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란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여타 많은 복잡한 현상들이 그러하듯이, 언어가 지닌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하는 복잡한 이론을 단숨에 숙달한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극히 어려운 일이다. 물리학과 비교하여 생각해보자. 물리학에서 학생들은 예컨대 평면을 굴러가는 공에 대한 설명모델을 배운다. 그때 공과 평면의 마찰이라든가 공기의 압력과 저항, 공과 평면 표면의 현실적인 결함 등은 이론상 무시된다. [하지만 그러한 추상적인 모델을 숙지하고 나면 여러 변수가 적용된 현실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그 이론을 활용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라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현실적인 사태의 복잡다단함을 굳이 고려하지 않고도, 그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다양한 모델들을 먼저 배우고 그 주요 특징들을 파악해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가 기능하는 방식에 관한 상식적인 생각에 토대를 둔 단순한 언어이론을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이론은 바로 소박한 의미론naive semantics이다. 일단 이 이론을 잘 파악하고 나면 우리는 그 이론을 적절하게 조정해볼 수도 있고 그보다 더욱 진전된 관점에서 언어현상을 전적으로 새롭게 설명하고자 시도해볼 만한 지점에 서게 될 수도 있다. 사실상 작금에 많은 철학자들은 소박한 의미론이 전적으로 틀린completely wrong 이론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소박한 의미론이 잘못된 이론이라면, Newton의 고전 물리학이 잘못된 이론이라는 그러한 의미에서 잘못되었다고 해야 한다. 소박한 의미론은 분명 많은 측면에서 직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하는바 적절한 이론적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대채 왜 소박한 의미론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외의 이론이 요구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소박한 의미론이 실패하는 지점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럼으로써 그 이론보다 더욱 정교한 Frege-Russell 식 이론의 개요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두 인물의 이론은 작금에 고전적 의미론classical semantics 내지 고전적 의미이론classical theory of meaning이라 칭해진다. 이는 각각 2장과 3장의 주제이다.
독자들이 느끼기에 이번 장은 철학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이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언어현상을 설명한다는 목적에 비추었을 때] 그 결실이 매우 적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장에서 도입되는 주요 전문용어들 및 핵심 개념들은 이후 이어지는 장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논의의 기초를 이루는 것들이기에,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장을 읽어나가길 바란다.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소박한 의미론: 단칭용어, 술어, 지시
문장은 단어word들로 만들어진다. 단어들은 여러 문법적 유형grammatical type/calss들 즉 구문론적 범주syntactical category들로 나뉘며, 이에는 각기 다른 의미 범주들 즉 의미론적 범주semantical category들이 대응한다. 전통적인 문법 분류에 따르면 구문론적 범주들로는 고유명사,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정관사와 부정관사, 부사, 전치사, 양화사 등등이 있다. 작금에 현대 언어학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분류법들은 일부 대체되었다. 그러한 분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현대의 언어학이 더욱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인 언어철학적 목적에서는 전통적인 것이든 현대적인 것이든 이러한 문법적인 분류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언어를 그와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어떤 측면에서는 상당히 간략한 방식으로 다룰 것인바, 문장의 진리-조건thruth-condition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아 언어표현들을 구분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개별 단어들은 그 자체 고립된 표현으로서 다뤄지기보다는, 의미를 지닌 언어표현의 일부로서(소위 ‘공의어(共意語)적인(共범주적인)syncategorematic’ 것으로서) 다뤄지는 편이 언어철학적으로 더욱 적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안들이 의미하는 바는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더욱 명확히 이해될 것이다.
단칭용어
다음 두 문장을 보자:
(1) 화성은 붉다.
(2) 화성은 태양을 공전한다.
두 문장 모두 이름name ‘화성’을 포함하고 있다. 언어표현 ‘화성’은 행성 화성의 이름 즉 고유명(固有名)proper name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전자는 후자를 나타내고stand for, 명명(命名)하고name, 짚어내고pick out, 외포(外包)하고denote, 지칭한다designate. 緖論 장에서 우리는 이 모든 관계를 지시refer로 통일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따라서 붉은 먼지로 뒤덮인 현실의 구체적인 행성 화성은 ‘화성’의 지시체referen, 즉 ‘화성’이 지시하는 사물이다. 통상적으로 ‘화성’과 같은 단어들은 단칭용어(單稱用語)singular term라 칭해진다. 이에 소박한 의미론의 원리2naive principle 2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겠다(원리1은 곧이어 도입될 것이다):
(NP2) 단칭용어의 의미는 그 지시체이다.
여기서 ‘단칭용어’를 명확히 정의하고자 하지는 않겠다. 이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직관적인 분류만으로도 단칭용어를 이해하는 데에 충분하다: 우리는 단어들이 사람, 도시, 행성 등과 같은 대상object 즉 특정 개별자(個別者)individual를 나타내는 역할role 내지 기능function을 지닌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언급된 사물들은 다소 확장된 의미에서긴 하지만 어쨌든 ‘대상’의 표준적인 철학적 의미에서 모두 대상이다). 반면 ‘개’는 특정한 하나의 개가 아니라 여러 개들을 나타내기 때문에 단칭용어가 아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2)에 나타나는 ‘태양’ 역시 태양을 지시하는 단칭용어이다. 다음과 같은 표현들 역시 단칭용어에 속한다:
(3) 목성
(4) Charles 왕자의 어머니
(5) 프라하를 관통하는 강
(6) 가장 빠른 포유류
이 중 (3)은 고유명이지만 (4)와 (5)는(고유명을 그 부분으로 갖고 있긴 하더라도) 고유명이 아니다. 이 예들에서 알 수 있듯이 단칭용어는 (3)과 같이 단순simple할 수도 있고(즉 아무런 개별 표현도 그 부분으로서 갖지 않을 수도 있고) (5)와 같이 복합적complex일 수도 있다.
술어Ⅰ: 구문론
문장 (1)과 (2)로부터 단칭용어 ‘화성’을 제거하면 다음을 얻는다:
(7) 은 붉다.
(8) 은 태양을 공전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논리적 의미에서 술어(述語)predicate이다. 일반화하자면 문장에서 단칭용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표현이 술어이다. 이는 술어에 대한 구문론syntax적인 정의로서, 술어의 의미 내지 의미론semantics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았다.
(7)과 (8)을 표기할 때 단칭용어가 제거되고 남은 자리로서 공란(空欄)을 나타내기 위해 밑줄표시가 사용되었다. 이를 대신하여 다음과 같이 그리스 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9) α는 붉다.
(10) β는 태양을 공전한다.
그리스 문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논리학에서 양화문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변항(變項)variable이라든가, ‘2(x+y=2x+2y)’에서처럼 대수학에서 특정되지 않은 값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변수(變數)variable도 아니다. 그리스 문자는 단지 이름이 삽입될 수 있는 공란을 표시할 뿐이다(논리학 강의에서라면 이러한 술어표현과 개방문(開放文)open sentence을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개방문이란 술어처럼 그리스 문자 내지 영문 알파벳으로 표시되는 공란을 포함하고 있는 일련의 언어표현으로서, 그 공란이 적절한 언어표현들로 채워지면 폐쇄문(閉鎖文)closed sentence이 얻어진다). 이렇게 문장에서 단칭용어를 제거함으로써 술어를 얻는 절차를 술어추출predicate extraction이라 칭한다.
(9)나 (10) 같은 술어에는 그 어떤 단칭용어든지 채워질 수 있으며 그 결과 온전한 문장이 얻어진다. 즉 술어표현에 나타나는 그리스 문자를 단칭용어로 대체하면 온전한 문장이 얻어진다. 예컨대 단칭용어 (4)를 술어표현 (10)에 삽입하면 다음 문장이 얻어진다:
(11) Charles 왕자의 어머니는 태양을 공전한다.
이런 기이한 문장을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어쨌든 (11)은 구문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온전한 문장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렸겠지만 술어 (10)은 여전히 단칭용어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단칭용어 ‘화성’을 제거하여 술어 (10)을 추출해냈던 문장 (2)에는 애초에 두 개의 단칭용어가 나타나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 (10)에 남아있는 나머지 단칭용어마저 제거하고 그 빈자리를 다른 그리스 문자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은 술어가 추출된다:
(12) α는 β를 공전한다.
이 표현 역시 술어이다. 다만 (9)는 1-項 술어one-place predicate 또는 단항(單項)술어monadic predicate인 반면 (10)은 2-항 술어two-place predicate 내지 양항(兩項)술어binary predicate이다.
(12)로부터 문장을 구성하기 위해 그리스 문자를 단칭용어들로 채울 수 있다(두 개의 다른 단칭용어로 채워질 수도 있고 동일한 단칭용어가 두 번 사용될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3항 술어 역시 가능하다:
(13) α는 β를 γ에게 주었다.
일반화하여 말하자면, n이 얼마나 크든 상관없이 임의의 유한한 수 n에 대해 n항술어n places predicate가 원리적으로in principle 가능하다.
(10)과 다르게 (12)와 (13)에는, 제거됨으로써 그 이상의 술어가 추출될 수 있는 여타 단칭용어가 없다. 양자는 순수술어pure predicate이다. 순수술어란 단칭용어를 더이상 포함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후 ‘논리적 구문론과 논리적 연산자’ 절에서 도입될 ‘그리고’, ‘또는’ 등과 같은 문장 연결사sentential connective라든가 ‘어떤’, ‘모든’ 등과 같은 양화사quantifier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언어표현이다. 추가적인 언급사항으로, 술어에 관한 우리의 논의에서는 ‘빠르게’ 등과 같은 부사 역시 도외시될 것이다(물론 어떤 술어표현에 부사가 나타난다는 점으로 인해 순수술어로서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사와 연관된 언어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은 작금의 당면 목적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술어에서 그리스 문자가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규칙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온전한 문장을 형성하기 위해 술어표현의 그리스 문자를 이름들로 대체할 때(또는 이후 절에서 드러나듯이 변항으로 대체할 때), 각각의 그리스 문자들은 동일한 이름들(변항들)로 대체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 두 술어는 각기 다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α가 β를 죽였다.
α가 α를 죽였다.
따라서 ‘Jones가 Jones를 죽였다’는 위의 두 술어 모두로부터 얻어질 수 있지만, ‘Jones가 Smith를 죽였다’는 첫 번째 술어로부터만 얻어질 수 있다. [우리가 도입한 규칙에 따르면 전자의 ‘α’와 ‘β’에는 각기 다른 두 단칭용어가 채워질 수도 있고 동일한 단칭용어가 두 번 채워질 수 있으나, 후자의 ‘α’에는 동일한 단칭용어만이 채워져야 한다.] 이러한 사항에는 자살의 개념의 죽인다는 개념에 의해 정의될 수 있는 반면, 죽인다는 개념이 자살의 개념에 의해서는 정의될 수 없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다. [자살을 표현하는 술어 ‘α가 α를 죽인다’는 살해를 표현하는 술어 ‘α가 β를 죽인다’를 함축하지만 그 역은 아니다.]
(1), (2), (11)은 가장 단순한 문장들이다: 즉 하나의 순수술어 및 그 순수술어에 나타나는 그리스 문자 개수만큼의 단칭용어들만을 포함하고 있을 뿐, 그 외의 종류에 속하는 언어표현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그러한 종류의 문장들은 단 하나의 술어만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문장들은 원자문장atomic sentence이라 칭해진다.
원자문장이란 하나의 n-항 술어와 n개의 단칭용어로 구성된 문장이다. |
동사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전통 문법에서는 모든 문장이 하나의 동사(動詞)verb를 가져야 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동사라는 개념은 언어철학적 논의에서는 도무지 무용한 개념이다. 동사란 대체 무엇인가? 예컨대 학교 문법시간에 우리는 (1)에 나타나는 ‘…이다is’가 동사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러한 분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동사란 무엇인가? ‘…이다’라는 단어는 ‘공전한다’라는 단어와 다르게 문자적으로literally는 ‘행위 동사action verb’가 아니다. ‘눈은 하얗다Snow is white’에서는 그 어떤 행위도 나타내어지지 않는다. 그럴진대 ‘…이다’를 動詞라고 규정하는 데에 여하한 의미가 있겠는가?적어도 우리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요점을 벗어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이 단칭용어들만으로는 온전한 문장이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14) 화성 Charles 왕자의 어머니
또한 술어들만으로도 문장이 형성될 수는 없다:
(15) 붉다 공전한다 붉다
(14)와 (15)에 나타나는 단어들은 적절하게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우리는 동사에 대한 문법학적 관점을 차치하고, 앞선 규정에 따라 순수술어의 그리스 문자를 단칭용어들로 올바르게 대체한 일련의 표현들 그리고 오직 그러한 표현들만이 원자문장이라는 관점을 채택한다.
술어Ⅱ: 의미론
단칭용어에 대한 직관적인 생각은 무언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단칭용어는 하나의 대상, 하나의 특정 개별자를 지시함으로써 유의미해진다. 이에 비해 술어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인 생각은 그보다 덜 분명하고 훨씬 다양하다. 다만 다음은 분명한 듯하다: 단칭용어의 의미 즉 대상이란 그것에 관해 무언가가 말해지는 어떤 것what we say things about인 반면, 술어의 의미란 대상에 관해 말해지는 그 무엇what we say about이다. 이는 앞서 제시된 술어의 구문론에도 잘 부합한다: 구문론적으로 말해 (1-항) 술어란 문장에서 하나의 단칭용어가 제거된 뒤 남는 표현이다. 이에 상응하여, 의미론적으로 말해 (1-항) 술어의 의미란 임의의 대상에 유의미하게 귀속될ascribed to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언급할 사항이 있다. 문장 ‘Mars is red’는 하나의 단칭용어와 하나의 술어로 구성된 문장이다. 즉 이 문장에서 ‘red’는 [외견상 문법적으로는 명사처럼 보이지만] ‘Mars’와 다르게 단칭용어가 아닌바 하나의 대상을 나타내거나 하나의 개별자를 지시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red’의 의미론적 역할은, ‘is’와 결합하여 하나의 술어를 형성하고, 개별자 Mars가 여차여차한 대상인지를 그 술어를 통해 말해주는 것이다.1) 이러한 표현을 일반용어general term라 한다. John Stuart Mill의 용어법에 따라 말해보자면, 단칭용어는 그 의미인 대상을 외포(外包)denote하는 반면 일반용어는 대상에 귀속될ascribed to 수 있는 어떤 것을 내포(內包)한다connote[(대상에 귀속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란 정확히 무엇인지는 곧이어 탐구될 것이다)]. 이러한 일반용어들로는 ‘개’, ‘배고프다’, ‘짖다’ 등을 들 수 있다(각각 문법적으로는 명사, 형용사, 동사이다). 우리의 논의에서 일반용어라는 범주 자체는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며, 다만 술어의 부분으로서만 취급될 것이다.
1) 영어에서 ‘red’의 경우 문법적∙구문론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언어표현이 명사와 형용사 양자로 쓰일 수 있다. 본 단락에서 저자는 이러한 문법적 외양으로 인해 그 단어를 술어가 아닌 단칭용어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주의시키고 있는 셈이다. ‘Mars is red’를 보거나 듣는 능숙한 영어 화자는 (특이한 맥락이 아닌 바에야) 그것을 화성이 붉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화성이 붉음 내지 붉은 색과 동일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서론 장에서 도입된 ‘is’에 대한 구분법에 따라 말하자면, 이 문장에서 ‘is’는 동일성 표현의 역할이 아니라, ‘red’와 결합하여 술어가 되는 술어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앞서 도입된 술어추출 방식을 따르자면, 이 문장에서 추출될 순수술어는 ‘α is β’가 아니라 ‘α is red’이다. 요지는 언어표현의 구문론적 외양과 의미론적 역할이 다를 수 있으며, 후자에 근거해서 전자의 범주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시된 문장을 한국어 문장 ‘화성은 붉다’로 번역해버리면, 우리말에서 ‘붉다’가 외견상으로 술어라는 점이 명확하기에,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이러한 구문론(또는 문법)-의미론 간 분기 현상을 적절히 보여주기 어렵다. 이를 보여줄 수 있는 우리말 문장을 들자면, 본문에서 뒤에 나오는 ‘개’가 나타나는 ‘뚜뚜는 개다’를 들 수 있겠다. ‘개’는 문법적으로는 명사이지만, 이 문장에서 그 의미론적 역할은 ‘…이다’와 결합하여 술어가 되는 것인바, 그에 따라 구문론적으로 단칭용어가 아니라 술어표현의 일부라 해야 한다.
술어의 의미론과 연관되는 몇몇 용어법들이 있다. 다시 (1) ‘화성은 붉다’를 예시로 들어보자. 단칭용어 ‘화성’은 화성을 지시하는 반면 술어 ‘α는 붉다’는 화성에 적용된다apply. 실제 사물 화성이 붉기 때문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술어 ‘α는 붉다’는 대상 화성에 대해 참이다is true of[(역으로 그 대상은 그 술어를 참이게 한다)]. 또는 대상 화성은 술어 ‘α는 붉다’를 만족한다satisfy[(역으로 그 술어는 대상에 의해 만족된다)].2)
2)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참관계와 만족관계는 상호 逆관계이다. 술어 F와 대상 a에 대해, F가 a에 대해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a는 F를 만족한다. 역으로 a가 F를 참이게 하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F는 a에 의해 만족된다.
그렇다면 대상에 적용되는 그 어떤 것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분명 다른 대상은 아니다. ‘화성은 붉다’가 참이라 하더라도 ‘α는 붉다’의 의미가 행성 화성일 수는 없다. 만약 술어의 의미 역시 대상이라면 단칭용어 ‘화성’과 술어 ‘α는 붉다’는 동의어가 되어버리는바, ‘화성은 붉다’, ‘…은 붉다는 붉다’, ‘화성 화성’ 등의 표현에는 아무런 의미론적 차이가 없게 되어버린다. 이는 분명 받아들여질 수 없다. 게다가 ‘화성’은 단 하나의 대상만을 명명하는 반면 ‘α은 붉다’는 화성 이외의 여러 사물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로서, 어떤 술어들은 동일한 사물에 적용되면서도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α는 아프리카보다 큰 대륙이다’와 ‘α는 중국을 포함하는 대륙이다’는 정확히 한 대상인 아시아에 적용되지만 두 표현의 의미는 분명 다르다. 따라서 사물에 적용되는 것과 사물을 명명하는 것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단칭용어와 술어는 완연히 다른 종류의 의미, 각각 다른 의미론적 역할을 지니는 것이다.
술어의 의미로 제시되었던 전통적인 하나의 후보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떠오느를 관념(觀念)idea이다. 17세기 철학자 John Locke가 이러한 관점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작금에 이러한 생각을 견지하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 우선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관념’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신적인 그림 내지 이미지(像)image일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α는 난해하다’와 같이 우리가 그에 대한 어떤 정신적인 이미지를 갖는다고 보기 어려운 술어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술어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한걸음 양보해서 그러한 술어들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모종의 관념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해도, 술어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적 이미지들이 각기 다르다는 더 큰 문제점이 있다. 개에 대해 당신이 갖는 관념은 프렌치 불독의 이미지이고 나의 것은 아일랜드 울프하운드일 수 있다. 하지만 술어 ‘α는 개다’는 당신의 말에서든 내 말에서든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 각자가 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술어 ‘α는 개다’에 해당되는 대상들을 결정하는 기준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술어는 누구에 의해 사용되든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요는 관념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사적(私的)private이고 주관적subjective인 데 반해, 우리가 의사소통하는바 단어의 의미라는 것은 어떤 점에서 공적(公的)public이고 객관적objective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안이 술어에 대해 의심스럽다면 상대적으로 단순한 단칭용어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물론 단칭용어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주관적이고 사적인 특정 관념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파리Paris에 대해 특정 관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칭용어는 객관적 대상인 그 지시체와도 연관되어 있다. 내가 파리에 대해 무슨 이미지를 갖고 있든 ‘파리’는 그 지시체인 도시 파리 자체와 연관되어 있다. 술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 문장의 경우도 그것을 구성하는 단칭용어와 술어에 각각 대응하는 공적인 부분들에 의해 특정한 의미를 표현한다. 언어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의사소통이라는 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으려면, 모든 언어표현의 의미는 관념 같은 사적인 것일 수 없다.
소위 ‘공공성 요건requirement of publicity’이라는 이러한 요건에 저촉되지 않을 법한 다른 후보로서 사물들의 집합set of things을 들 수 있다. 일반화하여 말하자면 1항 술어의 의미는 술어를 만족하는 사물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이다. 논리학 및 의미론 내지 의미이론에서는 이러한 집합을 술어의 외연(外延)extension이라 칭한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추정해보자:
(NP3✻) 술어의 의미는 그 외연이다.
여기에 별표가 붙은 이유는 이것이 소박한 의미론을 구성하는 원리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NP3✻)을 거부할 주된 이유는 차후에 밝혀지겠지만, 여기서는 다음 두 가지만을 언급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1) 전술하였듯 어떤 술어들은 정확히 동일한 집합에 의해 만족되면서도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앞서 든 예시인 ‘α는 아프리카보다 큰 대륙이다’와 ‘α는 중국을 포함하는 대륙이다’가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α는 둥근 사각형이다’와 ‘α는 에펠탑보다 큰 사람이다’처럼, 空집합empty/null set을 외연으로 갖는 술어들은 전부 동일한 외연을 갖지만 그 의미는 분명 다르다. (2) 통상적인 술어들의 외연은 늘 변하지만 그에 따라 술어의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지금도 매 순간 붉지 않았던 사물이 붉어지거나 붉었던 사물이 그렇지 않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α는 붉다’의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NP3✻)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NP3) 1항 술어의 의미는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property이다. 2항 술어의 의미는 그것이 나타내는 관계relation이다. 그 이상의 n항 술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α는 붉다’가 나타내는 속성property(특성attribute, 특질quality)은 붉음redness이다. 이러한 원리는 술어의 의미론에 관해 앞서 요구되어온 사항들을 만족하는가?: ‘α는 붉다’가 다른 속성을 나타내게 된다면 그 술어의 의미 역시 달라진 셈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α는 붉다’가 붉음을 나타낸다는 것을 아는 경우에만 그 술어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속성은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여기서 ‘속성’이라는 용어는 통상적인 쓰임에 비해 다소 유연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대체로 ‘속성’은 딱딱함이라든가 유연성 등과 같이 과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성질feature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것이든 임의의 1항 술어의 의미를 속성이라고 간주한다. ‘α는 일찍 잠자리에 든다’ 역시 하나의 속성을 나타낸다. 간단히 말해 속성은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임의의 방식any way that a thing can be이다.
이제 ‘α는 β를 공전한다’와 같은 2항 술어의 경우를 살펴보자. 2항(양항) 술어는 관계relation를 나타낸다. 관계는 속성과 마찬가지로 보편자(普遍者)universal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술어의 의미는 보편자이다. 예컨대 하얌whiteness과 사랑함은 둘 다 보편자이지만, [전자는 ‘α는 하얗다’의 의미인 속성이라는 보편자인 반면] 후자는 ‘α는 β를 사랑한다’의 의미인 관계라는 보편자이다.
따라서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속성과 관계, 즉 보편자는 술어의 지시체이다. 앞서 정식화한 (NP2)를 부가하면, 단칭용어와 술어의 의미는 모두 그것의 지시체이다. 전자의 의미는 대상이고 후자의 의미는 속성 또는 관계이다. 아직 모든 유형의 언어표현을 탐구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원리를 정식화하기에는 충분한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NP1)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원리: 모든 언어표현의 의미는 그 지시체이다.
이 원리의 핵심 착상은 언어표현의 의미란 곧 언어표현이 나타내는 것이라는 발상이다. 간단히 말해 의미와 지시는 동일하다(의미=지시). 언어표현이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것이다. 언어표현이 유의미해지는 것은 무언가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원자문장의 참과 의미
(A) 원자명제
緖論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문장의 의미는 (발화의 맥락에 따라)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proposition이다. 이러한 생각과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원리인 NP1을 결합하면 명제란 문장의 지시체이다. 문장이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생각은 약간 기이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소박하게 말하자면 참인 문장의 지시체란 하나의 사실fact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사실이 곧 참인 명제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NP1이 그리 기이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원자문장atomic sentence 역시 문장이므로 원자문장의 의미 역시 명제이다. 이를 원자명제atomic proposition(또는 ‘요소명제elementary proposition’)라 칭하기로 한다. 그런데 구성성의 원리principle of compositionality에 따르면 문장의 의미는 문장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의미 및 그 부분들이 결합되는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구성성 원리를 받아들인 채 소박한 의미론을 따르자면, 원자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의미는 문장 전체의 의미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원자문장의 의미 즉 원자문장이 표현하는 명제는, 원자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의미에 의해 구성된다composed. 원자명제란 문장의 의미들을 성분으로 갖는 하나의 구성적(복합적)인 대상composite object이다. 따라서 원자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는 원자문장에 나타나는 부분표현들의 지시체들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이를 정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NP4) 원자문장에 대한 소박한 의미론: n개의 단칭용어로 구성된 원자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는 문장을 구성하는 술어의 지시체 및 단칭용어들이 지시하는 n개의 지시체들로 구성된다.
원자문장과 그 의미인 원자명제 간의 이러한 관계를 도식화하여 이해해볼 수도 있다. 예컨대 ‘화성은 태양을 공전한다’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는 도식 1.1과 같은 형태로 나타내어질 수 있다
‘화성은 태양을 공전한다’ |
|
화성 | α는 β를 공전한다는 관계 | 태양 |
도식 1.1 ‘화성은 태양을 공전한다’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
이는 모종의 추상적인 구조이다. 명제가 구성되는 방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다. 하지만 이를 물리적 구조와 유사한 것처럼 유비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예컨대 술어는 콩의 겉껍질과 같고 단칭용어의 지시체는 그 내부의 콩알과 같다.
(B) 원자문장의 참
緖論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명제는 진리치의 담지자이다. ‘…은 참/거짓이다’라는 술어가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문장 자체가 아니라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이다.
이에 소박한 의미론에 따를 때 원자명제가 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자 한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속성 또는 2항 관계만을 포함하는 원자명제에만 국한하여 이를 각각 1-항 원자명제와 2-항 원자명제로 칭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참truth이라는 개념은 실재와의 대응correspondence with reality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화성은 붉다는 명제는 다음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대상 화성이 속성 붉음을 지니고 있다possess. 즉 그 대상이 그러한 속성을 실제로 갖고 있다actullay have(또는 그러한 속성을 예화한다exemplify, instantiate).
(b) 화성이 태양을 공전한다는 명제는 다음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대상 화성과 태양이 ‘α는 β를 공전한다’에 의해 지칭되는 관계를 맺고 있다stand in the relation. 즉 화성이 태양에 대해 그러한 관계를 갖는다bear the relation to.
이를 일반화하여 정식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NP5) 원자명제의 참에 대한 소박한 정의: 원자명제는 다음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i) 대상 o와 속성 P로 구성된 1항 원자명제이고, o가 P를 지니고 있는 경우. (ii) 대상 o1과 o2 및 관계 R로 구성된 2항 원자명제이고, 대상 o1과 o2가 관계 R을 맺고 있는 경우.3)
3) (原註) 이 정의에서 원자명제의 내적 구조 즉 명제의 구성 요소들이 이루고 있는 ‘순서order’는 아직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 원리에 의해서는 예컨대 명제 Mary는 John에게 키스했다와 John은 Mary에게 키스했다의 차이가 식별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사항들은 4장에서 더욱 상세히 논의될 것이다.
이 원리는 문장sentence, 발화utterance, 진술statement, 믿음belief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명제 이외의 그 네 가지도 ‘…은 참이다’라는 술어가 적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로서, 그 진리-조건 역시 위의 원리에 의존하여 정의될 수 있다: 문장, 발화, 진술은 그것이 표현하는 명제가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라고 말해질 수 있다. 이러한 방식에 따르면 어떤 문장이 참이라 말하는 것은 그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축약하여 말하는 셈이다. 믿음 역시 마찬가지로서, 한 믿음은 믿어지고 있는 명제가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논리적 구문론과 논리적 연산자
지금까지 우리는 ‘언어’에 관해 다소 모호하게 말해왔으며, 언어에 관한 논지를 예시하는 데에 한국어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우리가 겨냥한 논지에 따르면 모든 언어에 원자문장이 존재하며 따라서 단칭용어와 술어 역시 모든 언어에 존재한다. 소박한 의미론도 엄연한 이론으로서 기도된바, 언어로서의 적절한 자격을 갖춘 모든 언어는 그러한 장치들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 자체가 속성을 갖는 사물들 및 관계를 맺는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칭용어와 술어를 갖추지 못한 언어는 그러한 세계의 구조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세계를 표상하거나 세계에 관해 말할 수 없다. 위대한 논리학자 Alfred Tarski가 말했듯이, 의미론적 범주에 관한 생각은 언어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매우 뿌리 깊게 박혀 있기에, 그러한 범주를 적절히 갖추지 못한 언어란 과연 어떠한 모습일지를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제껏 우리는 모든 언어가 갖는 이러한 일반성4)을 단지 예시하기 위해 한국어를 사용했을 뿐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논의가 계속 한국어로 진행되더라도, 우리는 언어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화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어 자체는 우리의 실질적인 주제가 아니다.
4) (原註)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일반성을, 저명한 언어학자 Noam Chomsky가 주창한(예를 들면 Chonsky, 1965) 심층구조Deep Structure 또는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 개념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 사안에 관한 Chomsky 고유의 관점은, 보편문법의 가능성을 인간 정신에 갖춰진 심층적인 언어 구조에 관한 경험적인 가설로서 취급하고자 할 뿐, 언어 자체의 가능성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가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Chomsky는 모종의 형이상학적인 것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다만 인간이 지닌 것으로서의 언어를 일반화하는 것에 관심한다. 작금에 Chomsky의 이론, 특히 인간의 언어습득 능력이 가능한 이유가 선천적인(즉 유전적으로 결정된) 언어구조라는 실재가 두뇌에 구현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은, 경험적 연구에 의해 일부 입증된 바 있다. 이는 인류가 지닌 언어들이 보여주는 풍부한 다양성의 기저에 동일한 일반적 구조가 있다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절에서는 非-원자문장 즉 ‘분자’문장‘molecular’ sentence에 관해 논의한다. 문제는, 논의가 원자문장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우리의 자연언어natural language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이다. 이에 당분간은 우리의 언어를 다소 단순화된 버전의 한국어로 국한하여, 논리학 강의에서 배우는 논리적 연산자logical operator(논리상항(常項)logical constant)들인 문장-연결사sentence-connective 및 양화사(量化詞)quantifier(한량사, 한정사, 수량사)에 대응하는 소수의 언어적 장치들을 도입하고자 한다. 다만 모든 독자들이 논리학을 수강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여기서 설명될 논리학적 사안들은 꽤 단순할 것이다. [심화된 내용 내지 보충적인 설명을 원한다면 대괄호 안의 내용 및 譯註를 참고하기 바람.]
문장-연결사
우리는 ‘…가 아니다’, ‘또는’, ‘그리고’ 등의 표현을 표준적인 기초 논리학적 방식으로 사용할 것이다. 즉 이러한 표현들을 진리-함수적truth-functional인 것으로 가정한다. 이 문장-연결사들의 의미를 진리-함수적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임의의 두 문장 p와 q에 대해
연언(連言)conjunction | : ‘p&q’는 p와 q 양자가 참인 경우 참이며, 그 이외에는 거짓이다. |
선언(選言)disjunction | : ‘p∨q’는 p와 q 양자가 거짓인 경우 거짓이며, 그 이외에는 참이다. |
부정(否定)negation | : ‘∼p’는 p가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거짓이다. |
[이 정의는 임의의 두 문장 p와 q에 대해 성립하므로, 문장-연결사들에 의해 결합되는 각 부분 문장들은 원자적일 수도 있고 복합적일 수도 있다. 연언과 선언 연결사에 의해 결합되는 문장들을 각각 연언지(連言枝)conjunct와 선언지(選言枝)disjunct라 한다. 이 용어를 활용하여 두 연결사의 진리조건을 기술하자면, 연언문은 두 연언지 모두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고, 선언문은 두 선언지 모두 거짓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거짓이다. 연언문과 선언문에 비해] 자연언어에서 부정문이 표현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단순성을 기하기 위해 우리는 부정 연산자를 ‘…인 것은 아니다It is not the case that’로 통일한다. 이것마저 너무 길다면 ‘부정: ’과 같이 표기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목성이 해왕성을 공전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는 다음과 같이 표기될 수 있다:
부정: 목성은 해왕성을 공전한다.
[부정 연산자는 (복합적이든 원자적이든) 하나의 문장에 결합되기에 이를 ‘문장-연결사’라 칭하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부정 표현이 결합되면 문장 전체의 논리적 의미 즉 진리치가 변하는 논리적 연산이 행해지므로 엄연한 논리적 연산자이다(이로 인해 부정 연산자를 ‘단항(單項) 연산자’라 칭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조건문을 형성하는 조건 연산자 ‘…라면 …이다if-then’5)가 자연언어에서 진리-함수적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5) 자연언어에서 조건문이 표기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다음은 모두 동일한 조건문이다:
p이면 q이다.
p인 경우 q이다.
p이기 위해서는 q여야 한다.
오직 q인 경우 p이다p only if q.
마지막 것은 한국어에서 전후건의 순서가 바뀐다.
당분간은 이러한 복잡한 사안을 도외시한 채 조건 연산자를 진리-함수적인 것으로 취급하기로 한다. 형식논리학formal logic에서 조건 연산자는 화살표 기호 ‘→’로 표기된다. 예를 들어 ‘Charles가 뚱뚱하다면 Andrew는 뚱뚱하다’는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
Charles는 뚱뚱하다 → Andrew는 뚱뚱하다.
[여기서 화살표 기호 좌측 문장을 전건(前件)antecedent, 우측 문장을 후건(後件)consequent이라 한다.]
조건 연산자의 의미에 대한 진리-함수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조건(條件)conditionality | : ‘p→q’는 p가 참이고 q가 거짓인 경우 거짓이며, 그 이외에는 참 |
| 이다. |
앞선 예시에서 일단 Charles가 뚱뚱하다면, Andrew가 뚱뚱한 경우 조건문 전체는 참이며 Andrew가 뚱뚱하지 않은 경우 조건문 전체는 거짓이다. 일단 Charles가 뚱뚱하지 않다면, Andrew가 뚱뚱하든 그렇지 않든 조건문 전체는 참이다. [앞서 소개된 명칭으로 조건문의 진리조건을 기술하자면, 전건이 참이고 후건이 거짓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조건문 전체는 거짓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전건이 거짓이거나 후건이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조건문 전체는 참이다.6) 따라서 일단 전건이 거짓이라면 후건의 진리치와 무관하게 조건문은 참이며, 일단 후건이 참이라면 전건의 진리치와 무관하게 조건문은 참이다. 조건문이 진리-함수적인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이는 이유는 진리-함수적 정의가 지닌 이러한 反직관성 때문이다.]
6) 조건문은 ‘전건이 참이면서 후건이 거짓(즉 참이 아님)인 것은 아니다’ 라는 의미이다. ‘전건이 참이다’와 ‘후건이 참이다’를 각각 ‘p’와 ‘q’로 놓으면, 자연언어로 기술된 그 정의는 ‘∼(p&∼q)’로 표기된다. 이는 De Morgan의 법칙에 따라 ‘∼p∨q’와 논리적 동치이며, 이를 자연언어로 다시 번역하면 ‘전건이 거짓이거나 후건이 참이다’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조건문 ‘p→q’, 연언문 ‘∼(p&∼q)’, 선언문 ‘∼p∨q’는 전부 논리적 동치이다.
마지막으로 쌍조건문을 형성하는 쌍조건 연산자 ‘…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이다if and only if’가 있다. 종종 ‘iff’로 축약되며 기호로는 ‘↔’가 사용된다. 쌍조건 연산자의 의미에 대한 진리-함수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쌍조건(雙條件) | : ‘p↔q’는 ‘p→q’와 ‘q→p’ 양자가 참인 경우 참이며, 그 이외에는 거짓이 |
biconditionality | 다(또는 p와 q의 진리치가 동일한 경우 참이며, 그 이외에는 거짓이다.7) |
7) 각주5)에서 조건문에 대한 자연언어 표기로 소개된 것들 중 마지막 것에서 알 수 있듯이, ‘p→q’를 자연언어로 표기하면 ‘오직 q인 경우 p이다p only if q’이다. 본문의 쌍조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p↔q’는 ‘(p→q)&(q→p)’와 논리적 동치이며, 이를 자연언어로 번역하면 ‘오직 q인 경우 p이고 q인 경우 p이다’이다. 쌍조건 연산자가 자연언어로 ‘…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 …이다’로 표기되는 데에는 이러한 진리-조건 정의가 반영되어 있다.
다만 두 부분문장이 나타나는 순서가 영어와 한국어에서 다르기 때문에 ‘p iff q’는 ‘q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p이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쌍조건문은 결합되는 문장이 (실질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동치인 경우에 사용되므로 그다지 중요한 사안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순서를 염두에 두어야 사소한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용어나 개념이 쌍조건문 형식으로 정의될 때, 영어에서는 쌍조건 연결사 좌측이 被정의항이고 우측이 정의항인 반면 한국어에서는 그 반대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p는 다음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이다: q’ 식의 번역을 주로 채택하였다.
양화사
자연언어로 일반성을 표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이지만 여기서는 이를 대체로 무시하고자 한다. 우선 외견상 일반성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다음 진술을 보자:
Fido가 리트리버라면 Fido는 헤엄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모종의 일반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며 이는 다음과 같이 여러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모든all 리트리버는 헤엄칠 줄 안다.
그 어떤/임의의any 리트리버든지 헤엄칠 줄 안다.
각각의every 리트리버는 헤엄칠 줄 안다.
이러한 일반화 문장들을 통일시켜 형식화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우선 위 문장들을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고쳐 쓸 수 있다:
모든 것에 대해for every thing, 그것it이 리트리버라면 그것은 헤엄칠 줄 안다.
이 문장은 ‘모든 것에 대해’라는 보편 양화사(전칭 양화사)universal quantifier가 다음과 같은 개방문open sentence 내지 문장틀matrix에 결합된 것이다:
그것이 리트리버라면 그것은 헤엄칠 줄 안다.
여기서 대명사 ‘그것’의 자리에 다음과 같이 변항(變項)variable을 도입한다:
x가 리트리버라면 x는 수영할 줄 안다.
자연언어로 된 조건문 연산자를 앞서 도입된 기호로 재표기한다:
x는 리트리버다 → x는 헤엄칠 줄 안다.
원래의 일반문에는 ‘모든 것에 대해’라는 보편 양화사가 있었다. 양화사에서 ‘것’의 자리를 변항으로 대체한 뒤 이 개방문에 다시 결합시키고 구분을 위해 괄호를 표기한다;
모든 x에 대해 (x는 리트리버다 → x는 헤엄칠 줄 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한바 형식화된 보편 양화문(量化文)universal quantification이다. 여기서 보편 양화사가 변항 x를 ‘속박한다(구속한다)bind’고 말해진다. ‘모든 x에 대해’ 이외에도 ‘각각의each x에 대해’, ‘전부의all x에 대해’ 등을 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보편 양화문의 진리-조건이다. 다음과 같은 형식의 보편 양화문에서
모든 x에 대해 .
‘ ’의 자리에 나타나는 개방문이 x로 선택되는 모든 개체[(이를 논리학에서는 ‘논항(論項)argument’이라 한다)]에 대해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보편 양화문 전체는 참이다. [즉 적어도 단 하나의 개체가 그 개방문을 만족하지 않는다면 보편 양화문 전체는 거짓이다.]8)
8) 보편 양화사의 이러한 진리-조건으로 인해 자연언어로 된 전칭 문장 ‘모든 F는 G이다’가 보편 양화문으로 형식화될 때에는, 내부 개방문의 주 연결사로 연언 연산자가 아니라 조건 연산자가 도입된다. 전자가 도입되면 다음과 같이 원래의 자연언어 문장이 의도한 바보다 강한 의미를 갖는 문장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술어 ‘Fα’와 ‘Gα’를 본문의 예시처럼 ‘α는 리트리버이다’와 ‘α는 헤엄칠 줄 안다’로 해석해보자. 형식화 과정에서 연언 연산자가 도입되면 ‘모든 x에 대해 (Fx&Gx)’라는 문장이 얻어진다. 이 보편 양화문이 참이기 위해서는 보편 양화사의 진리-조건에 따라 개방문 ‘Fx&Gx’가 x의 모든 논항에 대해 참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연언문의 진리-조건에 따라 x의 모든 논항에 대해 ‘Fx’와 ‘Gx’ 양자가 참이어야 한다. 이를 자연언어로 풀어서 말하자면, 모든 개체가 리트리버이고 헤엄칠 줄 아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양화문은 참이다. 세계엔 리트리버가 아니거나 헤엄칠 줄 모르는 개체가 존재하므로 이 보편 양화문은 사소하게 거짓이며, 이는 원래의 자연언어 문장에서 의도되었던 논리적 의미가 아니다. 원래 문장에서 의도되었던 바는 ‘어떤 것이 F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G이다’라는 더욱 약한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안은 보편 양화문이 존재함축existential entailment을 갖지 않는다는 현대 논리학의 관점에 따른 것이다. 어떤 공원 입구에 ‘목줄을 하지 않은 개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 문장은 목줄을 하지 않은 특정 개가 실제로 있고 그 개는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개가 되었든 목줄을 하지 않았다면 들어올 수 없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보편 양화문에서는 개방문을 만족하는 논항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ontological commit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도록 연언 연산자에 비해 약한 존재의미를 만들어내는 조건 연산자가 도입되는 것이다. ‘저 집 개가 리트리버라면 수영을 잘 할 것이다’와 ‘저 집 리트리버는 수영을 잘 한다’를 비교해보라. 전자는 저 집 개가 리트리버임을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은 반면 후자는 그러하다.
예시에서는 대상 x가 무엇이든 다음과 같은 개방문
x는 리트리버다 → x는 헤엄칠 줄 안다.
이 그 모든 대상에 대해 참이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양화문 전체는 리트리버인 모든 것들이 헤엄칠 줄 안다면 참이며, 그렇지 않은 리트리버가 하나라도 있다면 거짓이다.] 보편 양화문 ‘모든 x에 대해 (x는 리트리버다 → x는 헤엄칠 줄 안다)’는 폐쇄문closed sentence으로서, 이를 다르게 말하면 개방문 ‘x는 리트리버다 → x는 헤엄칠 줄 안다’에 대한 보편 폐쇄universal closure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다음과 같은 존재 양화사(특칭 양화사)existential quantifier를 도입한다:
그러한 x가 있다 There is an x such that
다음 문장은 존재 양화문existential quantification이다:
그러한 x가 있다 (x는 알비노albino이다 & x는 호랑이다).
‘그러한 x가 있다’ 이외에도 ‘그러한 x가 존재한다there exist an x such that’, ‘몇몇 x에 대해for some x’ 등을 쓸 수 있다. 존재 양화문의 진리-조건은 다음과 같다: x로 선택되는 적어도 하나의 개체에 대해 내부 개방문이 참인 경우 존재 양화문 전체는 참이다. [즉 아무런 개체도 그 개방문을 만족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존재 양화문 전체는 거짓이다.]9) 따라서 예시된 존재 양화문은 알비노(선천적 색소 결핍증)이면서 호랑이인 것이 적어도 하나 존재한다면 참이며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다.
9) 존재 양화사의 이러한 진리-조건으로 인해, 자연언어로 된 특칭 문장 ‘어떤 F는 G이다’가 존재 양화문으로 형식화될 때에는, 내부 개방문의 주 연결사로 조건 연산자가 아니라 연언 연산자가 도입된다. 전자가 도입되면 다음과 같이 원래의 자연언어 문장이 의도한 바보다 약한 의미를 갖는 문장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술어 ‘Fα’와 ‘Gα’를 본문의 예시처럼 ‘α는 알비노이다’와 ‘α는 호랑이다’로 해석해보자. 형식화 과정에서 조건 연산자가 도입되면 ‘그러한 x가 있다 (Fx→Gx)’라는 문장이 얻어진다. 이 존재 양화문이 참이기 위해서는 존재 양화사의 진리-조건에 따라 개방문 ‘Fx→Gx’가 적어도 하나의 논항에 대해 참이기만 하면 충분하며, 이를 위해서는 조건문의 진리-조건에 따라 적어도 하나의 논항에 대해 ‘Fx’가 거짓이거나 ‘Gx’가 참이기만 하면 충분하다. 이를 자연언어로 풀어서 말하자면, 알비노가 아니거나 호랑이인 적어도 하나의 개체가 존재하는 경우 양화문은 참이다. 세계엔 알비노가 아니거나 호랑이인 개체가 존재하므로 이 존재 양화문은 사소하게 참이며, 이는 원래의 자연언어 문장에서 의도되었던 논리적 의미가 아니다. 원래 문장에서 의도되었던 바는 ‘어떤 것이 F이고 G이다’라는 더욱 강한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안 역시 존재 양화문만이 존재함축을 갖는다는 현대 논리학의 관점에 따른 것이다. 어떤 집 마당에 ‘사나운 개 주의’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 문장은 사나우면서 개인 것이 있으니 그것을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다. 집주인이 말하길 자신의 집 마당에는 실제로 개가 없지만 혹여 어디선가 사나운 개가 나타나면 주의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써두었다고 한다면, 듣는 사람은 주인이 미쳤거나 아니면 적어도 언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여길 것이다. 이렇듯 존재 양화문은 개방문을 만족하는 논항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도록 조건 연산자에 비해 강한 존재의미를 만들어내는 연언 연산자가 도입되는 것이다. ‘그 동물원 호랑이는 알비노이다’와 ‘그 동물원에 호랑이가 있다면 알비노일 것이다’를 비교해보라. 전자는 그 동물원에 호랑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때에 따라 ‘x’ 이외에도 ‘y’, ‘z’ 등 복수의 변항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다음과 같은 [대체로 양화사가 둘 이상 나타나는 복합 양화문(다중 양화문)multiple quantification의] 경우이다:
모든 x에 대해, 그러한 y가 있다 (x는 y를 사랑한다).
그러한 y가 있다, 모든 x에 대해 (x는 y를 사랑한다).
자연언어로 표기된 ‘모든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변항에 대입되는 논항의 영역을 사람으로 제한한다면) 위의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애매함(양의성(兩意性))ambiguity을 갖고 있다. 이 문장은 전자처럼 ‘모든 사람에겐 저마다 각각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의 의미일 수도 있고, 후자처럼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의 의미일 수도 있다. 형식화된 양화사와 변항의 사용은 자연언어의 이러한 결함을 극복하게 해준다. 좀 더 복잡한 ‘어떤 소녀는 모든 소년들에 의해 사랑받는다’는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
그러한 x가 있다 (x는 소녀이다 & 모든 y에 대해 (y는 소년이다 → y는 x를 사랑한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복수의 양화사가 필요할 때에는 일상적인 대명사 대신 변항을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고 애매함을 제거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도입된 양화사 표기법인 ‘모든 …에 대해’, ‘그러한 …가 있다’ 등이 번거롭다면, 형식논리학에서 사용되는 두 양화기호 ‘∀’와 ‘∃’를 사용할 수도 있다.
‘모든’, ‘임의의’, ‘어떤’, ‘…가 있다/존재한다’ 등은 자연언어의 양화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more’, ‘아무것도none’, ‘일곱 개의’, ‘절반의’, ‘적어도 두 개의’ 등과 같이, 사물이 얼마나 혹은 몇 개나 있는지 그 양에 관해 말하는 모든 표현은 자연언어의 양화사라 할 수 있다. 표준적인 관점에 따르면 양화사는 단칭용어가 아니며, ‘α는 녹색이다’와 같은 수준의 일반적인 술어도 아니다. 하지만 소박한 의미론을 철저하게 고수한다면, 여타 문장 연결사들과 더불어 양화사 역시, 단칭용어 및 일상적인 술어와는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다른 언어표현들과 마찬가지로 지시적인 표현referring expression이다. 양화사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는 다소 논쟁적인 주제로서, 이에 대해서는 2, 3, 4장에서 좀 더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예컨대 2장에서 살펴볼 Frege의 이론에 따르면 양화사는 좀 더 고차-수준의 속성, 즉 속성에 적용되는 속성을 지시하는 표현이다.
단칭용어와 술어 수준에서의 일반화
때때로 해석되지 않은uninterpreted 단칭용어와 술어를 사용하여 순수하게 도식적∙형식적으로 추론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Socrates는 Platon의 스승이었다’는 문장을 다루되, 그것을 구성하는 특정 언어표현들 및 그 의미를 도외시한 채, 임의의 두 단칭용어 및 2항 술어로 이뤄진 임의의 문장처럼 취급하는 경우이다. 이를 위해 해석되지 않은 단칭용어로서 ‘a’, ‘b’ 등을 사용하고, 임의의 1항 술어로서 ‘Fα’, ‘Gα’를, 임의의 2항 술어로서 ‘Rαβ’를 사용한다. 그래서 1항 및 2항 원자문장은 각각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
Fa
Rab
후자는 한 때 ‘aRb’의 형태로 쓰이기도 했지만 작금에 이는 다소 구식으로 여겨진다. 이 표기법에 더해 앞서 언급된 두 양화기호를 활용하여 이번 절의 앞선 예문들을 기호화하면 다음과 같다:
(∀x)(Rx→Sx)
(∃x)(Ax&Tx)
(∀x)(∃x)Lxy
(∃y)(∀x)Lxy
(∃x)(Gx&(∀y)(By→Lyx))
이러한 표기법들은 수학언어에 모형을 둔 형식논리학의 표준적인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역사적 사항
이번 장에서 제시된 형태의 소박한 의미론을 진지하게 견지하는 사람은 작금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Platon이나 Aristoteles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및 스토아 철학자들은 소박한 의미론과 유사한 생각들을 탐구하였다. 중세 철학자들과 인도의 철학자들, 그리고 J. Locke, Gottfied Leibniz, David Hume, George Berkeley 등 17, 18세기의 소위 ‘근대 철학자들’은, 언어 및 의미와 얽힌 문제들에 대해 소박한 의미론과 일부 유사한 형태로 사유하였다. 19세기 말엽, 수학이 궁극적으로 논리학으로 환원된다는 논제를 정립하기 위해 논리학에서 상당한 발전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언어철학은 철학 전반에서 이전에 비해 더욱 뚜렷하고 핵심적인 분야로 부상하게 되었다. 특히 Gottlob Frege의 초기 저서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1879)과 Bertrand Russell의 『수학의 원리Principles of Mathematics』(1903)(이는 1910년의 『수학원리Pricipia Mathematica』와 혼동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Ludwig Wittgenstein의 초기 저서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1) 등에서는 소박한 의미론의 한 형태가 옹호되었다. 우리의 관점에서 다소 흥미로운 선구자는 John Stuart Mill이다. 비록 Mill은 Frege와 Russell로 하여금 논리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게끔 추동시킨 획기적인 착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특히 그는 양화문의 특성에 대해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논리학 체계A System of Logic』(1843)에서 그는 고유명이 내포connotation를 갖지 않으며 단지 외연denotation만을 가질 뿐이라는 소박한 의미론의 핵심 착상을 천명하였다. 이는 훨씬 이후인 20세기 중반 Ruth Barcan Marcus에 의해 주장된바 고유명이 그 지시체에 대한 ‘이름표tag’ 역할을 할 뿐이라는 이론을 선취하는 것이었다. 4장에서 살펴보겠지마 Russell은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 아이디어를 끝까지 고수하였으며, 이러한 Russell의 입장은 현대에도 충실한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후 소박한 의미론이 지닌 치명적인 결점을 발견한 Frege는 논문 「뜻과 지시에 관하여On Sense and Reference」(1892)(이는 Frege, 1977에 실려 있다)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전혀 새로운 방식의 사유를 개진한다.
이번 장의 요약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문장인 원자문장은 단칭용어와 술어라는 두 범주에 속하는 표현들로 구성된다. 모든 원자문장은 n-항 순수술어와 n개의 단칭용어들로 구성된다. 단칭용어의 의미는 그 지시체 즉 단칭용어가 나타내는 대상이며, 술어의 의미 역시 그 지시체 즉 술어가 나타내는 보편자이다. 1항 술어, 2항 술어, 3항 술어 등에 대응하는 보편자는 각각 속성, 2항 관계, 3항 관계 등이다.
문장의 의미는 문장이 나타내는 명제이다. 원자문장의 의미인 원자명제란 추상적인 복합적 대상으로서, 단칭용어에 대응하는 대상들 및 술어에 대응하는 보편자로 구성된다. 원자문장의 진리치는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가 다음과 같이 실재에 대응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원자문장이 말하는 대로 구성된 사실이 존재하는 경우 원자문장은 참이며, 그러한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거짓이다.
원자문장 수준 이상의 복합적인 문장들을 다루기 위해 다음 두 가지가 도입되었다: (1) ‘…가 아니다’, ‘또는’, ‘그리고’, ‘…이면 …이다’ 등과 같은 명제논리sentential logic의 장치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이 문장 연결사들의 의미는 표준적인 기초논리학의 진리표truth-table에 따라 진리-함수적으로 정의되었다. (2) ‘모든’, ‘어떤’ 등에 해당하는 술어논리predicate logic의 양화사들.
탐구문제
1. 블타바Vltava 강 = Leo Perutz의 소설 『밤에 돌다리 밑에서By Night under the Stone Bridge』에 등장하는 강. 이 사실로부터 소박한 의미론에 대해 어떤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단칭용어와 복합적인 단칭용어 간의 구분은 그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2. 신문이나 잡지를 갖고 다음 작업을 수행해보라: (a) 적절한 형태의 원자문장을 찾아낸다. (b) 술어를 확인한다. (c) 순수술어를 추출하여 공란을 그리스 문자로 표기하고, 이를 다시 다른 단칭용어들로 적절히 대체하여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3.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붉음’과 ‘α는 붉다’ 라는 표현 간에는 어떠한 구문론적∙의미론적 차이가 있는가?
4.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Jane’은 Jane을 지시하고 ‘…은 흡연한다’는 흡연함이라는 속성을 지시한다. 그렇다면 굳이 ‘Jane은 흡연한다’고 말함으로써 Jane이 흡연한다는 명제를 표현하는 대신, ‘Jane, 흡연함이라는 속성’과 같은 식으로 말함으로써 단지 Jane을 지시하고 흡연함이라는 속성을 지시하면 안 되는가? 이것이 올바르지 않다면 명제가 표현되기 위해 그 이상으로 요구되는 바는 무엇인가?
주요 읽을거리
Frege, G. (1997),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1879): 발췌」, 『Frege 選集Frege Reader』에 수록.
Mill, J. S. (1963ff), 『논리학 체계, 추론과 귀납System of Logic, Rationative and Inductive』, 2章, 「이름에 관하여Of Names」, 『John Stuart Mill 全集』, Ⅰ 중 卷 7-8에 수록.
Russell, B. (1903), 『수학의 원리Principles of Mathematics』, 4章, 「고유명, 형용사, 동사Proper Names, Adjectives and Ver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