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랑스 철학사
한국프랑스철학회 엮음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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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구성을 통해 핵심 사안을 깔끔하면서도 알차게 전달하는 좋은 입문서이다. 5부 구성으로 실증주의 형이상학과 과학철학적 인식론 전통, 프랑스 현상학과 실존주의,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이후 동시대의 두 인물이 다뤄진다. 각 부의 서론에서 해당 흐름을 개괄한 뒤 장별로 한 철학자의 사상이 해설되는데, 인물의 생애와 저작을 소개하고, 이론의 핵심 개념과 내용을 시간순, 발전순으로 해설하며, 다소 공인된 철학사적 의의와 영향을 간략히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구성 면에서 통일적일 뿐만 아니라 내용의 난이도 측면에서도 균일성을 기하고자 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다뤄지는 각 인물들의 사유 자체의 특성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을 차치하면, 각 글들의 서술 스타일과 읽는 난이도가 매우 균질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복수 저자들이 참여했음에도 이렇듯 통일되고 일관적인 모양새를 갖춘 동시에 학술적 견실함도 여실한 단행본이 탄생했다는 건 분명 해당 학회에서 많은 논의와 검토가 이뤄졌음을 증거하는바, 책 전체 머리말에서 드러나는 자부심과 뿌듯함은 결코 알맹이 없는 수사적 자화자찬이 아니다. 교양서 수준으로 평이하게 읽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철학과 학부생 2, 3학년 내지 전통철학사와 현대철학사 서적을 두어권 읽어본 독자층이라면 각 철학자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내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법한 학술적 입문서이다. 현대 프랑스철학 내지 대륙철학 전통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철학적 기반 등에 관심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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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에 동치관계가 주어지면 그 집합은 동치류로 분할된다. 이 과정은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활용된다. (중략) 정수 전체의 집합 Z에서는 덧셈과 곱셈을 할 수 있다. 이는 Z에 대한 동치류 분할 Z5에서의 동일 구조 연산을 정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수적 구조 Z로부터 새로운 대수적 구조 Z5를 얻게 한다.
대수적 구조를 얻는 이러한 과정은 다항방정식의 가해성solvability에 대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2차방정식의 풀이는 x^2=A 꼴의 풀이로 귀착된다. 일반적인 3차다항식의 풀이를 특수 형태의 2차방정식 x^2=A와 특수 형태의 3차방정식 x^3=B의 풀이로 귀착시키는 과정이 가능한 이유는, 일반적인 3차방정식이 갖는 대수적 구조가, 동치관계 및 분할의 과정을 거쳐 위의 두 가지 특수 형태의 방정식이 갖는 대수적 구조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동치관계와 분할에 의한 이러한 절차는 5차 이상의 방정식에는 일반적으로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게 해준다.

- 신기철 외, 무한: 수학적 상상


나는 군론이나 대수방정식의 가해성에 관한 연구라곤 쥐똥만큼도 모르지만, 갈루아가 죽기 점날 밤 왜 그리 미친듯이 증명을 해나갔는지, 칸토어가 왜 연속체 가설을 틀어쥐고 끙끙대다 할레대학 네르벤클리닉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됐는지, 프레게가 왜 그리도 논리주의에 천착하다 종내는 그 기획을 단념했는지,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하던 수학기초론 심포지엄에서 좌중에 앉았던 노이만이 왜 ˝끝장났구나˝ 하고 탄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뭔갈 공부하는 최소한의 재미를 찾자면 이런 거 같다ㅡ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거, 당장이든 나중이든 세계를 다 꿰뚫어 알진 못하더라도 언젠간 세계의 일부라도 납득하겠다는 자세나마 갖추는 거

-‘21. 11. 9


고대의 어떤 작가가 잘 표혔했듯이, ˝자유로운 학문이란 우리를 직접 미덕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미덕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는 멜란히톤의 ˝지식은 습관이 된다˝라는 격언으로 발전되었다.

- 조지 불, 논리의 수학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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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크립키 컴북스 이론총서
정대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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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주제선정과 안목 있는 해석적 관점을 통해 크립키 철학의 여러 면모를 유기적 맥락적으로 개괄해주고 있긴 하지만, 유관 배경지식을 다소 갖춘 독자여야 읽는 소득이 있을 법한 해설서이다. 기술주의 비판과 고정지시어, 동일성 진술과 양상성개념, 이와 관련하여 이어지는 양상논리 의미론 작업, 명제태도맥락의 철학적 퍼즐, ‘나‘라는 지표사와 연관된 인식론적 언어철학적 심리철학적 논의까지ㅡ크립키가 참신한 발상과 개념들을 통해 기여한 주제들을 키워드 삼아, 여타 철학자들과 대비되는 논쟁적 맥락을 곁들이면서 크립키의 견해들을 간결하게 해설해준다. 그 과정에서 크립키 철학의 일정 구심점을 일상언어에 대한 존중에 기반한 철학적 작업으로 일관되게 해석한 뒤 이를 기초로 저자 고유의 사변적인 사유의 밑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적은 분량임에도 이렇듯 알뜰한 내용을 갖추었지만 이를 빠른 호흡 속 간결한 서술로 풀어가는 탓에, 아무런 선지식도 일절 없는 채 읽으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가며 읽기보단 언어와 개념만 숨가쁘고 공허하게 따라가는 독서가 될 듯하다. 분석철학사 전반은 물론이요 언어철학 심리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의 하위분야에 익숙하되, 그러한 맥락들 내에서 크립키가 차지하는 위상에도 특히 관심하는 독자층에게 추천될 법하다.

오늘날 시점에 가까운 연구자들일수록 콰인보다는 크립키를 분석철학 전통에서 뚜렷한 분수령으로 꼽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 다양한 주제와 관련하여 그의 견해들을 파편적으로만 들어놓은 터라 그런 평가가 좀체 실감되지는 않았었다. 크립키 이후에 그려진 철학적 지형도에 비교적 무지한 탓도 있겠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통해 차후의 이해를 위한 기점을 작게나마 마련한 것 같아, 주말 한나절 짧았음에도 흥미롭게 읽어내려간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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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 케니의 서양철학사 4
앤서니 케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서광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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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뤄지는 시대의 특징으로 인해 전권들에 비해 포괄성 및 논쟁적 대비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시리즈 고유의 구조가 단점을 자연스레 보강해준 권이었다. 저자의 철학적 배경과 성향으로 인해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의 비중차가 뚜렷하고, 개별 철학자들 간의 이론적, 논쟁적 대비점을 명시한 부분도 전권들에 비해 적은 편이다. 반면 통상적인 철학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케니 고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강도는 더 강해졌다. 이에 대륙철학이든 분석철학이든 현대철학에 배경지식이 없는 초심자로서는 전반적, 맥락적으로 선명하거나 탄탄한 그림을 얻기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이는 저자의 저술실력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다뤄지는 시대의 특수성에 기인하는바 책 외적인 단점이라 생각한다. 이전 시대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전개된 20세기 철학에 대해, 현저한 다수가 무리 없이 받아들일 법한 철학사적 평가가 우리 시점에서도 아직 만족스럽게 내려지지 않은 마당에, 이 책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은 케니가 학문적으로 활동하며 성장해가던 시기엔 그가 함께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동시대의 사유 흐름들이었다. 이러니 전권들의 머리말에서 느껴지던 견실한 기백과 달리 이번 권의 머리말에서 케니가 인물 및 사조의 선별과 관련하여 변명조로 주저스러움을 내비친 것은 철학사가로서 솔직하고 투명한 태도였다 여겨진다. 현대철학 파트에서 서술 및 내용의 견고함이나 포괄성이 아쉽다는 점은 여타 철학사 서적들에서도 심심찮게 드러나는 단점이니, 이 책을 선택지에서 제외시킬 이유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려 여타 철학사 서적들과 달리 이러한 내용상의 단점을 이 책 고유의 구조를 통해 상쇄해냈다는 점은 이 책을 선택할 이유를 하나라도 더해준다. 1권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역사별/주제별 서술방식의 병행을 통해, 파편성과 비맥락성을 조금이라도 희석하면서 현대철학에서 기초적이고 교과서적인 사안들을 최대한 평이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분명 성공하고 있다. 

 여하간, 4권까지 끈기있게 읽고 난 뒤 지적인 갈증을 느끼고 더 도전해볼 지적 체력도 남는다면, 대륙철학이든 분석철학이든 각 전통을 배타적으로 다루는 여타 현대철학 단행본들로 보완하는 편이 좋겠다. 1-3권과 다른 역자가 번역해서 번역에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전권들에 비해 딱히 더 못한 번역이라는 느낌은 전연 들지 않았다. 기등록된 평에 프레게 파트에 오역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원문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프레게에 대해 아는 배경지식에 비추었을 때는 (프레게의 'Bedeutung'에 대해 케니가 선택한 영단어 'reference'를 '언급'으로 번역한 것 말고는) 그다지 이상하거나 명백하게 잘못 기술된 부분은 없다고 여겨졌다. 프레게 사유에 숙달해 있으면서 이 책의 원서를 읽은 독자의 좀 더 구체적인 지적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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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철학 케니의 서양철학사 3
앤서니 케니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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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질이나 난이도 면에서는 1, 2권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구성에서는 근대철학의 특성상 논리학 파트가 제외된 대신 정치철학을 다루는 장이 추가되었고, 책 전반에 걸쳐 인식론적 논의맥락이 자주 조성된다. 역자가 근대철학 관련 저술들을 다수 번역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1, 2권에 비해 한국어로서 조금 더 매끄럽게 읽히고 오역이 의심되는 지점도 상대적으로는 현저히 적었다고 느꼈더.

개인적으로 특색있다고 여긴 바는 철학 내적인 영향관계를 드러내보이려는 저자의 시도가 이번 권에서 (자동적으로도 의도적으로도)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당대 철학자들 간에 이뤄졌던 논쟁이나 현재 관점에서 논증적으로 평가할 만한 철학적  접점들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서술 스타일은 1, 2권에서도 분명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서양철학의 태동기로서 활기차고 대담한 시초적 사유들이 약동했던 고대와, 이전 시대에서 물려받은 철학적 유산을 주석 및 갈무리하면서 종교와의 조화를 물색했던 중세에 비해, 분명 근대는 철학자들이 오랜 시대에 걸쳐 쌓여온 성과와 오류를 저울질하면서 이전 철학의 틀과 맥락 자체를 전환시키고자 야심찬 시도를 꾀하는 가운데, 이전 시대보다 더욱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 및 비판하며 각자의 체계를 세워간 시대였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과거와의 연속성이나 서로의 공통기반, 야심찬 기도였음에도 상존했던 맹점으로 인해 벗어나지 못한 근본적인 오류 등도 분명 존재했던 시대이다.
이런 철학사적 특징이 이 책 고유의 구성방식 및 1, 2권에서도 보여준 케니의 의도적 서술 스타일과 시너지를 일으켜 <철학 내적인 영향관계>가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권이 돠었다고 평가해본다(이런 점에서, 분석철학 전통에서 훈련받은 저자가 이번 권의 머리말에서 헤겔을 언급하며 그의 눈치를 본 건 단순한 수사적 장치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러셀이나 시르베크의 철학사처럼 역사 일반이나 정치, 문화 등 <철학 외적인> 요소와의 영향관계에 역점을 두는 철학사 서적과 분명 차별되는 특성인바, 철학에 조금 숙달해있는 독자 한정으로는 케니의 철학사가 유익하면서도 색다른 선택지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 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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