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랑의 기술‘ 빌리러 오랜만에 도서관에 간 김에 아무 책 들고오기. 살 때는 신중하지만 빌릴 때는 이런 기회가 없는 것 처럼 듣도보도 못했는데 끌리는 책 고르는 재미가 좋다. 민음사 모던은 그동안 대여섯권 시도해봤지만 한번도 만족스러운적이 없었어서 이번에도 별로면 민음사 모던 피한다 하며 제목만큼은 좋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택했다. 그리고 옳은 선택이었다. 기억하는 소설 중 손꼽히는 세련된 문체였다.

파키스탄 라호르 식당에서 우연찮게 자리를 하게한 찬게즈와 한 미국인. 찬게즈는 미국 뉴욕에 프리스턴대에서 유학을 하고 쟁쟁한 엘리트 친구들을 재치고 최고의 회사에서 기대주로 일을 했던 9.11 전후 뉴욕에서 본인이 겪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듣고 있는 미국인은 찬게즈가 그에게 넌지시 의사를 물을 때 앞에 여전히 함께 있다는 정도만 확인 할 수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명 찬게즈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

뉴욕에서 엘리트집단에 속했다는 어색함과 곧이은 우쭐함. 유색인종으로서 미국에서의 조화와 부조화 열등감 혹은 자의식.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여자와의 사랑. 9.11테러 이후 모든게 변한 미국, 파키스탄 그로인해 지속될 수 없던 그 전의 찬게즈.

읽는 내내 찬게즈의 언변에 빨려들었다. 흥미롭고 막힘없지만 예의 있고 침착한. 작가 모신 하미드와 주인공 찬게즈가 실제 미국 프리스턴(작가는 프리스턴에 하버드까지)에서 유학한 엘리트라는 건 나중에 번역가 글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 정보가 없던 읽는 내내 작가와 주인공이 일치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캐릭터가 말투(구어체였기 때문에)와 신기할 정도로 어울려서 작가가 보통 이상으로 치밀하거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라고 예상이 됐다. 명확한 캐릭터를 설정해놓고 정작 말투는 작가의 것으로 하는 삐걱대는 소설이 참 많아왔다. 이 합치는 막 소화제 비슷한 것!

절제된 성향의 찬게즈이지만 그의 이야기엔 실랄함과 거침없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 그럴 경우 자극적이거나 동요를 꾀하는 얕은 수가 보여 불쾌하기도 한데 이 소설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선을 아는 사람 같다. 조금만 더 나가면 모든 것이 뻔해질 소설이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건 결말이 스릴러처럼 변해서. 난 그냥 식당을 나서면서 이야기가 끝났으면 이 소설을 더더 좋아했을 것 같다.


발췌

하지만 계급 의식이 있는 여느 전통 사회에서처럼, 위상이라는 것은 부보다 더 천천히 내려가는 법이죠.

적당함에 대한 규칙들이 부적당함에 대한 갈증을 키우는 거죠.

거리에서는 관광객들이 나한테 길을 물었어요. 나는 사 년 반을 살았지만 미국인이었던 적은 없어요. 그러나 나는 바로 뉴요커였어요.

˝찬게즈, 이런 일에 흔들리지 마. 시간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가니까. 그걸 기억해. 모든 건 늘 변해.˝

그런 여정들은 내게, 자신의 테두리가 어떤 관계에 의해 흐릿해지고 침범당하면, 되돌리는 일이 늘 가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자율적인 존재로 되돌아갈 수 없는 거죠. 우리의 일부는 이제 밖에 있고, 외부의 일부가 이제 우리 안에 있는 거죠.
-몇 년 전까지 아주 자주 했던 생각이고 그렇게나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다. 나이가 들었고 침범으로 인한 변화는 불가피하고 어쩌면 그게 남들이 말하는 성장(=나이듦)임을 알게됐다. 그래서 이제 입 밖에 꺼내지 않고 머릿 속에서도 굳이 떨쳐내려는데 이 문장을 보고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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