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지적 호기심이라는 사악한 부엉이를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몇 개의 다른 새들, 그러니까 말 많은 까치, 과시하기 좋아하는 칠면조, 조용히 읊조리는 비둘기 같은 것들과 함께 문에 매달아 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우리 몸 안에 너무도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이것들을 밖으로 내놓으려면 우리 내부까지 파헤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들을 잘 길들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상처가 다 아물면 딱지가 떨어지듯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너무 일찍 서둘러서 딱지를 떼려고 하면 오히려 해가 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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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책을 썼을 때나 이 책을 번역했을 때는, 지금과 같이 생성형AI를 사용하며 겪고 있는 인간의 사고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되지 않을 시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인간의 사고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고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어려지만, 흥미롭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소골 신부는 그가 몇 년 전에 했던 실험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사고의 힘을 측정할 수 있는가 하는 실험이었다.

(..)

"사실 모든 사고는 어떤 전체의 분할을 파악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수라는 것은 단일성의 구분, 요컨대 어떤 절대적으로 임의인 전체의 구분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한 개의 인간이 어느 정도의 수를 사고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가, 요컨대 분해도 하지 않고 비유화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원칙의 연속적인 귀결을 즉각 동시에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류에 속하는 종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원인과 결과를, 목적과 수단의 연관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인가 등을 조사해봤지만 그 수가 4이상이 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 (...) "(...) 어떤 종류의 연쇄나 논리적인 구분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될 것입니다. 이런 식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끊임없이 우연을 실체로 착각하고, 결과를 원인으로, 수단을 목적으로, 우리들의 별을 영주하는 집으로, 우리들의 몸과 지성을 우리들 자신으로, 우리들 자신은 무언가 영원한 것으로 착각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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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우리의 비버씨가 의사이자 배의 주인으로서 이 탐험대의 몸과 정신에 병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써준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걷는 것, 말하는 것, 숨쉬는 것 혹은 먹는 것으로 짜증이 나거나 하면 그는 항상 제때에 등장해 책망의 말과 함께 우리를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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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만,
늘 그렇듯 일단 읽고 있습니다. ㅎ

그런데,읽다보니, ‘마운트 아날로그’라는 산을 찾기 위한 여러 과정들이 의미가 있겠지만,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위대한 항로’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모험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인지, 혹은 만화 작가가 이 소설을 읽었을까?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혹, 끝까지 읽으면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미지의 영역을 아주 구체적으로 논의하면서 찾아나가는 방식 자체는 소설과 만화가 다르지만, 미지의 영역에 다다르고자 하는 마음은 같이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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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임재철 선생님과 아주 오랜만에 뵙게됐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책을 몇 권 챙겨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런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임재철 선생님과 홍성남씨에게 항상 영화, 책, 음악 추천을 부탁드렸고, 두 분은 늘 이것저것을 알려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참 운이 좋다고 느껴지는 일입니다.

그때는, 선생님께서 출판사를 직접 만들고, 이런 책들을 낸 것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말씀하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몇 권 꺼내서 주셨는데, 지난 번 선생님 추모식에 가보니 대부분의 후배들에게 하셨던 방식과 유사했습니다.

선생님보다 띠를 두 바퀴 정도 돌아야 하는 현직 평론가, 소설가와도 교류를 하셨고, 거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과 동일한 방식으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셨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했지만, 선생님은 정말 선생님답게 살다가셨고, 아주 재미있게 지내시다 가셨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집에 찾아보면, «필름컬처» 뿐 아니라 감독론 등 한나래 출판사에서 내셨던 책들도 몇 권이 있을 거고, 2018년에 선생님께서 주신 책들도 몇 권이 더 있을겁니다.

한국에서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신 책들이라니,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하늘에서 홍성남씨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 아무런 발언권은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텔리’한 영화평론가인 두 분과 직접 교류를 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합니다. 언젠가 홍성남씨를 기억하는 글을 쓸 기회가 있다면, 명사로만 글을 쓰려고 할 정도로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임재철 선생님은 뭔 그런 글을 쓸 생각을 하느냐며 대번에 넘겨버리셨지만요.

* «위대한 개츠비»로만 알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다른 소설 «라스트 타이쿤»을 번역한 책을 내신 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절대로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시키면 오히려 안 하실 분들이었던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책을 낸 시점으로부터 십년 이상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 추모식 현장에서 판매하던 책(유운성, 금정연, 정지돈 글)을 읽다보니, 선생님은 참 한결 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도쿄에 다녀오면서 키노쿠니아 서점에서 고다르였는지 트뤼포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을 사왔다고 하니, 빌려덜라면서 가져가셨습니다. 물론 일본어를 읽지 못하니 지적 허영심에서 갖고 싶었기 때문에,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념품이기에 몇 년 후에 말씀드리니, 준명 기억은 하시면서도 돌려줄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정말 누구에게나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26.7/5일)

* 1990년대 말, 그러니까 선생님게서 영화공부를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안 됐을 시점에 만났던 분들은 이번 추모식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쩜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웠습니다. (‘26.7/5일)

* 임재철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도 할 말도 많은 분이었지만, 상대의 이야기는 잘 듣는 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안 그러면 욕을 할 일도 없고, 그 풍성한 지식의 타래가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금정연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어쩌면 비영화계 사람 중에서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속해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참 후배이지만 편하게 이야기를 하곤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섣부른 한 마디가 꽤 긴 강연을 불러오긴 했지만,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재즈를 좋아했었다는 이야기,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했었다는 이야기, <미드나잇 가든(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영화와 OST 이야기, 그래서 DVD와 수입 OST를 사고, 그래서 <미스틱 리버(Mistic River)>는 야근 중에도 개봉하는 날 극장가서 봤던 기억 등 선생님으로부터 촉발됐던 행동들이 꽤 있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체인질링>, <그랜 토리노>,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등도 모두 극장에서 봤습니다. (‘26.7/5일)

* 어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지적으로 교류했던 사람들 중에 임재철 선생님과 홍성남씨가 있기 때문에, 가끔 그리워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는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임재철 선생님은, 뭘 그렇게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느냐고 하면서 기자 시절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곤하셨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지금은 이제는 마음껏 놀면서 살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글로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선생님의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야기에 거짓이 없었고, 젠체하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깊이는 얕으면서 있어보이려고 하는 허식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저 더 알고싶어하는 사람들의 등을 두드리면서 응원해주려고 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6.7/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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