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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평점 :
레베카
-어느 조작된 공포감에 대해
여인의 변신은 무죄라 했다. 이 말이 왜 생겨난 것일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사실은 그 변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다보니 그 변화를 향해 달리는 급행열차에 올라타게 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의도된 채 혹은 의도치 않게 말이다.
소설 ‘레베카’는 대프니 듀 모리에라는 여성 작가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본 책이라고 했다. 책을 장식하는 붉은 띠지에는 ‘레베카 출간 80주년’이라는 문구가 실렸다. 이쯤 되면 고전이다. 긴 시간동안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다는 말이다.
책을 사놓은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어느 누군가의 북 클럽 동영상을 보다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 이 책을 이야기하던 한 이웃이 말하기를,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처음 읽자마자 끝까지 다 읽어냈었다는 그 말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개개인의 취향과 소소한 선택이 보태어진 것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 레베카가 책이 지닌 강한 흡입력으로 많은 독자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주인공 나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의지할 데 없이 외로운 처지다. 나는 중년 여성(벤호퍼 부인)의 말동무를 겸한 비서직을 하면서 약간의 급여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벤호퍼 부인은 말도 많고 집요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스스로 요란한 성격을 주체할 수 없어 보이는 케릭터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때 이 중년 여성의 비유를 맞추는 게 달갑지만은 않아 힘들어하던 나는, 여행지 몬테카를로에서 전 부인과 이별한 한 중년의 남성(맥심)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둘은 곧 결혼한다. 이십년 가까운 나이차이로 인해 이들 남녀의 관계는 아버지와 딸처럼 보인다. 때문에 이 사람들의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어색하게 보인다. 여기에서 여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자격지심이 자신의 낮은 신분과 경제적 곤란함과 신분상승이라는 요소와 맞물려 어떻게 인물의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는가, 라는 부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얼떨결에 예상하지 못한 채 결정된 결혼이라는 작품의 설정 자체가 묘한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얼핏보면 신분상승에 관한 스토리처럼 보인다. 의도치 않게 신분상승을 위한 급행열차에 오르게 된 주인공 나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그저 그런 여자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이야기일 뿐일까.
600페이지 가량의 장편에 속하는 소설은 처음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무언가에 쫒기 듯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리고 꿈속을 헤매는 장면이 묘사된다. 거대하고 웅장한 분위기다. 그러나 깊이 들어갈수록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과 드넓은 맨덜리의 정원에 가득 들어찬 칡덩굴, 기괴하게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많은 나무줄기를 비롯해 뾰족하게 뻗은 가시덩굴을 표현함으로써 작가는 주인공 나의 불안한 심리묘사에 집중한다.
소설은 비교적 빠른 전개로 주인공 내(작가는 끝까지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이 또한 의도된 부분일 수도 있을까)가 멘덜리의 대 저택으로 들어가면서 이어진다. 전체 작품에서 맨덜리라는 저택은 소설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된다. 그리고 주인공 나는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과 같은 실체와 대면하게 된다. 아니다. 보이지는 않으나 ‘남아있는 실체’라고 해야 더 적당할 것도 같다. 각설하고 이로 인해 생겨난 관계와 갈등의 요소 사이에서 부딪히는 주인공 나는, 처음의 어리고 순진한 모습에서 극도의 난관을 극복해가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생각했었다. 소설 레베카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은 바로 이 두려움에 대한 인간 개개인의 반응정도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정숙함과 비 정숙함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상반된 이미지에 대한 것이었다.
주인공 내가 맥심을 따라 대저택 맨덜리에 들어가면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여성은 드윈터 부인이다. 그녀는 맥심의 전처 레베카의 시중을 들며 맨덜리의 모든 것을 관할하는 집사와 같은 역할로 등장하는 동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나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보이지 않는 실체, 아니 남겨진 실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조작하고 나를 몰아세우는 인물이 바로 드윈터 부인이다. 주인공 나는 드윈터 부인 앞에서 늘 위축되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며 레베카의 크고 무거운 그림자에 눌려 불안한 공포감을 느낀다.
죽은 자의 물건이 남겨진 공간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것일까. 맨덜리 그 어느 곳에서도 주인공인 내가 머물만한 공간을 찾지 못한다. 여기서 나라는 인물을 더 불안하게 했던 요소는 남편 맥심이 취했던 행동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여전히 죽은 전처를 그리워하며 마치 죽은 영혼이 쳐놓은 그물에 갇혀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때문에 나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확신하지 못하고, 드윈터 부인의 압박에 의해 존재감에 대한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극의 후반부에 가서 내가(주인공) 드윈터 부인 앞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계기 역시, 바로 남편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비롯해서 사랑을 확인하면서부터였기 때문이라는 점 또한 같이 짚어볼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속 맥심과 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거대한 비밀을 함께 공유하면서 돈독해지게 된다.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돈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변모해가기도 한다.
정숙함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가. 맥심은 몬테카를로에서 순진하며 세상물정 모르는 나를 향해 결혼을 청한다. 작품 안에서 그는 정숙함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데, 마치 어린 주인공인 내게서 보았던 여성스러움과 정숙함에 매료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듯하다. 그는 결혼상대자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무조건적으로 정형화된 여성성과 정숙함만을 보려했던 것일까. 어찌 보면 너무 고리타분한 선별기준이 아닐 수 없지만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 맥심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책 말미에 ‘결국 승리한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내용으로 옮긴이의 글이 실렸다. 옮긴이의 시선은 현재 시대상에 맞춰 페미니즘 소견에 의해 피력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성 위주의 시선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동시에 독립적인 여성성에 포커스를 맞춘 시선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 나와 레베카 두 여성 중에서 과연 누가 승리했다고 볼 수 있을까. 딴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두고 승자와 패자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종종 ‘레베카가 이겼다’ 라는 표현이 언급되는 바, 또 이 부분을 거론하고 있는 옮긴이의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 같이 생각해볼 만한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레베카는 인물의 심리 변화에 따른 디테일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느슨해질 수 있는 부분에서 짧은 문장이 가미된 구성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독자의 시선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연애소설로 시작해서 추리소설로 끝났다고 해도 무방한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후반부에 갈수록 속도감이 빨라져 몰입정도가 컸던 것 같다.
레베카와 주인공 나를 향한 작가의 의도된 시선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 이제 어느 상황에서나 등장하는 조작된 공포감에 대해 혹은 이 공포감과 두려움에 잠식되는 불안한 인간 심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일까. 질문들이 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