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투성이인 사람으로 자라버렸구나

십 년만 되돌린다면 그 모든 잘못들을 저지르지 않으며 다시 자랄 수 있을까 눈 뜨고 입만 벌리면 푸르딩딩 멍든 살점들마냥 어버버 쏟아지는 죄의식들, 한새벽까지 잠 못들면 여직껏 소화시키지 못해 푸더덕 게워내는 잘못의 시간들, 붙들고 통사정하며 용서를 구할 만한 옷자락도 없는 통한에 하릴 없이 깨먹은 술잔들ㅡ열흘, 열 시간, 혹여 십 초를 되돌린다 해도, 내가 받은 사랑과 보살핌 만큼한 기여를 세상에 유의미하게 덧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악마는 멀리 있는가

- ‘19.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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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년 전 초여름 일이다. 엄마가 오토바이로 신문배달을 하다 넘어져 왼손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떨어졌을 때였다 아프고 겁나는 와중에도 엄마는 피투성이 마디 하나를 오른손에 꼭 쥐고 있었다 부모님 주변 누군가 절단된 데 봉합 신경치료는 평택 모모한 병원이 알아준다길래 그 곳으로 갔다 마침 2학년 여름방학 초엽이던 나는 달포 조금 넘는 동안 병원에서 엄마와 지냈다 보르헤스와 데리다를 많이도 읽던 날들이었다 8인실 넓은 창으로 지는 초여름 오후 태양이 그리는 동그라미가 나만의 알렙 같다고 느꼈다 매일 아침 회진을 올 적마다 모호하거나 별 정보적이지 않은 허툰 말만 되뇌던 주치의는, 결국 신경이 살아나지 못해 다시 절단수술을 해야겠다는 통첩을 팔 월 중순에야 내뱉었다 작으나마 신체 한 부위가 없이 살아야된다는 생각에 엄마는 손가락 마디 떨어지던 날보다 더 섧게 울었다 그 해를 비롯, 몇 녗간 가을 겨울만 되면 엄마는 중앙시장서 장봐온 껌은 봉투를 왼손에 들질 못하였다 마디 없는 절단면이 시렵다 했다

2. 재작년 12월 말일이자 딱 연말이던 낮, 오토바이 사고로 발목 골절을 당했다는 전화를 아빠에게 받았다 코로나 검사로 아산 충무병원에 갔다가 별 문제 없으면 천안 충무병원으로 이동한다 하였다 늦오후 즈음에야 코로나 음성이 확정되어 나는 해 져가는 매선 바람에 충무병원으로 가 응급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관련 사항은 아빠를 실어온 사설 응급차 관계자가 알려주었고 응급실 접수처 측에도 그리되었다 병실을 안내받고 올라갔는데, 코로나 검사결과가 어떻게 됐냐는 질문을, 간호사를 비롯 병원 내 서로 다른 관계자들이 도대체 세 번 씩이나 묻는 꼬라지를 보며, 여기는 이런 사소한 사항에도 일을 개떡으로 처리하는 곳이구나 바로 직감이 왔다 사흘 뒤 수술 집도가 예정된 의사에게 내려가 동의서를 쓰기 앞서 아빠의 다친 상태에 대한 설명과 수술 계획을 듣는데, 대충 여차저차 배치된 이런 형태의 뼈 두 개 이상에 발생한 복합골절을 필론식 골절이라 한다 했다 방금까지 논리학사를 읽으며 필론식 조건언에 대해 읽다 내려온 나는, 필론식 골절 수술이 무척 까다롭고 실패율도 대체로 높단 말에, 논리학 강의에서 필론식 실질 조건문의 진리조건을 처음 배우던 때처럼 긴장이 되었다 이레 조금 지나 수술날, 수술이 끝난 직후 의식이 돌아온 아빠는 동물처럼 울부짖으며 아파했다 수술 동의서에서 동의체크했던 추가 마약성 진통제를 간호사에게 신청하려 중앙으로 가 말하니, 집도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어야는데 지금 바로 연속으로 다른 수술을 들어가 당장은 지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란다 이게 도시 뭔 쌉똥같은 소린지, 이미 동의체크한 사항이면 미리 지시받고 준비를 해둬야 하는 거 아닌지, 일을 왜 이따구로 처리하는지 따져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아빠가 세시간 여를 울부짖는 소릴 듣고 나서야 진통제가 왔다 주변에 개 웬수같은 새끼가 혹여 손모강지나 발모강지라도 뿌러지면 반드시 천안 충무병원을 추천하겠다고 저주스런 마음으로 다짐짓했다.

3. 병원을 동네 근처로 옮기고, 재활과 물리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고 나서도, 한달 두달 세달이 지나도록 아빠 발목의 붓기는 여름 초입에 시장으로들 나오는 통연근마냥 땡땡하게 부어만 갈 뿐 가시질 않았다 미심쩍었던 아빠가 다시 충무병원을 찾았는데 당시 집도했던 의사는 그만 두고 새 의사가 와 있었다 사진을 찍어보고 난 그 의사가 하는 말이 ‘수술이 안 되었다‘ 이런 표현을 썼다 작은 뼛조각 하나가 봉합되지 않아 염증이 발생해 속에서부터 난 부종이 계속되어온 것이다 분명 수술 직후 확인했던 사진은 뼈 모양새가 아주 온전하고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된거냐는 아빠의 물음에, 겉모양과 다르게 애초에 수술이 제대로 안된 케이스라 했다 한다 그 얘길 들은 나는 몇 달포 전의 저주스런 마음을 더욱 강하게 되새김하고는 다가동에 지진이라도 나서 병원 건물이 폭삭 무너지길 신에게든 악마에게든 간절히 염원했다 결국 그 뼛조각은 그 의사가 써준 추천서로 순천향 병원에서 빼게 되었다

4. 아빠 사고나기 전 겨울 초입에 엄마는 눈이 자꾸 시리고 눈물이 나서 버들육거리에 있는 큰 안과를 찾아갔다 1층 안경집만 가본 바 있던 나는 접수실부터가 삐까번쩍한 걸 첨 보고 놀랐다 진료를 금방 마치고 내려온 엄마에게 어찌됐냐 물으니, 식당 일을 그만두는 수밖엔 없다는 말을 들었단다 식당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종일 눈앞에 섰는 가스불 때문에 으레 이렇게 눈시리고 아픈 거 세상천지 삼척동자 해남 윤씨 종갓집 막냇며느리 배냇딸도 다 아는 사실인데, 하나도 의학적이지 않은 그딴 개쌉소리를 진찰결과랍시고 내뱉으며 이 큰 건물로 안과 짓고 퍼질러 앉아 의사선생님 소리 들을라 치면 까짓거 나도 다 하겠다며, 삐까번쩍한 병원건물 뒤편 쥐좆만한 주차장에서 차를 돌리며 쌍욕을 퍼부었다

5. 아침에 일어나 앉자마자 목과 코 사이가 따끔거렸다 바로 감기임을 알아챘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닌 거 같아 출근을 했다 오전 내내 라인에 서서 물건 받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더 버티다 병 키우지 말고 오후엔 쉬자 마음먹어 부장님께 조퇴를 구하고 나왔다 숙소 근처 달랑 하나 있는 의료원이 신통찮다는 말에, 차로 삼십 분을 달려 백암 쪽으로 갔다 가보니 역시나 신속항원검사부터 하는데, 결과 뜰 때 까지 병원 밖 뒷골목에서 기다리다 들어가니, 코로나는 음성인데 이틀 후에도 상태가 호전이 안 되면 다시 오라는 말만 하고 진료가 끝났다 음성이어서 다행인 거도 알겠고 잠복기 고려해서 다시 오라는 말도 이해를 하겠는데, 정작 지금 내가 아파서 찾아온, 이틀 후에도 호전이 안 되면 다시 와야하는 바로 그 증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은 일절 없다 어디가 가장 아픈지 무엇이 가장 심한 증세인지 평소와 다른 부수적인 신체 변화는 없는지 아무 묻는 것 없이, 압설막대로 혀 눌러 목구녕 한 번 들여다보는 일 없이, 그저 처방전을 받으란다 으레 이런 식으로 처리해온 동네 병원이겠거니 싶다 환자가 ‘감기로 왔어요‘ 그러면 그 환자가 앓는 감기만의 특수성을 상세히 알아내려는 여하한 노력도 없이, 그저 이적진 처방해추면 귀납적으로 높은 확률로 잘 들어왔던 고만고만한 약들 띡 처방해주면 그만인 그런 형편없는 여러 동네 소아과들 중 하나였던 것뿐이다 몸살에 운전하느라 지친 나는 역시 또 따져 묻는 일 없이 병원을 나섰다 약 먹고 오후에 푹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지긴 했지만, 모든 학문과 그 응용에서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을 구내해는 과정이다

6. 일련의 크고작은 일들을 겪으며 나는 의사 및 의료 관계자란 존재자들을 일절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 믿는 것 이상으로 쌍욕을 퍼붓게 되었다 인간 신체를 탐구하며 그 기능적 결함을 해결하고자 분투해온 의학적 노력이 쌓아올린 지식 자체는 분명 찬란하고 대단한 것이지만, 그 지식을 여하한 창의성도 없이 기계적으로만 십 몇년을 달달 대가리에 쳐 욱여넣어 의사면허 받고 병원 하나 떵 차려놓고는 그저 매일 똑같은 모양새로 처방해내는 지식 소매상에 지나지 않는 의사들의 행태가 너무나 혐오스럽다 하나도 전문적이지 않아 보이는 형편 없는 똑똑한 멍청이들이 구할이다  하기사 찬란한 지식에 기생하되 그 자체로는 찬란하지 않은 후루꾸들 득실대는 분야가 의학 뿐이겠냐마는 말이다

- ‘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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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 - 현대철학시리즈 15
수잔 하크 / 종로서적 / 198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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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잔 하크, 논리철학, 김효명 역, 종로서적, 1984, 54쪽(제4장, 양화기호;1절, 양화기호와 그 해석)

논리철학 연습 및 단상
: 콰인은 왜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을 지지하였는가?

1. 여타 철학자들이 그렇듯 콰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역시 매우 많다 그 유명한 ‘gavagai‘ 사례에 의한 번역 불확정성 논제에서부터 지시적 불투명성 논제, 의미 회의론자, 외연주의자, 자연주의자, 철학-과학간의 연속성 논제, 인식론의 자연화 논제, 정합론 노선의 기수, 유명론자, 실용주의자, 극단적 경험론자, 논리실증주의 타도의 선봉장, 상대주의적 존재론 논제, 존재론적 개입 기준 논제, 좀 더 전문적인 데로 들어가면 양화양상논리학과 본질주의 대항마의 대부, 실용주의적 논리주의자 정도ㅡ이 모든 것 중 유명론자라는 타이틀과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은, 나처럼 철학적으로 미욱한 사람들에게는 일견 서로 잘 부합되지 않을 듯한 느낌을 준다 모든 개념 내지 언어에 대한 유명론적 관점을 견지한 그가, 왜 하필 존재 양화사의 속박변항의 값으로서 ‘대상‘이라는 형이상학적 냄새가 묻어 있는 것을 선택한 것일까

2. 양화사의 대상적 해석에 따르면, 콰인의 그 유명한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 양화사의) 속박 변항의 값이 된다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은 대상이다 여기서 콰인이 말하는 ‘대상‘은 결코 형이상학적 내지 본질주의적인 대상 또는 실체일 수 없고, 자연주의자로서 그가 존중하는바 ‘자연과학에서 말해지는 대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쯤에서 일상적인 철학적 직관에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여겨지는 귀결이 따라나온다 철학-과학 간 연속성을 강조하는 자연주의자로서의 콰인이 존재를 결부시키고자 하는 것, 즉 존재양화사의 양화적 개입을 허용하고자 하는 것은, 유명론자라는 타이틀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는 다르게 변항에 대입되는 단순한 벌거벗은 이름이 아니라 ‘자연과학이 이론적으로 규정해주는 <이름을 갖는> 대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하는 ‘대상‘이란 ‘자연과학에 의해 유명론적 경험주의적인 명명식이 이미 치뤄진 대상‘으로 이해되어야지, 그 어떤 형이상학적 본질주의적 함축을 갖는 일상적인 철학적 직관에 의거한 대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존재 양화사에 의해 속박된 변항의 값은 이미 자연과학에 의해 대입적 해석이 이뤄지고 난 이후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3. 결국 콰인이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는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신뢰, 정확히 말해 자연과학 층위에서 이미 이뤄져 있는 대입적 해석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의 대상적 해석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에 앞서 자연과학자들이 베푸는 세례식으로서의 과학적인 대입적 해석부터가 옳은지, 즉 그의 포괄적인 자연주의적 태도 자체가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를 문제삼아야 한다

4. 나는 비판의 의도가 아니라 도통 모르겠다는 의문에서 시작하였기에, 콰인의 대상적 해석을 논하기 위해 그의 자연주의까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그럴 능력도 없다) 외려 콰인이 이런 식으로 언어와 논리에 대해서까지 자연주의적 견지를 개입시키는 것이 한편으론 매우 인상깊고 다른 한편으론 작금에 대해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농 식의 존재론적 빈민굴에 대해 그가 가졌던 적대감은, 언어나 개념을 선점함으로써 세계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과 정치권력을 선점하려는 작금의 반지성적이고 수사주의적인 세태에 대한 나의 적대감과 매우 공명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리철학 입문˝에서 자신의 기술구 이론을 재론하는 와중에 ‘실재에 대한 건전한 감각은 논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 러셀의 근본취지를 계승하여, 러셀의 기술구이론을 모든 고유명에 확장한 뒤 거기 나타나는 존재 양화사에 속박된 변항의 값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자 했던 콰인의 관점은, 지시체를 결여하는 공허한 기술구를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수사학적 깡패들의 헛소리에 대항할 수 있는, 보수적이지만 ‘건전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수사력에 쉬이 넘어가는 게 현대인이지만, 그만큼 현대인들은 외려 과학에 대한 ‘건전한 감각‘을 이론적 원리적으로라도 존중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그러한 감각을 호도한 채 단지 언어나 개념만을 선점하여 자신의 존재론적 양화문에 자신이 정착시키고자 하는 이름을 대입한 뒤 그 이론을 세계에 대한 참된 표상인 양 퍼뜨리려는 사이비 학자들 운동가들 정치인들 등등을 물리치기 위해선, 동일한 층위에서 대입될 수 있는 단순한 이름 내지 언어를 제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존중하고 합의할 수 있는 이론이 존재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그러한 이름을 제시해야 한다 노이라트의 말을 빌어 우리는 우리가 탄 언어라는 배를 벗어날 수 없다 말한 콰인에게서, 정글 원주민이 발화한 ‘가바가이‘는 고사하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발화한 ‘토끼‘의 지시체마저 알 수 없다 말한 콰인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저 멀리 자신이 딛고 있는바 내 것과 똑같은 배를 숨겨놓고는 ‘가바가이‘를 와쳐대며 네 배를 버리고 그기로 오라고 강요하는 헛소리쟁이들을 물리칠 수단이, 존재 양화사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대상적 해석이라는 점일 것이다

5. 콰인에게서 박사학위논믄 지도를 받은 d.루이스가, 저 멀리 가능세계에서 자신만의 상대역-배를 타고 있는 자신의 상대역을 찾아나선 아이러니함은, 일단 제쳐두기로 한다

- ‘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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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게와 논리철학 프레게 철학 시리즈
박준용 지음 / 동연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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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문적인 연구논문들을 엮은 단행본이기에 프레게의 1차저술이나 논리/수학철학에 상당히 숙달해 있는 독자층 혹은 전문가들에게만 읽는 의의가 있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논리학의 본성 내지 특성에 대한 프레게의 견해와 연관된 논의들이 1부를 이루고, 논리철학적 사안들과 접점을 갖는 메타적 사안들에 관한 논의가 2부를 이룬다. 연구논문들을 엮은 형태의 단행본들이 으레 그렇듯이 해당 주제를 다루는 여타 연구들에 대한 참조, 해석, 평가 위주의 전문적인 논증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프레게 고유의 사유체계에 대한 초보적인 해설 격의 내용을 기대하고 읽으면 큰코다칠 것이다(프레게 당대나 그 이후 가까운 시기에 이뤄진 메타논리적 발전을 다루는 2부가 그나마 해설적인 부분이 많은 편이긴 하다). 해당 주제들을 심층적으로 공부하는 연구생이나 그런 수준에 준하는 배경지식을 갖춘 독자층이 아닌 이상은 읽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프레게의 논리/수학절학은 물론이요 일반적인 수학철학사, 19세기 중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논리학 및 수학기초론의 역사, 논리학/수학에 대한 메타적인 이론 등에 폭넓고도 깊게 숙달해 있어야, 복잡하고 전문적인 논증들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평가하며 읽어나갈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어야 할지 정 고민된다면, 도서관에서든 서점에서든 각 부의 머리글 및 각 장들(즉 각 논문들)의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 부분만 일별하여도, 본인이 이 책에 덤볐을 때 다소나마 승산이 있을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2. 개인적으로는 전술한 사안들에 대해 갖춰놓은 지식이 미진하고 겉핥기 식일 뿐이어서, 1부는 거의 글자만 읽었고 해설적인 비중이 많은 2부를 그나마 상대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힐베르트식 메타이론, 증명론과 유한유의, 이념적 방법 등에 대한 논의 및 데데킨트식 논리주의/구조주의적 관점과 자연수론이 다뤄지는 장들에서 얻은 소득이 많은바, 이전에 희미하거나 파편적으로만 알던 사안들을 좀 더 명확하게 다듬어가면서 프레게 사유와의 접점도 맛보기로 포착해볼 수 있어서 지적인 흥미와 갈증을 동시에 느꼈다. 최근 코파의 "의미론적 전통"을 5회차 재독하면서 이해하는 부분이 확 늘고 한 챕터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정의에 대한 견해차나 독립성 증명에 대한 메타적 관점차 등 번역하며 공부한 장에서 간략하게 다뤄졌던 힐베르트-프레게 간 논쟁의 핵심적인 결절점들이 이 책 6, 8, 9장에서 상세히 논구되고 있어서 무척 반갑고 지적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물론 솔직히 터놓자면 코파의 보수적 해석과 이 책 저자의 최신 해석이 정확히 상반되는 편이어서 기실 혼란만 가중된 거긴 하지만, 기존 지식에 대한 혼란 역시 모종의 인식적 확장의 편린 내지 확장을 위한 단초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단순무한체계와 단위집합을 시초항으로 삼는 자연수 사슬 등 데데킨트의 자연수론 및 그 논리주의적/구조주의적 성격을 좀 더 명확하고 상세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소득도 컸다. 이외에도 논리주의에서 추상화 절차와 흄 원리, 헤일이나 라이트 등의 신논리주의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논리철학적 의의, 모형론적 귀결개념과 타르스키의 논리상항 정의, 이 책에서도 언급 및 간략히 논구되는 데틀렙슨의 형식주의 해석, 프레게 데데킨트 러셀의 고전적 논리주의 개요 등ㅡ미구에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인가 재독할 예정인 "수학철학 및 논리철학 옥스포드 핸드북"에서 다뤄지는 주제들과도 겹치는 지점이 많았어서, 그 책도 빨리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독서였다. 늘상 그렇듯 책권 하나를 읽으면 그것 하나로 지식체계나 사유방향이 그 책에서 얻은 만큼 딱 꼴지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 이전에 읽어놓은 것이나 앞으로 읽어나가야 할 책들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독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전반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및 그 이해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행동하는 여하한 방식 모두가 그러하다. 하나의 방식이나 절차가 적당히 마물러지면 그 다음 과제가 전연 떠오른다. 신이 아닌 바에야 유한한 존재인 우리 모두-각자의 살아지는 방식이 으레 그러하다. 


3. 이런 전문적인 연구논문 모음 형태를 지닌 단행본의 장점을, 내용의 난이도와 그에 따른 이해 가능성을 떠나서 굳이 추가적으로 찾아보자면, 최신성인 듯하다. 논증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읽는 의의가 없다고 느껴진다는 단점은, 2년 전 가을에 글자만 꾸역꾸역 읽어간 박정일의 "논리-철학 논고 연구"나 당해 여름에 읽다 중도포기했던 선우환의 "때문에"에서 느꼈던 바와 동일하다. 반면 해당 주제에 관한 최신 논문이나 해외 서지사항들을 참조하며 평가하는바 그 주제에 관해 이뤄진 그간의 논의동향이 어떠했는가를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은, 전문적 학술적인 접근이 어려운 일반 독자층에게는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이는 오년 전 송하석의 "거짓말쟁이 역설에 관한 탐구"를 읽을 적에 느꼈던 바와 같다. 일반 독자층 대중들의 관심이 미약한 마이너 분야에서도 이렇듯 최신성을 갖춘 전문연구서가 나왔다는 것은, 해분야에 관심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신나고 즐겁고 긍정적인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책표지 뒷날개에 해당 출판사에서 출간된 저술목록을 보면 동 저자의 "프레게와 수학철학"이 근간으로 예정되어있는데, 알라딘 어플에서 늘상 신간을 알아보는 일로 아침을 시작하는 내가 이 책의 출간을 처음 접하고 바로 구매했을 때처럼, 그 책의 출간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한 우물 파며 연구해온 결실을 단행본 형태로 출간함으로써 일반 독자층에게도 접근성을 조금이나마 제고해준 저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족.


4. 4학년 막학기 심리철학 강의 교재는 김재권의 심리철학 2판이었다. 기능주의 파트에서 썰의 중국어 방 논증이 나오는 대목에 이르자, 교수님은 썰이 내한하여 한 심리철학 쎄미나에서 강연했을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썰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에 좌중에 있던 김용옥이 '대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냐'며 일갈하는 식으로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쎄미나 사회자였던 김재권 교수는 날카로워진 분위기를 둥그렇게 매듭지으려 멋쩍게 웃으며 "우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고 답하면서 상황을 정리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5. 그런 김재권에게서도 의도치 않은 편협함이 드러난 일화를, 해당 강의의 다른 시간에 교수님이 들려주었다: 말년의 김재권이 한 심리철학 학회에 청중으로만 참석해 듣던 중, 후배 교수에게 '요즘 학자들은 이런 것도 다 연구하냐'고 조용히 물었다고 전해진다. 에피소드를 들려준 주차는 교재의 8장이었나 9장이었나, 여하간 의식에 관한 인지과학 내 성과들이 다뤄지는 파트의 진도를 나가던 주차였다. 분석형이상학 전공이었던 교수님은 본인도 해당 부분은 적확히 아는 바가 적다며 시험범위에서 제외시켰다. 고전적인 철학적, 형이상학적 사유에 비했을 때 지엽적이어보이는 자연주의적 연구결과들이 논의되던 당시 세미나가, 심리철학분야의 대학자인 김재권에게마저 생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짧게 언급한 뒤, 교수님은 강의를 이어갔다. 대학자에게마저 그럴진대 범부인 우리들에게는 항차 어떠하겠는가. 


6. 이제 나는 20대 초중반에 견지했던바 세계에 대한 지식이나 인식과 관련하여 극단적인 형태의 상대성과 관점주의를 관철하는 철학에 더이상 관심하지 않는다. 당시 학과공부나 과제까지 뒷전으로 미뤄가면서 버스에서 열차에서 캠퍼스 영내에서 탐독하던 니체 푸꼬 데리다는 지금 틈틈이 작성해가는 도서구매목록에서 몇 줄 차지하지도 않을 뿐더러, 어쩌다 일년에 두어 번 그런 저술들을 읽을 때도, 이전과는 달리 일관성을 기하는 우호적인 해석적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전면적인 거부감을 느끼며 읽게 된다. 하지만 지식체계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동일성의 경계가 모호한 <삶의 태도> 내지 <방식>에 대해서는 상대주의적 관점이 여전히 유효하고 심지어 당위적이라고 느끼는 때가 갈수록 많아진다. 철학에 대한 대다수 대중들의 생각이 '실생활에 쓸모라곤 일절 없는 저딴 현학을 뭐한다고 다 씨부리나'로 수렴하는 현상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층이 이런 연구서를 읽을 때 느끼는 바가 '프레게 철학에서 뭐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걸고 넘어지나'로 수렴하는 현상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철학을 읽고 사유하는 사람이 '적어도 나는 그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변명할 수 있는 것처럼, 치열하게 전문 연구를 이어가는 학자들도 '우리는 이런 사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변명할 여지가 있음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프레게 학자들은 이딴 것도 다 연구하나? 쉬운 책이나 좀 써줄 것이지' 하는 아집과 욕심을 스스로 해독해낼 줄 아는 게, 건강하고 비폭력적인 형태의 지성을 갖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삶의 모든 부문과 양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7. 다만 이것이 추상적인 사유나 가치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니라 이를 실제 행동과 실천으로 현시하는 일은 또 다른 층위의 성숙함에 관한 사안이다. 그 성숙함을 향한 기도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실패하는 나를 자주 본다. 이런 측면에서라도 나는 아직 데리다를 이따금 만지작거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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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프랑스 철학사
한국프랑스철학회 엮음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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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구성을 통해 핵심 사안을 깔끔하면서도 알차게 전달하는 좋은 입문서이다. 5부 구성으로 실증주의 형이상학과 과학철학적 인식론 전통, 프랑스 현상학과 실존주의,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이후 동시대의 두 인물이 다뤄진다. 각 부의 서론에서 해당 흐름을 개괄한 뒤 장별로 한 철학자의 사상이 해설되는데, 인물의 생애와 저작을 소개하고, 이론의 핵심 개념과 내용을 시간순, 발전순으로 해설하며, 다소 공인된 철학사적 의의와 영향을 간략히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구성 면에서 통일적일 뿐만 아니라 내용의 난이도 측면에서도 균일성을 기하고자 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다뤄지는 각 인물들의 사유 자체의 특성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을 차치하면, 각 글들의 서술 스타일과 읽는 난이도가 매우 균질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복수 저자들이 참여했음에도 이렇듯 통일되고 일관적인 모양새를 갖춘 동시에 학술적 견실함도 여실한 단행본이 탄생했다는 건 분명 해당 학회에서 많은 논의와 검토가 이뤄졌음을 증거하는바, 책 전체 머리말에서 드러나는 자부심과 뿌듯함은 결코 알맹이 없는 수사적 자화자찬이 아니다. 교양서 수준으로 평이하게 읽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철학과 학부생 2, 3학년 내지 전통철학사와 현대철학사 서적을 두어권 읽어본 독자층이라면 각 철학자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내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법한 학술적 입문서이다. 현대 프랑스철학 내지 대륙철학 전통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철학적 기반 등에 관심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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