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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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관계와 화해

 

내가 사는 곳은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지역이다. 이곳은 같은 경기도권이라고 하더라도 비교적 개발이 늦게 시작되어 삼사년 전부터 부쩍 전입인구가 많아지는 추세다. 국도변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면서 삶의 주된 소비생활은 시내 쪽으로 들어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번거로운 여정이 가끔 우리를 과거로의 여행처럼 호기심으로 자극하기도 한다. 아들이 수선을 피우며 말하기를

“지금 우리는 70년대로 막 접어들었습니다.” 하면, 동생은 절대 질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되받아친다. “아니야. 70년대는 무슨, 전설의 고향이냐.”

 

아이들이 그런 우스갯소리를 하며 걸어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내라 하더라도 키작은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하나 둘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예전의 모습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왕복 2차선 좁은 도로에 버스는 유난히 천천히 오고 간다. 키 작은 건물에 들어선 낡은 사진관, 농협이나 축협 같은 금융기관. 확실히 시내라 하더라도 좀 외진 곳임에는 분명했다.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엄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길치였으며, 저희들은 신세계를 구경하고 있는 운 좋은 아이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과거가 잘 버티어주지 않았다한들 현재가 존재했을까, 라는 의문을, 그 의미와 가치를, 아이들은 알까.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박완서 선생님의 짧은 소설이 개정판으로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다시 우리 곁에 찾아왔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과거로의 여행을 생각하곤 했었다. 마치 타임슬립처럼 말이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생각했던 것일까.

 

책은 작품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고, 옆에 있는 이들과 책 내용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음에도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먼저 이 책이 주는 따스한 고향 같은 느낌을 먼저 말하고 싶어진다. 우리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 이모와 고모들. 말해놓고 보니 여성에 대한 관심이 집약된 듯하다. 책을 통해서 그만큼이나 다정하면서도 나긋나긋하고도 또 동시에 단호한 여성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짧은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것이 바로 여성문학의 진수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란 말이다. 여성에 의해 형상화된 작품인 동시에 불만과 불평을 지적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사람들의 여론을 모으려는 거북한 의식이 담겨진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만히 다가와 말을 건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나지 않으면서도 튀지 않는 의식과 행동들, 말모양새, 삶의 진솔한 모습들. 그리고 여자인 동시에 한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 그 곁에서 함께 울며 웃으며 고군분투를 함께 겪어나가는 남자와, 부모, 자식, 그리고 이웃의 이야기가 차분하게 들려온다.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남녀의 문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양성평등 같은 사상과 페미니즘의 영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시기를 살고 있는 지금이고, 이성간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분명 벌써전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간에 변화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전통적인 성향의 수동적 모습이 아니다. 물론 각자의 갈등과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인 성향의 여성성을 표출하고자 노력한다. 결론적으로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이 갖는 현실인식은, 한편으로는 안쓰러우면서도 냉정한 사회의 부조리와 낡은 인식에 대응하는 따끔한 자극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싶다.

 

물론 한권의 책이 모두 남녀의 문제, 부조리에 대한 것들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가의 예리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심미안은 작품마다 유연하면서도 강렬한 작가만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는 것도 적어두고 싶어진다. 탈무드에 등장하는 삶의 진리와 같은 이야기하며,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대목의 이야기도 등장하고 있다. ‘완두콩만 한 아이’는 뱃속에 태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당시 소설이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소재와 주제는 상당히 신선하고 작가의 직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작품들을 뒤로 한 채, 유난히 시선을 붙잡는 작품은 ‘땅집에서 살아요’, ‘노파’, ‘노을과 양떼’라는 작품들이었다. 이 작품들은 서로간에 그 성격이 많이 다른 작품으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유독 기억하려하는 것에 대한 까닭으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따뜻한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는 소박하기에 이를데없는 개인의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제목을 잠시 빌려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들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늘 행복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잘 견디어 살아왔고, 여전히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잘 살아내고 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다.

 

여담이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옛것들을 불러모으는데 재미를 붙였다. 오래전 유년이라는 시간을 살았던 옛집, 일본사람이 지었다던 그 옛집은 마당에 일본식 정원이 있어서 녹슨 철문을 열자마자 장미나무와 석류나무가 낯선이를 반기던 집이었다. 석류나무에 들어붙어 있던 검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애벌레를 나무젓가락으로 서툴게 집어 들어올리며 비명을 지르던 어린시절이 갑자기 와락 달려들기도 하더라. 그 때 그 순간에도 나는 내 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내 어머니와 내 할머니의 조용한 분쟁과 타협을, 역시나 조용하게 지켜보며 성장했던 것을 기억한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이를테면 모든 이들과의 혹은 모든 관계된 것들 사이에서의 화해와 양보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마치 상처받은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 사람의 딸과 한 사람의 여자, 아내 그리고 며느리와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나 혹은 우리들에게 편하게 두 다리 내려놓고, 같이 속내도 내놓으며 수다나 한판 늘어놓고 가라는 듯한 작가의 말붙임이 정겹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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