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of Language (Paperback, 3 ed)
Alex Miller / Taylor & Francis Ltd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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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밀한 내용으로 토대부터 탄탄하게 다져나가기 시작해 논증적인 구성과 서술을 통해 심화된 주제들로 진행하는 숙련자용 교재이다. 크게 세 파트로 나눠보자면, 우선 1~4장은 언어철학적 기초사안을 도입함과 더불어, 프레게에서 시작해 크립키의 관점 일부와 콰인(후술하겠지만 의미 개념에 회의적인 콰인 입장의 특성으로 인해 4장은 두번째 파트에도 속한다)에 이르기까지 의미에 관한 철학적 이론들을 대강 역사 순으로 살펴본다. 더욱 초보적인 수준의 여타 언어철학서적에서도 소개되는 이론들 중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들의 핵심을 간추려 다소 해설적으로 제시하기에, 일견 이 파트는 초심자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1장 전체와 2장 초입에서부터 프레게 식의 전문적인 개념장치들과 이론적 프레임을 명시적으로 도입하고는 이를 활용하여 의미에 관한 비형식적 직관을 엄밀한 형태의 논제로 정식화하면서 논의의 토대를 다진 뒤, 이렇게 정식화된 개념, 논제, 원리들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균일하게 활용하면서 여타 인물들의 입장에 관한 논의를 전개한다. 프레게 철학은 물론이요 언어철학 전반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막연한 윤곽이라도 파악해놓지 않은 쌩 초보자라면, 전문가의 해설과 지도가 없이 혼자 내용을 따라가기 무척 벅찰 듯하다. 반면 그런 배경지식을 갖췄거나 적어도 언어철학적 논의를 생소하게 여기지 않을 만한 수준을 갖춘 독자라면, 파편적이거나 미비하게 얻어 놨던 지식들을 다시 기초부터 탄탄하고 엄밀하게 갈무리해 나가면서 전반적인 그림의 틈을 메꾸고 짜맞추는 데 활용하기에 아주 효과적이다. 


2. 초판 서문에서 저자는 20세기 분석적 언어철학의 핵심 테마로서 의미의 체계성과 의미 회의론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파트가 주로 의미론적 체계성에 초점을 맞춘 이론들을 다뤘다면, 두 번째 파트인 4, 5, 6장은 의미 회의론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을 논증적으로 재구성 및 평가한다. 특히 5장과 6장은 저자 스스로도 칭하듯 이 책의 하이라이트로서, 5장에서는 크립키가 해석한 비트겐슈타인식의 의미 회의론(소위 크립켄슈타인의 규칙 따르기 역설)과 그에 대한 회의적 해결책skeptical solution들을, 6장에서는 KW식 회의론에 응하는 또 다른 해결책으로서 의미에 관한 사실을 구해내기 위한 실질적straight 해결책들을 각각 살펴본다. 크립키가 해석해낸 비트식 회의론 논증 자체가 무척 복잡하고 오묘한 데다가, 여타 초보적 언어철학 서적들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다양한 이론들이 논증적 수준에서 높은 강도로 치밀하게 논구되고, 다뤄지는 이론들 특성에 따라 논의가 인식론적, 메타윤리적, 심리철학적, 형이상학적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바, 이 책에서 가장 난도 높고 빡빡한 파트라 할 수 있겠다. 당연히 초심자는 혼자 읽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반대로 이 주제에 강한 흥미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좋은 자료일 수 있겠다. 여타 서적들에서는 후기 비트의 입장이나 크립키식 규칙따르기 역설의 핵심 사안만이 간략히 해설되는 편이고 그마저도 비유적이고 이미지적인 언어로 제시되기에, 이해가 다소 미진하고 논의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는 해당 쟁점을 철학적으로 정석적인 논증형태로 이해해 볼 수 있는 동시에 그에 대한 비교적 최근의 논의성과들도 접할 수 있으니, 저자가 자부하는 어조로 책의 핵심파트라 자칭하기에 걸맞는 독보성을 확보해준다 하겠다. 


3. 세 번째 파트인 7, 8, 9장은 의미 회의론을 떠나 다시 의미론적 체계성 내지 의미의 본성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사안들을 다룬다. 화자의도 및 언어사용과 의미론적 의미 간의 관계에 관한 논의들, 데이빗슨식 의미이론과 그에 활용되는 타르스키식 진리론, 의미의 본성에 관한 이론이 형이상학적 실재론/반실재론 논의에 대해 갖는 함축을 각각 살펴본다. 7장은 순수 화용론적인 내용보다는 언어사용과 의미이론 간 관계에 관한 철학적 논증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편이어서, 화용론의 철학적 측면이나 일상언어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이는 적절히 소화해내기 어렵다. 반대로 8장은 해설적인 비중이 훨씬 많긴 하지만 데이빗슨식 의미이론의 개요와 그에 활용되는 타르스키 이론 자체가 워낙 테크니컬한 주제이기에 이 역시 유관 논의에 생소하다면 읽는 난도가 높을 것이다. 9장은 저자 스스로 시인하듯 상당히 개괄적인 윤곽만이 제시되기에 앞 장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해가 미진할 수 있겠다. 더밋식 반실재론의 핵심 착상, 실재론에 대한 모종의 만족조건으로서 C. 라이트가 더밋의 착상을 발전시켜 제시하는 객관성의 등급들, 파트2에서 살펴본 KW식의 구성적인 의미 회의론이 실재론/반실재론에 가져오는 귀결 등을 논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9장의 핵심 내용들은 건지는 셈이다. 


4. 이렇듯 엄밀한 서술과 강도 높은 논증들로 구성되어 의미론적 체계성과 의미 회의론이라는 두 중심축에 천착하기에, 언어철학적 기초사안이나 개별 철학자들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평이하게 해설하는 여타 언어철학 입문서들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는 심화교재의 느낌이 강하다. 3판이 거듭되기까지 꼬박꼬박 추가된 서언과 감사의 말만 보아도, 저자가 각종 강의나 학회참석, 연구기간 내 논문집필 등의 왕성한 학계활동을 거치면서, 이 책을 아주 본격적이고 내실 있는 교재로 완성시키고자 한 동시에 본인의 연구 역량이 반영된 저술의 모습도 갖추게끔 도모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자연히 책을 소화하는 데에 요구되는 바도 넓어서, 일반적인 분석철학사는 물론이요 언어철학 전반에 대한 다소의 배경지식, 그에 더해 논리(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메타윤리, 심리철학 등의 개별 하위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감각 정도를 갖춰 놔야, 길을 잃거나 흥미를 잃지 않고 논의를 따라갈 수 있겠다. 게다가 책의 핵심파트인 의미 회의론에 강한 흥미를 느끼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굳이 책 전체를 통독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터이니, 고전적이고 기초적인 이론들에 대한 그림만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반면 국내 문헌을 통해 기초적인 사안들에는 충분히 숙달해 있으되 좀 더 탄탄하고 심화된 이해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는 지점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 책 고유의 주제적 특성이나 구성적 엄밀함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미진하다 여겨졌던 부분을 영리하게 메꿀 수 있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 


5. 대학 시절 언어철학을 수강할 적에 규칙 따르기 파트의 강의자료는 당시 강의교재가 아니라 교수님이 이 책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별도로 꾸며졌었다. 책의 존재를 마음에만 담아두었다가, 언어철학 하나 읽을 때가 됐다 싶어 작년 연말에 무턱대고 주문하여 읽어나갔다. 책의 고유한 특성도 간파해내지 못한 채 다 아는 내용이라 자부하며 3장까지는 훌훌 신나게 읽어나가다가, 4장 후반부 콰인에 대한 에번스나 라이트의 비판부터 슬슬 낌새가 이상하더니, 결국 5장부터는 전연 이해하지도 못하고 글자만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실망한 채로 마지막 장을 덮어두었다가, 10개월이 지나 미뤄논 숙제 다시 건드려 보자는 다짐짓으로 초반부터 정신을 차리고 차근차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초독 시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 자부했던 앞부분에서마저도, 내가 알던(혹은 안다고 잘못 생각했던) 것들을 저자의 서술과 구성을 제대로 따라가며 전면적으로 재배치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근래 솜즈 책을 4회차 재독할 때도 절실하게 느껴지더니, 텍스트를 대하는 내 독서태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끔 만드는 경험을 무장 자주 하게 되는 듯하다. 그나마 이번엔 2회독 만에 이를 깨달았으니, 발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구나 하고 위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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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 ㅣ 고려대학교출판부 인문사회과학총서
여훈근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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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구성, 서술 및 논의의 방식과 깊이, 좋다고 할 수 없는 문장력, 더 나은 대안저서의 존재 등 많은 면에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진리론이 다뤄지는 1장을 제외하면 모든 장들이 기발표된 논문들을 수록한 것이기에, 당연히 단행본으로서는 통일성이 떨어지는 구성과 모양새이다. 전반적인 구성이 파편적이더라도 개별 챕터의 논증이나 해설이 내적으로 탄탄하게 구심을 갖췄다면 읽는 효용이 있겠으나, 각 장의 내용마저도 과거 논의나 연구성과를 그저 파편적, 사후적, 요약적으로 보고하는 식이어서, 해당 주제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개별사안들을 일별하는 데에만 그칠 뿐 철학적, 이론적, 논증적으로 확장성과 깊이감 있는 이해를 도모하기 어렵다. 이 책을 위해 새로이 쓰였다는 1장마저도 커크햄, 수잔 하크, A. C. 그렐링 등의 2차저술 내용을 파편적으로 요약 및 제시하는 수준이다. 철학적으로 쟁점이 될 만한 사안에 대한 논증(그마저도 저자 고유의 논평이 아닌 여타 학자들의 논증)이 간혹 제시될 때에도, 그 구성과 도출과정이 추정상 빈약하거나 도약이 있거나 맥락적으로 잘못된 듯한 추론과정을 노정하고 있어서, 결국 해당 쟁점이 어떤 근거에서 어떻게 해결된다는 건지 유의미하게 이해할 수 없다. 


2, 가령 타르스키의 의미론적 진리론에 가해지는 비판을 살펴보는 대목인 105쪽엔 이런 단락이 나온다:


 (가) 타르스키는 의미론적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참이다"라든가 "거짓이다"를 언어의 등급에 따라 상대화시키고 있다. 그는 문장들에 대한 참을 정의하였으며 동일한 문장이라 하더라도 상이한 언어에서는 상이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상이한 언어에서 상이한 진리값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언어 L에서 참"이 항상 언어 L이 아니라, 언어 L의 메타언어의 술어라는 주장을 독립적으로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못된다는 것이다. 


(두 번쨰 문장은 후술할 '이론가 a는 명제 S라는 것이다' 꼴의 비문 내지 어색한 구문이다.) 언뜻 읽어서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문제인 이유가 무엇이라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지막 문장엔 참조된 수잔 하크의 저서와 그 원서 쪽수가 각주로 처리되어있는데, 한국어 역본(김효명 譯, "논리철학", 종로서적, 1984.)에서 해당 대목으로 추정되는 부분(148-9쪽)을 찾아보면 저자가 하크의 해설을 오독했거나 최소한 맥락에 맞지 않게 활용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나) 타르스키는 참이 어떤 언어에 상대적으로만 정의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타르스키가 정의한 것은 '참이다'가 아니라 'O에서 참이다'란 것이다. 이렇게 정의했음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정의는 문장(명제와 같은 언어 외적인 것과는 다르게 구문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에 적용되어야 하며, 동일한 문장이 한 언어에서는 참이지만 다른 언어에서는 거짓 또는 무의미할 수가 있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요, 대상언어, 메타언어, 메타-메타언어 등으로 언어를 위계적으로 구분하여야만 의미론적 역설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이다. 


즉 타르스키가 진리술어를 상대화한 이유는 (i) 진리술어를 문장의 속성으로 귀속시키고자 하였는데, 문장 자체의 의미론적 작동방식이 언어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점, (ii) 거짓말쟁이 역설과 같은 의미론적 역설을 피하기 위한 메타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 두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이 인용문의 전후맥락은 타르스키의 진리정의가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떤 점에서 진리 대응론의 핵심 착상을 다소 보유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와 관련된 포퍼의 논평을 살펴보는 대목이다. 저자가 (가)에서 정리한 바와는 달리, 문장의 의미론적 작동방식의 상대성이 진리술어를 상대화시키는 데에 이론적으로 독립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식의 논평이나 이를 결론으로 도출하는 구체적인 논증은 등장하지 않는다. 혹여 우호적으로 해석해서 저자가 하크의 서술을 오독한 것이 아니라고 판정한다 쳐도, 각주처리는 (가)의 두 번째 문장에 한 뒤 마지막 문장의 논평에 대해서는 저자 고유의 논증을 별도로 제시했어야 한다. 105쪽의 전후 맥락 어디에서도 그런 논증이나 논증의 근거가 될 법한 전제에 대한 암시는 일절 제시되지 않는다. 

 해설이든 논증이든 이런 식의 빈약한, 혹은 맥락상 부적합한 서술들이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되다보니, 독자는 애당초 홀로 유의미하게 재구성할 수 없을 법한 내용을 추측해 보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내가 모르긴 하지만 유의미한 뭔가가 있겠지' 하는 잘못된 착각만 지닌 채 그냥 넘어가버리게 된다. 그러니 완독을 꾸역꾸역 하고 나서도 최종적으로는 깊이 있는 소득이 없는 독서가 되어버린다.


3. 내용이나 서술 상의 이러한 단점은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저자의 문장력이나 구문실력과 결합해 텍스트로서 읽는 효용마저 현저히 떨어뜨린다. 대표적인 것으로 앞서도 언급한바, 임의의 학자 x와 이론적 명제 P에 대해, 당면 맥락에서 결정적인 사안으로서 x의 주장 S를 강조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x가 S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x에 따르면 S라는 것이다', 'x가 주장하는 요지는 S라는 것이다' 등으로 써야 할 곳에서, 'x는 S라는 것이다'와 같은 비문이 책 전반에 걸쳐 계속된다. 또한 내용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전술했듯 파편적이고 단속적이다 보니, '따라서,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등의 접속사들도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글의 흐름을 조성하기보다, 연결성 없는 내용들을 적절한 맥락 없이 병렬적으로 이어붙이는 데에만 쓰인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들의 일부를 더욱 평이하고 매끄럽게, 혹은 심층적으로 능숙하게 다루는 여타 저서들이 다소 있다*는 점에서도, 절판되기까지 한 이 책을 굳이 선택할 필요성은 더욱 없어 보인다. 평점에 별 하나를 더 보태게 된 사소한 장점을 굳이 하나 꼽자면, 논문이 아닌 여타 단행본에서는 보기 힘든 다치논리, 시제논리, 규범논리 등의 일부 형식체계 및 그 의미론이 개관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다만 개인적으로 배경지식이 부족해 해당 부분들은 거의 건너뛰다시피 훑기만 했다).


* 야마오카 에쓰로, "거짓말쟁이의 역설", 영림카디널, 2004(절판).

  A. C. 그렐링, "철학적 논리학", 북코리아, 2023.

  수잔 하크, "논리철학", 종로서적, 1984(절판).

  송하석, "거짓말쟁이 역설에 관한 탐구", 아카넷,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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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수학입니까? - 자연수, 0, 음수, 분수 그리고 사칙연산의 논리
데이비드 벌린스키 지음, 이경아 옮김 / 에이도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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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학의 근본원칙들을 중심으로 자연수론과 그 연산체계 등 초등수학의 논리적 토대를 평이하게 해명하는 교양서로서 신선한 지적 경험을 주긴 하지만, 서술과 구성의 난삽함으로 인해 구매소장까지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원제에서 부제로 붙은 " the beauty and symmetry of absolutely elementary mathematics"에서 시사되듯이, 대수학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토대로 수 체계 및 그 기초적인 연산체계가 논리적으로 증명되는 절차를 평이한 언어로 해설하면서, 초등수학체계의 공시적 발전사와 통시적 완결태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논리적 대칭성이나 항구성, 공리적 완결성 등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작금의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막무가내로 배우고 익혀 일상에서 무리없이 사용하는 초등수학의 기초적인 체계가, 모종의 완전성과 대칭성을 도모하면서 더욱 근본적인 논리적, 대수적 원리에 부합하게끔 정비 및 발전되어 온 체계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바, 수학의 지루한 기계적 연산성 이면의 기초론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분명 일독해볼 가치는 있는 교양서이다. 가령 자체로는 무의미한 기호를 그에 대해 명시된 원리나 규칙에 따라 형식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우리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동시에 형식적으로도 올바른 수학적 결과가 어떻게 일관적으로 도출될 수 있게 되는가 하는 형식주의적 기조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학창시절 배운 수학지식을 다 잊어먹은 일반 성인독자층은 물론이요 수학에 즐거움을 전연 못 느끼는 중고등학생에게도 새로운 지적 자극과 경험을 안겨다줄 수 있겠다. 

 하지만 전반적인 서술과 챕터 구성 일부가 대체로 난삽하게 여겨진다는 점이 텍스트로서는 큰 단점이다. 핵심 논의를 이어가다가도 다소 뜬금없는 일화나 희한한 수사적 언술을 맥락상 부자연스럽게 덧붙인다든가, 아벨라르, 드 모르건, 코발레프스키 등 한 챕터 전체가 개별 인물들과 관련된 에피소드에 할애되되 그 내용이 여타 장들의 본격적인 논의들과 별 접점이 없는 일화들로만 꾸며져 있다든가 하는 식이다. 기등록된 100자평에서 "전반적으로 헛소리"라는 평이 나온 이유는 이런 식의 난삽함이나 매끄럽지 못한 서술스타일에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근자에 동 저자의 간략한 수학사 책을 만족스럽게 읽어놔서 이 책에도 다소 기대를 했었는데, 서술스타일이나 논의방식이 매끄럽지 못해 <상대적으로> 조금 실망스런 독서였다. 다만 앞서 말했듯 책의 벼리가 되는 논의 자체는 분명 유익하고 유의미한 지적 경험을 주기 때문에, 호기심에 굳이 일독하고자 한다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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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xford Handbook of Philosophy of Mathematics and Logic (Paperback)
Stewart Shapiro / Oxford Univ Pr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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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적으로 방대하고 질적으로 수준이 높아 읽는 피로도가 매우 높지만, 전반적으로 균형잡힌 구성과 개별 글들의 자체적인 탁월함 덕택에 끈기있게 읽으면 많은 소득과 지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고급 학술서이다. 편자 서언에서 밝히듯 크게 다섯 파트로 대별될 수 있는바, 칸트, 밀, 논리실증주의,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수학철학적 입장 등을 살펴보는 다소 역사적인 파트(2-4章),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big three로 일컬어지는 논리주의, 형식주의, 직관주의를 심화된 관점에서 고찰하는 파트(5-11), 20세기 후반에 활발히 논의된 수학에서의 자연주의, 유명론, 구조주의의 여러 버전들에 할애된 파트(12-18), 다소 유별되는 주제로서 수학에서의 가술주의(可述主義)predicativism와 수학의 적용가능성 개념을 살펴보는 파트(19, 20), 논리적 귀결 개념, 적합논리, 고계논리 등의 주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리철학적 논쟁을 살펴보는 파트(21-26) 등이며, 1장은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한 전반적인 서론 격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챕터별 각 글들의 서술방식도 다양하여 해설적, 논증적, 비판적, 구성적, 역사적, 비교대조적 방식 등을 취하는 다양한 성격의 글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양적인 방대함과 다종성에서 느껴질 수 있는 압박감을 탁월하고 매끄러운 구성과 편집력으로 잘 상쇄한 듯하다. 책 전반적인 차원에서든 개별 글들 차원에서든 내용의 양과 텍스트로서의 서술 수준을 통일감 있는 구도 하에서 균질화했다는 느낌이 초독 시부터 들었다. 또한 역시 서문에서 밝히듯 (일부 파트나 주제를 제외하면) 각 입장이나 논제에 대해 우호적인 글과 비판적인 글이 최소한 한 편씩 할당되어 있어, 주제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기를 수 있으면서도 한 편의 글 내에서 난삽함이나 혼란을 가중할 여지는 최소화되어 있다 하겠다. 내용이나 주제 자체가 지니는 난이도를 차치하면 이렇듯 적어도 텍스트로서 읽는 피로감은 최소화된 학술자료의 모양새를 도모한 기도가 엿보이는바, 편집자인 샤피로의 기획력과 편집력이 빛을 발휘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출간 이전에 그가 저술한 수학철학 입문서의 구성이, 가술주의 및 적용가능성 파트와 논리철학 파트를 제외하면 이 책의 구성과 거의 유사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글에서 필진들이 초두나 말미에서 샤피로의 논평에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인 걸 보면, 이런 추측이 마냥 억측은 아닐 것이다. 
 이런 탁월한 편집력 하에서 수학철학 분야의 A급 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한바 각 글의 자체적인 완성도나 수준 및 논증적 참신함 등도 매우 높으니, 강도높은 배경지식과 더불어 끈기있는 독서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많은 소득을 올림과 함께 수학철학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도 십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분량과 난이도의 자료집으로 퍼트넘과 베나세납이 편집한 "수학철학 선집" 역본을 서너번 열심히 재독한 바 있는데, 시기상으로도 다뤄지는 주제 차원에서도 이 책이 그 책에 대한 보완물이나 후속격의 텍스트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퍼트넘-베나세랍의 책은 19세기 인물인 프레게부터 괴델 등에 이르는 학자들이 쓴 비교적 고전적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83년의 개정을 통해 G. 불로스나 C. 파슨스, H. 왕 등이 70년대에 발표한 글들도 추가적으로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여하간 주제 면에서는 20세기 초의 집합론적 구상과 발전사안 등으로 한정된 형국이다. 반면 이 책은 앞의 책에서 다뤄지는 주제들을 일부 포함하는 동시에 더욱 최신성을 갖춘 주제들을 당연히 다루고 있다. 수록된 글의 필진들만 봐도 이 책의 대부분 저자들은 수학철학과 수학기초론의 고전적인 시기로부터 한두세대 이후 시점에 활동한 인물들이다(타계한 지 십 년 된 S. 페퍼먼이 1928년 생으로 최연장자이고, 대부분의 필진들이 4-50년대 생이며, 그 이름이 Rayo함수로도 대중에 꽤 알려져 있는 아구스틴 라요가 1973년생으로 최연소이다). 기획 면에서도 차이가 큰데, 앞의 책이 뚜렷한 접점이 없이 기발표된 논문들 모음집인 데 반해, 이 책은 이 기획을 위해 자체적으로 새로 쓰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어 훨씬 통일감과 안정감을 갖춘 자료집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추천컨대, 역본의 번역상태가 매우 안 좋긴 하지만 퍼트넘-베나세랍의 책을 여러번 재독해가면서 샤피로의 "수학에 관해 생각하기" 역본으로 추가적인 발전사안들에 대한 감을 꾸준히 키워간다면, 미구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물론 기초논리, 메타논리, 집합론이나 모델론과 같은 수학 기초론 등에 대한 초보적인 감이라도 기본적으로 익혀놓고 있어야 한다는 점 역시 필수적인 예비사안이다). 




2. 조금이라도 가닥이 잡히거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글들을 간략히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2-1. 스튜어트 샤피로, 1장, '수학과 그 논리에 대한 철학'
전술했듯 책 전반에 대한 서론 격의 글로서 책에서 다뤄지는 모든 주제들을 개괄해준다. 말미에서 밝히고 있듯이 "생각하기"의 압축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학철학 및 수학기초론 분야에서 그간 이뤄져온 발전사안을 매끄럽고 평이하게 요약해내었다. 


2-2. 리사 샤벨, 2장, '선험성과 적용: 근대시기의 수학철학'
수학의 선험성과 적용가능성을 중점으로 데까르뜨, 뉴튼, 라이프니쯔의 수학철학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선험적 관념론 기획이 수학의 두 측면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칸트의 논증을 해설한다.


2-3. 아구스틴 라요, 7장, '논리주의 再考'
논리주의를 언어-논리주의, 귀결-논리주의, 진리-논리주의로 대별하고 뒤의 둘을 다시 의미론적/구문론적 버전으로 각각 나누어, 총 다섯 가지 형태의 논리주의를 평가한다. 배후논리가 1계인지 2계인지에 따라 각 형태들 간 함축관계를 논증적으로 명료하게 정리해내고, 최소적합성이나 'recarving'(마땅한 역어를 아직 선정하지 못했다) 등의 개념을 통해 수학에 대한 논리주의적 번역에 가해질 수 있는 제한사항과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고찰한다. 명료한 비판적 관점과 더불어 저자 고유의 구성적 글쓰기가 돋보여 매우 흥미롭게 읽으면서, 논리주의에 대해 이런 차원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에 감탄하였다. 


2-4. 마이클 데틀렙슨, 8장, '형식주의'
고전적인 소위 빅 쓰리 중 유일하게 한 장만이 할당되었지만, 보통 30쪽 내외에 이르는 여타 글들과 달리 80쪽이라는 분량으로 균형을 맞추었다. 그런 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내용을 통해 형식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핵심 착상들을 다양하게 추적하되, 이를 저자가 생각하는바 형식주의의 본질에 대한 특정 관점 하에서 갈무리하여 제시한다. 실린 글들 중 가장 역사적인 성격이 짙은 편.


2-5. 칼 포시, 9장, '직관주의와 철학'
직관주의의 교주 브라우어 및 그의 사도들인 A. 하이팅과 M. 더밋의 직관주의적 핵심 착상들을 두루 살펴본다. 해설적 성격이 짙어 평이하게 읽히지만, 많은 내용을 다루려다 보니 개별 사안들에 대한 서술이 짧아 아쉬움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말미에서 칸트의 이율배반에 대한 직관주의적 해소법이 소묘된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2-6. D. C. 맥카티, 10장, '수학에서의 직관주의'
순수수학적인 사안들이 많이 등장하고 모든 논의가 자연언어와 논리식들이 혼합된 준형식적 증명들로 이뤄져 있어 읽기는 매우 어렵지만, 실제 수학적 활동에서 직관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었다. S. 쾨르너의 "수학철학"에서 "직관주의 수학철학은 그저 직관주의 수학을 직접 하는 것"이라는 기조의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런 기조를 저변에 둔채 직관주의가 수학에서 실제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로서의 논리체계 뿐만 아니라, 기초산술학, 실수론, 모형과 양상성, 위상수학과 토포스이론 등 실제 수학분야에서 직관주의적 실천행위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를 다양하고도 상세하게 실연해보인다. 다만 직관주의가 수학을 결코 빈약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마지막의 논평은 논증적으로 이해하질 못하였다. 


2-7. 로이 쿡, 11장, '직관주의 再考'
자연언어의 귀결관계에 대한 모형화로서의 논리라는 관점에 입각하여, 논리상항과 귀결관계에 대한 대수적 구조로서의 논리체계들 간에 모종의 모호한 연속성을 부여하는 논증을 구성한 뒤, 이를 통해 직관주의 논리와 고전논리 간 구분선을 모호하게 흐림으로써, 최종적으로 논리학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을 소묘해보인다. 여러 논평과 비교, 정의와 원리들을 통한 구성적 논증력이 돋보이는바 매우 흥미롭게 읽은 장들 중 하나이다. 


2-8. 마이클 D. 레스닉, 12장, '콰인과 믿음의 망'
콰인 식 자연주의와 그에 따른 수학철학적 귀결, 이를 뒷밭침하는 필수불가결성 논증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콰인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과학철학적 논제들을 수학철학과 자연스럽게 결부시켜 평이하게 해설한다. 


2-9. 찰스 치하라, 15장, '유명론'
존 버지스와 기디언 로젠이 수학에서의 유명론과 실재론을 비교평가하면서 실재론에 우호적인 입장에서 공저한 저서 "대상 없는 학과"에 대한 짤막한 해설 및 논평에서 시작해, 버지스와 로젠이 유명론에 가하는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한 뒤, 치하라 자신의 구성가능성 양화사를 도입하여 수학언어를 유명론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간략히 소묘한다. 간결한 논증적 서술과 구성적 실례를 통해 전체 요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난다. 


2-10. 존 버지스, 기디언 로젠, 16장, '유명론 再考'
수학적 유명론의 전반적인 논증구조를 분해하여 이로부터 자연주의적인 개정적 버전, 소격화(疎隔化)된 개정적alienated revisionary 버전, 내용-/태도-해석적 버전 등 유명론의 네 가지 형태를 추출해내고, 각 버전에 대해 가능한 반론, 재반론, 최종 평가 등을 논증적으로 차근차근 살펴본 뒤, 마지막엔 스티븐 야블로가 켄들 월턴의 가장(가식, …인 체 하기)makr-believe 개념을 빌어와 구성한 태도-해석적 버전의 유명론을 간략히 소개 및 평가한다.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스타일의 논증적 철학글쓰기가 돋보인다. 


2-11. 제프리 헬먼, 17장, '구조주의'
수학의 기반이 되는 구조가 무엇인지에 따라 구조주의를 집합론적, 독립-보편자적, 범주론적, 양상적 형태로 나누고, 기초론적인 관점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따른 평가지표들을 통해 각 형태들을 평가한 뒤, 최종적으로 각 지표상 단점이 가장 적은 것으로 드러난 범주론적 형태와 양상적 형태의 결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순수수학적인 내용과 기초론적으로 메타적인 논의들이 주를 이루어 명확하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샤피로 식의 실재론적 구조주의와는 색다른 제거주의적 구조주의의 구체적인 형태를 상세히 접할 수 있게 해준 글이었다. 


2-12. 프레이저 맥브라이드, 18장, '구조주의 再考'
(메타논리적 특성으로서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수학적 대상의 존재론적 성격으로서의 불완전성 개념을 중심으로 레스닉 식과 샤피로 식의 구조주의를 각각 해설 및 논평한다. 구조적 동형성이나 동일성 기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 등의 개념이 두 사람의 실재론적 구조주의에서 어떤 식으로 다뤄질 수 있는지 해설한 뒤, 구조주의의 인식론적 동기와 존재론적 지향점 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상충지점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해낸다. 


2-13, S. 샤피로, 21장, '논리적 귀결, 증명론, 모형론'
증명론과 모형론의 기초적인 개념들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증명론적/모형론적 귀결개념과 그 메타적 관계들을 간명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살펴본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샤피로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이고 탁월한 방식으로 글을 참 잘 구성하는 학자이다. 논의에 필요한 사안들을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제시 및 해설해 나간 뒤 앞서 확립된 것들의 총체를 적재적소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민감하거나 쟁점이 될 만한 부분에 이목을 효과적으로 집중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 논전의 장에 자연스럽게 참여토록 이끈다 . 역시 샤피로가 쓴 25장, '고계논리'와 더불어, 어렵긴 하지만 매우 흥미롭게 읽으면서 모형론과 수리/메타논리에 대한 관심을 적극 환기해준 글이다. 


2-14. 다그 프라비츠, 22장,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논리적 귀결'
앞선 샤피로의 글에서처럼 A. Tarski식으로 제시되는바 모형론적 귀결개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학에서 증명이라는 절차의 인식론적 측면을 포착하고자 저자가 정의하는 규준적canonical 증명/논증 개념을 활용하여 고전논리의 논리규칙을 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 전반부의 평가적 논증파트가 무척 세밀하고 복잡하지만,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논리적 귀결개념을 어떻게 다듬어낼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2-15. 닐 테넌트, 23장, '추론의 적합성'
소위 실질함축의 역설을 해소하고자 등장한 적합논리 체계를 저자 고유의 방식으로 수정한 뒤 G. 겐첸의 자연연역체계 및 시퀀트 계산 체계에서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예시해보인다. 역설을 피하기 위해 추론에서의 인식론적 소득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것이 유지되는 누적적 연역절차의 얼개를 확립한 뒤, 이를 구체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한사항으로서 자연연역/시퀀트계산 체계에서의 약화 및 컷 연산 금지조치의 방법론적 정당성을 논하고, 이를 직관주의논리와 고전논리에 적용하여 각 체계를 간략히 재구성해보인다. 저자가 스스로 차별점을 강조하는 앤더슨과 벨납의 적합논리체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여러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에 대한 선지식이 거의 전무해 4회독까지도 논의를 따라가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글이다. 


2-16. J. 버지스, 24장, '적합성은 필요하지 않다'
실질함축의 역설을 방지하고자 하는 적합주의 진영의 주장이 규범적인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인 것인지 논구한 뒤, 역설을 방지하기 위한 세 가지 조치인 약화 금지, 귀결의 이행성 거부, 선언적 삼단논법 거부 각각이 적합논리 진영의 주장과 부합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적합논리를 두고 벌어진 소위 노트르담 형식논리저널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인 만큼, 적합주의 진영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을 간명하게 잘 정리하여 제시한다. 




3. 2년 반이라는 기간에 걸쳐 다섯 번을 재독한 성과는 이 정도이다. 수록된 26편의 글들 중 대강 반 남짓 밖에 이해를 못한 데다가 위 글들 마저도 4-50% 정도 밖에는 이해를 못했으니, 좀 더 만족스런 성적에 도달하자면 앞으로서 서너 번은 더 읽어얄 듯하다. 
 희한하게도 올 초 늦겨울에 코파의 "의미론적 전통"을 5회차 재독했을 때처럼, 이 책도 4회차 재독까지는 의무감에 꾸역꾸역 글자만 읽는 일이 많다가 어째 이번 독서에는 이해의 가닥이 잡히는 부분이 확 늘면서 좀 더 성실하게 꼼꼼히 읽게 되었다. 특히나 그전까지는 읽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던 논리철학 파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확 늘면서, 여타 책들을 뒤적이고 인터넷이나 챗지피티를 들볶아가며 한 문장 한 문단씩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오기가 절로 들었다. 퇴근하고 나서 잠자리 들기 전까지 읽는 두 시간 여 동안 읽어나간 게 고작 세 쪽이었던 날들도 왕왕 있었다. 그 바람에 읽는 기간은 달포 하고도 두 이레가 걸렸으니, 통독에 한 달이 채 안 걸리던 (그러나 이해는 턱없이 미진했던) 초독 시에 비해 읽는 속도는 차츰 더뎌져 온 셈이다. 
 그치만 외적인 강압에 쫓겨 억지로 하는 게 아닌, 스스로가 좋아 흥미를 느껴가며 혼자 해나가는 공부의 묘미는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전문가의 지도나 가르침이 없어 느리고 더디고 막막하지만, 평가나 시험이나 제출해야 할 결과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 그런 막막함이 초조함이나 스트레스로 변모할 일은 없고, 외려 다른 책들을 물색해가며 더 전진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동기로 승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재독으로 모형론이나 메타적인 수리논리에 대한 관심과 갈증이 확 일면서 유관 원서들도 몇 권 발굴하여 미구에 구매하기로 다짐짓하게 되었다. 숙제는 늘어났어도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라, 그 책들도 붙들고 끙끙대며 씨름하고 있을 날들에 기대감이 외려 든다. 지식 면에서도 방향 설정 면에서도 소득이 참 많았던 뿌듯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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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역사 ㅣ 크로노스 총서 20
데이비드 벌린스키 지음, 류주환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어가며 고전수학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적당한 교양서이다 원서 제목에도 ‘역사‘라는 단어가 들어가긴 하지만 정통적인 수학사 서적이라 보긴 어렵고, 고전수학에서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이론이나 개념을 몇 선별하여 그와 얽힌 에피소드적 사건들을 곁들이면서 핵심적인 착상이나 내용을 평이하게 풀어내는 식이다 저자가 철학으로 학위를 받은 이력이 있어서인지 철학적, 자연과학적 의의나 연계점도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간간히 언급하고 있어, 수학적 사안들이 무미건조하게 나열된 통상적인 교양서들과 달리 지적인 자극과 긴장감을 적당히 안겨주면서 텍스트로서 읽는 재미도 느끼게 해준다 수식이나 형식언어는 최대한 배제하며 일상언어 위주로 논의를 이어가기에, 학창시절 배웠던 수학지식을 다 까먹은 일반성인은 물론이요 고등학생 연령의 청소년들도 흥미롭게 즐기며 읽을 수 있겠다 다만 정보의 양으로 보나 질적인 깊이로 보나 구매소장하여 여러번 활용할 만하지는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가볍게 일독하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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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chyoung123 2026-05-16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생겨서 질문드립니다.솔 크립키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 유튜브 ˝논리학당˝ 채널을 통해 명제논리와 1차 술어논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상들로는 완전한 이해가 되는 것 같지 않아서 논리학 서적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공부 순서가 있을까요?

depaysment 2026-05-16 20:24   좋아요 0 | URL
1. 우와! ㅎㅎ 안녕하세요! 질문 맥락으로 추측건대 온라잉이든 오프라인이든 실시간으로 전문가와 상호작용하며 지도받으실 수는 없는 실정에서, 비판적 사고와 논술 류라든가 교양 수준 비형식논리가 아니라 기초 형식논리에 관심하고 계신 것 같네요 사실 이분야는 전문가에게 면대면으로 지도, 교수받으며 연습해나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긴 하지만, 현실 여건이 안된다면 전문교재로 독학하면서 유튜브 등 다른 컨텐츠를 활용해서도 충분히 숙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급하신 채널은 저로선 처음 알았는데 대충 훑어보니 제대로 된 전문가분이 정석적이면서도 알찬 내용들로 영상 구성해서 채널 운영하고 계신 것 같아 저도 관심이 가게 되네요 ㅎㅎ 근데 그것만르로 뭔가 이해가 미진하다고 느껴지신다면, 그리고 아직 초입 단계로서 전문교재를 한 번도 접해보신 적이 없다면, 일단은 유튭영상이나 파편적인 온라인 자료보다는 체계적으로 짜여진 교재나 텍스트를 우선적으로 통독하시며 개념 익히고 숙달해 나가시는 게 가장 좋다는 면에서, 책을 구매하시기로 하신 결심은 아주 좋은 방향설정인 거 같아요 ㅎㅎ


2. 근데 일단 변명조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오래전 대학시절 논리학 강의에서 명제논리와 일부 술어논리만  배워본 게 전문가에게 수학한 경험 전부이고 이후로는 혼자 이런저런 단행본들 뒤적여가며 독학한바, 양적으로도 깊이 측면에서도 전혀 전문가 수준이 아니라서요...ㅎㅎ 그러니 지금 드리는 말씀은 그냥 취미수준 독서에 기반한 간략한 방향제시 정도로만 받아들이신 채, 어떤 텍스트가 되었든 실질적으로는 혼자 열심히 읽고 컨텐츠도 찾아보고 반복숙달하시면서 구체적, 세부적인 방향과 순서는 스스로 차근차근 확립해나가시길 추천드려요 현실적인 논리, 논술 준비라든가 논리학적 지식을 요하는 공인 시험같은 거에 급박하게 대비하시는 게 아니라, 저처럼 취미 차원에서 논리학에 관심하시는 거라면, 체계적이고 정석적인 공부순서나 방향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고 당장은 이해가 안가시는 지점에서 너무 초조해하지도 마시고, 이해가 가면 가는 대로 정리 및 메모해보고 안가면 안가는 대로 언어나 맥락만이라도 머리에 욱여넣으면서,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꾸준히 유관 저서나 자료들을 탐색하고 읽어나가시다보면, ‘아 그때 유튭에서 본 게 이런 얘기였구나‘ 하면서 이해의 결절점들이 자연스레 해소되는 수준에 도달하실 수 있을 거예요 ㅎㅎ 

3. 이런 변명과 대략적인 조언을 전제로 실제 텍스트를 말씀드려보자면 이병덕의 ˝코어논리학˝이랑 최원배의 ˝논리적 사고의 기초˝가 독학하기에도 무리 없는 가장 좋른 선택지인 거 같아요 ㅇㅇ (손병홍의 ˝논리학˝도 옛날부터 눈여겨봐오긴 했는데, 아직 제가 읽어본 바가 없어서 이건 제외...ㅎㅎ) 둘다 번역서가 아니라 국내 전문가가 우리말로 쓴 교재이고, 내용의 양과 질, 연습문제 수준과 다양성, 설명의 난이도나 친절함, 구성의 깔끔함 등 대부분의 평가지표상에서, 개인적으로는 동등한 수준으로 좋은 교재들이라믄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굳이 사소한 차이점을 꼽자면 최원배의 것이 양적으로 약간 더 많은 내용(명제논리 결정절차로서 진라표 방법 이외의 진리나무방법 및 메타논리적 증명 일부)을 담고 있고, 둘 다 논리상항의 도입/제거 규칙을 통한 자연연역법을 채택하되 그 표기방식이 다르다는 것 정도에요 ㅇㅇ 근데 이병덕이 채택한 피치증명법이 개인적으로는 입문자게에 피로ㅛ감이 덜힐 것 같다 생각하는 편이어서, 구매소장하여 반복적르로 활용할 물건으로 둘 중 하나만 꼽자면 이병덕의 것을 최종적으로 추천드립니다! ㅎㅎ

4. 혹여 논리학 초심자이신데 앞의 책들이 너무 전문교재같고 교과서 같아서 약간의 플러스알파가 아쉬우시다면 송용진, ˝수학자가 들려쥬는 진짜 논리 이야기˝ 이거 가볍게 읽독하시면서 워밍업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테크니컬한 교재가 아닌 교양수준 논리학 관련 서적중에서는 이게 가장 재밌고 유익하고 덜 오도적이더라고요 ㅎㅎ (다만 이건 구매소장보다는 빌려서 일별해보시기를 추천!)

5. 여하간, 많은 철학자들이 얘기하듯 논리학(그리고 수학)도 엄연히 하나의 언어인 만큼,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듯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데는 별다른 왕도가 없어 실질적인 반복숙달이 느리지만 빠른 길인 만큼, 너무 초조해하거나 답답해하시지 말고 유관 텍스트나 자료들 꾸준히 접하시면서 논리학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ㅎㅎ 워낙 마이너하고 비인기인 분야라 단행본도 잘 안나오고 하는 마당에, 이렇게 관심사가 겹치는 분을 만나면 반갑고 즐겁고 신나고 그래요 ㅎㅎ 논리핫 연습 안한지 이년 째가 다 돼가는데, 말쓴해주신 채널 시간 날 때 보면서 저도 다시 논리학 연습 많이 해야겠어요 ㅋㅋㅋ 문의답글 주셔서 감사드리고, 모쪼록 공부에 진척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Porchyoung123 2026-05-16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책들부터 시작하여 공부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