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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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자칭 책쟁이라면) 이미 읽어야할 책이었다 생각해서 얼른 집어왔다.

금각사에서 승려의 길을 밟던 말더듬이의 이야기이다. 유독 본인에게 크게 와닿는 금각사의 존재감에 홀려 살면서 몇 없는 동정의 기회를 놓치곤하는 청년의 열등과 불만과 피해의식을 자전적으로 풀어냈다. 실존 인물을 조사해 소설화 했지만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경험과 사상이 들어가 자전적 성격을 띈다고 한다.

큰 사고를 저지르는 사람이 사고 전부터 눈에 띄는 대단한 문제아는 아니었던 것. 범행의 동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내 사소한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이제는 진부한 깨달음. 나에게 부정적인 자의 우울함과 돌발행동은 공감이나 이해 안타까움이 아닌 전혀 다른 동물의 관찰, 호기심, 몰이해인 것 같다.

재밌고 잘 읽히고 후반부로 갈수록 제대로였다. 읽을 사람들을 위해 옮기지 않은 가장 마지막은 아!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읽은 일본 소설인데 책의 재미를 떠나 어떤 풍경 묘사도 수월하게 그려지는 것이 참 좋다는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다.

-발췌

남에게 이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긍지였기 때문에 무엇인가 남들을 이해시키겠다는 표현의 충동을 느끼지 못했다. 남들 눈에 띄는 것들이 나에게는 숙명적으로 부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독은 자꾸만 살쪄갔다. 마치 돼지처럼.


둔감한 사람들은 피가 흐르지 않으면 허둥대지 않는다. 하지만 피가 흐르는 뒤에는 비극은 이미 끝나버린 다음이다.


여행-흉, 특히 북서(北西)가 나쁨”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북서쪽으로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과거는 우리들을 과거 쪽으로만 잡아당기는 것은 아니다. 과거 기억의 여기저기에는,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강력한 강철로 된 용수철이 있어서, 그것에 현재의 우리들이 손을 대면 용수철은 곧바로 뻗어나 우리들을 미래 쪽으로 퉁겨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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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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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죽어가는 짐승에 이어 세번째로 읽은 필립로스 작품. 올 5월에 타계한 작가의. 가장 문제작을 읽으니 뭔가 묘했다. 상스럽고 거침없는 언변과 고인이라는 고요한 이미지가 소설의 내용을 떠나 삶이란 건 참 부질없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포트노이라는 엄격한 유대인 부모에게서 자란 남성이 그 불만족스러운 성장 환경에서 본인의 질병과도 같은 윤리, 도덕을 반할 때의 ‘자책’의 원인을 찾고 그 환경을 불평하는 내용이다. 자식에게 알맞은(이 쉽고도 무책임한 정도 값) 애정과 관심 그 이상을 주는 부모 아래서 자란 이들은 포트노이의 부모 비난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사랑이고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왔기에 ‘감히’ 비난할 용기를 못 냈던 대다수와 달리 필립로스는 온갖 욕과 비아냥을 더해 비난한다. 씹, 좆, 보지, 자지가 각 30번씩은 나오는 사람에 따라 조금 혹은 너무 부담스러울 문장과 표현들만 이겨낸다면 공감과 재미을 느낄 수 있을 말만 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사실 상 이 소설은 줄거리보다는 포트노이증(필립로스가 만들어낸 말) 환자 포트노이의 인생으로, 대단한 깨달음과 잘 짜여진 서사보단 욕쟁이의 신세한탄에서 그 어두운 위트에 피식대는 재미로 읽는 책이라 보는 게 좋겠다.

과감하고 골 때리게 용감한 책이고 재밌는 책이다.

발췌

삶은 다름 아닌 ‘다름 아닌 존재’가 세운 수십만 가지 작은 규칙들, 아무리 우스꽝스러워 보이더라도 의문을 품지 않고 복종하거나(그래서 그렇게 복종해 계속 하느님의 총애를 받거나), 아니면 대개 격분한 상식의 이름으로 위반하게 되는 규칙들이라는 걸요.

나는 도저히 남은 생애 내내 한 여자하고만 잔다는 계약은 맺을 수가 없습니다.(......)한때는 맛좋고 자극적이었을지 몰라도, 불가피하게 빵덩어리처럼 나에게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한 여자를 위해 어떻게 가져보지도 못한 것들을 포기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맙소사, 부모사 살아 있는 유대인 남자는 열다섯 살 난 애예요. 부모가 죽기 전에는 계속 열다섯 살 난 애라고요!

나를 위해? 부탁인데 나를 위해 그러지 마세요! 제발 당신 삶이 지금 이 모양이 이유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앨릭스를 내밀지 말아주세요! 나는 모든 사람의 존재의 이유가 아니니까요! 나는 내 평생 그 짐을 이고 다니는 걸 거부합니다! 내 말 들려요? 거부한다고요!

블루멘탈 부인이 전화했어요. 오늘밤 마작할 때 어머니가 적어둔 마작 규칙 좀 가져오래요 -로널드
자살한 15세 로널드의 유서

멍키는 면도날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좀 해보려고 했습니다.
-재밌는 문장. 원문이 궁금해진다. 정영목님 짜응!!!


내 제정신은 그저 나의 우스꽝스러운 과거에서 가져온 공포의 유산에 불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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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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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도르 도스또예프스키. 말했다시피 이 작가 작품 처음 읽은건데, 문장이 (번역 읽은 주제에) 충실한 와중에 개성이 있어 좋았다. 특히 대화체에서 흐흐흐 헤헤헤 하는 감탄사가 캐릭터에 따라 찰지게 붙는데 그게 인물들에게 생명을 주는 듯했다.

캐릭터들도 각기 특이한 와중에 신기한 공통점이 있었는데 결국은 모두 초월자였다. 엄마, 누이, 친구, 추격자, 연인(?) 등 모두가 주변에 흔히 있는 인물인데 그 행동은 한 차원을 모두 넘어섰다. 주인공 뿐 아니라 비극 앞에 선 인물들의 행동이 참 한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소설 속 인물들이구나 싶었다. 이게 비현실적이라 싫은게 아니라 우리의 세계와 또 다른 철학 속 세상 이야기 같은 익숙한듯 환상적인 인상이었다.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다. 어떤 벌일까. 체포된 후 법에 따른 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냥. 너무 그건 일차원적이잖아. 읽고 보니 벌은 죄를 짓고 뻔뻔히 살아가기엔 이유도 동기도 없이 죄인인 본인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그거야 말로 죄악이다.

2018년 올해의 책이라고 해야하려나.

너무 좋았다. 헤헤헤.

[발췌]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그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어쩌면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여인들과의 관계가 충분히 회복될수도 있으리라고 생각 했다는 점이다.

그는 갑자기 온 몸을 굽혀 땅에 엎드리더니 그녀의 발에 키스했다.(......)나는 당신에게 절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고통에 절을 한거요.

그는 가장 유행하고 있는 평범한 사상에 푹 빠져 들어서, 곧바로 그 사상을 저속하게 만들어, 때로는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그 사상에 헌신하는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희화화시켜 놓고 마는 그런 수많은 종류의 속물들, 나약한 조산아들, 모든 것을 어설프게만 배우는 고집쟁이들 중의 하나였다.

이 소시지 같은 년아, 이 애가 훔쳤다고 맞장구를 쳐? 넌 치마를 두른 비열한 프로이센 닭다리야!
-재치와 개성 넘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청 굴욕적인 욕이다

권력은 용기를 내서 몸을 굽혀 그것을 줍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말이야.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울 까닭이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면, 그녀가 우는 것을 멈추게 될 거 라고요 (......).˝
˝그렇다면 사는 게 너무 쉽겠군요˝

까쨔는 여자들이 샴페인을 마실 때 흔히 그러하듯이 한번도 입을 떼지 않고서 스무 모금만에 샴페인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러시아 여자들 내 스타일로 술 마시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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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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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읽은 책인데 마음에 드는 문장만 메모해두고 계속 미루다가 영화 ‘개들의 섬’ 현이의 댓글을 보곤 읽건 보건 뭐든 기억이 선명할 때 기록을 남기자 싶어서 임시저장글 꺼내 작성한다.

먼저 읽게된 이유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2년 정도 열심히 갔던 단골 술집 신논현 오뎅바 정든집 사장님이 영화, 음악, 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이셨는데 매장에 있는 그 분의 문학 컬렉션이 내 취향과 꽤 맞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몇 번 말을 트고 서비스도 항상 챙겨받을 때 즈음에 손님 없는 틈 타 대화하다가 “최근엔 이 걸 재밌게 읽었어요”했던게 바로 이 책이었다. 호감있던 사장님의 추천에 책을 통해 그 분의 취향을 알고 싶었는데 결론은 음 엥 아... 스럽다 ㅋㅋㅋ

사장님~~~~! 히가시노 게이고 좋아하시나요우요우요우(신논현까지 닿을 나의 메아리)

우선 추리소설이고 잘 쓰인 오락소설이다. 지루하지 않고 허접하지도 않으나 그렇다고 또 띵작은 아닌......한국 3만 관객 영화 같은 느낌이다. 잘 봤는데 몇 년 후엔 기억이 안 날.

주인공 사설 탐정 구동치(이름이 너무 싫어 ㅜㅜ 강백호 같음 ㅜㅜ)는 의뢰인이 사망 후 딜리팅(소멸,삭제)를 요청한 물건을 처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그 구동치가 맡은 딜리팅 사건과 그 즈음 발생한 살해 가능성 있는 추락사 사건이 뭉쳐져 그 배후에 있던 누구와 누구가 드러나고 그 와중에 동료이자 친구가 희생당하고.

어디다 추천하긴 부끄러운 그냥 딱 안 망할 영화 정도 되는 스토리였다. 히가시노게이고 소설의 평균점 정도에 있는 재미와 몰입감이다. 그렇지만 (딜리팅이라는 것이 실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인공 직업의 설정부터 주변인물의 명확한 캐릭터 특히 인물들의 대사들이 참 좋았다. 나에게 한국 소설의 재미는 대화체에서 나오는 것 같다. 우리의 유머, 우리의 방식, 우리의 호흡법을 느끼는 게 좋다. 요즘 책 안 읽혔는데 가볍고 빨리 읽히는 소설을 읽어 오랜만에 독서의 재미를 느껴 좋았다.

도둑질? 소매치기? 당하는 순간 읽고 있던 책이었기 때문에 아마 잊히진 않을 것 같다.

-발췌

끈금없이 이렇게 묻더군요. ‘영민 선생님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라고요
-제일 먼저는 습관적으로 지우가 떠올랐지만 조금만 더 생각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아이를 갖고싶다.

“바쁘게 사는 건 좋은데, 그렇게 힘없게 다니면 남자들이 싫어해요. 결혼할 나이도 지난 것 같은데, 요새 남자들은 발랄하고 상냥하고 그런 여자들을 좋아하잖아.”
-ㅅㅂㄴㅇ???

“아가씨, 여기가 무슨 관리사무실인 줄 알아? 구 탐정이 언제 어디 갔는지 내가 다 알 것 같아? 내가 그렇게 할 일 없는 아저씨로 보여? 응? 말해봐.”
“죄송합니다.”
“그런데, 실은 다 알아.”
“네?”
“내가 다 안다고.(......)구탐정 30분 전에 나갔어.”
“어디로요?”
“어디로? CCTV에 지나가는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도 적혀 있을 것 같아?”
“아뇨. 죄송합니다.”
“그런데, 내가 알아. 운동하러 갔어. 매일 이시간에 운동하러 나가거든.”
-두 번 반복되니 웃겼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에서 5:5 하자! 했더니 차 끽 멈추고 심각한 얼굴로 ...누가 5야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옥상에서는 뭐든 다 멋지게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풍경에 이야기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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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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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공공도서관이다. 지금까지 세 권을 시도했는데 완독 못하고 다음 방문 때 찾으면 사라져서 처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둘다 아주 좋게 읽던 터라 흐름 끊겨서 짜증이 난다.

에브리맨 이후 두번째로 읽은 필립로스 소설이다. 읽고 나서 알았다. 읽고난 후 기분이 에브리맨 읽었을 때와 비슷해서.

60대 저명한 인문학교수 데이비드가 20대 제자에게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야기. 그 사이사이에 그의 인생사를 이야기하는데 줄거리고 뭐고 지적이고 자극적인 말솜씨에 그냥 빠져든다.

콘수엘라는 매력적인 여자의 교과서같은 모습이다. 다른 매력이지만 로리타처럼 안빠질 수 없는 매력. 소설에서 반의식적 자발성이라는 말로 표현되어있는데 이게 포인트같다.

초반엔 야하고 섹시해서 좋았고 중반엔 지적이라 좋았고 마지막엔 묵직한 감정이 들어 좋았다.

구어체로 쓰여있어서 그런가 마주보고 저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찾아갈거야.

발췌

사실 한 사람의 전우면 충분하지. 사회 전체가 자기편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잊지 말 것은, 그 아이는 언어도 없이, 궁리도 없이, 교활함도 없이, 일말의 악의도 없이, 인과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없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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