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하는 십대를 위한 경제 문학 융합 콘서트
제목이 좀 길다. 그래도 제목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기특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경제와 문학을 동일선상에서 함께 들여다본다는 기획의도도 신선함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일선 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는 저자 태지원은 여는 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궁금증의 답을 경제학에서 찾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p6
생각해보면 내게도 특히나 경제는 정치보다도 어려운 분야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전공을 하거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 어떤 학문도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오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유독 경제학만큼 더 어렵고 따분한 분야도 없을 것 같다는 식의 이 고약하고 안일한 선입관에서 벗어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나는 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하나하나 짚어보자. 책은 딱딱하지 않게 흥미를 유발하도록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처음 품었던 선입견의 절반 이상을 기꺼이 홀가분하게 내려놓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듯 구어체로 서술되어있는 문장들은 읽는 이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책이 갖는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은 각각의 문학 작품을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소개와 간략한 줄거리도 언급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백미는 각각의 작품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제학 개념을 깨알같이 찾아낸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경제 개념이라니! 아, 갑자기 뇌세포가 일순간 정지되고 혀가 빠르게 입천장으로 말려 올라가 붙어버릴 것 같은 긴장감이 온몸을 휩싸고 돈다. 그러나 서둘러 긴장하지는 말자. 태지원의 책은 섣불리 긴장부터 해버리는 우리의 긴장감을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것 또한 이 책의 강점이다.
어느 누가 황순의 소나기를 통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논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고 있으면 누구나 자연적으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체감과 그에 따른 유한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 같더란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나 이름도 길고 표현도 어려운 경제학적 개념과 법칙을,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많은 경제 논리나, 개념과 법칙 따위가 전혀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황순원의 소나기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제일 앞에 편집한 것도 메리트를 올려주는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전체적 구성을 본다면 소설에서 ‘1.만나는 경제적 선택의 비밀’, ‘2.소설로 살펴본 교환과 거래의 원리’, ‘3.소설 뒤에 숨은 역사 속 경제’, ‘4.소설로 비춰 보는 현실 경제의 모습’으로 나누어진다.
일일이 거론할 수 없기에 몇 가지만 소개해보고 싶은데 먼저 소나기를 언급했으니 기억에 남는 다음 이야기를 해보자. 모비딕과 매몰비용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언급하려한다. 매몰비용이란 무엇일까. 지나가버린 혹은 잃어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사라져버린 비용이라고 한다. 저자는 신기하게도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라는 고전 소설에서 ‘매몰비용’이라는 듣기에도 낯선 경제개념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경제 수업에서 늘 들었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다시 문학작품 ‘허생전’에서 찾아내고 있는 부분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내용을 고전소설 ‘토끼전’을 통해 다시 새롭게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평소 책을 좋아했던 저자만의 문학적인 재치가 경제학이라는 장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라는 인상을 받는다.
반면 조지오웰의 작 ‘동물농장’을 통해 ‘계획경제’를 언급하는 부분과, 한국문학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염상섭의 작품에서 제시하는 ‘청년 실업문제’를 상기시키는 부분, 또 우리가 흔히 ‘난, 쏘, 공’. 이라 부르던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성장과 분배’라는 어려운 화두를 이어가고 있는 부분에서는 우리 모두가 여전히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을 다시금 재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라는 학문? 혹은 현실에서 직접 접하는 개념과 논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보다. 그걸 이제야 반듯하게 이해했단 말인가. 경제란, 그 주변에 정치, 사회적인 요소와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존재로서의 개념으로 이제라도 다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그렇게 혹은 이렇게 학교 교문을 나선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새롭게 경제학을 만나게 되는가 싶다.
저자는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현재의 우리 시대를 걱정하고, 나아가서는 어떤 긍정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때문에 그가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는 ‘붉은 여왕 효과’는 그 의미가 남달리 크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책이 지니는 근본적인 목적은 경제학의 대중화 혹은 친숙화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렵지 않게 스토리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책이기에 거부감 없이 잘 읽힐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