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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ㅣ 더디 세계문학 1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황재광 옮김 / 더디(더디퍼런스) / 2018년 1월
평점 :
위대한 개츠비
그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의 죽음이 위로가 되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이 무슨 고약한 심보인가. 정말 못됐다.
정작 그의 죽음은 너무나 외로웠고, 그래서 더 인간적인 인물로 다가오기도 한다.
책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을 무대로 그려진다. 책을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책이 지니는 의미는 생각보다 큰 듯하다. 전쟁이 가져다준 폐허와 인간성의 상실 이외에 이 시기에 미국에서 보이고 있는 상징적인 모습과 함께, 책은 아메리칸 드림과 연결고리를 같이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 복잡하기도 하고 엄숙한 분위기다.
인물에 더 집중해보자. 여기서 '나'는 닉 케러웨이며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중요한 인물이다. 또한 한층 더 중요한 인물인 이웃집에 사는 개츠비와 친구 사이로 등장한다. 그리고 몇 명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개츠비의 옛 여인인 데이지, 데이지의 남편 톰, 그리고 데이지의 친구이며 골프선수인 조던 베이커와 정비소를 꾸려나가는 조지윌슨과 그의 아내 머틀 윌슨 정도를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정리해야만 한다.
이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진다. 돈이 많은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 돈의 유무는 비겁한 기준을 정한다. 한 사람을 뜬금없이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반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일시에 추락시켜버리기도 하는 위험한 기준점이다. 결국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갑자기 영웅처럼 떠받쳐지는 인물과 추락하는 인물들로 나뉜다고 볼 수도 있다.
처음에 개츠비는 누구에게나 멋있는 군인출신의 살아있는 영웅이었다. 아니 그렇게 영웅대접을 받았다. 그는 매너 그리고 돈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도 훌륭한 이미지를 잃지 않으며 사람들을 대한다. 때문에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그의 집을 밤마다 찾아와 술을 마시고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만난다. 그러나 그들이 쫒는 영웅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개츠비를 영웅으로 만든 사람들은 정작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며 그저 떠도는 소문만이 진실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소설 속 개츠비는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의 욕심에 맞게 새로 편집한 반쪽짜리 삶을 살아가다 과거의 연인 데이지와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그 자신의 삶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소설은 망가져버린 인간성, 비뚤어진 욕망,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혹은 물질만능주의 등등 많은 문제들을 지적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작가는 위대한 개츠비라는 표현을 썼을까. 반이법일까. 작가는 마지막까지 개츠비라는 인물과 그 배경에 부정적인 요소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취한 재산은 거짓의 산물일 수밖에 없었다. 나 닉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개츠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으며 외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관계는 영원하지 않은 것인가보다. 특히나 남녀의 관계는 말이다. 한순간 그들이 말하는 그 영원성을 믿었던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들보다 더 어리숙하게 보이는 까닭은 소설 속 인물 개츠비의 선택에서 보이는 미련함 때문에 더 그렇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혼란스러워하는 여인 데이지. 자신 역시 정부를 사랑하며 일탈을 즐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남편 톰이라는 인물 역시 이기적이면서 불안한 인물이다. 특히나 과거의 남자와 현재 남편 사이에서 저울질하듯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여성 데이지의 이미지는 성숙하지 않은 아이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각인되는 개츠비의 존재감이다. 닉이 그랬던 것처럼 개츠비를 두고 이야기할 때 위대한 개츠비, 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사람들 특히나 데이지의 달라진 모습으로 바로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모습과 인식을 개츠비가 간파해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는 다른 여타의 사람들과 비슷한 위선적이며 형식적인 완벽함으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변 인물들과 분명한 차이를 지닌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책은 많은 이유로 인해 인간 스스로가 잃어버린 인간성의 상실과 그에 반해 여전히 흔들리는 인간성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의 모습처럼 다양한 그림과 울림을 보여준다. 묘한 심리적 중독성이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른다. 모든 것을 타락과 퇴폐를 감지하는 시선으로만 바라 볼 수 없기 때문인가.
-“그녀가 너무 멀기만 느껴져요. 그녀를 이해시키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가 말했다
-“나는 당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어요” 라고 말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나라면 그녀에게서 너무 많은 걸 바라지 않을 겁니다.” 내가 감히 한마디 거들어보았다. -“과거는 되풀이할 수 없거든요.”
-...... 내 짐작에 그는 자기가 데이지를 사랑하도록 하게 한 그 무엇, 혹은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 같은 것을 되찾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했지만, 행여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모든 것을 천천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