남편이 취하는 행동의 변화에서 오는 긍정의 효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남편이 몰고오는 이 변화의 시작은 남편을 비롯해서 시댁식구들 그리고 항상 피해의식에 빠져있는 며느리들에게도 변화의 씨앗을 깊이 심어주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실 책이 아닌 현실에서의 많은 가정에서 이 변화의 바람이 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요즘 같아서는 결혼이란 것이 의무도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냥 과거의 한 유산과 같은 것으로 치부될 것 같은 분위기다.

각설하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결혼준비가 되어 있는 않은 이들은 결혼을 유보하라, 는 말은 해주고 싶다. 남녀를 불문하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힘든 것이 결혼생활이다. 특히나 남편의 역할은 더 진중할 것을 부탁한다. 결혼을 하고 아내를 거느리면 가장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치마폭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남자는 아직 성장이 더 필요한법이다. 남편의 역할은 신의 역할이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일주일마다 시댁에 전화를 걸었던 것을 9개월 동안 나는 모든 것을 중단했었다. 16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침묵했었다. 일방적인 모욕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고, 방황이었으며, 정당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무언의 일침이었다. 그리고 나는 따로 상담을 공부한 인생 선배들에게 진지한 상담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상처받은 자아를 바로 들여다보고 위로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내 상처로부터 회복되기까지 다행스럽게도 그 아무도 내게 가타부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오랜 고심 끝에 먼저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이쯤되면 해피엔딩인가. 물론 두 시간가량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수고가 뒤따르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이번 설에 당당하게 시댁에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 며느리로 살아가는 삶의 동기들이여. 기죽지 말고 당당하자. 그렇다고 요란하게 시끄럽게 냄비를 뒤엎을 필요도 없다. 철없이 자의식만 주장해도 좋지 않더라. 부드럽고 강렬하게 자신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현명한 방법인 것 같더라. 우리 꼭 지혜롭게 살아가자. 아 그런데 이 솔직함에 대한 딜레마를 어쩌면 좋을까. 그냥 왜 사냐건 묻는다면 웃는 게 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