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직관주의 再考)

4. 논리와 논리적 귀결

 

구별되는 두 가지 논리(직관주의 논리intuitionistc logic와 고전논리classical logic) 중 어느 것이 올바른지, 혹은 어떤 의미에서 양자 모두 적법하다legitimate 할 수 있는지 검토하기에 앞서, 논리학을 적법하게만드는 요인이란 무엇이며 논리학이 제공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해 언급해 둘 사항들이 몇 있다. 논리란 논리적 귀결(歸結)logical consequence 개념을 체계화(성문화, 부호화, 코드화)codify하고자 고안된 대수적(代數的) 구조algebraic structure이다. 그러므로 논리적 귀결이란 게 무엇인지를 서술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편이 자연스럽겠다. 이에 Alfred Tarski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임의의 문장부류 Δ와 이 부류의 문장들로부터 따라 나오는follow from 임의의 문장 Φ를 생각해보자. 직관적으로 생각해볼 때, 부류 Δ가 참인 문장들로만 이뤄진 동시에 문장 Φ가 거짓인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can never happen. 또한 우리가 지금 관심하는 것은 논리적 귀결개념, 형식적fomal 귀결 개념인바, 따라서 우리는 이 관계가 성립하는 문장들의 형식form에 의해서만 결정되는be determined uniquely 관계를 다루고자 한다. 이 문장들 내에서 지시되는 대상들에 대한 명칭designation들을 다른 대상에 대한 명칭들로 대체하여도 논리적 귀결관계는 아무런 영향을 받을 수 없다. (1936[논리적 귀결개념에 관하여On the Concept of Logical Consequence], 414-5.)

 

이 해설의 중심 착상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ΦΔ로부터 따라 나온다면, Δ(의 모든 원소들)의 참은 Φ의 참을 (어떤 의미에서) 보장한다guarantee. 둘째, 논리적 귀결관계는 전제와 결론이 지닌 특정한 형식적 내용nonformal content과 무관하다. 다르게 말해 비형식적 용어나 술어 등의 지시reference 내지 의미meaning의 변화는 결론이 전제의 논리적 귀결인지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에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LC: 문장 Φ는 문장집합 Δ의 논리적 귀결이다 iff Δ의 모든 문장들의 참은 Φ의 참을 보장하며, 이러한 보장은 Δ의 원소들 및 Φ의 형식에 기인한다.

 

직관주의 논리학자와 고전논리학가 품고 있는 목표는 동일하다: 즉 양자 모두 이러한 논리적 귀결개념을 체계화하는 수학적 구조(즉 하나의 논리학)를 고안하고자 한다. 자연언어로 이뤄진 담화natural language discourse D를 위한 하나의 논리학을 고안하는 일은 다음과 같은 방침에 따라 진행된다:

 

1. 일련의 수학적 기호들로 이뤄진 형식언어formal language L을 구성한다.

2. L논리적 어휘logical vocabulary들로 구성된 부분집합subset LV를 구분한다.

3. L의 논리어휘를 D의 적절한 일부 어휘들로 사상(寫像)시키는mapping 번역함수translation function T: LV D를 구성한다.1)

4. 첫 번째 논항으로 L의 한 부분집합을 취하고 두 번째 논항으로 L의 한 원소를 취하는 관계 를 정의한다.2)

 

1)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판이한 두 가지 종류의 논리적/비논리적 구분법이 존재하는 셈이다. 첫 번째는 LV에 의해 주어지는 순수 형식적인 구분이다. 좀 더 흥미로운 두 번째 구분은 번역함수 T를 통해 첫 번째 구분을 자연언어로 투사시킴으로써 얻어진다.

2) 이 관계가 의미론적인 것으로 제시되는지 혹은 연역적인 것으로 제시되는지 여부는 무시하기로 한다. 지금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는 이 관계의 외연이기 때문이다.



(고유의 LVT를 지닌) 하나의 논리학 L, ⇒〉는 논의중인 자연언어의 논리적 귀결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에 따라 판정된다. D의 논리적 귀결을 체계화하는 논리학이 단 하나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올바름 원리correctness principle가 성립하는 하나의 L, ⇒〉(T)를 찾아내고자 할 것이다:

 

CP: LV에 관해 T와 일치하는 임의의 함수 I: L D에 대해:

모든 Φ∈LΔ⊆L에 대해:

I(Φ)I(Δ)3)의 논리적 귀결이다 iff Δ ⇒ Φ이다.

 

3) I(Δ){Φ: 어떤 Ψ∈Δ에 대해 Φ=I(Ψ)}를 축약한 것이다. [즉 형식언어의 부분집합 Δ을 구성하는 문장들을 함수 I에 입력하여 얻어지는 자연언어 문장들 집합.]


이제 논리적 일원론logical monism논리적 다원론logical pluralism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

 

LM: CP가 성립하는 L, ⇒〉는 정확히 하나만 존재한다.

LP: CP가 성립하는 L, ⇒〉는 하나보다 많이 존재한다.

 

특별히 흥미로울 것 없는 형태의 다원주의를 얻는 방법은 많다. 가령 형식언어 L 자체를 변경시키는 식이다.4) 이런 식의 사소한 다원주의는 여기서의 관심사가 아니므로 이후 논의에서는 형식언어가 고정된 것으로 가정한다. 특히, 논의 중인 형식언어가 표준 명제논리라고 가정한다. 이런 제한조치를 통해 논리적 귀결이 논리형식에 의해서만 성립해야 한다는 착상을 더 용이하게 다룰 수 있다. 이 경우 직관주의/고전주의 논쟁의 참여자 양측 모두 명제문자propositional letter가 형식언어 체계 내 유일한 논리어휘라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므로, 임의의 논리 L, ⇒〉는 다음의 대체가능성 요건substitutivity requirement을 충족해야 한다:

 

SUB: 임의의 Δ⊆L, Φ∈L, Ψ∈L 및 명제문자 Pi가 주어질 경우,

Δ ⇒ Φ이면 Δ[Pi/Ψ] ⇒ Φ[Pi/Ψ].5)

 

이후 논의에서 엄밀한 경칭로서의 논리()”이라는 단어는 SUB를 준수하는 대수구조 L, ⇒〉만을 가리킬 것이다.


4) 예를 들어 다음 논증 모든 사람은 죽는다, Socrates는 사람이다, 따라서 Socrates는 죽는다, 명제논리에서는 부당하지만 1계 형식화에서는 타당하다.

5) Φ[Ψ/Σ]Φ에 나타나는 모든 ΨΣ로 일관되게 대체uniformly replace한 결과이다.

 

(中略)

 

8. 모형화로서의 논리

 

대부분의 논리철학적 접근법에 널리 퍼져 있는 한 가지 가정이 있다. 바로 기술(記述)로서의-논리 관점logic-as-description view이다. 이에 따르면 형식논리는 논의 대상이 되는 언어적 담화에서 진리-조건이라든가 귀결-관계 등과 관련하여 실제로 무엇이 벌어지는지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형식체계formalism의 모든 요소들은 형식화되는 것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들에 대응하며, 논리학은 올바른 추론을 명확하게 기술한다. 이 관점에는 낙관적인 인식론적 입장이 포함되어 있는바, 이 관점을 고수한다는 것은 곧 논리적 귀결에 대한 명확한 기술이 존재한다는 신념 및, 충분한 지적 탐구를 통해 그러한 기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셈이기 때문이다.

반면 논리학 이론가들이 수행하는 과업을 이와는 다르게 보는 입장으로서 모형화로서의-논리logic-as-modeling 관점이 있다.6) 이에 따르면 하나의 논리학은 논리적 귀결에 대한 한 가지 좋은 모형을 제공하고자 한다. 여러 논리체계들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들만을 (반드시) 기술해야만 하는 건 아니며. 그 대신 현상들을 표상하는 생산적인 여러 방식들이라는 것이다. 즉 형식화는 관심의 대상이 되는 담화를 우리로 하여금 더욱 잘 이해하게 해 줄 여러 도구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6) 모형화로서의-논리 관점은 그 출처가 John Corcoran의 고전적인 논문 논리이론과 수학적 실천 간의 간극Gaps Between Logical Theory and Mathematical Practice」〔1973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좀 더 최근의 형태는 Stewart Shapiro논리적 귀결: 모형들과 양상성Logical Consequence: Models and Modality」〔1998에서 발견된다. 모형화로서의-논리 작업틀 내에서 제시된 추가적인 사례연구들을 알아보고자 하는 독자들은 Cook 2002를 참조하길 바란다.


이 관점을 기술로서의-논리 관점이 제시하는 설명과 구분 지어주는 핵심 착상은 다음과 같다: 여러 논리체계들이 논리적 귀결 개념을 체계화하는 데 있어 우열이 있음은 사실이나, 가장 올바른 최고의논리학이 단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이런 예상이 벌어지는 상황은 실제로 있을 수 있다. 이런 입장은 당면 목적에 따라(즉 관심하는 담화나 사례가 무엇인지, 혹은 형식화를 통해 보존하고자 하는 의미론적 값semantic value이 무엇인지 등) 논리적 귀결에 대해 각기 다른 모델들이 있을 가능성을 허용한다는 점에서는 여타 관점들에 동의한다. 하지만 모델로서의-논리 관점은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바, 이론적 목적이 고정된 경우더라도 추론을 올바르게 성문화하는 체계가 단 하나만 존재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허용한다(심지어는 이런 가능성을 함축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연언어는 이를 형식화하려는 시도에 충분히 부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에 (엄밀한 방식으로 이해된) 올바름 원리(CP)가 성립하는 논리 L, ⇒〉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자연언어와 명확히 부합하는 그 어떤 논리체계도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남은 가능성이란, 직관주의자와 고전주의자 간의 논쟁과 같은 논리적 쟁점들이 다원주의적 견지에서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에서 보자면, 논쟁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불일치하는 유일한 이유가 기술로서의-논리 그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셈이며, 그 경우 한 진영(혹은 양 진영 모두)은 귀결 관계에 관한 잘못된 체계화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 모두 논리적 귀결에 대해 동등한 정도로 적법한 설명(모형)을 제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임의의 정밀한 논리학과 자연언어 간 불일지는, 두 가지 논리학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모형인가에 관한 사실fact of matter 자체가 애초에 없다는 데에 기인한다. “불일치가 있는 그런 영역을 올바르게 체계화하고자 시도하는 더 복잡한 논리학이 굳이 존재해야 할 필요란 없는 것이다. 그 대신, 모형의 특정 측면이 모형화되는 대상의 특정 측면을 올바르게 성문화하는지 여부에 관한 미결정성indeterminacy이 존재한다(이번 절에서 아직 나는 이런 식의 다원주의가 논리학 논쟁에 관한 올바른 설명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다만 모형화로서의-논리 관점이 해당 논쟁에 대해 제시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한 이해방식을 그저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독자는 다시 한 번 유념해주기 바란다).7)


7) 논리적 귀결의 다수 모형들을 지지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있다. 양립불가능한 두가지 모형 간 차이는 그저 인공적인artefactual 것일 뿐, 모형화되는 현상에서 발생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대표적reprsentative이지 않을 수 있다. 이 착상을 상세히 서술하는 일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대표물/인공물 간 구분에 관한 상세한 설명에 관심있는 독자는 Shapiro 1998Cook 2002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러한 상황은 모종의 모호성(模糊性)vagueness에 속하는 사례로 쉽게 묘사될 수 있다. 우선 한편으로, 우리는 직관주의 논리가 (몇몇 타당한 추론을 포함하는 데에는 실패할 수 있을지라도) 명확하고 확정적인 논리적 귀결의 경우가 아닌 추론은 그 어느 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CPI: LV에 관해 T와 일치하는 임의의 함수 I: L D에 대해:

모든 Φ∈LΔ⊆L에 대해:

Δ ⇒I Φ라면 I(Φ)I(Δ)의 논리적 귀결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고전주의 논리가 (몇몇 부당한 추론 역시 포함할 수 있을지라도) 명확하고 확정적인 논리적 귀결의 경우에 속하는 모든 추론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승인할 수 있다:

 

CPC: LV에 관해 T와 일치하는 임의의 함수 I: L D에 대해:

모든 Φ∈LΔ⊆L에 대해:

I(Φ)I(Δ)의 논리적 귀결이라면 Δ ⇒C Φ이다.

 

직관주의 형식체계와 고전적 형식체계 사이에는 셀 수 없이 많은8) 논리학들이 있다. 이를 형식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두 가지 논리학 L, αL, β가 주어질 경우:

L, α〉⊆〈L, β=df 모든 Δ⊆LΦ∈L에 대해, Δ ⇒α Φ이면 Δ ⇒β Φ이다.9)

L, α〉⊂〈L, β=df L, α〉⊆〈L, β이고 α ≠ ⇒β.

사실: 가산적으로 많은 명제문자를 지닌 명제논리 L이 주어질 경우:

{L, α: L, I〉⊂〈L, α〉⊂〈L, C}는 비가산이다.

 

8) 물론 유한하게 공리화 가능한 중간논리intermediate logic들은 오직 가산적(可算的)으로countably 무한히 많다. 그러한 논리학들(의 부분 모음sub-collection)가산성 증명에 대해서는 Jankov 1968, 33-4쪽 참조.

9) 여기서 는 집합론에서 사용되는 부분집합 관계subset-hood relation가 아니라, “의 부분-논리sub-logic이다로 해설될 수 있는 하나의 정의된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중간논리들의 올바름은 Crispin Wright가 칭한바 용인적(容忍的)tolerant이게 될 것이다. 즉 약간씩 더 강하거나 약한 논리들로 이동한다 해도 (그 경우 논리적 강도의 차이는 충분한 정도로 작다) 각 논리체계가 논리적 귀결개념을 귀속시키는 정확도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10) 이러한 관점을 채택하는 일은, 다음과 같은 모호성 원리vagueness principle들 중 하나 혹은 모두를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해진다:

 

L, I〉⊆〈L, α〉⊆〈L, C가 성립하는 임의의 L, α에 대해:

LV에 관해 T와 일치하는 임의의 함수 I: L D에 대해:

V1: Δ ⇒α ΦI(Φ)I(Δ)의 논리적 귀결임을 함축한다면, 다음과 같은 L, β가 존재한다: L, α〉⊂〈L, β이고, Δ ⇒β ΦI(Φ)I(Δ)의 논리적 귀결임을 함축한다.

V2: I(Φ)I(Δ)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것이 Δ ⇒α Φ를 함축한다면, 다음과 같은 L, β가 존재한다: L, β〉⊂〈L, α이고, I(Φ)I(Δ)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것이 Δ ⇒β Φ를 함축한다.

 

10) 물론 대부분의 모호성 사례들은 모종의 측도(測度)체계metric와 연관되어있는바, 그를 통해 특정 사례들 간의 거리distance가 계량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어떤 변화가 언제 충분한 정도로 작은지를 결정할 수 있다. 작금의 사례에는 그러한 측도체계가 결여되어 있다. 하지만 마지막 절에서는, 주어진 특정 논리에 점근적으로 접근하는 무한 계열의 논리학들이 존재하는 사례를 다룰 때, 충분히 작은 변화라는 개념이 사용될 수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다음의 결합원리bounding principle들을 받아들이면:

 

어떤 지표집합set of indices X에 대해, α∈X인 모든 (L, α)가 오직only 논리적 귀결의 체계화만을 지닐 경우, β=α∈(α)라면, (L, β)는 오직 논리적 귀결의 체계화만을 지닌다.

 

어떤 지표집합set of indices X에 대해, α∈X인 모든 (L, α)가 논리적 귀결의 모든all 체계화를 지닐 경우, β=α∈(α)라면, (L, β)는 논리적 귀결의 모든 체계화를 지닌다.

 

이 모든 사항은 다음을 (고전적으로) 함축한다: 모든 Φ∈LΔ⊆L에 대해, Δ ⇒C Φ iff Δ ⇒I Φ.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고전논리와 직관주의논리 간의 대립을 앞의 논의와 같은 식으로 기술할 경우, 새로운 버전의 연쇄논법 역설(逆說)Sorites Paradox이 얻어진다.

하지만 이로부터 상기 묘사된 상황이 정합적inconsistent이라는 것까지 따라 나오지는 않는다. 이는 마치, 명백히 빨간 색을 띠는 사례에서 출발해 명백히 주황색인 사례로 점차 이행해가는 식으로, 점차 구별불가능해지는 일련의 색상 쌍 계열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것이 색상에 관한 우리의 담화가 비정합적임을 함축하는 것은 아님과 같다. 그렇다기보다 우리가 여기서 건져내야 할 교훈은, 모호성의 표준적인 사례에 적용되는 설명이라면 무엇이건, 엄밀한 형식논리와 자연언어의 귀결개념 간 성립하는 연관관계에도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그림에서 보자면 직관주의논리와 고전논리 사이 구간에는, 논리적 타당성이 물러나고 논리적 부당성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줄 중간논리란 존재하지 않는다.10)


10) 이를 직관주의논리로 한정하여 기술해보자면, Δ ⇒I Φ이지만 Δ ⇒C Φ인 그러한 Φ∈LΔ⊆L가 존재한다는 주장으로부터 모순을 도출할 수 있다.


앞서 논리적 다원주의란 적어도 두 가지의 다른 논리학이 올바름correctness 조건 CP를 만족한다는 주장으로 정의되었다. 상기 논의된 모호성-기반 그림에 따른다고 해도 정확히 그런 식으로 정의된 다원주의가 곧바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임의의 논리 L, α에 대해, 논리적 귀결 개념을 동등한 정도로 좋게good 모형화하면서도 각기 다른 논리학들이 존재한다는 결론은 이끌어낼 수 있다. 한 모형이 자연언어의 논리적 귀결과 일치하는 범위에 의거하여 그 모형의 질을 판정한다고 가정한다면, 모호성원리 V1은 다음과 같은 논리 L, β가 존재함을 함축한다: L, α〉⊂〈L, β이고, L, β는 적어도 논리적 귀결의 모형화 측면에서는 좋은 논리이다(이와 유사한 사항은 V2를 수용하는 일에도 적용된다). V1이나 V2를 받아들이는 결과는 다음 둘 중 하나이다: (얼마나 좋은 모형이든지 간에) 모든 논리에 대해, 논리적 귀결 개념을 그보다 좋게 모형화하는 다른 논리가 존재하든가, 혹은 논리적 귀결 개념을 각각 동등한 정도로 좋게 모형화하는 동시에 적어도 여타 임의의 논리들만큼 좋게 모형화하는 각기 다른 두 가지 논리가 존재한다. 어느 선택지든 다원주의라는 명칭을 수여받기에는 충분한 듯하다.

이 지점에서는 다원주의가 그저 기술되고 그 정합성만이 옹호되었을 뿐이다. 본디 우리의 관심사였던 논리학 논쟁을 올바로 직시하게 해 줄 관점으로서 다원주의를 옹호하는 취지의 말은 아직 아무것도 제시되지 않았다. 다음 마지막 절에서는 다원주의적 입장이 그렇게 보아질 수 있음을 지지하는 몇몇 증거들이 제시될 것이다



Roy Cook, "Intuitionism Reconsidered": S. Shapiro . The Oxford Handbook of Philosophy of Mathematics and Logic, 392-4, 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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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점심을 먹으러 공장 대문을 잠그고 나왔는데 최부장님이 울타리 건너 갈대밭서 뭔 풀을 뜯어 씹어잣고 계신다 저기 대체 뭐 뜯어먹고 자시고 할 게 있는가 싶언 차에, 얘기 듣고 내가 바로 알아채니 찔레꽃순이다 정부장님은 그게 찔레꽃이었냐며 자긴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게 먼젓번에 자꾸 울타리 넘어오는 잡풀들 쳐낼 제 찔레꽃나무 줄기를 보고는 나도 정부장님도 대강 이름모를 까시나무겠거니 궁시렁차 뭐이리 많냐며 낫질하기에만 바빴어라 둘 다 서로 몰랐던 거다 그래도 나는 찔레꽃순 먹어는 봤다 이르니 정부장님은 시골서 자란 자기도 못먹어본 걸 네는 어찌 먹어봤냐 놀란치다 다 들어엎고 아파트 재개발 들어서 지금은 한참도 전에 없어지닌 천안 백석동 옛날 공동묘지에 할아버지 묫자리였는데, 공교롭게 할아버지 봉분 뒤가 다른 봉분줄이 아니라 풀숲 우거진 곳이어서, 근데 하필 거기에 찔레꽃 줄기가 갈 적마다는 무장 되 우거져서, 성묘 간 날마다 돗자리 깔아 아빠가 술 한잔 뿌리고 나면 시아버지 얼굴은 뵌적도 없어놔 심심하던 차 엄매는 늘상 그 순 따다 이게 찔레꽃이라며 연녹색 줄기껍데기 피르르 까줘 먹어보았다, 그래서 먹어보았다, 얘길 풀었다 이십 년을 건넌 세월에 최부장님한테 받아 까서 먹어본 맛짜기가 첫혀엔 달다가 이내 목젖찌 안쪽이 시고 썼다

2. 딱 십 년 전 그날 학교 끝나고 와보니 아무 없는 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 끄고 나서 씻고 나와보니 또 켜져있길래 또 껐다 그러자 엄매는 할아버지 오셔 앉아 켜놓았다고, 죄 어둔 데만 드러눕다 오셨는데 왜 자꾸 불 끄지를 말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화장대 위는 웬 흰 보따리 쌓인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한창 취해 검은 봄밤 검은 낯으로 비칠비칠 들어온 아빠는 나랑 누나를 불러놓고는 많은 얘길 쑤어렸다 오늘 파낸 늬들 할아버지 묫자리 휑그렁한 구덩 앞에서 혼자 쏘주를 세 병이나 넘겼다고, 소형굴삭기 그 대가리가 한 번 떨구럭져 파낼 적마다 그냥 보고만 있질 못하겠더라고, 한 달 전부터 전화해놨던 영선이놈새끼는 기어코 코빼기도 안보였다고, 옛날 어른들 말씀이 부모 묘지에 괸 물이 많으면 그게 그렇게 세상 큰 불효인데 금일 파내고 난 자리가 어찌나 그렁 흥건하더라고, 늬들은 내일에는 적어도 오늘보단 낫게 살아야 한다고ㅡ다음 날 아버지는 봄날 아침 동트는 빛따라 혼자 그 쌔하야니 골분보따리 품쳐 안은 채 말가니 해떠오른 동쪽엘 달려 영월에 다녀오셨다 열 시간 전이든 열흘 전이든 십년 전이든 그적보다 지금 내가 조금이나마 더 낫게 살고 있는지, 십 년 전도 몰랐을 거고 지난 사월 십팔일도 몰랐을 거고 지금도 모르겠다

3. 점심으로 나온 국이 청국장이었다 정부장님은 너 청국장 먹냐며 안 좋아하지 않냐며 시름해준다 고리짝부터 어머니 끓여준 청국장 잘 먹고 이게 자랐으니 걱정 말라 뒀다 한 숟갈 떠서 먹으며 떠오르기가, 그 옛날 늦봄마직 할아버지 묘지 뒤편에 봤던 찔레꽃이 참 엄마를 닮았다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가봤댄들 아파트 단지들만 즐비해진 그 녯날 공동묘지자리, 짐 가면 전에 눴던 할아버지도 없고 엄마 치마폭 닮은 쌔하양 찔레꽃잎도 없고 아빠 마셨던 녹디진 쏘주병 세 병일랑 어디 저 밑땅 축축진 데 다 묻혀놔 간 데가 없을거라ㅡ

4. 인생질 신맛이나 쓴맛은 의당 고사하고 이적지 단맛도 혀대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더니, 엄매는 딱 보길 못난 이새끼는 삼십 줄도 넘어서까리 인생 맛들랑 그적지나 여태 모르고 있을 개싹이구나 싶었는가보다 그래 봄날 햇따라 시아버니 성묘갈 적마다 찔레꽃순 두어줄기씩이나마 따내어 까 자식년놈들 아갈찌에 물려두는 게 일이었는가보다

그적 아직 부드러우시던 손마디골들 죄 까시에 찔려가며 찔레꽃순 따줄 일이었는가보다

- 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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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철학 및 존재론 연습:

1. 쇼펜하우어는 개를 하나 샀다
쇼펜하우어가 산 개 하나가 있다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는 개이다 & x는 쇼펜하우어에 의해 구매되었다)

2. ‘x‘에 대입될 논항의 지시체에 대한 지식은 이 문장들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쇼펜하우어가 산 개‘에는 맥락상 정관사가 아니라 부정관사가 붙는바, 그 표현은 외견상의 문법적 형식으로는 명사이지만 논리적, 의미론적으로는 불포화된 술어, ‘그러한 ...가 존재한다‘라는 2계함수 양화사의 논항이 되는 1계함수이다

3. 동일성 기준 없이는 존재(대상)도 없다 역으로 대상의 존재함은 그에 대한 동일성 기준을 함축한다ㅡ콰인은 제쳐두더라도, 프레게는 여기서 자칫 실수해버린 것 같다 술어의 외연 동일성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와 술어의 외연 자체에 대한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문제는 분명 다르다 콰인은 존재론적 개입기준의 토대로서 자연과학을 받아들여 이 간극을 해결하지만, 프레게에게는 그러한 철학적 마지노선이 없다(탁월한 프레게 전도사이자 명민한 쌈닭인 m. 더밋은 이 간극을,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주의 의미론을 세련화하여 빌려온 뒤, 그것을 직관주의의 근본기조에 맛깔나게 버무려, 내재적인 반실재론적 구성성 논제를 통해 해결한다 재수없는 스타일의 천재다) 수학에 대한 심리주의를 그렇게도 날카롭게 배격한 그가, 술어의 외연이라는 개념ㅡ어쩌면 포르-르와얄 논리학 시대부터 굳건하게 이어져왔을지 모를 그 낡아빠그러진 개념ㅡ에만 그렇게도 쉽게 의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식론과 형이상학 모두를 다 피하고 싶었던 몬테규는 수학과 언어학을 통해 그 간극을 그냥 지워버렸다 교묘한 살쾡이 스타일의 천재다)

사족. 쇼펜하우어가 홀애비로 늙어 죽을 때까지 애착을 갖고 기르던 개는 푸들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가 기르던 ‘x‘에 대입될 현실세계에서의 논항이 푸들인지 진돗개인지 파트라슈인지, 그 종에 대한 동일성 기준을 명확히는 모르겠는 나로서는, 그 개가 그 개겠거니 동일성이고 함수고 술어의 외연이고 나발이고 암거도 모르겠다 인간을 그리도 싫어한 쇼펜할부지가 개를 키웠을진대, 인간도 개도 벌레도 신도 싫은 나는 그냥 내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를 2계 술어논리 형식을 빌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x와 S에 대해 (x는 시공간적으로 내 주변에 사태 S를 예화시킨다-> 나는 x와 S를 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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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생전이실 적 엄매한테 전화오면 내뱉으시는 첫마디가 이년아 살었냐 죽었냐 왜 연락을 안허냐였다 할머니 소천하신 뒤론 그 바톤을 막내이모가 넘겨받았는지 매주말 저녁마다 걸려오는 전활 받고 난 엄마는 종단이년은 왜 전활안허냐고 맨날 지랄이랜다 살아숨쉬느라 바빠 벙긋핀 꽃들 떨어져가는 봄밤 엄매가 할머닐 생각하면 나는 엄매가 끓여주는 미역국 냄비에 비친 얼굴을 생각한다

- 2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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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매기를 빌려 모래밭에 앉았다

외로움이 저 사람의 형상을 잠시 빌렸구나

그곳에서 나는 어두워지는가

- 김행숙, 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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