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식론 - 정당화의 사회실천에 의한 접근, 개정판
이병덕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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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초보적 수준의 입문용 교재처럼 보이지만, 부제가 시사하듯이 인식론적 정당화 개념을 특정 관점에서 논증적으로 해명하는 것을 전반적인 목표로 삼는 심층 연구서로 보아야 적절할 듯하다. 목차를 일별하면 통상적인 인식론 저술들에서 다뤄지는 주요 이론들을 마찬가지로 통상적인 저술들과 유사한 순서 및 구성으로 배치하여 서술한다. 하지만 본문을 본격적으로 읽어보면 해당 주제들을 해설적으로 설명한다기보다는, 저자가 견지하는 셀라스식 모델로서의 사회실천적 정당화 모델과 특정 형태의 정합론을 결합한 이론을 통해 인식론의 주요 난제들을 해결하는 논증들이 책 전반을 통틀어 제시된다. 형식 면에서도 게티어문제나 토대론/정합론, 신빙론, 회의주의 등의 논제들이 매우 개괄적으로 해설되는 1, 3, 6, 13장을 제외하면, 여타 9개 장들은 저자의 기존 연구논문들을 토대로 재구성된 형태이다. 후자 장들에서는 때에 따라서 언어철학, 과학철학, 형이상학, 논리철학에서 다뤄지는 극히 전문적인 사안들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 탓인지 상기한 네 장과 나머지 장들 간 논의 밀도와 호흡이 현저하게 달라 독서 난이도와 피로감의 비대칭성이 다소 심한 편이다. 초심자의 경우 전자 장들에서는 설명이 너무 개략적이어서 철저하거나 풍푸한 이해를 도모하기 어렵고, 반면 후자 장들에서는 전문적인 개념, 논제, 원리들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된 독서 자체를 해나가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니 전문가의 지도를 받을 수 없는 초심자라면 더욱 초보적인 수준에서 해설적으로 서술된 김도식의 "현대 영미 인식론의 흐름"이나, 그 책과 난이도가 비슷하면서 양적으로 더 풍부한 마티아스 슈토이프의 "현대 인식론 입문"을 읽길 권한다. 이후 심화교재라 할 수 있는 김기현의 "현대 인식론"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비로소 이 책 고유의 셀라스식 모델과 그에 기반한 논증들을 제대로 음미하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이 책과 유사한 난이도를 지닌 해설적 연구서이되 상반되는 기조인 토대론을 중심으로 인식론적 문제들을 검토하는 윤보석의 "현대 토대론 연구"를 읽으면 추가적인 균형감을 갖출 수 있겠다. 


 사족.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본인이 개입하는 해당 이론에 너무 많은 우위를 부여하면서 케익을 먹으려는 동시에 갖고 있으려는 과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심이 들기도 했다. 가령 셀라스식 정합론을 진리 축소론과 결합함으로써 정합론에 으레 제기되는 고립반론이나 정합적 복수체계 반론을 물리칠 수 있다면, 이는 마찬가지로 전체론적 정합론과 진리 축소론을 견지하되 전체론적 망의 최후 보루로서 과학적 자연주의를 내세우는 콰인식 모델과 얼마나 다른가? 셀라시언 정합론에 따를 경우 우리의 인식목적과 규범이 정당화를 둘러싼 디폴트-도전 구조 내에서 최선의 설명적 정합성을 갖는 세계상을 획득하는 것이되, 차후 제기될 법한 정당화-도전에 직면하여 새로운 세계상에 부여될 설명적 효력의 상한선이 개정될 여지도 허용된다면, 그런 개정이 <우리의> 개념체계 내에서 정당한지 여부를 판정해줄 기준은 어디에서 찾아질 수 있는가? 데이빗슨이 강조하듯 우리의 것과 비교했을 때 진정 이질적이면서 대안적인 개념체계란 <우리의> 정당화 모델에서 무의미한 것인바 그런 체계가 기실 존재할 수 없을진대, 그 경우에도 우리가 마지막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개념체계는 결국 자연과학적 체계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인식론적 규범성이나 목적성, 합리성 등의 개념을 과감히 포기하고 콰인식 자연주의와 전체론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욱 <최선의 설명성>을 갖는 경제적 모델이 아니겠는가? 예컨대 선험적 지식이 다뤄지는 11장에서 도입되는바 보고시안이 제시한 형이상학적/인식론적 분석성 개념이 철학적으로 합당한 구분이어서 후자의 분석성이 선험적 지식의 정당화에 활용될 수 있다면, 콰인도 존재론적/의미론적으로는 무해한 그런 의미의 분석성을 받아들이되 다만 그 분석성을 판가름하는 인식론적 배경을 자연과학적 지식으로 잡은 뒤 선험적 지식은 여전히 거부할 수 있지 않은가?ㅡ저자가 워낙에 다양한 이론과 논제들을 능숙하고 기교적으로 활용하여 상당히 구성적인 논증들을 펼쳐보이기에, 그런만큼 철학적으로 공격해볼 여지가 많다는 느낌이 든 독서였다. 다만 나는 철학적 언어만 많이 익혀왔을 뿐, 진정으로 철학적인 논증을 엄밀하고 만족스럽고 안전하게 구성하는 능력은 아직도 한참 미진하다는 것 역시 절감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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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철학이란 무엇인가?
쇠렌 오버가르 외 지음, 김랜시 옮김 / 생각과사람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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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괄적인 신생분야를 평이하고 깔끔하게 전달하는 전문적 입문서이지만, 번역상태가 다소 의심스러워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존재), 철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방법), 철학은 왜 해야 하며 어떠한 소용이 있는가?(가치)' 라는 세 물음을 중심 삼아, 철학에 관한 철학으로서의 메타철학이라는 분야를 평이한 서술과 깔끔한 구성으로 전달하고 있다. 저술 의도도 그렇고 책의 실제 난이도나 서술스타일도 그렇고 분명 입문서이긴 하지만, 주제 자체가 메타적인 분야인 만큼 통상적인 철학사 전반과 개별 철학자들의 이론은 물론이요,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언어철학, 과학철학, 대륙/분석철학, 현상학, 자연주의 등과 같은 철학의 하위 분야나 주제들에 이르기까지ㅡ1계 철학 전반에 대한 선지식이나 감각을 간략하게나마 폭넓게 갖추고 읽어야 유의미한 입문서 노릇을 할 수 있겠다. 통상적인 학부 커리큘럽상 개별 강의를 통해 그러한 선지식들을 다소 갖춰 놓았을 철학과 학부생 3, 4학년이라면(혹은 그에 준할 정도로 철학에 숙달해 있는 일반 독자층이라면) 요즘 같은 방학 시즌에 편하게 일독해볼 가치가 있겠다. 강의를 통해 다양한 1계 철학이론들을 배우면서 각 철학자들이 지녔던 메타적 철학관에 관한 <막연한> 시사점을 분명 접하겠지만, 철학 자체가 그 학문적 지위와 정의특성에 관한 논쟁이 다발하는 학문인 만큼, 무릇 진지하게 공부하는 철학도라면 자신의 전공분야를 한층 더 높은 시각에서 <체계적, 논증적으로>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금이나마 더 안전하고 실패 여지가 적은 탐구의 시작점과 사유의 재료를 확보케 해주는 희소성 있는 문헌으로서, 적어도 철학과 학생들에게는 구매소장이 추철될 법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나마 주제가 겹치면서 메타적인 성격의 저술로 니킬 무커지, "실험철학", 제임스 체이스 外, "분석철학 대 대륙철학", H. J. 글록, "분석철학이란 무엇인가?" 등 세 권을 읽은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모두 언급 및 간혹 인용되고 있어 반갑기도 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논의가 폭넓고 또한 번역이 딱히 유려하진 않지만, 해당 책들도 가까운 시일 내에 함께 읽는다면 철학이라는 거대한 분야 자체에 대한 메타적 감각을 갖춰놓는 데에 일익이 있을 것이다. 


2. 다만 초두에 언급했듯 간혹 발견되는 오역에서도 그러하고, 전반적으로 읽어가며 느껴졌던 스타일이나 문장력, 논의의 이해가능성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번역 상태가 딱히 안전하지 않아보인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라 여겨졌다. 주제의 특성상 이렇게 1계 수준의 다양한 이론, 논제, 관점, 개념, 방법론 등에 대한 메타적 논의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 저술의 경우, 인용되거나 논의에 활용되는 다양한 주제와 입장들을 1차적으로 만족스런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원저자가 그러한 자료들을 어떤 논의맥락 내에서 어떤 결론이나 함의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지를 2차적으로도 충분히 간파하고 이해한 채 번역에 임할 것이 역자에게 요구된다. 그래야만 인용문과 본문, 1계수준과 2계수준 서술, 다양한 철학자들의 입장 사이를 오가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논의 속에서,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는 건 고사하고) 최소한 언어적으로 방황하지 않고 논의의 길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는 물건이 나온다. 간혹 보이는 오역이나 미심쩍어 보이는 문장들, 이해가 잘 안되거나 한국어 맥락상 오도적이게 배치된 구문들 등을 보건대,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만족스럽게 번역된 물건은 아니라 생각한다. 

 가령 53쪽을 보자:


  해커가 설명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메타철학적 입장에 따르면, 철학은 자연과학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인간 지식에 그 어떠한 공헌도 하지 않는다. 


추정컨대 원문은 'not …, nor' 형식의 문장이었을 듯한데, 그렇다면 "철학은 자연과학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가 아니라 "철학은 자연과학의 일부가 <아닐> 뿐만 아니라"로 번역되어야 한다. 원문에 대한 추정과는 별개로도 위 번역은 논의 맥락상 모순되는바, 해당 문장의 앞 문단 중심내용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치유적 철학관에 관한 것으로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 '과학과 매우 다르다'는 슐릭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라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어있다. 논의 맥락에 대한 고려와 별개로도, 비트겐슈타인은 전후기를 통틀어 철학이 자연과학의 일부라 생각한 적이 없다는 철학사적, 해석적 상식을 감안하건대, 해당 부분의 논의맥락에도 철학사적 배경지식에도 민감하지 않은 정신상태에서 야기된 사소하지만 한심한 오역이라 평할 수밖엔 없는 대목이다. 

 152쪽도 내가 생각기로는 명백한 오역이다:


  아마도 쿠퍼가 암시하듯이, 하이데거와 다른 철학자들은 후설의 주관성(subjectivity)이 데카르

  트식 실체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주체 영역 안에서만 지향적 경험"을 한다고 비판해 왔

  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후 등장한 후기 현상학자 미셸 앙리는 후설의 주관성이 불필요한 

  편재성(insufficiently immanent)을 띤다고 비판했다. 


후미의 'insufficiently'를 '불충분하게'가 아니라 '불필요하게'로 오역했으며 'immanent'를 두 의미 중 '내재적인'이 아니라 '편재하는'으로 잘못 선택하여 번역했다. 미셸 앙리라는 현상학자의 이론을 나는 일절 모르지만, 논의 맥락상 추정컨대, 하이데거, 메를로-뽕띠, 레비나스, 사르트르 등 후설 현상학을 일부 계승하였다고 자처하는 현상학자들은 후썰식 주관성이 과도하게 주체 내재적이라고 비판했음과 달리, 미셸 앙리는 도리어 후썰식 주관성이 <불충분하게 내재적>이었다고, 즉 더욱 철저하게 내재성을 띠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모종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는 내용이, 원저자의 의도였을 듯하다. 논의맥락상으로도 번역된 단어의 의미 자체로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주체가 <편재성>을 띤다는 말은 소박한 형태의 관념론이나 범심론이 아닌 바에야 철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에서 더 나아가 주체의 편재성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인지조차 전연 이해할 수 없다. 53쪽에서와 달리 원어를 병기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걸 보면, 앞서와 마찬가지로 논의 주제가 되는 1계 이론이나 해당 논의맥락에 대한 면밀한 검토 및 충분한 이해 없이 사소하지만 무책임하게 오역된 사례라고 의심할 여지가 다분하다. 

 161쪽엔 내 배경지식으로는 추정상으로도 도저히 이해를 기도해볼 수 없는 문장이 나온다:


  언뜻 보면 엄밀해 보이는 정의에 호도되지 말라. 그 예는 다음과 같다. 저자 A는 형식어원

  (formal derivation) D를 사용하는 그 어떤 유용성 U도 취하지 않는다.


콜린 맥긴이 자신의 '인지적 폐쇄' 개념을 분석철학전통 특유의 준형식적 언어로 기술한 데 대해 대니얼 데닛이 비꼬면서 제시한 문장이다. 문장 전체의 의미를 짐작하긴 어려워도 'formal derivation'이 '형식적 도출'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점 만큼은 추정할 수 있겠다. 어떤 단어의 어원이 '형식적'이라는 말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행히 해당 본문이 1에서도 언급한 글록의 책 인용문이어서 해당 부분을 찾아보았다:


  이 정의의 외관상의 엄밀성 되문에 오도되지 말라. 필자 A는 임의의 형식적 명제 D를 도출할 

  때 결코 어떠한 용도로도 U를 이용하지 않는다.

  (H. J. Glock, "분석철학이란 무엇인가?", 한상기 譯, 서광사, 2008, 322쪽.)


기실 이 문장도 원문(데닛의 1991년 논문 '뇌와 그 경계The Brain and its Boundaries')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보거나 이해한 채 번역된 문장은 아닌 것처럼 짐작되지만, 적어도 'derivation'을 '도출'로 번역해내긴 했다. 데닛의 문장을 인용한 글록의 문장을 인용한 이 책의 문장에 대해, 그 맥락과 의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다의적 단어를 부주의하게 번역함에 따라, 철학적 맥락을 떠나 한국어 문장 자체로서도 전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문장이 나와버렸다. 

 역시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1계이론에 대한 무지의 증거로서, 246쪽에서 Russell의 'definite description'이 '명확한 기술'로 번역된 것을 들 수 있겠다. 원저자가 칭하는바 철학의 효용 중 '삭제기능(substractive function)'을 지닌 이론들이 논의되는 맥락인데, 통상 '한정 기술구, 확정 기술구' 등으로 번역되는 definite description에 대한 러셀의 논리적 분석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절차를 통해 존재론적으로 절약적, 삭제적, 축소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명확히> 숙지하고 있다면, 게다가 이런 철학적 함의가 해당 단어가 등장하는 본문의 전후에서도 논의되고 있음을 맥락적으로 <명확히> 숙지 및 이해하고 있다면, 이 영단어를 최소한 '<명확한> 기술구'로는 번역하지 않았을 것이 <명확하다>.


 이렇듯 외견상으론 사소한 실수인 듯 보여도, 기실 뜯어보면 단순한 착오에 기인한 오역이라기보다는 본문의 논의맥락이나 본문에서 인용되는 논의들에 대한 주의깊은 검토와 이해가 미진한 탓에 기인한 심각한 형태의 오역으로 의심되는 문장들이 매우 많다. 이런 의심이 쌓여가다보니, 책 후반부로 갈수록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만나도 정합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하며 읽기 보다는 그저 이해가 안 가는 채로 내버려두고 글자만 읽어내려가게 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점에서, 앞서 말했듯 미심쩍은 번역들을 자체적으로 교정 및 보정해가며 나름대로 유의미한 이해를 건져낼 수 있을 만큼의 배경지식과 철학적 숙달 수준을 갖춘 독자층에게만 구매소장이 추천될 법하다. 가장 좋은 선택지야 원서를 읽는 것이겠지만, 메타철학이라는 분야를 전공할 전문연구자가 되길 희망하는 게 아닌 바에야 이 역본을 읽어보고픈 일반 독자층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구절에서 괜히 씨름하지 말고 쿨하게 넘기면서 대략적인 그림만을 접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쪽으로 독서호흡을 잡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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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수학입니까? - 자연수, 0, 음수, 분수 그리고 사칙연산의 논리
데이비드 벌린스키 지음, 이경아 옮김 / 에이도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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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학의 근본원칙들을 중심으로 자연수론과 그 연산체계 등 초등수학의 논리적 토대를 평이하게 해명하는 교양서로서 신선한 지적 경험을 주긴 하지만, 서술과 구성의 난삽함으로 인해 구매소장까지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원제에서 부제로 붙은 " the beauty and symmetry of absolutely elementary mathematics"에서 시사되듯이, 대수학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토대로 수 체계 및 그 기초적인 연산체계가 논리적으로 증명되는 절차를 평이한 언어로 해설하면서, 초등수학체계의 공시적 발전사와 통시적 완결태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논리적 대칭성이나 항구성, 공리적 완결성 등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작금의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막무가내로 배우고 익혀 일상에서 무리없이 사용하는 초등수학의 기초적인 체계가, 모종의 완전성과 대칭성을 도모하면서 더욱 근본적인 논리적, 대수적 원리에 부합하게끔 정비 및 발전되어 온 체계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바, 수학의 지루한 기계적 연산성 이면의 기초론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분명 일독해볼 가치는 있는 교양서이다. 가령 자체로는 무의미한 기호를 그에 대해 명시된 원리나 규칙에 따라 형식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우리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동시에 형식적으로도 올바른 수학적 결과가 어떻게 일관적으로 도출될 수 있게 되는가 하는 형식주의적 기조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학창시절 배운 수학지식을 다 잊어먹은 일반 성인독자층은 물론이요 수학에 즐거움을 전연 못 느끼는 중고등학생에게도 새로운 지적 자극과 경험을 안겨다줄 수 있겠다. 

 하지만 전반적인 서술과 챕터 구성 일부가 대체로 난삽하게 여겨진다는 점이 텍스트로서는 큰 단점이다. 핵심 논의를 이어가다가도 다소 뜬금없는 일화나 희한한 수사적 언술을 맥락상 부자연스럽게 덧붙인다든가, 아벨라르, 드 모르건, 코발레프스키 등 한 챕터 전체가 개별 인물들과 관련된 에피소드에 할애되되 그 내용이 여타 장들의 본격적인 논의들과 별 접점이 없는 일화들로만 꾸며져 있다든가 하는 식이다. 기등록된 100자평에서 "전반적으로 헛소리"라는 평이 나온 이유는 이런 식의 난삽함이나 매끄럽지 못한 서술스타일에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근자에 동 저자의 간략한 수학사 책을 만족스럽게 읽어놔서 이 책에도 다소 기대를 했었는데, 서술스타일이나 논의방식이 매끄럽지 못해 <상대적으로> 조금 실망스런 독서였다. 다만 앞서 말했듯 책의 벼리가 되는 논의 자체는 분명 유익하고 유의미한 지적 경험을 주기 때문에, 호기심에 굳이 일독하고자 한다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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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하크, 논리철학, 김효명 역, 종로서적, 1984, 54쪽(제4장, 양화기호;1절, 양화기호와 그 해석)

논리철학 연습 및 단상
: 콰인은 왜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을 지지하였는가?

1. 여타 철학자들이 그렇듯 콰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역시 매우 많다 그 유명한 ‘gavagai‘ 사례에 의한 번역 불확정성 논제에서부터 지시적 불투명성 논제, 의미 회의론자, 외연주의자, 자연주의자, 철학-과학간의 연속성 논제, 인식론의 자연화 논제, 정합론 노선의 기수, 유명론자, 실용주의자, 극단적 경험론자, 논리실증주의 타도의 선봉장, 상대주의적 존재론 논제, 존재론적 개입 기준 논제, 좀 더 전문적인 데로 들어가면 양화양상논리학과 본질주의 대항마의 대부, 실용주의적 논리주의자 정도ㅡ이 모든 것 중 유명론자라는 타이틀과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은, 나처럼 철학적으로 미욱한 사람들에게는 일견 서로 잘 부합되지 않을 듯한 느낌을 준다 모든 개념 내지 언어에 대한 유명론적 관점을 견지한 그가, 왜 하필 존재 양화사의 속박변항의 값으로서 ‘대상‘이라는 형이상학적 냄새가 묻어 있는 것을 선택한 것일까

2. 양화사의 대상적 해석에 따르면, 콰인의 그 유명한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 양화사의) 속박 변항의 값이 된다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은 대상이다 여기서 콰인이 말하는 ‘대상‘은 결코 형이상학적 내지 본질주의적인 대상 또는 실체일 수 없고, 자연주의자로서 그가 존중하는바 ‘자연과학에서 말해지는 대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쯤에서 일상적인 철학적 직관에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여겨지는 귀결이 따라나온다 철학-과학 간 연속성을 강조하는 자연주의자로서의 콰인이 존재를 결부시키고자 하는 것, 즉 존재양화사의 양화적 개입을 허용하고자 하는 것은, 유명론자라는 타이틀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는 다르게 변항에 대입되는 단순한 벌거벗은 이름이 아니라 ‘자연과학이 이론적으로 규정해주는 <이름을 갖는> 대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하는 ‘대상‘이란 ‘자연과학에 의해 유명론적 경험주의적인 명명식이 이미 치뤄진 대상‘으로 이해되어야지, 그 어떤 형이상학적 본질주의적 함축을 갖는 일상적인 철학적 직관에 의거한 대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존재 양화사에 의해 속박된 변항의 값은 이미 자연과학에 의해 대입적 해석이 이뤄지고 난 이후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3. 결국 콰인이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는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신뢰, 정확히 말해 자연과학 층위에서 이미 이뤄져 있는 대입적 해석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의 대상적 해석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에 앞서 자연과학자들이 베푸는 세례식으로서의 과학적인 대입적 해석부터가 옳은지, 즉 그의 포괄적인 자연주의적 태도 자체가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를 문제삼아야 한다

4. 나는 비판의 의도가 아니라 도통 모르겠다는 의문에서 시작하였기에, 콰인의 대상적 해석을 논하기 위해 그의 자연주의까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그럴 능력도 없다) 외려 콰인이 이런 식으로 언어와 논리에 대해서까지 자연주의적 견지를 개입시키는 것이 한편으론 매우 인상깊고 다른 한편으론 작금에 대해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농 식의 존재론적 빈민굴에 대해 그가 가졌던 적대감은, 언어나 개념을 선점함으로써 세계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과 정치권력을 선점하려는 작금의 반지성적이고 수사주의적인 세태에 대한 나의 적대감과 매우 공명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리철학 입문˝에서 자신의 기술구 이론을 재론하는 와중에 ‘실재에 대한 건전한 감각은 논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 러셀의 근본취지를 계승하여, 러셀의 기술구이론을 모든 고유명에 확장한 뒤 거기 나타나는 존재 양화사에 속박된 변항의 값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자 했던 콰인의 관점은, 지시체를 결여하는 공허한 기술구를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수사학적 깡패들의 헛소리에 대항할 수 있는, 보수적이지만 ‘건전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수사력에 쉬이 넘어가는 게 현대인이지만, 그만큼 현대인들은 외려 과학에 대한 ‘건전한 감각‘을 이론적 원리적으로라도 존중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그러한 감각을 호도한 채 단지 언어나 개념만을 선점하여 자신의 존재론적 양화문에 자신이 정착시키고자 하는 이름을 대입한 뒤 그 이론을 세계에 대한 참된 표상인 양 퍼뜨리려는 사이비 학자들 운동가들 정치인들 등등을 물리치기 위해선, 동일한 층위에서 대입될 수 있는 단순한 이름 내지 언어를 제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존중하고 합의할 수 있는 이론이 존재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그러한 이름을 제시해야 한다 노이라트의 말을 빌어 우리는 우리가 탄 언어라는 배를 벗어날 수 없다 말한 콰인에게서, 정글 원주민이 발화한 ‘가바가이‘는 고사하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발화한 ‘토끼‘의 지시체마저 알 수 없다 말한 콰인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저 멀리 자신이 딛고 있는바 내 것과 똑같은 배를 숨겨놓고는 ‘가바가이‘를 와쳐대며 네 배를 버리고 그기로 오라고 강요하는 헛소리쟁이들을 물리칠 수단이, 존재 양화사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대상적 해석이라는 점일 것이다

5. 콰인에게서 박사학위논믄 지도를 받은 d.루이스가, 저 멀리 가능세계에서 자신만의 상대역-배를 타고 있는 자신의 상대역을 찾아나선 아이러니함은, 일단 제쳐두기로 한다

- ‘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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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기계 - 철학은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팀 크레인 지음, 민찬홍 옮김 / 동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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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다양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지만 능숙하고 유려한 서술로 매끄럽게 풀어나가기에, 지적인 소득과 읽는 즐거움 양자를 안겨주는 탁월한 입문서이자 교양서이다. 저자가 칭하는바 마음에 대한 기계론적 견해와 그 핵심 개념인 심적 표상(마음의 지향성)을 중심으로 심리철학/인지과학의 유관 이론과 논제들을 차근차근 살펴본다. 각 장마다 다뤄지는 주제나 개념들이 질적으로 꽤나 전문적이고 수적으로도 다양한 편이지만, 이에서 느껴질 수 있는 부담감을 자연스럽고 유려한 서술과 구성을 통해 잘 감쇄하였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비근한 직관이나 예시에서 시작해, 차후 필요한 전문적, 철학적 개념이나 부수장치들을 도입하고, 이를 활용해 해당 주제나 논제를 본격적으로 정식화하여 설명하면서, 그와 얽힌 쟁점 및 논증과 그 철학적 함의에 자연스럽게 이목을 집중시킨다. 개인적으로 배경지식이 많지 않고 흥미도 강하지 않았던 분야임에도, 읽는 구절구절마다 능숙하고 탁월하게 논의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몰입하여 읽어나갔다. 기등록된 평들에서 '어렵지만 흥미롭다'는 식의 감상이 보임은 이런 점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약간의 해설이나 논평을 한 줄씩 갖춘 추천도서목록도 추가적인 탐구와 독서에 매우 유용해보였다. 이렇듯 정석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을 능숙하고 매끄럽게 잘 전달해내고 있으니, 적당한 독서역량을 갖췄다면 심리철학에 문외한인 독자층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 있는 고급 교양서로서 추천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심리철학 관련 저서 하나 읽을 즈음이 됐다는 막연한 의무감에 별 기대 없이 그저 구매해 뒀었는데, 막상 집어들고 보니 내용이 좋고 서술이 탁월하여 예상했던 바와 달리 흡인력 있게 읽어나갔다. 심적 내용의 내재론/외재론 논쟁이나 사고언어 이론 등 이전에 막연하게만 들어둔 사안들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해볼 수 있었던 데다, 인지과학이나 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 논의된 심리철학적 쟁점들도 전연 새로이 알게 되어, 무척 흥미롭고 소득도 많았던 독서였다. 


 비교적 근자인 3년 전 김재권의 "심리철학" 3판이 새로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양적/질적으로는 외견상 비슷하여 비교될 법하다. 하지만 사실상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 구성방식, 전반적인 철학적 스탠스 등이 다소 상이해 굳이 우열이나 독서의 우선순위를 매기기에는 부적절하고, 개인적인 관심사나 막연한 선호도에 따를 수밖엔 없겠다. 김재권의 책은 심리철학의 고전적인 입장들을 다소 역사적인 순으로 해설해가면서, 지향성이든 현상성이든 심적인 것의 특정 측면이나 쟁점보다는 최소한의 물리주의적 테두리 내에서 심신문제 일반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을 주로 환기하는 편이다. 반면 이 책은 역사적, 시대적 개괄은 거의 전무한 채 심적 표상 논제와 마음에 대한 기계론 간 철학적 연결가능성을 타진하는 데에 시종 초점을 맞추면서, 심적인 것에 관한 존재론적 논의보다는 20세기 후반에 발전된 다양한 심리철학/인지과학적 사안들을 기능주의/계산주의적 테두리 내에서 정합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에 주력한다. 그러니 개인적인 기호나 관심사에 따라, 철학의 오래된 문제로서 마음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심한다면 김재권의 책을, 기계/인과 기능주의라든가 인공지능의 철학적 기반 등 좀 더 최신성이 있는 사안들을 심리철학의 또 다른 정통적 주제인 심적표상과 결부시켜 이해해보는 데 구미가 당긴다면 이 책을 먼저 선택하면 되겠다. (다만 김재권의 책은 역본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 번역 관련 사안은 비교를 못하겠다.) 물론, 양자 모두 결코 후회할 일 없는 양서들이니, 가장 좋은 선택지는 둘 다 통독하여 각 저서에서 미진하다 여겨지는 부분을 스스로 보완해보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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