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기계 - 철학은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팀 크레인 지음, 민찬홍 옮김 / 동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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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다양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지만 능숙하고 유려한 서술로 매끄럽게 풀어나가기에, 지적인 소득과 읽는 즐거움 양자를 안겨주는 탁월한 입문서이자 교양서이다. 저자가 칭하는바 마음에 대한 기계론적 견해와 그 핵심 개념인 심적 표상(마음의 지향성)을 중심으로 심리철학/인지과학의 유관 이론과 논제들을 차근차근 살펴본다. 각 장마다 다뤄지는 주제나 개념들이 질적으로 꽤나 전문적이고 수적으로도 다양한 편이지만, 이에서 느껴질 수 있는 부담감을 자연스럽고 유려한 서술과 구성을 통해 잘 감쇄하였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비근한 직관이나 예시에서 시작해, 차후 필요한 전문적, 철학적 개념이나 부수장치들을 도입하고, 이를 활용해 해당 주제나 논제를 본격적으로 정식화하여 설명하면서, 그와 얽힌 쟁점 및 논증과 그 철학적 함의에 자연스럽게 이목을 집중시킨다. 개인적으로 배경지식이 많지 않고 흥미도 강하지 않았던 분야임에도, 읽는 구절구절마다 능숙하고 탁월하게 논의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몰입하여 읽어나갔다. 기등록된 평들에서 '어렵지만 흥미롭다'는 식의 감상이 보임은 이런 점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약간의 해설이나 논평을 한 줄씩 갖춘 추천도서목록도 추가적인 탐구와 독서에 매우 유용해보였다. 이렇듯 정석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을 능숙하고 매끄럽게 잘 전달해내고 있으니, 적당한 독서역량을 갖췄다면 심리철학에 문외한인 독자층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 있는 고급 교양서로서 추천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심리철학 관련 저서 하나 읽을 즈음이 됐다는 막연한 의무감에 별 기대 없이 그저 구매해 뒀었는데, 막상 집어들고 보니 내용이 좋고 서술이 탁월하여 예상했던 바와 달리 흡인력 있게 읽어나갔다. 심적 내용의 내재론/외재론 논쟁이나 사고언어 이론 등 이전에 막연하게만 들어둔 사안들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해볼 수 있었던 데다, 인지과학이나 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 논의된 심리철학적 쟁점들도 전연 새로이 알게 되어, 무척 흥미롭고 소득도 많았던 독서였다. 


 비교적 근자인 3년 전 김재권의 "심리철학" 3판이 새로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양적/질적으로는 외견상 비슷하여 비교될 법하다. 하지만 사실상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 구성방식, 전반적인 철학적 스탠스 등이 다소 상이해 굳이 우열이나 독서의 우선순위를 매기기에는 부적절하고, 개인적인 관심사나 막연한 선호도에 따를 수밖엔 없겠다. 김재권의 책은 심리철학의 고전적인 입장들을 다소 역사적인 순으로 해설해가면서, 지향성이든 현상성이든 심적인 것의 특정 측면이나 쟁점보다는 최소한의 물리주의적 테두리 내에서 심신문제 일반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을 주로 환기하는 편이다. 반면 이 책은 역사적, 시대적 개괄은 거의 전무한 채 심적 표상 논제와 마음에 대한 기계론 간 철학적 연결가능성을 타진하는 데에 시종 초점을 맞추면서, 심적인 것에 관한 존재론적 논의보다는 20세기 후반에 발전된 다양한 심리철학/인지과학적 사안들을 기능주의/계산주의적 테두리 내에서 정합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에 주력한다. 그러니 개인적인 기호나 관심사에 따라, 철학의 오래된 문제로서 마음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심한다면 김재권의 책을, 기계/인과 기능주의라든가 인공지능의 철학적 기반 등 좀 더 최신성이 있는 사안들을 심리철학의 또 다른 정통적 주제인 심적표상과 결부시켜 이해해보는 데 구미가 당긴다면 이 책을 먼저 선택하면 되겠다. (다만 김재권의 책은 역본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 번역 관련 사안은 비교를 못하겠다.) 물론, 양자 모두 결코 후회할 일 없는 양서들이니, 가장 좋은 선택지는 둘 다 통독하여 각 저서에서 미진하다 여겨지는 부분을 스스로 보완해보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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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xford Handbook of Philosophy of Mathematics and Logic (Paperback)
Stewart Shapiro / Oxford Univ Pr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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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적으로 방대하고 질적으로 수준이 높아 읽는 피로도가 매우 높지만, 전반적으로 균형잡힌 구성과 개별 글들의 자체적인 탁월함 덕택에 끈기있게 읽으면 많은 소득과 지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고급 학술서이다. 편자 서언에서 밝히듯 크게 다섯 파트로 대별될 수 있는바, 칸트, 밀, 논리실증주의,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수학철학적 입장 등을 살펴보는 다소 역사적인 파트(2-4章),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big three로 일컬어지는 논리주의, 형식주의, 직관주의를 심화된 관점에서 고찰하는 파트(5-11), 20세기 후반에 활발히 논의된 수학에서의 자연주의, 유명론, 구조주의의 여러 버전들에 할애된 파트(12-18), 다소 유별되는 주제로서 수학에서의 가술주의(可述主義)predicativism와 수학의 적용가능성 개념을 살펴보는 파트(19, 20), 논리적 귀결 개념, 적합논리, 고계논리 등의 주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리철학적 논쟁을 살펴보는 파트(21-26) 등이며, 1장은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한 전반적인 서론 격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챕터별 각 글들의 서술방식도 다양하여 해설적, 논증적, 비판적, 구성적, 역사적, 비교대조적 방식 등을 취하는 다양한 성격의 글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양적인 방대함과 다종성에서 느껴질 수 있는 압박감을 탁월하고 매끄러운 구성과 편집력으로 잘 상쇄한 듯하다. 책 전반적인 차원에서든 개별 글들 차원에서든 내용의 양과 텍스트로서의 서술 수준을 통일감 있는 구도 하에서 균질화했다는 느낌이 초독 시부터 들었다. 또한 역시 서문에서 밝히듯 (일부 파트나 주제를 제외하면) 각 입장이나 논제에 대해 우호적인 글과 비판적인 글이 최소한 한 편씩 할당되어 있어, 주제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기를 수 있으면서도 한 편의 글 내에서 난삽함이나 혼란을 가중할 여지는 최소화되어 있다 하겠다. 내용이나 주제 자체가 지니는 난이도를 차치하면 이렇듯 적어도 텍스트로서 읽는 피로감은 최소화된 학술자료의 모양새를 도모한 기도가 엿보이는바, 편집자인 샤피로의 기획력과 편집력이 빛을 발휘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출간 이전에 그가 저술한 수학철학 입문서의 구성이, 가술주의 및 적용가능성 파트와 논리철학 파트를 제외하면 이 책의 구성과 거의 유사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글에서 필진들이 초두나 말미에서 샤피로의 논평에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인 걸 보면, 이런 추측이 마냥 억측은 아닐 것이다. 

 이런 탁월한 편집력 하에서 수학철학 분야의 A급 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한바 각 글의 자체적인 완성도나 수준 및 논증적 참신함 등도 매우 높으니, 강도높은 배경지식과 더불어 끈기있는 독서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많은 소득을 올림과 함께 수학철학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도 십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분량과 난이도의 자료집으로 퍼트넘과 베나세납이 편집한 "수학철학 선집" 역본을 서너번 열심히 재독한 바 있는데, 시기상으로도 다뤄지는 주제 차원에서도 이 책이 그 책에 대한 보완물이나 후속격의 텍스트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퍼트넘-베나세랍의 책은 19세기 인물인 프레게부터 괴델 등에 이르는 학자들이 쓴 비교적 고전적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83년의 개정을 통해 G. 불로스나 C. 파슨스, H. 왕 등이 70년대에 발표한 글들도 추가적으로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여하간 주제 면에서는 20세기 초의 집합론적 구상과 발전사안 등으로 한정된 형국이다. 반면 이 책은 앞의 책에서 다뤄지는 주제들을 일부 포함하는 동시에 더욱 최신성을 갖춘 주제들을 당연히 다루고 있다. 수록된 글의 필진들만 봐도 이 책의 대부분 저자들은 수학철학과 수학기초론의 고전적인 시기로부터 한두세대 이후 시점에 활동한 인물들이다(타계한 지 십 년 된 S. 페퍼먼이 1928년 생으로 최연장자이고, 대부분의 필진들이 4-50년대 생이며, 그 이름이 Rayo함수로도 대중에 꽤 알려져 있는 아구스틴 라요가 1973년생으로 최연소이다). 기획 면에서도 차이가 큰데, 앞의 책이 뚜렷한 접점이 없이 기발표된 논문들 모음집인 데 반해, 이 책은 이 기획을 위해 자체적으로 새로 쓰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어 훨씬 통일감과 안정감을 갖춘 자료집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추천컨대, 역본의 번역상태가 매우 안 좋긴 하지만 퍼트넘-베나세랍의 책을 여러번 재독해가면서 샤피로의 "수학에 관해 생각하기" 역본으로 추가적인 발전사안들에 대한 감을 꾸준히 키워간다면, 미구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물론 기초논리, 메타논리, 집합론이나 모델론과 같은 수학 기초론 등에 대한 초보적인 감이라도 기본적으로 익혀놓고 있어야 한다는 점 역시 필수적인 예비사안이다). 



2. 조금이라도 가닥이 잡히거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글들을 간략히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2-1. 스튜어트 샤피로, 1장, '수학과 그 논리에 대한 철학'

전술했듯 책 전반에 대한 서론 격의 글로서 책에서 다뤄지는 모든 주제들을 개괄해준다. 말미에서 밝히고 있듯이 "생각하기"의 압축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학철학 및 수학기초론 분야에서 그간 이뤄져온 발전사안을 매끄럽고 평이하게 요약해내었다. 


2-2. 리사 샤벨, 2장, '선험성과 적용: 근대시기의 수학철학'

수학의 선험성과 적용가능성을 중점으로 데까르뜨, 뉴튼, 라이프니쯔의 수학철학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선험적 관념론 기획이 수학의 두 측면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칸트의 논증을 해설한다.


2-3. 아구스틴 라요, 7장, '논리주의 再考'

논리주의를 언어-논리주의, 귀결-논리주의, 진리-논리주의로 대별하고 뒤의 둘을 다시 의미론적/구문론적 버전으로 각각 나누어, 총 다섯 가지 형태의 논리주의를 평가한다. 배후논리가 1계인지 2계인지에 따라 각 형태들 간 함축관계를 논증적으로 명료하게 정리해내고, 최소적합성이나 'recarving'(마땅한 역어를 아직 선정하지 못했다) 등의 개념을 통해 수학에 대한 논리주의적 번역에 가해질 수 있는 제한사항과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고찰한다. 명료한 비판적 관점과 더불어 저자 고유의 구성적 글쓰기가 돋보여 매우 흥미롭게 읽으면서, 논리주의에 대해 이런 차원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에 감탄하였다. 


2-4. 마이클 데틀렙슨, 8장, '형식주의'

고전적인 소위 빅 쓰리 중 유일하게 한 장만이 할당되었지만, 보통 30쪽 내외에 이르는 여타 글들과 달리 80쪽이라는 분량으로 균형을 맞추었다. 그런 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내용을 통해 형식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핵심 착상들을 다양하게 추적하되, 이를 저자가 생각하는바 형식주의의 본질에 대한 특정 관점 하에서 갈무리하여 제시한다. 실린 글들 중 가장 역사적인 성격이 짙은 편.


2-5. 칼 포시, 9장, '직관주의와 철학'

직관주의의 교주 브라우어 및 그의 사도들인 A. 하이팅과 M. 더밋의 직관주의적 핵심 착상들을 두루 살펴본다. 해설적 성격이 짙어 평이하게 읽히지만, 많은 내용을 다루려다 보니 개별 사안들에 대한 서술이 짧아 아쉬움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말미에서 칸트의 이율배반에 대한 직관주의적 해소법이 소묘된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2-6. D. C. 맥카티, 10장, '수학에서의 직관주의'

순수수학적인 사안들이 많이 등장하고 모든 논의가 자연언어와 논리식들이 혼합된 준형식적 증명들로 이뤄져 있어 읽기는 매우 어렵지만, 실제 수학적 활동에서 직관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었다. S. 쾨르너의 "수학철학"에서 "직관주의 수학철학은 그저 직관주의 수학을 직접 하는 것"이라는 기조의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런 기조를 저변에 둔채 직관주의가 수학에서 실제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로서의 논리체계 뿐만 아니라, 기초산술학, 실수론, 모형과 양상성, 위상수학과 토포스이론 등 실제 수학분야에서 직관주의적 실천행위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를 다양하고도 상세하게 실연해보인다. 다만 직관주의가 수학을 결코 빈약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마지막의 논평은 논증적으로 이해하질 못하였다. 


2-7. 로이 쿡, 11장, '직관주의 再考'

자연언어의 귀결관계에 대한 모형화로서의 논리라는 관점에 입각하여, 논리상항과 귀결관계에 대한 대수적 구조로서의 논리체계들 간에 모종의 모호한 연속성을 부여하는 논증을 구성한 뒤, 이를 통해 직관주의 논리와 고전논리 간 구분선을 모호하게 흐림으로써, 최종적으로 논리학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을 소묘해보인다. 여러 논평과 비교, 정의와 원리들을 통한 구성적 논증력이 돋보이는바 매우 흥미롭게 읽은 장들 중 하나이다. 


2-8. 마이클 D. 레스닉, 12장, '콰인과 믿음의 망'

콰인 식 자연주의와 그에 따른 수학철학적 귀결, 이를 뒷밭침하는 필수불가결성 논증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콰인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과학철학적 논제들을 수학철학과 자연스럽게 결부시켜 평이하게 해설한다. 


2-9. 찰스 치하라, 15장, '유명론'

존 버지스와 기디언 로젠이 수학에서의 유명론과 실재론을 비교평가하면서 실재론에 우호적인 입장에서 공저한 저서 "대상 없는 학과"에 대한 짤막한 해설 및 논평에서 시작해, 버지스와 로젠이 유명론에 가하는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한 뒤, 치하라 자신의 구성가능성 양화사를 도입하여 수학언어를 유명론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간략히 소묘한다. 간결한 논증적 서술과 구성적 실례를 통해 전체 요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난다. 


2-10. 존 버지스, 기디언 로젠, 16장, '유명론 再考'

수학적 유명론의 전반적인 논증구조를 분해하여 이로부터 자연주의적인 개정적 버전, 소격화된 개정적alienated revisionary 버전, 내용-/태도-해석적 버전 등 유명론의 네 가지 형태를 추출해내고, 각 버전에 대해 가능한 반론, 재반론, 최종 평가 등을 논증적으로 차근차근 살펴본 뒤, 마지막엔 스티븐 야블로가 켄들 월턴의 가장(가식, …인 체 하기)makr-believe 개념을 빌어와 구성한 태도-해석적 버전의 유명론을 간략히 소개 및 평가한다.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스타일의 논증적 철학글쓰기가 돋보인다. 


2-11. 제프리 헬먼, 17장, '구조주의'

수학의 기반이 되는 구조가 무엇인지에 따라 구조주의를 집합론적, 독립-보편자적, 범주론적, 양상적 형태로 나누고, 기초론적인 관점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따른 평가지표들을 통해 각 형태들을 평가한 뒤, 최종적으로 각 지표상 단점이 가장 적은 것으로 드러난 범주론적 형태와 양상적 형태의 결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순수수학적인 내용과 기초론적으로 메타적인 논의들이 주를 이루어 명확하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샤피로 식의 실재론적 구조주의와는 색다른 제거주의적 구조주의의 구체적인 형태를 상세히 접할 수 있게 해준 글이었다. 


2-12. 프레이저 맥브라이드, 18장, '구조주의 再考'

(메타논리적 특성으로서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수학적 대상의 존재론적 성격으로서의 불완전성 개념을 중심으로 레스닉 식과 샤피로 식의 구조주의를 각각 해설 및 논평한다. 구조적 동형성이나 동일성 기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 등의 개념이 두 사람의 실재론적 구조주의에서 어떤 식으로 다뤄질 수 있는지 해설한 뒤, 구조주의의 인식론적 동기와 존재론적 지향점 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상충지점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해낸다. 


2-13, S. 샤피로, 21장, '논리적 귀결, 증명론, 모형론'

증명론과 모형론의 기초적인 개념들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증명론적/모형론적 귀결개념과 그 메타적 관계들을 간명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살펴본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샤피로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이고 탁월한 방식으로 글을 참 잘 구성하는 학자이다. 논의에 필요한 사안들을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제시해 나간 뒤 앞서 확립된 것들의 총체를 적재적소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민감하거나 쟁점이 될 만한 부분에 이목을 효과적으로 집중시킨다. 역시 샤피로가 쓴 25장, '고계논리'와 더불어, 어렵긴 하지만 매우 흥미롭게 읽으면서 모형론과 수리/메타논리에 대한 관심을 적극 환기해준 글이다. 


2-14. 다그 프라비츠, 22장,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논리적 귀결'

앞선 샤피로의 글에서처럼 A. Tarski식으로 제시되는바 모형론적 귀결개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학에서 증명이라는 절차의 인식론적 측면을 포착하고자 저자가 정의하는 규준적canonical 증명/논증 개념을 활용하여 고전논리의 논리규칙을 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 전반부의 평가적 논증파트가 무척 세밀하고 복잡하지만,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논리적 귀결개념을 어떻게 다듬어낼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2-15. 닐 테넌트, 23장, '추론의 적합성'

소위 실질함축의 역설을 해소하고자 등장한 적합논리 체계를 저자 고유의 방식으로 수정한 뒤 G. 겐첸의 자연연역체계 및 시퀀트 계산 체계에서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예시해보인다. 역설을 피하기 위해 추론에서의 인식론적 소득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것이 유지되는 누적적 연역절차의 얼개를 확립한 뒤, 이를 구체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한사항으로서 자연연역/시퀀트계산 체계에서의 약화 및 컷 연산 금지조치의 방법론적 정당성을 논하고, 이를 직관주의논리와 고전논리에 적용하여 각 체계를 간략히 재구성해보인다. 저자가 스스로 차별점을 강조하는 앤더슨과 벨납의 적합논리체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여러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에 대한 선지식이 거의 전무해 4회독까지도 논의를 따라가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글이다. 


2-16. J. 버지스, 24장, '적합성은 필요하지 않다'

실질함축의 역설을 방지하고자 하는 적합주의 진영의 주장이 규범적인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인 것인지 논구한 뒤, 역설을 방지하기 위한 세 가지 조치인 약화 금지, 귀결의 이행성 거부, 선언적 삼단논법 거부 각각이 적합논리 진영의 주장과 부합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적합논리를 두고 벌어진 소위 노트르담 형식논리저널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인 만큼, 적합주의 진영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을 간명하게 잘 정리하여 제시한다. 



3. 2년 반이라는 기간에 걸쳐 다섯 번을 재독한 성과는 이 정도이다. 수록된 26편의 글들 중 대강 반 남짓 밖에 이해를 못한 데다가 위 글들 마저도 4-50% 정도 밖에는 이해를 못했으니, 좀 더 만족스런 성적에 도달하자면 앞으로서 서너 번은 더 읽어얄 듯하다. 

 희한하게도 올 초 늦겨울에 코파의 "의미론적 전통"을 5회차 재독했을 때처럼, 이 책도 4회차 재독까지는 의무감에 꾸역꾸역 글자만 읽는 일이 많다가 어째 이번 독서에는 이해의 가닥이 잡히는 부분이 확 늘면서 좀 더 성실하게 꼼꼼히 읽게 되었다. 특히나 그전까지는 읽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던 논리철학 파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확 늘면서, 여타 책들을 뒤적이고 인터넷이나 챗지피티를 들볶아가며 한 문장 한 문단씩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오기가 절로 들었다. 퇴근하고 나서 잠자리 들기 전까지 읽는 두 시간 여 동안 읽어나간 게 고작 세 쪽이었던 날들도 왕왕 있었다. 그 바람에 읽는 기간은 달포 하고도 두 이레가 걸렸으니, 통독에 한 달이 채 안 걸리던 (그러나 이해는 턱없이 미진했던) 초독 시에 비해 읽는 속도는 차츰 더뎌져 온 셈이다. 

 그치만 외적인 강압에 쫓겨 억지로 하는 게 아닌, 스스로가 좋아 흥미를 느껴가며 혼자 해나가는 공부의 묘미는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전문가의 지도나 가르침이 없어 느리고 더디고 막막하지만, 평가나 시험이나 제출해야 할 결과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 그런 막막함이 초조함이나 스트레스로 변모할 일은 없고, 외려 다른 책들을 물색해가며 더 전진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동기로 승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재독으로 모형론이나 메타적인 수리논리에 대한 관심과 갈증이 확 일면서 유관 원서들도 몇 권 발굴하여 미구에 구매하기로 다짐짓하게 되었다. 숙제는 늘어났어도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라, 그 책들도 붙들고 끙끙대며 씨름하고 있을 날들에 기대감이 외려 든다. 지식 면에서도 방향 설정 면에서도 소득이 참 많았던 뿌듯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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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역사 크로노스 총서 20
데이비드 벌린스키 지음, 류주환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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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어가며 고전수학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적당한 교양서이다 원서 제목에도 ‘역사‘라는 단어가 들어가긴 하지만 정통적인 수학사 서적이라 보긴 어렵고, 고전수학에서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이론이나 개념을 몇 선별하여 그와 얽힌 에피소드적 사건들을 곁들이면서 핵심적인 착상이나 내용을 평이하게 풀어내는 식이다 저자가 철학으로 학위를 받은 이력이 있어서인지 철학적, 자연과학적 의의나 연계점도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간간히 언급하고 있어, 수학적 사안들이 무미건조하게 나열된 통상적인 교양서들과 달리 지적인 자극과 긴장감을 적당히 안겨주면서 텍스트로서 읽는 재미도 느끼게 해준다 수식이나 형식언어는 최대한 배제하며 일상언어 위주로 논의를 이어가기에, 학창시절 배웠던 수학지식을 다 까먹은 일반성인은 물론이요 고등학생 연령의 청소년들도 흥미롭게 즐기며 읽을 수 있겠다 다만 정보의 양으로 보나 질적인 깊이로 보나 구매소장하여 여러번 활용할 만하지는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가볍게 일독하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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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chyoung123 2026-05-16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생겨서 질문드립니다.솔 크립키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 유튜브 ˝논리학당˝ 채널을 통해 명제논리와 1차 술어논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상들로는 완전한 이해가 되는 것 같지 않아서 논리학 서적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공부 순서가 있을까요?

depaysment 2026-05-16 20:24   좋아요 0 | URL
1. 우와! ㅎㅎ 안녕하세요! 질문 맥락으로 추측건대 온라잉이든 오프라인이든 실시간으로 전문가와 상호작용하며 지도받으실 수는 없는 실정에서, 비판적 사고와 논술 류라든가 교양 수준 비형식논리가 아니라 기초 형식논리에 관심하고 계신 것 같네요 사실 이분야는 전문가에게 면대면으로 지도, 교수받으며 연습해나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긴 하지만, 현실 여건이 안된다면 전문교재로 독학하면서 유튜브 등 다른 컨텐츠를 활용해서도 충분히 숙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급하신 채널은 저로선 처음 알았는데 대충 훑어보니 제대로 된 전문가분이 정석적이면서도 알찬 내용들로 영상 구성해서 채널 운영하고 계신 것 같아 저도 관심이 가게 되네요 ㅎㅎ 근데 그것만르로 뭔가 이해가 미진하다고 느껴지신다면, 그리고 아직 초입 단계로서 전문교재를 한 번도 접해보신 적이 없다면, 일단은 유튭영상이나 파편적인 온라인 자료보다는 체계적으로 짜여진 교재나 텍스트를 우선적으로 통독하시며 개념 익히고 숙달해 나가시는 게 가장 좋다는 면에서, 책을 구매하시기로 하신 결심은 아주 좋은 방향설정인 거 같아요 ㅎㅎ


2. 근데 일단 변명조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오래전 대학시절 논리학 강의에서 명제논리와 일부 술어논리만  배워본 게 전문가에게 수학한 경험 전부이고 이후로는 혼자 이런저런 단행본들 뒤적여가며 독학한바, 양적으로도 깊이 측면에서도 전혀 전문가 수준이 아니라서요...ㅎㅎ 그러니 지금 드리는 말씀은 그냥 취미수준 독서에 기반한 간략한 방향제시 정도로만 받아들이신 채, 어떤 텍스트가 되었든 실질적으로는 혼자 열심히 읽고 컨텐츠도 찾아보고 반복숙달하시면서 구체적, 세부적인 방향과 순서는 스스로 차근차근 확립해나가시길 추천드려요 현실적인 논리, 논술 준비라든가 논리학적 지식을 요하는 공인 시험같은 거에 급박하게 대비하시는 게 아니라, 저처럼 취미 차원에서 논리학에 관심하시는 거라면, 체계적이고 정석적인 공부순서나 방향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고 당장은 이해가 안가시는 지점에서 너무 초조해하지도 마시고, 이해가 가면 가는 대로 정리 및 메모해보고 안가면 안가는 대로 언어나 맥락만이라도 머리에 욱여넣으면서,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꾸준히 유관 저서나 자료들을 탐색하고 읽어나가시다보면, ‘아 그때 유튭에서 본 게 이런 얘기였구나‘ 하면서 이해의 결절점들이 자연스레 해소되는 수준에 도달하실 수 있을 거예요 ㅎㅎ 

3. 이런 변명과 대략적인 조언을 전제로 실제 텍스트를 말씀드려보자면 이병덕의 ˝코어논리학˝이랑 최원배의 ˝논리적 사고의 기초˝가 독학하기에도 무리 없는 가장 좋른 선택지인 거 같아요 ㅇㅇ (손병홍의 ˝논리학˝도 옛날부터 눈여겨봐오긴 했는데, 아직 제가 읽어본 바가 없어서 이건 제외...ㅎㅎ) 둘다 번역서가 아니라 국내 전문가가 우리말로 쓴 교재이고, 내용의 양과 질, 연습문제 수준과 다양성, 설명의 난이도나 친절함, 구성의 깔끔함 등 대부분의 평가지표상에서, 개인적으로는 동등한 수준으로 좋은 교재들이라믄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굳이 사소한 차이점을 꼽자면 최원배의 것이 양적으로 약간 더 많은 내용(명제논리 결정절차로서 진라표 방법 이외의 진리나무방법 및 메타논리적 증명 일부)을 담고 있고, 둘 다 논리상항의 도입/제거 규칙을 통한 자연연역법을 채택하되 그 표기방식이 다르다는 것 정도에요 ㅇㅇ 근데 이병덕이 채택한 피치증명법이 개인적으로는 입문자게에 피로ㅛ감이 덜힐 것 같다 생각하는 편이어서, 구매소장하여 반복적르로 활용할 물건으로 둘 중 하나만 꼽자면 이병덕의 것을 최종적으로 추천드립니다! ㅎㅎ

4. 혹여 논리학 초심자이신데 앞의 책들이 너무 전문교재같고 교과서 같아서 약간의 플러스알파가 아쉬우시다면 송용진, ˝수학자가 들려쥬는 진짜 논리 이야기˝ 이거 가볍게 읽독하시면서 워밍업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테크니컬한 교재가 아닌 교양수준 논리학 관련 서적중에서는 이게 가장 재밌고 유익하고 덜 오도적이더라고요 ㅎㅎ (다만 이건 구매소장보다는 빌려서 일별해보시기를 추천!)

5. 여하간, 많은 철학자들이 얘기하듯 논리학(그리고 수학)도 엄연히 하나의 언어인 만큼,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듯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데는 별다른 왕도가 없어 실질적인 반복숙달이 느리지만 빠른 길인 만큼, 너무 초조해하거나 답답해하시지 말고 유관 텍스트나 자료들 꾸준히 접하시면서 논리학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ㅎㅎ 워낙 마이너하고 비인기인 분야라 단행본도 잘 안나오고 하는 마당에, 이렇게 관심사가 겹치는 분을 만나면 반갑고 즐겁고 신나고 그래요 ㅎㅎ 논리핫 연습 안한지 이년 째가 다 돼가는데, 말쓴해주신 채널 시간 날 때 보면서 저도 다시 논리학 연습 많이 해야겠어요 ㅋㅋㅋ 문의답글 주셔서 감사드리고, 모쪼록 공부에 진척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Porchyoung123 2026-05-16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책들부터 시작하여 공부해볼게요!!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현대미술계의 진짜 모습
오자키 테츠야 지음, 원정선 옮김 / BOOKERS(북커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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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독 후 돌아보니 서두에 실린 한 미술평론가의 추천글이 책의 특성과 장점을 아주 잘 요약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미술이 "무엇보다도 미술이 산업화된 시대의 미술"이라는 현실에 착안하여, "그 사조와 미학의 전개"를 소개하는 데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나 제도, 관계 전문가들의 역할이나 역학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현미술의 틀 안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여러 영역들의 모습을 개관"하는바, "매우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알찬 안내서"이다. 목차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나듯 작품, 작가, 사조 내적인 흐름이나 논리보다는, 미술시장과 큰손 컬렉터, 미술관, 비평계와 이론가, 큐레이터와 전시, 예술가와 관객 등에 두루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추출되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미술 저널리즘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저자가 쌓아온 지식과 길러온 통찰력을 곁들여 제공한다. 미술계 외부의 일반인들이 파악하기 어려운바 동시대 미술계 전반의 현장생리에 대한 대략적인 시선을 갖추게끔 돕는 안내서 역할을 십분 해내는 동시에, 책의 제목인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저자 고유의 답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방향으로 고민하게끔 사유를 고취해주기도 한다. 요컨대 저자 스스로의 말처럼 "가십"과 "견해"를 두루 제시하되, "견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십거리도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라는 스탠스에서 쓰였다는 특성이 여실히 묻어나는 책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18세기 말 이후 미술사나 사조흐름 및 동시대 미술의 여러 작품과 경향을 잘 모르더라도, 양적인 부담감만 이겨낸다면 흥미롭게 읽어가면서 미술계 관련 정보에 대한 저자의 폭넓고 상세한 서술을 통해 현대미술이라는 분야에 대한 그림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의 토대가 된 저자의 과거 글들이 2015-17년 사이의 글들이어서인지, 8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계에 대한 정보 비중이 높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장점이라 여겨졌다. 작품이나 사조 내적 논리에 대한 논의 비중이 크지 않다보니, 역사적 평가가 분분할 수밖에 없는 동시대 미술에 대해 이론적 관점이나 틀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비교적 최신 정보나 담론들을 가벼운 통찰력이나 평가와 곁들여 제시하면서 동시대 미술계 현황에 대한 감각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키워주는 효과가 있다. 오랜 기간 미술 저널리즘에서 활동한 저자의 글솜씨가 원체 탁월한 탓인지 역자의 번역실력이 준수한 탓인지 둘 다인지, 다채로운 어휘를 구사하면서도(읽으면서 사전을 검색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난해하거나 지저분하지 않고 유려하게 읽히게끔 만드는 문장력 역시, 이 책을 단순한 정보매체로서가 아니라 읽고 즐길 수 있는 텍스트로 꼴짓는 데에 일조하는 장점이다. 미술서적임에도 도판이 흑백인 점은 아쉬운 사항일 수 있으나, 전술하였듯 미술사나 사조가 책의 구심점은 아니라는 특성상 사소한 성격의 단점이라 생각한다. 정 아쉬우면 정윤아, "미술시장의 유혹"; 켈리 그로비에, "현대미술강의"; 피터 칼브,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 정도를 함께 일독하길 추천해본다. 개인적으로는 그 책들을 읽어놓은 경험이 이 책을 읽고 즐기며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긴 기간 연재되었던 글들을 추려 단행본으로 엮어낸 데에서 기인하는바 통일적인 모양새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은 좀 더 유의미한 단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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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투성이인 사람으로 자라버렸구나

십 년만 되돌린다면 그 모든 잘못들을 저지르지 않으며 다시 자랄 수 있을까 눈 뜨고 입만 벌리면 푸르딩딩 멍든 살점들마냥 어버버 쏟아지는 죄의식들, 한새벽까지 잠 못들면 여직껏 소화시키지 못해 푸더덕 게워내는 잘못의 시간들, 붙들고 통사정하며 용서를 구할 만한 옷자락도 없는 통한에 하릴 없이 깨먹은 술잔들ㅡ열흘, 열 시간, 혹여 십 초를 되돌린다 해도, 내가 받은 사랑과 보살핌 만큼한 기여를 세상에 유의미하게 덧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악마는 멀리 있는가

- ‘19.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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