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을 밝히는 사람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66
아리네 삭스 지음, 안 드 보더 그림, 최진영 옮김 / 지양어린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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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을 밝히는 사람

 

그는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일을 한다. 매일밤마다 그는 가로등을 밝히기 위해 눈이 내려 얼어붙은 길에도 살을 에는 혹한에도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선다. 기다란 죽마를 신고 또각또각 한발 한발 나아간다.

작가 ‘아리네 삭스’의 글과 ‘안 드 보더’의 그림이 표현해내고 있는 그림책 ‘가로등을 밝히는 사람’은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림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작가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가 연상된다.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군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가로등을 밝히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사내는 우리가 바라는, 현실 속에서 잊고 살았던 선한 사마리아의 여인을 연상하게 하는 그 이미지와 닮아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텅 빈 거리를 홀로 걸으며 그는 어둠을 몰아내고 따사로움과 온화함을 가득 품은 빛나는 빛을 데려온다. 어둠과 빛은 상반되는 이미지다. 작품에서 작가는 이 사내의 시선을 빌려와 슬픔 속에 있는 여인, 외로워하는 이방인, 아버지를 기다리며 홀로 지쳐 잠이든 어린 아이, 쓸쓸함 가운데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는 어느 노부부와 병중에 있는 아내를 지키는 남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슬픔으로 힘들어하는 모습들이다. 등불을 밝히는 사내는 이들의 사연을 알고 고민한다. 그리고 그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된다.

 

이야기가 전달해주는 상징에 대해 조금만 더 천천히 생각해보자. 인물들은 처음 서로를 모르고 고립된 채 우울해하던 인물들이지만 등불을 밝히는 사내의 도움(개입)으로 인해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존재로 변모하게 된다. 이야기 속에는 화려하거나 뜨겁거나 혹은 호사스러운 것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소박하고 더더욱 인간미가 녹아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겉치레에서 벗어난 어느 외로운 젊은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며, 아버지를 기다리던 소녀는 노부부를 찾아가 보통 사람들이 꿈꾸며 그리워하는 소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새롭게 새겨간다. 그런가하면 병든 아내와 그 남편에게 다가가 위로와 격려를 건넨다. 작품 안에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관계를 위해 혼자 고민하고 맘 졸이며 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던, 가로등을 밝히는 사내는 말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작가는 가로등을 밝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에게 그리고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불을 밝히는 존재로 다가서게 한다. 그 영향 때문이었을까. 마치 긍정의 도미노 현상처럼 따뜻한 마음의 선한 행동은 사람들을 서로 감동시키고, 또 다른 이들에게로 그 영향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은 어떤가. 그림책이기 때문에 그림체와 색 구성에 대한 것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기는 하다. 이번 작품에서 대체로 어두운 회색과 채도가 낮은 블루 컬러를 많이 썼던 것을 보면 아마도 인물들의 심리와 이들이 처한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림은 인물들이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각인되는 과정에서부터 밝은 색의 파스텔 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혼자가 되어 돌아가는 등불을 밝히는 사내에게 집중되면서부터 어두워진다.

중간중간 아무런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채워진 부분에서는 그림책만이 지닐 수 있는 공간의 여백을 느낄 수 있다. 이 여백에서 독자는 이야기의 의미를 생각하고 함축과 상징을 느끼며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을 듯하다. 짙고 푸른 어둔 밤. 흰 물결처럼 흘러가는 구름과 한 가운에 떠있는 하얀 달의 그림은 어떤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희끗희끗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던 순한 강아지의 눈동자에 하얗게 내리는 눈이 그대로 박혀있다. 이 그림은 또 무슨 의미인가 말이다.

 

타인을 위해 가로등을 밝혔던 빛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그의 방에는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은 채 어둡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아 보인다. 사람들에게 소소한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던 사내는 마침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가보다.

 

따뜻함이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이 사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인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들려올지. 딴은 이렇게 그림책으로나마 이것이 인간 본연의 선함이 아닐까, 설명해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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