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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저택 그린 노위 ㅣ 일공일삼 34
루시 M. 보스턴 지음, 김옥수 옮김, 피터 보스턴 그림 / 비룡소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비밀의 저택 그린노위
-신비로운 친구들.
가끔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책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그 시절 나는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주신 에이브 전집과 세계명작 전집을 보고 성장했다. 물론 빨리 읽지도 못했고, 누구처럼 많이 읽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말 좋아하는 책이 한 두권 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매일 밤 옛이야기를 들려주곤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전래동화 녹음테이프를 기억하면서 효녀심청전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은혜 갚은 호랑이 이야기도 해주곤 했었는데 아이들은 다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는 옛 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장화와 홍련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는 사춘기 아들아이도, 12살이 되는 딸아이도 엄마가 들려주는 장화 홍련 이야기는 식상하지도 유치하지도 않는 눈치다. 날이 밝아서 이방 호방 예방 등 아전들이 모여 관을 짜야 한다는 등 저희들끼리 수런거리고 있었던 거야. 그때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가 헛기침을 하고 소리를 쳤지. 게 아무도 없느냐....
그리고 이제는 비밀의 저택 그린노위의 이야기를 해줄 차례다. 이 신비로우며 비밀스러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밀려드는 오묘한 이야기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주인공 소년 토즐랜드는 새로 결혼한 아버지를 떠나서 낯설고 먼 곳 페니소키를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소년의 증조 할머니인 올드노 머니가 토즐랜드(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곁에는 새어머니가 있었지만 소년은 줄곧 기숙학교에서 살았다. 톨비 입장에서 이번 여행은 어쩌면 부모와의 매끄럽지 못한 생활에서 일종의 탈출구를 찾은 셈이었다. 그런데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증조할머니와, 이곳 페니소키의 풍경 앞에서 소년은 긴장하게 된다. 홍수가 나서 모든 세계가 물에 잠겨버렸다. 물에 잠긴 마을이 풍기는 분위기는 도대체 어떤 분위기일까. 톨리는 할머니의 집에까지 가는 길에 마차를 타고 가다, 배로 옮겨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중나온 보기스라는 하인이 톨비를 안내한다.
아이를 둘러싼 대 저택 그린노위(그린노아)는 많은 비밀을 안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다던 가족들의 초상화가 톨리를 내려다보는데, 이상하게도 그림 속에 아이들이 톨리를 자꾸 쳐다보는 것만 같다. 밤마다 아이는 꿈을 꾼다. 아이가 잠을 자는 방에는 아이의 침대뿐만이 아니라 세 개의 침대가 더 준비되어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방에는 새장도 있고, 인형의 집도 있으며, 목마도 있고, 아이가 잘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자는 쥐 모양의 조각인형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집을 탐험하며 먼 시간 속에서 잊혀졌던 것들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무로 된 바닥 틈에서 낡은 열쇠를 찾아 상자를 열고 그 안에 있던 것들을 찾기도 하고, 구유에서는 말 이름이 쓰여진 깨진 조각을 찾기도 한다. 정원에 나가서 거대한 성 크리스토퍼를 찾기도 하고, 그림 속 아이들만의 장소였던 비밀스런 곳을 발견하기도 한다.
홍수로 들어찼던 물이 빠지면서 풀이 돋아나고, 다시 눈이 내리고 눈의 갑옷을 입은 듯한 정원의 모습이 펼쳐지는 풍경은 아이의 시선으로 쓰여져 있지만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이쁘게 묘사되고 있었다.
톨리는 계속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하고, 찾고 싶어하며, 그리고 보고 싶어한다. 그들을. 톨비의 곁에서 올드노 할머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한다. 토비, 알렉산더 그리고 막내 리넷의 이야기까지.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과정에서 톨리는 드디어 아이들과의 교감을 느끼게 되면서 결국 마법처럼, 마술처럼 세 아이와 함께 하게 된다.
소설은 한 소년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수백 년 전에 역병으로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 현재까지 그 집에 존재하면서, 순수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아이를 만나게 되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 함께 한다는 스토리라고 하면 정리가 되는 걸까.
어찌보면 공포물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니콜 키드만이 주연했던 영화 ‘디 아더스’가 연상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책은 초등 중학년 이상 청소년 대상의 소설로 출간되었다. 주인공을 여덟 살 아이로 설정했고, 유령의 대상 역시 어린 아이들로 설정했다. 유령의 출현을 괴기스럽다거나 공포스럽게 묘사하지 않고, 호기심과 사랑 그리고 따뜻함과 연민의 시선으로 초점을 맞춰 소설을 써나가고 있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소설은 아픈 여동생을 위해 의사를 부르러 가는 토비의 용기와 담대함을,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는 알렉산더는 자신의 재능을 겸손하게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의 긍정적인 모습이 인간의 선함을 상징화한다면 블랙 페르디는 악을 상징화한다. 집시 출신으로 말 도둑이었던 블랙 페르디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소설에서 등장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저주를 만들어내는 시작점이 되고 있다.
자. 그러면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는걸까. 언제나 그렇지만 이야기의 끝을 다 말해버리면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결말이 또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끝이 나는 이야기다. 그래도 말이다 사춘기 남매에게도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각자 생각해보는 숙제를 내주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지난 여름방학 때 선물로 사준 책이었건만, 딸아이는 분위기가 음산하다고 아직까지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내가 딸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말이 아닐까.
- 신비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