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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평점 :
오랜만에 선정했던 책이 왜 하필이면 전쟁 이야기였던가. 그 까닭은 전쟁기념관으로 나들이를 갔던 한 때의 기억 때문이었다.
한국 전쟁. 기나긴 회랑의 틈을 엿보다.
역사는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하는가. 딴은 그렇지도 않은가.
우리들 각자가 생각하는 진실의 기준은 일방적인 객관성으로 무장해서도 안 될 것이며, 또는 지독하게도 주관적인 취향의 냄새를 풍겨서도 안 된다.
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것은 개인이 속한 환경과 전반적인 지식에서 차이를 두고 있을 법하다. 그러나 모든 다양성을 배재하고서라도 하나의 귀결을 이루는 것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책을 통해 한국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살아있음에 대한 희열을 느끼기에 앞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전쟁이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란 소멸과 동시에 창조를 함께 동반한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아이러니하면서도 계속 기억에 남는다. 책에 대한 총체적인 생각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각도를 바꿀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 생각과 딴은 어떤 이들의 인식에 저장되어있는 전쟁에 대한 이미지들을 다시 껴맞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박태균 저, ‘한국전쟁’은 이를테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반항아적 이미지를 지녔다. 하나의 틀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가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반항아적 이미지를 이를 테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금은 불안한 심리상태의 범주에서 생각해보자.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쓴 이번 한국전쟁은, 지금까지 우리가 편안하게 느껴왔던 규격화되고 보편화되어 있는 지식과 사고에서 ‘이건 아이다’, 라고 반기를 드는 상황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서로 닮은꼴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까닭은 저자의 중립적 세계관이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중립적 글쓰기. 그것이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맥이라고 믿는다. 아직까지 잔존하는 사상의 대립은 그것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데에 많은 영향과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이를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사상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사상을 논하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 역시 저자와 같은 뜻에서 어느 편으로 기울어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태균은 말한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사상의 잣대를 가지고 글을 쓰려 하지 않았다, 라고. 그런 까닭에 나는 읽는 이 역시 편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필자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노력한 것은 한국전쟁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은 어떤 국가의 국민도 아닌, 한 걸음 떨어져서 좀 더 객관적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중간생략…
한 현대사 연구자의 입장을 견지하고자 했다. 물론 필자도 민족주의 감정에 충실한 한국 사람으로서의 입장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최대한 노력하였다. 그것만이 기존의 ‘권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박태균의 한국전쟁 중 맺음말 일부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마음을 다잡고 글을 써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무엇을 주제로 쓰던지, 전쟁을 소재로 한 글이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기존의 ‘권력’이자,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알고 지내왔던 전쟁이야기이며 동시에 그것의 오류일진데 마치 그 앞에서 추궁을 받는 꼴이 되는 셈이다.
나름대로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던 내게 한국전쟁이란 책은 내가 지녔던 자만과 편견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던 것 같다.
흔히 말하기를 역사란 진실을 기록한다. 하지만 때로는 왜곡된 역사의 기록도 잔존한다. 임의적으로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진실이 거짓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으며, 허를 실로 둔갑시키기도 하는 경우도 있으나 후대의 사람들은 말한다. 증거가 없으니 확실히 알 수가 없노라고.
물론 증거가 없이는 그 어느 것도 확정지을 수가 없다. 단지 추측만을 가지고는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내보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있어왔던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증거 없이, 감춰지고 숨겨져 그 존재가치에 대해 사람들의 인지가 거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왜곡되고 감춰졌기에 사람들에게 잊혀진 사실들을 이 책에 기록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원인과 전쟁과정에서 우리가 몰랐던 사건과 그 사건의 원인결과 그리고 그 후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의 수집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더함으로써 독자에게 보다 쉬운 접근을 허락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런 일이 있었던가, 의아해하게 되는 몇 가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의 북침야욕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전쟁은 북한에서 먼저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초등학교 때문에 무던히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냥 앉아서 당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인데. 기실은 그 무렵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북한을 먼저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설이 있다. 그 외에도 전쟁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이승만 정부와 미국. 전쟁의 시작과 전쟁의 주도, 마무리까지 겉으로 드러났던 미국의 영향력과 뒤로 감추어진 채 뻗어나갔던 또 다른 미국의 압력. 한국과 미국의 알력 역시 잘 알려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책읽기는 묘한 끌림이 더했던 것도 사실이다.
박태균의 ‘한국 전쟁’은 방대한 자료의 일목요연한 정리는 내용의 이해를 보다 쉽고 용이하게 도와주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저자가 직접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고 교감하며 만든 자료를 토대로 구성된 이번 책은, 보통 사회과학 분야에서 느낄 수 있는 딱딱하고 다소 건조한 멘트의 분위기가 아니다. 소설가 박완서의 소설을 예로 드는 경우나, 몇 개의 단원이 끝나는 부분에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하는 부분들이 들어가면서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마무리 글에서 남겼던 것과 같이 학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글을 진행하고 싶었다는 내용의 글과 코드가 맞게 떨어지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아쉬움을 토로한다.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가 많기에 다음을 또 기약한다는 말도 남겼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뭐가 그리 많기에, 몇 백장이 넘도록 이야기를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할 말이 남았을까.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워왔던 한국전쟁에 대한 일부 내용을 다시 수정해야 하는 숙제를 저자는 무심하게 던지고 돌아선다. 그것을 풀어서 이해하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사상의 문제를 떠나서 알지 못했던 일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알아 간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다보니 이 글이 ‘한국전쟁’이란 책을 읽으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과 전쟁의 연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이념 내지는 저자의 중립적인 사상 쪽으로 자주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책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수정주의니,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거북하고 무겁고 답답한 이야기는 잠시 보류하고 책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까지 분단국가인 현실에서 한번쯤은 읽어 보고, 생각도 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어렵지 않고 쉽게 서술된 것이 이 책의 큰 힘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