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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 바다여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6
아이리스 머독 지음, 최옥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평점 :
와... 책을 다 읽고서 생각한 건. 두 권의 시리즈물에서 1권과 2권의 인상이 이렇게 다른 책은 처음(적어도 내가 읽은 비루한 수의 장편소설 중에서는)이라는 것. 1권이 그저 바다여,바다여가 소개됐듯 불리우듯 `자전 소설`이라고 한다면 2권은 추리소설이고 스릴러고 철학서야. 2권의 사건을 위한 바탕이 1권에서 소개됐다고 봐야하는 게 맞으려나. 속도감이나 안에 담긴 갈등의 정도가 너무나 다르다.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1권 리뷰에서 말했듯. 찰스라는 연극감독의 자전소설. 그가 잃어버린 뺐겨버린 첫사랑을 50이 넘어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 첫사랑 하틀리가 불행한 결혼생활를 하고있다는 망상과 질투 그녀를 되찾고 싶다는 집착으로 그녀를 뒤쫓고 그녀의 아들을 양자삼겠다고 선언하고 그녀를 감금까지 하게돼. 이렇게만 소개해도 이건 스릴러 맞지?
처음엔 찰스가 좋았어. 열정적인 사랑을 하지만 상처받지 않을만큼 속하는 이성적인 태도가.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못해서 아파하는데 꼭 좋은 것만 취하게 만들어진 로봇처럼 어찌보면 차갑고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본인을 보호하는데는 탁월한 감정조절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됐거든. 그리고 어느 부분들은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어지간하게 나쁜 부분까지는 감싸게 됐어. 그런데 2권보니까 시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은거야. 이 아저씨 비정상적인 질투심(책에 쓰인 표현 그대로)과 오만함 그리고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외로움으로 처절하고 이상하게 변하거든. 그리고 본인 좋을대로 생각하는 것도 되게 무례하고 불쾌했어. 피치 부부의 관계를 불행하다고 단정짓고 본인이 그녀를 구출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고 그 싸움에 사활을 거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데. 타인의 삶과 관계가 불행하다고 확언하는 것부터 철이 덜 든 것이고 오만한 것이고. 그만 좀 했음 싶더라고. 나는 하틀리의 남편 벤이 가장 인간적이라 느꼈어. 그리고 가장... 이성적이다. 나였음 찰스를 죽였을 거야.
아이리스 머독 책이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많이 읽히는 것 같진 않아.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하면 고전이나 유명 소설은 수없이 태그되어있거든. 근데 아이리스 머독은 요즘 뭐라고하냐. 손글씨. 캘리그라피 맞나? 암튼 그걸로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We can only learn to love by loving˝ 따위나 검색돼. 별로 중요한 말도 아니고 멋진 말도 아니구만. 하찮은이들... 아 이것도 오만함이야 현주야 그만 좀... 다시 아이리스 머독 이야기로 돌아와서. 영국 대표 작가이고 철학 교수이기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연구가 되는 작가래. 이건 마지막에 책 뒤에 나온 작가 소개로 알게됐는데 신기하게도 2권을 읽으면서 철학적 심리학적(이 둘의 차이를 알듯 모르겠다.)이단 생각을 계속 했거든. 많은 주변인물들이 나오는데 그게 다 장치 같은 거야. 문학에서 나오는 스토리를 위한 사람들이 아니라. 찰스의 내면을 실랄하게 까기 위한 장치. 예로들어 하인을 자청하는 길버트는 찰스가 본인 스스로를 우상화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찰스를 평생에 걸쳐 짝사랑하는 리지는 찰스의 좋은 것만 취하고 갈등은 피하는 이기심과 비겁함을. 성공한 유명 여배우 사팔뜨기 그 여자는 찰스의 광기를 대변하는 동시에 내면의 불안감에 비소를 날리며 자꾸 아픈 구석을 무심히 건드려. 양자로 삼으려했던 소년은 찰스의 희생양으로 그간 (감정적으로) 희생당하고 이용당한 수많은 사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되게 특이해 이 소설. 이런 접근으로 읽어 본적도 없고 읽을 생각도 없었는데. 모든 인물이.. 자아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느낌이야.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다음 책은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입니다.
발췌
˝난 가끔 나에게 노예근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전생에 나는 러시아의 농노였을지도 몰라요. 나는 단순한 일을 하고, 아늑하게 보호를 받으며, 주인의 어깨에 키스하고, 난로 위에서 자는 것을 생각하곤 해요.˝
˝내 집 노예가 되고 싶다는 거야?˝
˝네, 제발 주인님. 좋다면 저 개집에서 살겠습니다.˝
˝좋아, 자네를 고용하겠네.˝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시키는 이 대화 ㅋㅋ 같은 가치를 가진 각각의 `인격`이라고 보기 힘들다
바다는 즐거웠고 소금물은 희망과 기쁨의 맛이었다.
-이 책은 이런 짧은 문장들이 참 좋다
˝넌 그저 과거를 함께 기억해 줄 사람을 원하는 거야.˝
˝그는 꿈 속의 아이가 될 거야. 당신이 손을 대면 그는 사라질 거라고. 두고봐.˝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나면 모든 것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다시 느끼고, 잊어버릴 거야. 이런 감정은 영원한 게 아니야.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아. 우리에게 영원은 환상일 뿐이지. 그것은 동화에나 있는 일이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강박관념의 한 종류이다. 강박관념은 마음이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게 굴러가지 못하게 마비시킨다. 자연스럽고 열려 있고 흥미를 느끼고 호기심 넘치는, 존재의 어떤 상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의가 바로 합리성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결코 궁극적이지 못하며, 그 판단은 당장 재고를 요하는 사건의 요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상살이는 느슨한 결말이며, 희미한 예측이다. 아무리 예술이 우리를 위로하느라고 그렇지 않은 척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