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에 마크 브래드포드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작품이 설치된 바닥을 걸으며, 문득 우리가 본 색채도 어디선가 묻어나는 게 아닐까, 어딘가에서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입는 옷에서, 물건을 고를 때, 필기할 때 등등. (마크 브래드포드, 떠오르다(Float), 2019, 혼합 재료, Courtesy of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아모레퍼시픽)

학교에 다닐 때 동네 선배의 전시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스타치스 꽃다발을 준비했어요. 보라색과 노란색을 섞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유러피안 스타일의 꽃다발 패턴과는 다를 겁니다. 요새는 여리여리한, 은은한 꽃다발이 많이 보이는데요, 그때는 데이지꽃도 있었지만 검붉은 빨간 장미 한 다발도 선물로 인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노랑과 보라색 스타치스가 미술을 전공한 그 언니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준비했는데, 옆에서 누군가는 그 색이 촌스럽다고, 왜 그런 꽃다발을 준비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이라 정확하지는 않을 겁니다.

노랑과 보라는 보색이기도 하지만 보라 꽃 안에 있는 노랑과 노랑 꽃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옷을 이렇게 입지는 않습니다.

1-1. 영화에서 본 옷차림도 남아서, 옷을 입을 때 영향을 미칩니다. 동시대의 영화나 몇 십년 전 영화더라도 클래식한 차림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2.
내가 쓰는 글도, 언젠가 읽은 글이 묻어있는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머릿 속에 어딘가 자리잡고 있다가 그에 적확한, 딱 어울리는 어떤 순간에 팍!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쓰게될 모든 글도 그렇게 소개받은 글로 구성될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지식노동자라면, 다른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 출처를 밝히는 걸 좋아할텐데, 그러지 못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김지원 작가의 메모에 관한 책에도 나옵니다만, 메모에 맥락을 기록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북플에 밑줄긋기 문장을 옮길 때도 그렇습니다.

예전에 공연장을 자주 다닐 때는 라이브공연이야말로 온몸에 시간을 메모하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도 귓속에서 비트가 쿵쾅거리고, 가슴은 계속 뛰고 있고, 나도 모르게 공연장에서 들었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공연장에서의 강렬한 시간은 공감각적 메모였다. 그 시간은 ‘잊히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주관식당»에서 최강록씨가 했던 말을 적어 두었다. 함께했던 문상훈 씨가 ‘자신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함께하면 자신은 점점 잊힐’ 거라고 했더니, 최강록씨가 그렇게 말했다. "잊히겠지만, 어•••••• 사라지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경험한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 애쓰지만 어떤 기억들은 분명히 잊힐 것이다. 그렇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몸 어딘가에 그 기억들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메모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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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26 0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메모는 학습과 기억에 관한 한 최상의 수단이지요.

yamoo 2025-11-27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색 옷을 잘 입고 다닙니다요~~ㅎㅎ
그 중 최강은 아마도 머스타드와 퍼플의 조합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