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그리움이 묻어나는 책이다. 옛 시간의 지나간 자락 안에 추억이, 바람이, 풍경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는 듯하다. 그림과 글을 함께 작업한 작가 이미경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라는 책은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선물해주는 애틋함이 가득하다.

작가는 구멍가게라는 독특한 소재를 찾아 그림을 그려왔다. 방방곡곡이란 말처럼 그녀는 세월의 흔적을 안고 버텨온 작은 가게를 전국으로 찾아다니며, 가게의 이미지와 함께 가게가 품고 있는 사연들을 오롯한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정밀한 펜화가 주는 이미지는 섬세함이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에서는 보통의 펜화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보이지 않는다. 파스텔일까. 아니면 색연필일까. 펜으로 그린 선과 선 사이를 채워가는 부드러운 색채감은 그림을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운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가느다란 선과 선들이 모여 양감을 만들고 다시 색채와 각각의 음영을 만들어가며 보여주는 작가의 그림들은 70,80년대 유년시절의 감성적 회귀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책 안에는 그림과 함께 우리들의 이야기도 녹아들어 있었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는 그 시절 삶의 모습을 담아내던 작은 구멍가게가, 친구가, 친구의 가족이, 가게를 지키는 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련히 담겼다. 산 속에 파묻힌 작은 가게. 평상위의 펼쳐지는 나른한 오후,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과 나무와 하늘. 그런 까닭에 책은 더 잔잔한 듯싶다

 

어디에서나 시대는 변하고 세대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다. 딴은 사라져간 것들과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불쑥 꺼내들었을 때, 다른 세대를 살아온 이들의 반응들이 서로 다르다고해서 논박을 하거나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젊은 세대가 이해해주지 않는다하더라도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많은 추억이 살아있는 한, 언제나 이해 가능한 부분도 있기 마련이니 그렇게 위로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며칠 전 사춘기 두 남매와 함께 화장실 이야기를 하면서 재래식 변기의 변천사? 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왜 하필이면 화장실인가. 재래식 변기가 이 책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사실은 이렇게 지나간 것에 대한 추억을 꺼내놓는 일 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대여섯 살 무렵에 살던 옛집에는 대문 옆에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시멘트 색의 벽돌로 쌓아올린 가건물 같은 그 변소는, 천정에 슬레이트를 올려 비가 오면 요란스레 시끄러웠으며 틈사이로 비가 떨어져 고이기 일쑤였다. 그런가하면 대학생 때 갔었던 지리산 꼭대기 어디쯤에 있던 재래식 변소는 하늘 위에도 화장실이 있을 수 있다는 신기함과 함께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함께 킥킥거리고, 깔깔거리다가도 내심 놀라워하며 그렇게 즐거워했다. 그 순간 세대 차이는 없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문득 생각나는 건 이런 것들이다. 함께 하지 않아 알지 못해서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공유란 공유하고 싶은 서로의 마음이 움직이면 가능한 일이다. 세대차이란 마음의 벽에서 생겨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어릴 때 자주 가던 구멍가게에는 50원에 살 수 있는 쭈쭈바가 널리고 널렸더랬었다. 도로코 칼날로 반을 갈라 친구랑 사이좋게 나누어 먹던 그 시절처럼, 우리는 지나간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싶을 때 그렇게 맛있는 걸 서로 나누어먹듯 정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듯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커버 에디션)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비가 오는 날들이 이어진다. 유난히도 힘들게 지나가는 장마다. 비척이면서도 허우적거리는 이 공기가 너무나 무겁다. 시간 또한 이렇게 지루하게 질척이며 막 지나가는 중인가 싶다. 한동안 책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소소하게나마 나름대로 써오던 것들의 일시적 중단을 외쳤던 시일이 생각보다 좀 길어진 것 같기도 하다.

왜 길어졌던 것일까. 후후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을 선택한 것은 행운이었을까. 열권의 책 중에서 제일 먼저 이 책을 집어든 까닭은 단지 몰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책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기록을 남기려한다.

가볍게 가자. 약속된 글이어야 하는 부담도 없으니 마음 편히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오늘 종일 커다란 덩치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완벽한 타인들은 무슨 의미일까. 완벽이란 말은 어떤 의미에서 쓰인 것일까를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책 속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이웃들은 전혀 완벽하지 않은 인물군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 무엇을 완벽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완벽이라니.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기준이 아닌가.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 완벽이라는 기준과 틀에 갇혀버린 사람들. 그렇게 이들은 때론 고개를 숙이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타인들’이라는 의미에서는 더더욱 완벽할 수밖에 없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휴식을 원했고, 상담을 원했으며, 치유를 원했던 사람들이었다. 건강휴양지 프로그램으로 통해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완벽한 타인이라는 관계에서 다시 완벽하게 친근한 서로의 이웃과 특별한 관계로 변모하게 된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 어느 로맨스 작가, 역시 과거 유명한 운동선수였지만 잊혀져가는 중년의 남자,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고 상처받은 가족, 복권에 당첨되고 벼락부자가 된 어린 부부,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실감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여인, 유년의 상처로 진정한 가정을 두려워하는 변호인. 그리고 이들에게 새로운 모습, 새로운 인식으로의 변화된 삶을 소개하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아들이 계속 질문을 했었다. 그 책이 재미있는가? 나는 쉽게 말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어떤 재미를 의미하는지를 생각했다. 유머러스한 재미를 말하는 거니? 아니면 심취할 정도의 흥미진진한 재미를 말하는 거니? 돌연 들이대는 내 질문에 아이는 멈칫 뒤로 물러났다. 그때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독히도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들의 힘겨운 삶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지나온 내 삶의 순간도 돌아봐야 하는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해준 것 같다. 아들은 이해하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속으로 또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까지. 어지간히 몰입했던 것일까.

 

이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했지만 헤어져야만 하고, 인생이란 늘 찬란하지 않으며, 상처와 슬픔 그리고 상실, 좌절과 우울, 나이들고 늙어감에서 오는 방황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낭패감 등. 다양하고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인물에 개성에 따라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원했던 엔딩 스토리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가치가 있으며 각각의 삶은 그 나름대로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듯싶다. 어려움 속(지하에 갇히게 된다)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전환점과 대면하게 되는 아홉 명의 이야기는, 어느 추리물에서 보았을 법한 잠깐의 시니컬한 전개와 함께 따뜻한 관계속의 이야기로 적잖은 울림을 만들어준다.

594페이지에 제법 두툼한 분량의 책이지만 속도감을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 까닭에 이제 다시 아들이 같은 질문을 해온다면, 나는 시간을 두지 않고 말해줄 생각이다. 재미있어. 너도 한번 읽어보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제적 고전 살롱

 

가족기담을 담은 책이라고 했다. 기괴한 가족 이야기인가. 한때 아이들 사이에서 무조건적인 ‘기괴한 이야기’가 유행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이야기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그게 어때서? 라고 반문했던 까닭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딱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눈치 없는 반문들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유광수의 책 문제적 고전 살롱도 역시 가족 기담을 소재로 한 책이다. 그러나 이 기담은 아이들이 재미로 서로 주고받아 읽는 그런 수준의 기담이 아니다. 소재의 근거를 우리의 옛이야기 혹은 서양의 이야기에서 텍스트를 찾아와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작가 자신의 생각과 스토리를 풀어간다.

 

‘비틀고 꿰뚫어본다’는 표현이 책 표지에 실렸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의심을 품고, 그 근거가 될 만한 요소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사실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미 하나의 귀결로 정리된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내는 방법도 쉽지는 않겠지만, 바위처럼 단단하게 고착화된 결론을 선뜻 바꾸고 싶은 이들도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 아는 이야기를 왜 또 그렇게까지 비틀어버려야 하는가,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 아닐까.

저자는 어쩌면 과감하게도 그 부정적이고 식상하다는 일반적인 반응에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은 삐딱하나 매우 논리적이고, 그의 이야기는 마냥 생각 없이 바라보고 듣기에는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확고한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심리학적 혹은 철학적인 관점을 적용해서 인간의 내면 심리를 여가 없이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그의 의도는, 딴은 읽는 이에게 다소 복잡한 생각을 던져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책을 접하면서 순간순간 시원했지만 한쪽으로는 추웠고, 명쾌했지만 또 다른 쪽으로는 마음이 아렸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작가가 시도했던 당당하게 비틀고 꿰뚫어보기를 통한 새로운 시선과 그 도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책에는 무수한 메커니즘이 등장한다. 무슨무슨 메커니즘 식으로 말이다. 가져다붙이기 나름일까. 너무나 많은 무슨 식의 메커니즘이 출현하고 있어서 좀 다른 표현은 없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사전적 의미에서 메커니즘은 ‘어떤 행위를 성취하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심리과정’이라고 한다. 구전되어오는 설화이든, 고전과 현대적 문학작품이든 말과 글로 이어지는 예술장르의 바탕이 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냈던 이들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장르의 이야기가 됐든지 분명한 것은 바로 그 안에 인간 삶의 희,노,애,락이 살아 꿈틀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그들의 나름 의미 있고 고결하고 가치 있는 각자의 삶을, 인과응보 내지는 선과 악이라는 고정된 틀 안에서 편을 가르고 구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은 아마도 그런 우리의 잘못된 오류와 편협하게 굳어진 선입견을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다시금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주제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새롭고 또 그만큼 진지하게 다가온다.

투기 질투의 여성들 삶, 성과 본능의 남성의 삶, 무조건적인 생존을 위한 남녀 모두의 열망의 이야기가 모두 틀렸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들을 하나의 구조, 즉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가족의 의미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주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책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을 기록으로 남긴다.

 

 

-사회가 건전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협의를 통한 규칙이 필요하듯 가정 역시 서로의 의견을 듣고 대화하고 상의해 결정하는 건전성이 필요하다. 그런 곳에는 편애, 과잉보호, 집착, 결핍과 같은 어수선한 것이 발을 들일 수 없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한 행복의 조건인 절제, 용기, 정의, 지혜, 우애 같은 것이 꽉 들어차 있으니 말이다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행동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천성이 바뀌게 된다-

P2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론하는 십대를 위한 경제+문학 융합 콘서트 토론 콘서트 시즌 2
태지원 지음 / 꿈결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토론하는 십대를 위한 경제 문학 융합 콘서트

 

 

제목이 좀 길다. 그래도 제목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기특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경제와 문학을 동일선상에서 함께 들여다본다는 기획의도도 신선함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일선 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는 저자 태지원은 여는 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궁금증의 답을 경제학에서 찾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p6

 

생각해보면 내게도 특히나 경제는 정치보다도 어려운 분야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전공을 하거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 어떤 학문도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오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유독 경제학만큼 더 어렵고 따분한 분야도 없을 것 같다는 식의 이 고약하고 안일한 선입관에서 벗어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나는 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하나하나 짚어보자. 책은 딱딱하지 않게 흥미를 유발하도록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처음 품었던 선입견의 절반 이상을 기꺼이 홀가분하게 내려놓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듯 구어체로 서술되어있는 문장들은 읽는 이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책이 갖는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은 각각의 문학 작품을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소개와 간략한 줄거리도 언급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백미는 각각의 작품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제학 개념을 깨알같이 찾아낸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경제 개념이라니! 아, 갑자기 뇌세포가 일순간 정지되고 혀가 빠르게 입천장으로 말려 올라가 붙어버릴 것 같은 긴장감이 온몸을 휩싸고 돈다. 그러나 서둘러 긴장하지는 말자. 태지원의 책은 섣불리 긴장부터 해버리는 우리의 긴장감을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것 또한 이 책의 강점이다.

 

어느 누가 황순의 소나기를 통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논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고 있으면 누구나 자연적으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체감과 그에 따른 유한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 같더란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나 이름도 길고 표현도 어려운 경제학적 개념과 법칙을,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많은 경제 논리나, 개념과 법칙 따위가 전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황순원의 소나기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제일 앞에 편집한 것도 메리트를 올려주는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전체적 구성을 본다면 소설에서 ‘1.만나는 경제적 선택의 비밀’, ‘2.소설로 살펴본 교환과 거래의 원리’, ‘3.소설 뒤에 숨은 역사 속 경제’, ‘4.소설로 비춰 보는 현실 경제의 모습’으로 나누어진다.

일일이 거론할 수 없기에 몇 가지만 소개해보고 싶은데 먼저 소나기를 언급했으니 기억에 남는 다음 이야기를 해보자. 모비딕과 매몰비용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언급하려한다. 매몰비용이란 무엇일까. 지나가버린 혹은 잃어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사라져버린 비용이라고 한다. 저자는 신기하게도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라는 고전 소설에서 ‘매몰비용’이라는 듣기에도 낯선 경제개념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경제 수업에서 늘 들었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다시 문학작품 ‘허생전’에서 찾아내고 있는 부분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내용을 고전소설 ‘토끼전’을 통해 다시 새롭게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평소 책을 좋아했던 저자만의 문학적인 재치가 경제학이라는 장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라는 인상을 받는다.

 

반면 조지오웰의 작 ‘동물농장’을 통해 ‘계획경제’를 언급하는 부분과, 한국문학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염상섭의 작품에서 제시하는 ‘청년 실업문제’를 상기시키는 부분, 또 우리가 흔히 ‘난, 쏘, 공’. 이라 부르던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성장과 분배’라는 어려운 화두를 이어가고 있는 부분에서는 우리 모두가 여전히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을 다시금 재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라는 학문? 혹은 현실에서 직접 접하는 개념과 논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보다. 그걸 이제야 반듯하게 이해했단 말인가. 경제란, 그 주변에 정치, 사회적인 요소와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존재로서의 개념으로 이제라도 다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그렇게 혹은 이렇게 학교 교문을 나선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새롭게 경제학을 만나게 되는가 싶다.

 

저자는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현재의 우리 시대를 걱정하고, 나아가서는 어떤 긍정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때문에 그가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는 ‘붉은 여왕 효과’는 그 의미가 남달리 크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책이 지니는 근본적인 목적은 경제학의 대중화 혹은 친숙화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렵지 않게 스토리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책이기에 거부감 없이 잘 읽힐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워풀한 교과서 세계문학 토론 - 세계사를 배우며 읽는 세계고전문학!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9
남숙경.박다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워풀한 교과서 세계문학 토론

 

서울 명동역 4호선 근처에 가면 무료로 종일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푹신한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는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짧은 시간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된 시간의 기록을 자랑하는 만화책들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이에게는 더없이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막 자고 일어난 듯한 꾀죄죄한 민낯에 부스스하게 뻗친 머리를 아무렇게나 밀어올리고 온 그 누구라도 그곳에서는 모두다 환영이었다. 이질감 따위는 없었다. 불쑥 그 곳이 생각나는 까닭은 그곳 천정에서부터 바닥까지 빼곡하게 들어차있던 책들이 문학(고전)일 수는 없었을까, 라는 개인적인 의구심과 안타까움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특별한 서재에서 출간된 책 “파워풀한 교과서 세계문학 토론”은 이제 막 새롭게 고전을 접하는 학생들에게 고전 읽기의 진수와 더불어 고전을 통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삶의 보편적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토론의 형식을 빌려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끄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책을 단순히 고전을 다루는 문학서적을 살펴보는 관점에서만 볼 것인지, 아니면 토론의 방법과 예시를 제안하는 성격으로 볼 것인지 어느 쪽의 더 집중을 해서 읽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아마도 독자의 몫이 크지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두 마리의 토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책이다.

 

책은 먼저 ‘세계사를 배우며 읽는 세계고전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독자들을 찾는다. 구성면에서 11단계를 거치고 있는데 이 구성의 과정이 책의 단단한 맥을 받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급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먼저 ‘1작품 선정 이유’를 언급한다. ‘2작가와의 만남’과 ‘3시대사 연표’를 통해 비슷한 시대와 동시대에 있었던 세계사와 동양사의 크고작은 사건들을 비교할 수 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4작품 속 세계사 공부,’ ‘5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 사전’, ‘6작품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세계사 인물 사전’등도 꼼꼼하게 기술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구성과 목차는 작품과 연계되어 있는 세계사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반면에 다음에 소개하고 있는 목차는 토론이라는 형식에 맞춰 들여다보며 작품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목적성에 더 많은 중점을 할애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어서 구성 7부터 더 살펴보자. 7단계의 구성은 ‘등장인물 소개’, ‘8은 쟁점 찾기’, ‘9는 토론 요약서’, ‘10. 11찬성과 반대 측 입론서’로 정리하고 있다. 모두 10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중 5권이 영국작가의 작품이며, 그 외 미국 작가의 작품이 2권, 프랑스, 노르웨이 체코 순이다. 텍스트는 우리가 익히 들어 친숙한 작품으로 구성했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 섹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과 같은 소설을 선두로 올리버 트위스트, 인형의 집, 카프카의 변신과,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훼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등등 인지도가 있는 작품으로 구성했음을 알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 세계사 측면에서 바라보는 작가와 작품 소개를 담고 있는 앞부분이 더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단순히 작품의 소개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보다 폭 넓고 세밀하게 들어가는 깊이 있는 해설은, 책이 지니는 진정성에 큰 힘을 더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동일 작가에 한해서 중복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과, 비슷한 시대 혹은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동일한 사상에 대해 여러 번 재차 언급되고 있는 용어와 인물들에 대한 소개에 대해서는, 이러한 요소와 부분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한 반복학습 차원의 순수한 배려 정도로 받아들이려고 생각중이다.

 

더불어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이 책의 가치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보자. 이번 책을 토론을 위한 배경총서 쯤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때, 읽는 이는 책을 통해 작품 안에서 토론을 위한 쟁점을 발췌하고, 찬과 반을 나누어 각각의 근거를 제시하는 토론과정을 간접적으로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셈이다. 어떤 작품에서 어떤 쟁점을 찾아내는가는 작품 분석의 경험치와 각자의 이해도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겠지만, 책이 제시하고 있는 쟁점들을 따라가다보면 지루하지 않는 꽉 들어찬 수업을 진행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독서수준을 파악하는 게 먼저일 듯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