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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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멋있게 여성 판사가 주인공이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갑작스러운 남편의 외도 고백, 상식과 철학에서 싸워야하는 수많은 판결들, 십대와의 키스. 사회적 지위와 충동적 감정의 밸런스 조절을 해내고야 마는 멋진 마이 레이디. 백혈병 소년의 사건이 주를 이루리라 생각했는데 그건 분량을 떠나 한 단편일 뿐이고 아이 없고 남편에게서 안정을 잃은 한 전문직 여성의 일기장이었다.

바로 최근에 읽고 기록을 남기는데도 크게 쓸 말이 없는 건 내가 이 책에 감흥이 없었다는 거겠지. 아니면 지금 좀 귀찮거나. 어쩔거야. 아무도 내 리뷰 안 읽는데. 난 지금 근무 중에 아무거라도 할 거리가 필요한 거라고.

책 얘기는 됐고. 결혼하고 나서 외도 관련한 영화, 문학 등을 접하면 그 전보다 훨씬 흥미롭게 느껴지면서도 참 희안하게 내 일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뭐 그럴 수 있지. 놀라 자빠질 일도 아니고. 대단한 배신도 아니고. 근데 아몰랑 난 아냐 하고 눈 감고 귀 막는 사람마냥 그냥 되게 나랑 상관 없는 일 같다. 또 착각의 늪에 빠졌거나 아니면 되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발췌

손으로 일로 내리는 따뜻한 물이 위로가 되어 몇 분 동안 멍하니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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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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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배경으로 전쟁에서 살아남은 두 전우의 이야기다. 정작 군대에서는 모르는 사이였으나 전쟁이 끝나는 그 무렵 마지막 전투에서 위험에 처한 알베르를 본능적으로 구하려 몸을 던진 에두와르. 포탄은 에두와르의 얼굴에서 터졌고 이목구비에 눈을 제외하곤 모두가 일그러졌다. 끝난 전쟁 시작된 고통. 본인 때문에 평생 흉물스런 모습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갈 에두와르에게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미안함과 감사를 표하는 알베르지만 그 역시 전쟁 후 여파로 집도 절도 무엇도 없이 근근하게 버티며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에두와르는 참전용사와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를 제작한다는 유령회사를 설립해 정부와 국민을 등쳐먹자는 사기 아이디어를 내고 알베르도 고민을하다 함께 일을 저지르기로 한다.

사실 전쟁 배경의 소설에 흥미를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근데 이 소설은 전쟁이 없었다면 시작되지 못할 이야기이지만 그 이후의 사건들에 전쟁이라는 비극은 쏙 빠지고 미래가 안보이는 불쌍한 청년들과 그런 것들을 알리도, 관심도 없는 부르주아의 극명한 대비 그리고 지금이랑 다를 바 없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정책과 이벤트들 때문에 옛 이야기가 아닌 듯 느껴졌다. 항상 소설을 읽으며 감탄하는 것은 ˝아, 그때나 지금이나!˝. 피에르 르메트르는 처음 접한 작가인데 글을 어렵게 쓰지 않는 점도 좋았고 나오는 시시콜콜 인물들이 지금 내 주변에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흔한 비호감들이라 읽는 중 캐릭터를 떠올리기 수월했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스트예프스키 죄와벌이 계속 떠올랐다. 주인공이면서 주체적이지 못한 주인공 알베르의 본인의 결정 없이 사건 속으로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도 그렇고 노답 시대상도 그렇고 독자로서 심각한 상황에 비해 같이 쫄리기보단 관망하게 만드는 묘한 거리감도 그랬다.

이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에두와르의 아버지와 누이, 그리고 매형은 이들까지 설명하면 내 능력 부족으로 요약이 안될 것 같아 위 줄거리에 내 마음대로 ‘숨김‘했지만 시작부터 얽히고 설킨 그 관계들이 마지막 장 까지도 억지 없이 연계되는 것을 보며 희열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소장해도 좋을 책을 읽은 것 같다. 아마 스트레이트로 읽었다면 사흘 정도 걸렸을 거 같은데 사흘의 행복을 만이천원으로 살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감사하고 놀랍다.

마무리까지 환상적인 그저 재밌는 소설이었다.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발췌

알베르는 ˝다시 돌아올게˝라고 덧붙였다. 마치 이런 말이 필요하기라도 한 듯이. 오래된 커플들은 잘 들어 보면 깊은 의미가 들어 있는 말들을, 그 의미를 의식치 못한 채로 습관적으로 나누는 법이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승리는 힘이 넘치는 쪽이 아니라 무기력한 쪽에게 돌아갈 거였다.

아냐, 앙리, 자기는 잘못 이해하고 있어. 내가 관심이 없는 것은 자기의 사업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체야.


셔츠 한쪽 자락이 바지 위로 삐져나와 있었다. 어떤 남자라도 단숨에 상거지로 둔갑시켜 버리는 종류의 디테일이었다.

물론 돈으로 가득한 트렁크라는 요인도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것은 기묘하게도 파란 글씨로 <일등 선실>이라고 표시된 배표들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그 모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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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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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매우 재밌게 읽은 후 VPL에 꽂혀있는 같은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이름은 평생 못 외울 거 같음. 임팩트가 없어)의 추리소설을 골라왔다. 오르부아르를 읽으며 도스트예프스키를 떠올렸는데 원래 이 작가의 주종목이 추리소설이라하니 어색했다. 그럼 남다른 추리소설일까? 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재밌었고 평범했다.

어릴 적 동네 꼬마에게 분풀이로 한대 쳤는데 꼬마 즉사. 몇 십년 동안 미제로 남은 사건이지만 평생 두려움에 갇혀 사는 진범의 이야기.

마무리가 되게 별거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비밀이 어딨냐.

발췌

이것이 바로 그녀의 방식이었다. 뭔가에 대해서 얘기 하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주인공 엄마의 태도. 우리 엄마도 저렇다. 엄마들은 대부분 비슷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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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들, 사랑 이야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4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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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잡담인데, 나는 내가 모으는 민음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얘들 중에서 문학동네가 제일 좋다. 민음사 커버가 제일 힙해서 제일 많이 갖고 있긴한데 만족도는 문학동네 넘사벽인 것 같다. 문학동네는 커버도 안 예쁘고 딱히 엄청 재밌게 읽은 기억도 없다. 이제 문학동네는 안 살 거고 민음사 3 : 열린책들 7 정도로 사야지. 아 그리고 열린책들은 왜 무게도 가볍지? 암튼 책 이야기

폴란드 사람들이 나치에게 당할 때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도망쳐온 사람들 간의 사랑 이야기다. 한 남자와 세 여자가 엮여있는데 간단히 엮이지 않고 누구하나 이성으로 떼어낼 순 없을 정도로 여자 1,2,3 각각 남자와의 관계의 타당성과 남자의 책임 의무와 애정의 크기와 이유 모두 비슷~~~하게 누구 하날 떼어내도 이상하고 누구 하나를 선택해도 이해가는 그런 상황이다.

상황도 자극적이고 배경도 흥미로워 재미가 좋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책 전체에 흐르는 바이브였다. 배경음도 무대 장치도 없고 오직 어둠 속 인물을 비추는 라이트만 있는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대사가 짧고 묵직해 계속 연극톤의 음성이 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극이 있다면 꼭 보고 싶다. 실물을 보고 대화 오가는 것을 들으면 각 인물 감정 이입에 도움이 될 것 같다. 88년도에 찍은 영화는 있더라.

남녀 간에 얽힌 관계 이야기가 주되면서도 이건 애정소설이 아니라고 느낀 것은, 고국에서 죽다 살아나 타국에서 배경처럼 근근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힘 한번 크게 꺾인, 조금 남은 힘 가지고 신음하듯 사랑하고 있는 모습이 목숨이 있으니 감정도 있다는 묘한 철학적 이해를 하게 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감정에 괴로워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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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개정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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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항상하던 습관인 책 표지 찍기를 잊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못 가네. 한나랑 송리단길 카페 가배도에 가서 커피 찍다 옆에 잘려 나온 사진.

독서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그림들과 함께 여자 독자에 대한 역사와 그 변화를 이야기한다. ‘책 읽는 여자’ 자체에 대해서도 나오지만 더 재밌는 건 그들에 대한 시선이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시선과 그 시선을 의식하는 (또는 시선이 의식되는) 독자의 감정까지도 다룬다.

책 읽으면서 느끼는 묘한 허영심과 아닌 듯 젠체하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간파 당한 듯 부끄러우면서도 어느 부분에선 내 감정을 읽어주었다는 기분에 작가와 통했다는 신기한 희열도 있었다.

제일 좋은 건 명작! 아닌 그림을 읽는 방법을 어렴풋하게 배운 것 같다. 관찰자와 모델 사이의 기류와 의도를 계속 해석해주기 때문에 인물화를 보는 방법을 자연히 알게된다. 그 점이 나는 제일 좋았다. 한정된 캔버스 안에 캡처된 장치와 소품들엔 모두 뜻이 있다는 것.

재밌었다. 희승언니에게 선물했다.

발췌

독서는 유쾌한 고립 행위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예의 바르게 자신을 접근하기 힘든 존재로 만든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읽었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서 불러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즉 후원자로서의 역할이 독자로서의 역할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후원자는 작가보다 신분이 훨씬 높았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고상한 노동이었을 뿐이다. 몰리에르를 지지하고 후원했지만 몰리에르가 이 시대의 보기 드문 천재’라는 부알로의 이야기를 듣고서 놀랐다는 루이14세의 일화는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그림에서 우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흩어져 있는 악보, 동판화 그리고 필기도구는 나태함을 증언한다. 사치, 취미와 더불어 나태함은 화려한 개인 방을 장식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세 번째 기준이었다.

책 읽기는 삶을 살고 견디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독서를 삶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책에서 치유력을 빼앗는 것이며 열정에서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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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Bible 2019-06-1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신명기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