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투성이인 사람으로 자라버렸구나

십 년만 되돌린다면 그 모든 잘못들을 저지르지 않으며 다시 자랄 수 있을까 눈 뜨고 입만 벌리면 푸르딩딩 멍든 살점들마냥 어버버 쏟아지는 죄의식들, 한새벽까지 잠 못들면 여직껏 소화시키지 못해 푸더덕 게워내는 잘못의 시간들, 붙들고 통사정하며 용서를 구할 만한 옷자락도 없는 통한에 하릴 없이 깨먹은 술잔들ㅡ열흘, 열 시간, 혹여 십 초를 되돌린다 해도, 내가 받은 사랑과 보살핌 만큼한 기여를 세상에 유의미하게 덧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악마는 멀리 있는가

- ‘19.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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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년 전 초여름 일이다. 엄마가 오토바이로 신문배달을 하다 넘어져 왼손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떨어졌을 때였다 아프고 겁나는 와중에도 엄마는 피투성이 마디 하나를 오른손에 꼭 쥐고 있었다 부모님 주변 누군가 절단된 데 봉합 신경치료는 평택 모모한 병원이 알아준다길래 그 곳으로 갔다 마침 2학년 여름방학 초엽이던 나는 달포 조금 넘는 동안 병원에서 엄마와 지냈다 보르헤스와 데리다를 많이도 읽던 날들이었다 8인실 넓은 창으로 지는 초여름 오후 태양이 그리는 동그라미가 나만의 알렙 같다고 느꼈다 매일 아침 회진을 올 적마다 모호하거나 별 정보적이지 않은 허툰 말만 되뇌던 주치의는, 결국 신경이 살아나지 못해 다시 절단수술을 해야겠다는 통첩을 팔 월 중순에야 내뱉었다 작으나마 신체 한 부위가 없이 살아야된다는 생각에 엄마는 손가락 마디 떨어지던 날보다 더 섧게 울었다 그 해를 비롯, 몇 녗간 가을 겨울만 되면 엄마는 중앙시장서 장봐온 껌은 봉투를 왼손에 들질 못하였다 마디 없는 절단면이 시렵다 했다

2. 재작년 12월 말일이자 딱 연말이던 낮, 오토바이 사고로 발목 골절을 당했다는 전화를 아빠에게 받았다 코로나 검사로 아산 충무병원에 갔다가 별 문제 없으면 천안 충무병원으로 이동한다 하였다 늦오후 즈음에야 코로나 음성이 확정되어 나는 해 져가는 매선 바람에 충무병원으로 가 응급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관련 사항은 아빠를 실어온 사설 응급차 관계자가 알려주었고 응급실 접수처 측에도 그리되었다 병실을 안내받고 올라갔는데, 코로나 검사결과가 어떻게 됐냐는 질문을, 간호사를 비롯 병원 내 서로 다른 관계자들이 도대체 세 번 씩이나 묻는 꼬라지를 보며, 여기는 이런 사소한 사항에도 일을 개떡으로 처리하는 곳이구나 바로 직감이 왔다 사흘 뒤 수술 집도가 예정된 의사에게 내려가 동의서를 쓰기 앞서 아빠의 다친 상태에 대한 설명과 수술 계획을 듣는데, 대충 여차저차 배치된 이런 형태의 뼈 두 개 이상에 발생한 복합골절을 필론식 골절이라 한다 했다 방금까지 논리학사를 읽으며 필론식 조건언에 대해 읽다 내려온 나는, 필론식 골절 수술이 무척 까다롭고 실패율도 대체로 높단 말에, 논리학 강의에서 필론식 실질 조건문의 진리조건을 처음 배우던 때처럼 긴장이 되었다 이레 조금 지나 수술날, 수술이 끝난 직후 의식이 돌아온 아빠는 동물처럼 울부짖으며 아파했다 수술 동의서에서 동의체크했던 추가 마약성 진통제를 간호사에게 신청하려 중앙으로 가 말하니, 집도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어야는데 지금 바로 연속으로 다른 수술을 들어가 당장은 지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란다 이게 도시 뭔 쌉똥같은 소린지, 이미 동의체크한 사항이면 미리 지시받고 준비를 해둬야 하는 거 아닌지, 일을 왜 이따구로 처리하는지 따져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아빠가 세시간 여를 울부짖는 소릴 듣고 나서야 진통제가 왔다 주변에 개 웬수같은 새끼가 혹여 손모강지나 발모강지라도 뿌러지면 반드시 천안 충무병원을 추천하겠다고 저주스런 마음으로 다짐짓했다.

3. 병원을 동네 근처로 옮기고, 재활과 물리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고 나서도, 한달 두달 세달이 지나도록 아빠 발목의 붓기는 여름 초입에 시장으로들 나오는 통연근마냥 땡땡하게 부어만 갈 뿐 가시질 않았다 미심쩍었던 아빠가 다시 충무병원을 찾았는데 당시 집도했던 의사는 그만 두고 새 의사가 와 있었다 사진을 찍어보고 난 그 의사가 하는 말이 ‘수술이 안 되었다‘ 이런 표현을 썼다 작은 뼛조각 하나가 봉합되지 않아 염증이 발생해 속에서부터 난 부종이 계속되어온 것이다 분명 수술 직후 확인했던 사진은 뼈 모양새가 아주 온전하고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된거냐는 아빠의 물음에, 겉모양과 다르게 애초에 수술이 제대로 안된 케이스라 했다 한다 그 얘길 들은 나는 몇 달포 전의 저주스런 마음을 더욱 강하게 되새김하고는 다가동에 지진이라도 나서 병원 건물이 폭삭 무너지길 신에게든 악마에게든 간절히 염원했다 결국 그 뼛조각은 그 의사가 써준 추천서로 순천향 병원에서 빼게 되었다

4. 아빠 사고나기 전 겨울 초입에 엄마는 눈이 자꾸 시리고 눈물이 나서 버들육거리에 있는 큰 안과를 찾아갔다 1층 안경집만 가본 바 있던 나는 접수실부터가 삐까번쩍한 걸 첨 보고 놀랐다 진료를 금방 마치고 내려온 엄마에게 어찌됐냐 물으니, 식당 일을 그만두는 수밖엔 없다는 말을 들었단다 식당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종일 눈앞에 섰는 가스불 때문에 으레 이렇게 눈시리고 아픈 거 세상천지 삼척동자 해남 윤씨 종갓집 막냇며느리 배냇딸도 다 아는 사실인데, 하나도 의학적이지 않은 그딴 개쌉소리를 진찰결과랍시고 내뱉으며 이 큰 건물로 안과 짓고 퍼질러 앉아 의사선생님 소리 들을라 치면 까짓거 나도 다 하겠다며, 삐까번쩍한 병원건물 뒤편 쥐좆만한 주차장에서 차를 돌리며 쌍욕을 퍼부었다

5. 아침에 일어나 앉자마자 목과 코 사이가 따끔거렸다 바로 감기임을 알아챘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닌 거 같아 출근을 했다 오전 내내 라인에 서서 물건 받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더 버티다 병 키우지 말고 오후엔 쉬자 마음먹어 부장님께 조퇴를 구하고 나왔다 숙소 근처 달랑 하나 있는 의료원이 신통찮다는 말에, 차로 삼십 분을 달려 백암 쪽으로 갔다 가보니 역시나 신속항원검사부터 하는데, 결과 뜰 때 까지 병원 밖 뒷골목에서 기다리다 들어가니, 코로나는 음성인데 이틀 후에도 상태가 호전이 안 되면 다시 오라는 말만 하고 진료가 끝났다 음성이어서 다행인 거도 알겠고 잠복기 고려해서 다시 오라는 말도 이해를 하겠는데, 정작 지금 내가 아파서 찾아온, 이틀 후에도 호전이 안 되면 다시 와야하는 바로 그 증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은 일절 없다 어디가 가장 아픈지 무엇이 가장 심한 증세인지 평소와 다른 부수적인 신체 변화는 없는지 아무 묻는 것 없이, 압설막대로 혀 눌러 목구녕 한 번 들여다보는 일 없이, 그저 처방전을 받으란다 으레 이런 식으로 처리해온 동네 병원이겠거니 싶다 환자가 ‘감기로 왔어요‘ 그러면 그 환자가 앓는 감기만의 특수성을 상세히 알아내려는 여하한 노력도 없이, 그저 이적진 처방해추면 귀납적으로 높은 확률로 잘 들어왔던 고만고만한 약들 띡 처방해주면 그만인 그런 형편없는 여러 동네 소아과들 중 하나였던 것뿐이다 몸살에 운전하느라 지친 나는 역시 또 따져 묻는 일 없이 병원을 나섰다 약 먹고 오후에 푹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지긴 했지만, 모든 학문과 그 응용에서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을 구내해는 과정이다

6. 일련의 크고작은 일들을 겪으며 나는 의사 및 의료 관계자란 존재자들을 일절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 믿는 것 이상으로 쌍욕을 퍼붓게 되었다 인간 신체를 탐구하며 그 기능적 결함을 해결하고자 분투해온 의학적 노력이 쌓아올린 지식 자체는 분명 찬란하고 대단한 것이지만, 그 지식을 여하한 창의성도 없이 기계적으로만 십 몇년을 달달 대가리에 쳐 욱여넣어 의사면허 받고 병원 하나 떵 차려놓고는 그저 매일 똑같은 모양새로 처방해내는 지식 소매상에 지나지 않는 의사들의 행태가 너무나 혐오스럽다 하나도 전문적이지 않아 보이는 형편 없는 똑똑한 멍청이들이 구할이다  하기사 찬란한 지식에 기생하되 그 자체로는 찬란하지 않은 후루꾸들 득실대는 분야가 의학 뿐이겠냐마는 말이다

- ‘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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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 - 현대철학시리즈 15
수잔 하크 / 종로서적 / 1986년 7월
평점 :
절판


수잔 하크, 논리철학, 김효명 역, 종로서적, 1984, 54쪽(제4장, 양화기호;1절, 양화기호와 그 해석)

논리철학 연습 및 단상
: 콰인은 왜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을 지지하였는가?

1. 여타 철학자들이 그렇듯 콰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역시 매우 많다 그 유명한 ‘gavagai‘ 사례에 의한 번역 불확정성 논제에서부터 지시적 불투명성 논제, 의미 회의론자, 외연주의자, 자연주의자, 철학-과학간의 연속성 논제, 인식론의 자연화 논제, 정합론 노선의 기수, 유명론자, 실용주의자, 극단적 경험론자, 논리실증주의 타도의 선봉장, 상대주의적 존재론 논제, 존재론적 개입 기준 논제, 좀 더 전문적인 데로 들어가면 양화양상논리학과 본질주의 대항마의 대부, 실용주의적 논리주의자 정도ㅡ이 모든 것 중 유명론자라는 타이틀과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은, 나처럼 철학적으로 미욱한 사람들에게는 일견 서로 잘 부합되지 않을 듯한 느낌을 준다 모든 개념 내지 언어에 대한 유명론적 관점을 견지한 그가, 왜 하필 존재 양화사의 속박변항의 값으로서 ‘대상‘이라는 형이상학적 냄새가 묻어 있는 것을 선택한 것일까

2. 양화사의 대상적 해석에 따르면, 콰인의 그 유명한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 양화사의) 속박 변항의 값이 된다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은 대상이다 여기서 콰인이 말하는 ‘대상‘은 결코 형이상학적 내지 본질주의적인 대상 또는 실체일 수 없고, 자연주의자로서 그가 존중하는바 ‘자연과학에서 말해지는 대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쯤에서 일상적인 철학적 직관에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여겨지는 귀결이 따라나온다 철학-과학 간 연속성을 강조하는 자연주의자로서의 콰인이 존재를 결부시키고자 하는 것, 즉 존재양화사의 양화적 개입을 허용하고자 하는 것은, 유명론자라는 타이틀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는 다르게 변항에 대입되는 단순한 벌거벗은 이름이 아니라 ‘자연과학이 이론적으로 규정해주는 <이름을 갖는> 대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하는 ‘대상‘이란 ‘자연과학에 의해 유명론적 경험주의적인 명명식이 이미 치뤄진 대상‘으로 이해되어야지, 그 어떤 형이상학적 본질주의적 함축을 갖는 일상적인 철학적 직관에 의거한 대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존재 양화사에 의해 속박된 변항의 값은 이미 자연과학에 의해 대입적 해석이 이뤄지고 난 이후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3. 결국 콰인이 양화사에 대한 대상적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는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신뢰, 정확히 말해 자연과학 층위에서 이미 이뤄져 있는 대입적 해석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의 대상적 해석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에 앞서 자연과학자들이 베푸는 세례식으로서의 과학적인 대입적 해석부터가 옳은지, 즉 그의 포괄적인 자연주의적 태도 자체가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를 문제삼아야 한다

4. 나는 비판의 의도가 아니라 도통 모르겠다는 의문에서 시작하였기에, 콰인의 대상적 해석을 논하기 위해 그의 자연주의까지를 논할 생각은 없다 (그럴 능력도 없다) 외려 콰인이 이런 식으로 언어와 논리에 대해서까지 자연주의적 견지를 개입시키는 것이 한편으론 매우 인상깊고 다른 한편으론 작금에 대해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농 식의 존재론적 빈민굴에 대해 그가 가졌던 적대감은, 언어나 개념을 선점함으로써 세계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과 정치권력을 선점하려는 작금의 반지성적이고 수사주의적인 세태에 대한 나의 적대감과 매우 공명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리철학 입문˝에서 자신의 기술구 이론을 재론하는 와중에 ‘실재에 대한 건전한 감각은 논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 러셀의 근본취지를 계승하여, 러셀의 기술구이론을 모든 고유명에 확장한 뒤 거기 나타나는 존재 양화사에 속박된 변항의 값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자 했던 콰인의 관점은, 지시체를 결여하는 공허한 기술구를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수사학적 깡패들의 헛소리에 대항할 수 있는, 보수적이지만 ‘건전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수사력에 쉬이 넘어가는 게 현대인이지만, 그만큼 현대인들은 외려 과학에 대한 ‘건전한 감각‘을 이론적 원리적으로라도 존중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그러한 감각을 호도한 채 단지 언어나 개념만을 선점하여 자신의 존재론적 양화문에 자신이 정착시키고자 하는 이름을 대입한 뒤 그 이론을 세계에 대한 참된 표상인 양 퍼뜨리려는 사이비 학자들 운동가들 정치인들 등등을 물리치기 위해선, 동일한 층위에서 대입될 수 있는 단순한 이름 내지 언어를 제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존중하고 합의할 수 있는 이론이 존재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그러한 이름을 제시해야 한다 노이라트의 말을 빌어 우리는 우리가 탄 언어라는 배를 벗어날 수 없다 말한 콰인에게서, 정글 원주민이 발화한 ‘가바가이‘는 고사하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발화한 ‘토끼‘의 지시체마저 알 수 없다 말한 콰인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저 멀리 자신이 딛고 있는바 내 것과 똑같은 배를 숨겨놓고는 ‘가바가이‘를 와쳐대며 네 배를 버리고 그기로 오라고 강요하는 헛소리쟁이들을 물리칠 수단이, 존재 양화사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대상적 해석이라는 점일 것이다

5. 콰인에게서 박사학위논믄 지도를 받은 d.루이스가, 저 멀리 가능세계에서 자신만의 상대역-배를 타고 있는 자신의 상대역을 찾아나선 아이러니함은, 일단 제쳐두기로 한다

- ‘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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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에 동치관계가 주어지면 그 집합은 동치류로 분할된다. 이 과정은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활용된다. (중략) 정수 전체의 집합 Z에서는 덧셈과 곱셈을 할 수 있다. 이는 Z에 대한 동치류 분할 Z5에서의 동일 구조 연산을 정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수적 구조 Z로부터 새로운 대수적 구조 Z5를 얻게 한다.
대수적 구조를 얻는 이러한 과정은 다항방정식의 가해성solvability에 대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2차방정식의 풀이는 x^2=A 꼴의 풀이로 귀착된다. 일반적인 3차다항식의 풀이를 특수 형태의 2차방정식 x^2=A와 특수 형태의 3차방정식 x^3=B의 풀이로 귀착시키는 과정이 가능한 이유는, 일반적인 3차방정식이 갖는 대수적 구조가, 동치관계 및 분할의 과정을 거쳐 위의 두 가지 특수 형태의 방정식이 갖는 대수적 구조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동치관계와 분할에 의한 이러한 절차는 5차 이상의 방정식에는 일반적으로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게 해준다.

- 신기철 외, 무한: 수학적 상상


나는 군론이나 대수방정식의 가해성에 관한 연구라곤 쥐똥만큼도 모르지만, 갈루아가 죽기 점날 밤 왜 그리 미친듯이 증명을 해나갔는지, 칸토어가 왜 연속체 가설을 틀어쥐고 끙끙대다 할레대학 네르벤클리닉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됐는지, 프레게가 왜 그리도 논리주의에 천착하다 종내는 그 기획을 단념했는지,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하던 수학기초론 심포지엄에서 좌중에 앉았던 노이만이 왜 ˝끝장났구나˝ 하고 탄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뭔갈 공부하는 최소한의 재미를 찾자면 이런 거 같다ㅡ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거, 당장이든 나중이든 세계를 다 꿰뚫어 알진 못하더라도 언젠간 세계의 일부라도 납득하겠다는 자세나마 갖추는 거

-‘21. 11. 9


고대의 어떤 작가가 잘 표혔했듯이, ˝자유로운 학문이란 우리를 직접 미덕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미덕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는 멜란히톤의 ˝지식은 습관이 된다˝라는 격언으로 발전되었다.

- 조지 불, 논리의 수학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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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크립키 컴북스 이론총서
정대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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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주제선정과 안목 있는 해석적 관점을 통해 크립키 철학의 여러 면모를 유기적 맥락적으로 개괄해주고 있긴 하지만, 유관 배경지식을 다소 갖춘 독자여야 읽는 소득이 있을 법한 해설서이다. 기술주의 비판과 고정지시어, 동일성 진술과 양상성개념, 이와 관련하여 이어지는 양상논리 의미론 작업, 명제태도맥락의 철학적 퍼즐, ‘나‘라는 지표사와 연관된 인식론적 언어철학적 심리철학적 논의까지ㅡ크립키가 참신한 발상과 개념들을 통해 기여한 주제들을 키워드 삼아, 여타 철학자들과 대비되는 논쟁적 맥락을 곁들이면서 크립키의 견해들을 간결하게 해설해준다. 그 과정에서 크립키 철학의 일정 구심점을 일상언어에 대한 존중에 기반한 철학적 작업으로 일관되게 해석한 뒤 이를 기초로 저자 고유의 사변적인 사유의 밑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적은 분량임에도 이렇듯 알뜰한 내용을 갖추었지만 이를 빠른 호흡 속 간결한 서술로 풀어가는 탓에, 아무런 선지식도 일절 없는 채 읽으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가며 읽기보단 언어와 개념만 숨가쁘고 공허하게 따라가는 독서가 될 듯하다. 분석철학사 전반은 물론이요 언어철학 심리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의 하위분야에 익숙하되, 그러한 맥락들 내에서 크립키가 차지하는 위상에도 특히 관심하는 독자층에게 추천될 법하다.

오늘날 시점에 가까운 연구자들일수록 콰인보다는 크립키를 분석철학 전통에서 뚜렷한 분수령으로 꼽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 다양한 주제와 관련하여 그의 견해들을 파편적으로만 들어놓은 터라 그런 평가가 좀체 실감되지는 않았었다. 크립키 이후에 그려진 철학적 지형도에 비교적 무지한 탓도 있겠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통해 차후의 이해를 위한 기점을 작게나마 마련한 것 같아, 주말 한나절 짧았음에도 흥미롭게 읽어내려간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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