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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는 ˝논리학은 세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러셀의 말이 퍽 인상깊었다 전제가 참<일 경우> 결론도 필연적으로 참<일 수밖에 없는> 관게를 다루는 게 논리학이라면, 전제가 실제로 참<인지> 여부를 따지는 일은 논리에 속하지 않는다 그 일은 세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여타 분과학문들의 소관이다 논리학은 세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세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실증과학이고, 논리학은 그 과학들이 말하는 것들 간의 논리적 관계만을 다룬다 ˝논리, 그것은 그 스스로에 대한 의무일 뿐이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도, ˝논리는 논리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다자이 오사무의 말도,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갔다

2. <논리적 관계>라는 것을 우리는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전제가 참일 경우 결론이 반드시 참일 수밖에 없다는 그 논리적 관계를 우리가 진정 이해하고 있을진대, 하면 우리는 무언가가 참이라는 것을 진정 이해하고 있는가?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참 개념을 우리는 견실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여기서 참에 대해 으레 상당히 포괄적으로 제시되는 조건을 논리적 귀결개념에만 걸맞게 약화시켜 논리학에서의 참이란 논리적 형식에 의해서 참이 되는 것이라 할진대, 그럼 그 때 우리는 <논리적 형식>이랄 것을 진정 가지고 있는가? 직관주의자가 수학에서 건져내는 논리적 형식은 무엇인가? 일상적 논쟁이나 인터넷상 키배에서 우리는 ‘니 논리대로라면 여차여차하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 때 말해진 <논리>란 형식논리에서의 논리가 아니라 외려 그 진술에서 선제되는바 세상의 어떤 이치, 법칙, 당연한 귀결관계 등지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이해된 바로서의 논리적 형식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는 논리적 형식이 그렇게 이해되는 소이연은 결국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여김이 아닌가? 논리적 귀결관계가 전제에 따른 필연적 참됨의 보존성에 달려 있다면, 필연적 참됨 개념에 대한 이해란 우리가 갖는바 세계 전체 혹은 세계의 특수 부분을 관장하는 이치에 대한 이해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럼 헤겔이 옳았다는 건가?ㅡ논리와 이성과 실재는 결국 하나이고 하나여야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가? 헤겔을 원용한 셀라스와 브랜덤은 이에 러셀에 반하여 ‘논리학은 세계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그리고 오직 그 때문에 논리학일 수 있다‘는 식의 체계를 전개한 것인가? 비트가 수학적 명제의 참이란 형식에 의한 동어반복일 뿐이라 정의한 데에 러셀이 고통스러웠던 이유도, 그 형식에 의한 동어반복이란 개념이 므엇임지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던 이유도, 결국 그도 은연중에 수학이 세계에 대해ㅡ혹은 뭐가 되었는 논리 이외의 것에 대해 개입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우리는 결국 삶에서 많은 논리<들>을 이야기하며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수학의 논리, 자연과학의 논리, 역사의 논리, 문학과 예술의 논리, 인생의 논리ㅡ개중 형식논리가 스스로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 있는가? 직관주의논리 다치논리 퍼지논지 초일관논리 등, 일탈논리 내지 논리적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입장들이 대두한 근본적인 이유는, 논리가 이렇듯 최종적으로는 논리만을 위한 건 아니라는 착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대적 시대상에 기인한 게 아닐까?

3. 논리학 역시 언어로 된 체계이다 콰인에 따르면 언어체계는 자극에 따른 반응을 현시하는 성향들이 조직화된 체계이다 논리학은 특정 언어적 자극에 대한 언어적 반응성향을 현시하는 성향, 즉 언어적 성향에 대한 성향으로서의 메타-성향이다 골자는, 논리적 체계 역시 어디까지나 자연적 자극-반응의 테두리 내에서 조율되는 전체론적 체계의 일부로서, 전체 체계를 고려하건대 자극-반응 간 입출력 관계가 상당부분 미결정적일 경우 논리학 역시 수정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어 학습 및 현시에 대한 여타 언어학적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이론들을 차치하고, 막연한 수준에서 콰인의 자연주의와 (언어 특정화된)전체론을 받아들인다면, 콰인이 주장하는 바와는 반대되게도 논리적 다원주의는 필수인 듯하다 다만 이를 거부하는 콰인 최후의 보루는 그의 과학주의 내지 물리주의지만(이런 점에서ㅡ즉 그가 이해한 <이성>이란 것이 <과학적 이성>이란 점에서ㅡ콰인은 과학주의적 헤겔주의자였다), 그 요소가 논리학(및 수학)이라는 요소와 맺고 있는 전체론적 망-관계가 나는 상당히 약하다고 본다 다르게 말해 논리학이 과학의 시녀가 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는ㅡ즉 과학적 존재론의 언어를 규율짓고 정돈하는 역할에만 머물 필요는 없을 정도로는ㅡ자율적일 수 있으며, 따라서 과학적, 물리주의적 일원주의와는 별도로 다원적일 수 있다고 본다(다원주의를 제외하면, 페넬로페 매디는 수학에 대해 이런 성격의 자율성을 옹호한 셈이다) 그럼 다시 제시되는 선택지는 몇인가?ㅡ우리는 자연주의적 의미론과 함께 논리적 다원주의를 받아들이든지, 혹은 자연주의를 받아들이되 콰인식으로 정통적인 1계술어논리만을 오롯이 적법한 논리학으로 받아들이든지, 둘 다를 무시한 채 논리 자체를 위한 추상적 논리체계를 단지 형식과학으로서 계속 구성하든지, 이도저도 아니하고 그저 삶을 살아내든지, 그러면 결국 말년의 비트처럼 철학을 하지 말아야하는지ㅡ이외의 또다른 선택지인가?

4. 분명한 건, ˝논리학은 세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러셀의 철학적인 말도, ˝논리학과 윤리학, 그것은 그것 스스로에 대한 의무일 뿐이다˝라는 비트의 현실적이고 체념적인 말도, ˝논리는 논리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다자이의 문학적인 말도, 각각 어떤 면에서는 이제 올바르지 않은 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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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년전 여름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때려부시며 엄마아빠 싸우는 소리에 주말 새벽에도 잠을 설치다가 둘 다 지쳐 잠들어 조용해질 늦은 오전 즘이면 숨죽여 거실로 나와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하나 틀어놓은 채 하염없이 맑고 파랗고 투명한 배경으로 하얗게 웃는 구름들 흐르는 창밖 풍경만 벗삼아 헤겔의 역사철학강의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던 여름방학이었다 즐거운 기분이라곤 하냥 없이 외롭고 괴롭고 좆같기만 하던 기억인데 헤겔도 하이데거도 읽은지 몇 년은 좋이 지나 지랄맞은 한파에 살만 에이는 한겨울밤, 왜 문득 추억으로 솟아대는 일인지, 모르다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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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산처럼 울 걸
메아리에 멍들 일은 없었을 텐데˝

- 123, songcry

˝의미론적 담화의 특정 범위에서 표현될 수 없는 것일지라도 항상 다른 범위에서는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말해야 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동시에 말할 수는 없다˝

- 송하석, 거짓말쟁이 역설에 관한 탐구에서 재인용

어느 학자의 말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쪽수가 있어 찾을 수는 있지만 지금은 저 책이 수중에 없다 우리는 모든 책을 가질 수 있지만, 가진 책을 항상 들춰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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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은 대뇌피질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언어장애이다 주의할 점은 언어체계를 습득하고 발전시킨 사람만이 실어증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나면서부터 뇌에 이상이 있어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실어증이 적용될 수 없다˝

- 김방한, 언어학의 이해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는 실연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뒤집어 말하면 실연을 느낀다는 것은 사랑했음을 함축한다 나는 사랑의 언어를 화용론적으로 발화해본 적(q)은 없지만(&) 그 언어의 의미를 안다(p) ~q&p = ~(qV~p) = ~(p->q)이다 따라서 사랑에 한해서는 의미론이 화용론을 함축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양성적으로든 동성적으로든 무성적으로든 불구인 나는 영원히 욕망의 옹알이만을 발화해야 할 팔자인가보다 그 발화맥락은 오롯이 이 현실세계 뿐인데 그 평가환경은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에까지 걸친 모든 가능세계이다 신은 나를 창조한 세계에서만 나를 사랑할 수 있겠으나, 양상적으로 비적형이게 기술된 세계에서마저 나는 무언가를 사랑했으니, 내 사랑의 양태는 ‘아가페‘보다도 강한 의미론 내지 지시론을 지녀야 하겠다 그런 의미론이 구성되는 사랑의 언어란 없으므로, 귀류법에 의해 양상적으로 적형이게 기술된 세계에서마저 나는 사랑한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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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온 얼굴들은 이제 희미하다
숱한 시간들을 싣고 떠난 낙타의 발자국들이
저기 언덕 너머로 지워지고 있다
추억과 맞바꾸어 후회로 채운 바랑을 메고
몸을 돌려 반대편 언덕을 넘으면
누군가가 있을 거라 늘상 여겨왔는데, 거기엔
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바람이 불어, 그려진 눈동자가 감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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