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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커스티 애플바움 지음, 김아림 옮김 / 리듬문고 / 2020년 2월
평점 :
경계를 넘어
-경계 그리고 성장
이상한 마을 하나가 있다. 시대적으로 보면 먼 미래의 어느 시기일 것도 같은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계문명과는 동떨어진 채 소박하게 자급자족의 생활을 해나가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평생 흙을 만지면서 밭을 가꾸고 농장을 꾸려가고, 목수는 목수의 일을, 화가는 화가의 일, 간호사는 간호사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 뭐랄까.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새롭거나 신선한 의욕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먼 시간 너머의 그 언제부터였는지, 이미 그렇게 결정되어 왔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하다. 다만 이들을 한데 묶어놓은 힘. 이 보이지 않는 힘은 그들의 느슨한 삶에 비해 묘하게도 매우 큰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조용한 마을, 편안한마을, 이기심 내지는 많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화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마을. 첫째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학교에서, 마을공동체나 가정에서나 이들은 모두 첫째 아이를 우상처럼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조용한 전쟁에 나가기 위한 첫째들을 위해서 말이다. 첫째아이들은 가족을 위해 마을을 위해 경계선 너머로 전쟁을 치르러 떠나야 한다. 이를테면 선택받은 희생이다. 남겨진 이들을 위한 희생. 또한 그것이 이 마을의 오래된 규칙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규칙이 갖는 모순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보이는 것만이 진실일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알고자 하는 것 역시 인간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이 욕구가 아닐까.
자. 이제는 경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책에서 경계는 중요한 의미를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경계는 여러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하나의 기준에 의해 나누는 어느 지점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나 타인으로부터 오는 공포감으로부터 자신의 안정을 살피는 방어심리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능동적 의미에서의 경계든, 수동적 의미의 경계든지 경계라는 어휘가 주는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책에서 등장하는 경계는 바로 바깥세상으로부터 이 마을 즉 ‘페니스 윅’을 보호하는 동시에, 철저하게 부정하고 거부당하는 바깥세상으로의 출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경계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기준점이 된다. 어쩌면 선과 악의 구분과도 같다. 이 경계를 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며 경계선 안쪽에 멈추어 있는 이는 선한 사람이라는 명제를 각인시킨다. 사실 경계는 어느 쪽을 기준으로 하는가에 다라 그 결과와 해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보통 내가 있는 쪽이 선하고 안전하다고 했을 때, 경계 너머의 곳은 그 반대의 이미지를 지닌다. 일반적 해석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한 가지 맹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그 맹점을 인지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는 그곳에 들어섰다. 경계의 반대편 말이다.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공기에서 풀과 빨간 사과 냄새가 났다 … … … …
“내 말이 맞지? 여기저 저기나 똑같아.” 우나가 말했다.]p133
그리고 여기 매기, 라고 불리는 소녀가 있다. 그녀는 첫째가 아닌 둘째다. 전쟁에 나가기 위해 준비된 첫째들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선택받아 살아가게 되는 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소설은 이 둘째 아이를 주인공으로 소개한다. 그녀는 방랑자라 불리는 경계 밖에 사는 한 아이(우나)와 친구가 되면서, 마을의 촌장이 주창하는 모든 경계의 위험성을 뛰어넘어 경계 밖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타인으로 향하는 의구심과 자신에게로 향하는 수많은 질문들을 끌어안고 메기는 그렇게 경계를 뛰어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암묵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틀을 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책임과 의무가 뒷받침되는 ‘성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늘 그렇지만 진실은 언제나 살짝 뒤로 물러나있다. 그리고 인물들은 늘 진실을 위해 조금씩 나아간다. 저항을 뛰어넘으며 감추어졌던 비밀을 알아가면서 말이다.
이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마을을 처음 구성하고 규칙을 세운 이의 동상을 망치로 깨는 행동을 보인다. 한사람씩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동상의 왼쪽 팔을 다른 쪽 팔을 부스기 시작하며, 그들을 옥죄이고 있는 경계를 무너뜨린다. 어쩐지 구 소련을 상징하는 레닌 동상의 철거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유란 무엇일까. 어쨌든 모든 경계는 애매하다. 반드시 넘어야 할 것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 역시 경계 안에 있으니 말이다. 청소년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