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7
헨릭 입센 지음, 안동민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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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다람쥐, 요정, 인형으로 묘사되는 낙천적이고 명랑한 와이프 노라가 주인공이야. 남편이 아플 적에 고리대금업자에게 남편 모르게 돈을 빌려 요양을 시켰고 남편은 건강 찾고 일도 승승장구인데 돈 빌린 일이 덫이 되어 노라와 남편을 위협해. 맨날 노라 나의 종달새 나의 다람쥐 하며 목숨바쳐 사랑을 노래하던 남편이 정색하고 노라를 비난하니 노라 현타와서 상황이 나아지고 남편이 다시 애정을 퍼붓는데도 8년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정.

읽으면서 안톤체홉의 귀여운 여인이 떠올랐는데 단순하고 아이같은 여인 캐릭터가 난 되게 좋다. 돌려까는 비하의 의도도 몇 느껴지는데 그 마저도 나는 사랑스럽고 좋아. 결말을 봐봐 결국엔 이성적이라니깐.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고 편해서 그러는 것 같아 여자들은. 남자의 본성을 알 수 있는 책 리스트를 봤는데 인형의 집은 반대로 여자의 본성을 알 수 있는 책 같다. 희곡이다보니 부연설명 없이 대사로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 내가 현타오는 지점에서 노라의 말이 단답형이 되는 걸 보며 ‘맞지 노라....빡치지....?‘했다.

종달새 부르면 종달새 응답하는 오글오글 대사들도 재밌고 의외로 긴장되는 전개도 괜찮고 그보다 남녀의 감정 부각이 꽤 예리한 것이 상당히 재밌었다.


발췌(feat 부부의 대화)

노라-톨발
헬멜-응
노라-만일 지금 당신의 작은 다람쥐가 진심으로 부탁을 한다면
헬멜-그래서?
노라-들어 주시겠어요?
헬멜-글쎄 그거야 우선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 보아야지
노라-만일 당신이 다정하게 제 부탁을 들어 주신다면 다람쥐는 아주 신 바람이 나서 뛰어 다닐거예요
헬멜-말해보구려
노라-종달새는 온 집안을 날아다니면서 노래 할 거예요. 낮은 소리, 높은 소리로 말예요.
헬멜-그런 일이라면 항상 하고 있는 게 아니요
노라-저는 당신을 위해서 요정이 되겠어요. 달빛을 받으면서 미친듯이 춤을 출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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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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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나에겐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야



거의 4주 전 처음 밴쿠버퍼블릭도서관 간 날 중간까지 읽었다가 그 후 도서관 갈 때마다 대여중이여서 어제 겨우 끝냈다.

뭘 써야할까.

읽으면서 천명관 고래가 떠올랐다. 그만치 방대하진 않지만 속도감과 가정 중심의 이야기가 닮았던건가. 지금 굳이 공통점을 찾으려니 딱히 없다. 감상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는게 닮았다.

루카스와 클라우스 두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 전쟁통에 (헝가리 배경이라 한다) 욕쟁이 할머니 손에 맡겨져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깨우친 아이들. 윤리의식이나 의레 해야한다는 매너, 문화와 동떨어져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행위, 당장 그들의 상황을 순조로이 만드는 판단이 정의가 된다. 여기엔 살인도 있다. 10세가 되던 해 형제는 제대로 분리되기로 결심하고 형제 중 하나는 국경을 넘는다. 둘 중 누구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한권의 소설로 출간되었지만 원래 1,2,3부가 제각각의 소설로 따로 그것도 긴 텀을 두고 출간되었었다한다. 1부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입이 떡 벌어져서(실제 벌리고 있었단 말 아님) 이런 책을 읽게 됨이 행복해서 막 벅찬 상태로 읽었다. 1부의 거칠지만 순수한 시대를 읽어내고 2부 분리되어 남겨진 형제 루카스의 삶을 흥미롭게 읽다가 3부 루카스를 찾아온 클라우스부터 혼란스러웠다. 쉬운 소설이 어디있겠냐만 1,2부를 쉬운 소설, 잘 읽히는 소설 작가가 쉽게 읽을 수 있게 써준 소설이라 생각하며 읽었는데 3부가 내가 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소설이라 완벽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는지 내가 4주 만에 읽어서 그 사이 공백으로 매끄럽지 않게 읽히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소설 자체가 허구와 망상을 다루었는지도 모르게 이해가 안됐다. 문체는 여전히 명료하고 쉬웠는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어디서부터 진짜인거지 1,2부가 가짜였나 싶으면서 답답했다. 아마 3부는 다시 읽어야할 것 같다. 결론이 있어야 완성이지만은 1,2부의 흥분이 3부에서 풀어져버려서 아쉽다. 내가 원하는 그림은 이보다 훨씬 직관적이었다. 해피엔딩.

좋았던 것은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 중 악인도 하나도 나오지 않다. 이 세상 모든 이도 그렇지 않나. 누나를 죽이고 글을 완성한 서점 주인도 아버지를 앞세워 지뢰를 찾아 홀로 국경을 넘은 클라우스도 자살도 강간도 살인도 사연을 듣고 보면 다 그럴 수 있다.

아무래도 찝찝하여 다 읽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정말 다시 합쳐지길 바랐다. 쌍둥이이건 허구이건.

발췌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사과랑 과자, 초콜릿, 동전 등을 길가 풀숲에 던져버렸다.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 것 없는 책 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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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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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가장 위대하다 하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이다. 줄리언 반스가 자주하듯 본인이 좋아하는(아마도) 인물에 대한 온갖 정보에 추가적인 작가의 감정이입으로 버무려 완성한 소설이자 전기이다.

클래식알못인 나는 쇼스타코비치 처음 들어봤고 아마 몇 달 후엔 이 이름을 먼저 기억해내지는 못할거다. 그리고 왜 이 장편 소설에 내세웠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그 인물에 대한 매력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주제이자 의의인 ‘표현의 자유와 제한‘이 충돌하는 중심에 마침 있던 사람이라서였겠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의 음악이 궁금하지 않다.

러시아 스탈린 정권 시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예술가이자 유명인사의 삶을 온갖 에피소드들을 들어 가며 디테일하게 재연하여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시민들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나에겐 소설로서의 기능은 조금 아쉬웠다. 재밌지도 감동적이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러시아 1900년대 상황에 관심이 있거나 쇼스타코비치의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 외엔 나랑 비슷할 것 같다.

아 그리고 번역이 안좋다. 오역이 무지하게 많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한국어 문장 자체도 매끄럽지 않다.

발췌

그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작곡을 했고, 누구를 위해서도 작곡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출신과 무관하게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장 잘 즐겨주는 이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다. 들을 수 있는 귀들을 위해 작곡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참된 정의는 편재하는 것이며, 예술의 거짓된 정의는 어느 한 특정 기능에 부여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두 개의 구절이 있었다-질문 하나와 답변 하나- 땀을 쏟게 만들고 강한 남자도 바지에 똥을 지리게 할 만한 것이었다. 질문은 이러했다. ˝스탈린이 알고 있는가?˝ 답변은 훨씬 더 놀랄 만한 것이었는데, ˝수탈린은 알고 있다.˝였다.

상황은 점점 더 나아졌고 더러운 비밀들이 드러났다. 그러니 갑자기 진실에 이상주의적인 지지를 보낸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고, 단지 이제는 진실을 정치적으로 이롭게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권력층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저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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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욕망 열린책들 세계문학 171
유진 오닐 지음, 손동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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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욕망]

언니랑 서울국제도서전 갔다가 어린이집으로 날려보내고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읽었다. 얇은 책 중에서 희곡으로 골랐다. 희곡이 산만한 환경에서 잘 읽히더라고. 암튼 얇고 희곡인 아무거나 잡은게 느릅나무 아래 욕망인데 잘 골랐다. 되게 킬링타임용이네 ㅋㅋ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 탓이라 생각해 아버지를 경멸하며 살던 에벤. 농장과 집을 탐내 일흔 먹은 노인내랑 결혼해서 에벤의 새어머니가 애비. 혐오하는 새어머니를 보자마자 욕정이 꿈틀댄 에벤 그리고 더 꿈틀댄 애비. 아버지 몰래 쿰척쿰척. 아들 탄생. 하!

오이디푸스고 뭐고 하겠지만 그냥 막장극이다. 재밌음. 하! 특히 괄호 안이 필요 이상으로 자세해서 웃기다.

발췌

에벤-(신랄한 경멸조로) 하! (두 사람은 다시 서로 응시한다. 그녀에게 육체적으로 끌려 모호하게 마음이 움직이지만 애써 과장된 말투로)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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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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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빌리러 오랜만에 도서관에 간 김에 아무 책 들고오기. 살 때는 신중하지만 빌릴 때는 이런 기회가 없는 것 처럼 듣도보도 못했는데 끌리는 책 고르는 재미가 좋다. 민음사 모던은 그동안 대여섯권 시도해봤지만 한번도 만족스러운적이 없었어서 이번에도 별로면 민음사 모던 피한다 하며 제목만큼은 좋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택했다. 그리고 옳은 선택이었다. 기억하는 소설 중 손꼽히는 세련된 문체였다.

파키스탄 라호르 식당에서 우연찮게 자리를 하게한 찬게즈와 한 미국인. 찬게즈는 미국 뉴욕에 프리스턴대에서 유학을 하고 쟁쟁한 엘리트 친구들을 재치고 최고의 회사에서 기대주로 일을 했던 9.11 전후 뉴욕에서 본인이 겪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듣고 있는 미국인은 찬게즈가 그에게 넌지시 의사를 물을 때 앞에 여전히 함께 있다는 정도만 확인 할 수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명 찬게즈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

뉴욕에서 엘리트집단에 속했다는 어색함과 곧이은 우쭐함. 유색인종으로서 미국에서의 조화와 부조화 열등감 혹은 자의식.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여자와의 사랑. 9.11테러 이후 모든게 변한 미국, 파키스탄 그로인해 지속될 수 없던 그 전의 찬게즈.

읽는 내내 찬게즈의 언변에 빨려들었다. 흥미롭고 막힘없지만 예의 있고 침착한. 작가 모신 하미드와 주인공 찬게즈가 실제 미국 프리스턴(작가는 프리스턴에 하버드까지)에서 유학한 엘리트라는 건 나중에 번역가 글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 정보가 없던 읽는 내내 작가와 주인공이 일치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캐릭터가 말투(구어체였기 때문에)와 신기할 정도로 어울려서 작가가 보통 이상으로 치밀하거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라고 예상이 됐다. 명확한 캐릭터를 설정해놓고 정작 말투는 작가의 것으로 하는 삐걱대는 소설이 참 많아왔다. 이 합치는 막 소화제 비슷한 것!

절제된 성향의 찬게즈이지만 그의 이야기엔 실랄함과 거침없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 그럴 경우 자극적이거나 동요를 꾀하는 얕은 수가 보여 불쾌하기도 한데 이 소설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선을 아는 사람 같다. 조금만 더 나가면 모든 것이 뻔해질 소설이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건 결말이 스릴러처럼 변해서. 난 그냥 식당을 나서면서 이야기가 끝났으면 이 소설을 더더 좋아했을 것 같다.


발췌

하지만 계급 의식이 있는 여느 전통 사회에서처럼, 위상이라는 것은 부보다 더 천천히 내려가는 법이죠.

적당함에 대한 규칙들이 부적당함에 대한 갈증을 키우는 거죠.

거리에서는 관광객들이 나한테 길을 물었어요. 나는 사 년 반을 살았지만 미국인이었던 적은 없어요. 그러나 나는 바로 뉴요커였어요.

˝찬게즈, 이런 일에 흔들리지 마. 시간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가니까. 그걸 기억해. 모든 건 늘 변해.˝

그런 여정들은 내게, 자신의 테두리가 어떤 관계에 의해 흐릿해지고 침범당하면, 되돌리는 일이 늘 가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자율적인 존재로 되돌아갈 수 없는 거죠. 우리의 일부는 이제 밖에 있고, 외부의 일부가 이제 우리 안에 있는 거죠.
-몇 년 전까지 아주 자주 했던 생각이고 그렇게나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다. 나이가 들었고 침범으로 인한 변화는 불가피하고 어쩌면 그게 남들이 말하는 성장(=나이듦)임을 알게됐다. 그래서 이제 입 밖에 꺼내지 않고 머릿 속에서도 굳이 떨쳐내려는데 이 문장을 보고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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