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논리철학 ㅣ 고려대학교출판부 인문사회과학총서
여훈근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1. 책의 구성, 서술 및 논의의 방식과 깊이, 좋다고 할 수 없는 문장력, 더 나은 대안저서의 존재 등 많은 면에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진리론이 다뤄지는 1장을 제외하면 모든 장들이 기발표된 논문들을 수록한 것이기에, 당연히 단행본으로서는 통일성이 떨어지는 구성과 모양새이다. 전반적인 구성이 파편적이더라도 개별 챕터의 논증이나 해설이 내적으로 탄탄하게 구심을 갖췄다면 읽는 효용이 있겠으나, 각 장의 내용마저도 과거 논의나 연구성과를 그저 파편적, 사후적, 요약적으로 보고하는 식이어서, 해당 주제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개별사안들을 일별하는 데에만 그칠 뿐 철학적, 이론적, 논증적으로 확장성과 깊이감 있는 이해를 도모하기 어렵다. 이 책을 위해 새로이 쓰였다는 1장마저도 커크햄, 수잔 하크, A. C. 그렐링 등의 2차저술 내용을 파편적으로 요약 및 제시하는 수준이다. 철학적으로 쟁점이 될 만한 사안에 대한 논증(그마저도 저자 고유의 논평이 아닌 여타 학자들의 논증)이 간혹 제시될 때에도, 그 구성과 도출과정이 추정상 빈약하거나 도약이 있거나 맥락적으로 잘못된 듯한 추론과정을 노정하고 있어서, 결국 해당 쟁점이 어떤 근거에서 어떻게 해결된다는 건지 유의미하게 이해할 수 없다.
2, 가령 타르스키의 의미론적 진리론에 가해지는 비판을 살펴보는 대목인 105쪽엔 이런 단락이 나온다:
(가) 타르스키는 의미론적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참이다"라든가 "거짓이다"를 언어의 등급에 따라 상대화시키고 있다. 그는 문장들에 대한 참을 정의하였으며 동일한 문장이라 하더라도 상이한 언어에서는 상이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상이한 언어에서 상이한 진리값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언어 L에서 참"이 항상 언어 L이 아니라, 언어 L의 메타언어의 술어라는 주장을 독립적으로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못된다는 것이다.
(두 번쨰 문장은 후술할 '이론가 a는 명제 S라는 것이다' 꼴의 비문 내지 어색한 구문이다.) 언뜻 읽어서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문제인 이유가 무엇이라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지막 문장엔 참조된 수잔 하크의 저서와 그 원서 쪽수가 각주로 처리되어있는데, 한국어 역본(김효명 譯, "논리철학", 종로서적, 1984.)에서 해당 대목으로 추정되는 부분(148-9쪽)을 찾아보면 저자가 하크의 해설을 오독했거나 최소한 맥락에 맞지 않게 활용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나) 타르스키는 참이 어떤 언어에 상대적으로만 정의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타르스키가 정의한 것은 '참이다'가 아니라 'O에서 참이다'란 것이다. 이렇게 정의했음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정의는 문장(명제와 같은 언어 외적인 것과는 다르게 구문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에 적용되어야 하며, 동일한 문장이 한 언어에서는 참이지만 다른 언어에서는 거짓 또는 무의미할 수가 있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요, 대상언어, 메타언어, 메타-메타언어 등으로 언어를 위계적으로 구분하여야만 의미론적 역설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이다.
즉 타르스키가 진리술어를 상대화한 이유는 (i) 진리술어를 문장의 속성으로 귀속시키고자 하였는데, 문장 자체의 의미론적 작동방식이 언어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점, (ii) 거짓말쟁이 역설과 같은 의미론적 역설을 피하기 위한 메타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 두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생략했지만 이 인용문의 전후맥락은 타르스키의 진리정의가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떤 점에서 진리 대응론의 핵심 착상을 다소 보유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와 관련된 포퍼의 논평을 살펴보는 대목이다. 저자가 (가)에서 정리한 바와는 달리, 문장의 의미론적 작동방식의 상대성이 진리술어를 상대화시키는 데에 이론적으로 독립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식의 논평이나 이를 결론으로 도출하는 구체적인 논증은 등장하지 않는다. 혹여 우호적으로 해석해서 저자가 하크의 서술을 오독한 것이 아니라고 판정한다 쳐도, 각주처리는 (가)의 두 번째 문장에 한 뒤 마지막 문장의 논평에 대해서는 저자 고유의 논증을 별도로 제시했어야 한다. 105쪽의 전후 맥락 어디에서도 그런 논증이나 논증의 근거가 될 법한 전제에 대한 암시는 일절 제시되지 않는다.
해설이든 논증이든 이런 식의 빈약한, 혹은 맥락상 부적합한 서술들이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되다보니, 독자는 애당초 홀로 유의미하게 재구성할 수 없을 법한 내용을 추측해 보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내가 모르긴 하지만 유의미한 뭔가가 있겠지' 하는 잘못된 착각만 지닌 채 그냥 넘어가버리게 된다. 그러니 완독을 꾸역꾸역 하고 나서도 최종적으로는 깊이 있는 소득이 없는 독서가 되어버린다.
3. 내용이나 서술 상의 이러한 단점은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저자의 문장력이나 구문실력과 결합해 텍스트로서 읽는 효용마저 현저히 떨어뜨린다. 대표적인 것으로 앞서도 언급한바, 임의의 학자 x와 이론적 명제 P에 대해, 당면 맥락에서 결정적인 사안으로서 x의 주장 S를 강조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x가 S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x에 따르면 S라는 것이다', 'x가 주장하는 요지는 S라는 것이다' 등으로 써야 할 곳에서, 'x는 S라는 것이다'와 같은 비문이 책 전반에 걸쳐 계속된다. 또한 내용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전술했듯 파편적이고 단속적이다 보니, '따라서,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등의 접속사들도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글의 흐름을 조성하기보다, 연결성 없는 내용들을 적절한 맥락 없이 병렬적으로 이어붙이는 데에만 쓰인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들의 일부를 더욱 평이하고 매끄럽게, 혹은 심층적으로 능숙하게 다루는 여타 저서들이 다소 있다*는 점에서도, 절판되기까지 한 이 책을 굳이 선택할 필요성은 더욱 없어 보인다. 평점에 별 하나를 더 보태게 된 사소한 장점을 굳이 하나 꼽자면, 논문이 아닌 여타 단행본에서는 보기 힘든 다치논리, 시제논리, 규범논리 등의 일부 형식체계 및 그 의미론이 개관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다만 개인적으로 배경지식이 부족해 해당 부분들은 거의 건너뛰다시피 훑기만 했다).
* 야마오카 에쓰로, "거짓말쟁이의 역설", 영림카디널, 2004(절판).
A. C. 그렐링, "철학적 논리학", 북코리아, 2023.
수잔 하크, "논리철학", 종로서적, 1984(절판).
송하석, "거짓말쟁이 역설에 관한 탐구", 아카넷,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