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임재철 선생님과 아주 오랜만에 뵙게됐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책을 몇 권 챙겨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런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임재철 선생님과 홍성남씨에게 항상 영화, 책, 음악 추천을 부탁드렸고, 두 분은 늘 이것저것을 알려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참 운이 좋다고 느껴지는 일입니다.

그때는, 선생님께서 출판사를 직접 만들고, 이런 책들을 낸 것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말씀하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몇 권 꺼내서 주셨는데, 지난 번 선생님 추모식에 가보니 대부분의 후배들에게 하셨던 방식과 유사했습니다.

선생님보다 띠를 두 바퀴 정도 돌아야 하는 현직 평론가, 소설가와도 교류를 하셨고, 거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과 동일한 방식으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셨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했지만, 선생님은 정말 선생님답게 살다가셨고, 아주 재미있게 지내시다 가셨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집에 찾아보면, «필름컬처» 뿐 아니라 감독론 등 한나래 출판사에서 내셨던 책들도 몇 권이 있을 거고, 2018년에 선생님께서 주신 책들도 몇 권이 더 있을겁니다.

한국에서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신 책들이라니,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하늘에서 홍성남씨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 아무런 발언권은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텔리’한 영화평론가인 두 분과 직접 교류를 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합니다. 언젠가 홍성남씨를 기억하는 글을 쓸 기회가 있다면, 명사로만 글을 쓰려고 할 정도로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임재철 선생님은 뭔 그런 글을 쓸 생각을 하느냐며 대번에 넘겨버리셨지만요.

* «위대한 개츠비»로만 알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다른 소설 «라스트 타이쿤»을 번역한 책을 내신 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절대로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시키면 오히려 안 하실 분들이었던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책을 낸 시점으로부터 십년 이상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 추모식 현장에서 판매하던 책(유운성, 금정연, 정지돈 글)을 읽다보니, 선생님은 참 한결 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도쿄에 다녀오면서 키노쿠니아 서점에서 고다르였는지 트뤼포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을 사왔다고 하니, 빌려덜라면서 가져가셨습니다. 물론 일본어를 읽지 못하니 지적 허영심에서 갖고 싶었기 때문에,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념품이기에 몇 년 후에 말씀드리니, 준명 기억은 하시면서도 돌려줄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정말 누구에게나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26.7/5일)

* 1990년대 말, 그러니까 선생님게서 영화공부를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안 됐을 시점에 만났던 분들은 이번 추모식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쩜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웠습니다. (‘26.7/5일)

* 임재철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도 할 말도 많은 분이었지만, 상대의 이야기는 잘 듣는 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안 그러면 욕을 할 일도 없고, 그 풍성한 지식의 타래가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금정연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어쩌면 비영화계 사람 중에서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속해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참 후배이지만 편하게 이야기를 하곤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섣부른 한 마디가 꽤 긴 강연을 불러오긴 했지만,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재즈를 좋아했었다는 이야기,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했었다는 이야기, <미드나잇 가든(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영화와 OST 이야기, 그래서 DVD와 수입 OST를 사고, 그래서 <미스틱 리버(Mistic River)>는 야근 중에도 개봉하는 날 극장가서 봤던 기억 등 선생님으로부터 촉발됐던 행동들이 꽤 있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체인질링>, <그랜 토리노>,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등도 모두 극장에서 봤습니다. (‘26.7/5일)

* 어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지적으로 교류했던 사람들 중에 임재철 선생님과 홍성남씨가 있기 때문에, 가끔 그리워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는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임재철 선생님은, 뭘 그렇게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느냐고 하면서 기자 시절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곤하셨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지금은 이제는 마음껏 놀면서 살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글로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선생님의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야기에 거짓이 없었고, 젠체하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깊이는 얕으면서 있어보이려고 하는 허식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저 더 알고싶어하는 사람들의 등을 두드리면서 응원해주려고 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6.7/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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