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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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날 읽기 시작했어. 집에서 읽고 회사에서 읽다가 오늘 점심시간에 막 마쳤는데. 와..... 여운에 무언가 쓸 마음의 준비가 안된다. 그래서 안썼다. 그리고 지금 다시 사무실에서 쓴다. 지금은 준비됐니? 넨네넨넨네♪

암에 걸린 아내가 죽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을 쫓아, 환생했을 지 모르는 아내를 쫓아 / 미얀마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전우를 기리기 위해 / 떨쳐지지 않는 피에로같은 동창생 오쓰를 만나기 위해 / 본인의 목숨을 대신한 구관조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제각각의 사연과 무게를 안고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인도여행길에 올라.

다 읽고 나니 의외로 ˝약속해요...˝하던 부부는 생각나지 않고 오쓰 하나만 뇌리에 박혔다. 오쓰...오오쓰으 이름도 오쓰야. 아 짠해. 목까지 부러졌어. 오쓰가 가장 단단한 사람이야. 똥강아지 같고 어리숙해보이지만. 삶에 중심이 있잖아. 주장에 논리와 영혼이 있고. 또 오쓰의 종교관에 나도 매우 공감해. 오쓰를 통해 난생 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와 신앙이란 걸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 최근 들어 종교나 신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지만 정확히는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던 거거든(바로 3일 전에는 `신정론`에 관한 책을 읽고싶다 했던 나였음. 아 지금도 읽고 싶구나.). 읽고 난 지금, 나 역시 특정 종교가 아니고 대상이 아니고 `양파` 따위로 지칭할 수 있는 그 무언가라면 그 안에 있고 싶고 기대고 싶어졌어. 잠깐 머물 기분이겠지만 나답지 않게 그 존재 앞에 꽤 경건해진다.

인도에 대한 분위기나 풍경, 문화 ,종교 등이 객관적 정보이지만 애정이 낀 눈으로 표현되는데, 원래도 chaos를 싫어하지만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카오스(케이오스가 맞는 발음이라지)라 아마 평생 인도에 갈 일은 없겠다 싶어. 산초 부부처럼 호들갑 떨며 싫은 게 아니고 오히려 애정어린 눈으로 표현된 인도가 더 와닿고 결국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될 나이지만, 그 공간을 견뎌낼 자신이 전혀 없다. 울면 순간적이고 값싼 동정인데 안 울 자신은 없으니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 멀리서 그냥 지켜만 볼래.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이해하고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며 받아들이기에는 way too much인 그 이상한 세계, 공간, 사람.

인도의 어머니 차문다 사진을 찾으려 했는데 네이버엔 ˝차문 다 닫고˝ 따위가 검색되고 구글에서 되는대로 찾아봤는데 책에서 느낀 차문다스러운 이미지는 검색되지 않아서 포기. 사무실에서 CCM 틀어놓으시는 과장님이 하필 차문다 검색 중일 때 내 뒤를 지나갔는데 아마 움찔 하셨을 듯. 나마스테.

두께가 얇은 편은 아닌데 등장인물이나 내용이 산만하지 않고 글도 쉽게 쓰여서 노력없이도 편히 슥슥 빨리 읽혔어. 좋다. 진짜 취미로서의 독서가 가능한 책이야. 군더더기가 없다고 볼 순 절대 없는데 버릴 캐릭터도 없다. 모두가 한 소설 안에서 그저 적절한 역할을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돼. 영화나 만화로 제작된다 하더라도 여기 등장한 모든 이야기와 모든 등장인물이 그대로 실릴 것 같은. 읽으면서 편안한 이유는 아마 작가가 철저한 조사 후 쓴게 아니고 평소 신 종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고 인도라는 나라와 문화, 인도인의 삶에 애정을 갖고 있었던게 느껴져서 같아. 잘 아는 사람이니까 쥐어짜지 않아도 슬렁슬렁 나오는 이야기. 일부러 편견이 낄까봐 작가 정보는 안 읽어봤는데 다 쓰고 읽어봐야지. 그나저나 이 분 초안 쓰고 그대로 책 내신 듯. 유난히 읽은 부분 또 읽은 것 같이 중복된 감상이나, 이미지, 인용이 많이 보여. 싫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고.

재밌게 잘 읽었다. 다음 책은 오늘 도서관에서 빌리는 두 권 중 하나가 되겠지.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2는 대체 언제.... 오이 샌드위치도 맛없었고 하루키랑 요즘 잘 안맞는다. 다시금 드는 생각은...내가 위대한 게츠비를 못 읽는 인간이어서인가...


발췌

이젠 창피도 쑥스러움도 없었다. 삼십오 년을 함께 산 상대가 내일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

˝나......반드시......다시 태어날 거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찾아요......날 찾아요......약속해요, 약속해요.˝
​-문제의 그 문장

한 인간에게서 그가 믿는 신을 버리도록 만들었을 때, 그 관리는 어떤 쾌감을 맛보았을까.

그 존재만으로도 그녀를 피곤하게 하는 선량한 남편,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이 남자는 무엇 하나 비난받을 구석이 없다. 없는 까닭에 테레즈는 그에게도 자신에게도 초조함을 느낀다.
-뭔 말인지 백번 앎. 평범함과 정상적인 것이라고 해서 그 지루함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내게 무얼 원하는 걸까, 난......) 그녀는 신혼여행 내내 이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이따금 인생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으로 움직여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결혼 생활이란 그에게, 상호 보살피고 돌봐 주는 남녀의 분업적인 서로 돕기였다. 한지붕 아래 함께 생활하면서 눈에 콩깍지 씌인 기분
이 급속히 소멸되어 버리면, 나중엔 서로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편리한가가 문제로 남는다.
-우리 엄마세요? 근데 나이들면 나도 이거에 끄덕일까 두렵다.

이 등에 얼마만큼의 인간이, 얼마만큼의 인간의 슬픔이 업혀 갠지스 강으로 향했을까.
-난 의외로 이 부분에서 눈물을 흘렸다네. 절박함 속에서 꿋꿋히 반시체를 나르는 요쓰가 보여서. 커피빈에서 개기침하며 눈물 훔치는 여자가 나요.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겨, 버렸고
마치 멸시당하는 자인 듯,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도다.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떠맡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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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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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도서관 알리스와 함께 빌린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 단편인지 몰랐어. 읽고 나서 이 책은 어떠하다 나름 정리해서 말할 수 없어서 단편을 안 좋아해. 시간쓰고 웃음쓰며 잘 읽어놓곤 마지막 장 덮자마자 읽은 기억이 모래처럼 흩어지는 느낌. 이것 역시 단편치고 굉장히 만족스럽고 재밌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뷰를 쓰려니 뭘 읽었나 싶다. 꾸역꾸역 기록합시다.

본인 번호로 자꾸 걸려오는 모르는 사람 `랄프`를 찾는 전화 / 몽상기질의 소설가와 함께하는 여행 / 안락사를 선택한 할머니 / 중국에서 미아(혹은 노예)가 된 외국인 / 대역배우가 실제 배우보다 더 닮아져서 배우의 인생을 꿰차 쫓겨난 실제 배우 / 손이 알아서 글을 써주는 어리둥절한 작가 / 가정생활과 외도를 병행하며 미쳐가는 남자

기억나는 대로 요약하면 그렇다. 보다시피 약간의 허상이 꼈지만 벌어지려면 벌어질 수 있는 현실 속 이야기야. 하늘을 날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거다나가 아니라 본인의 감정안에서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뻗어나가는 감정선과 상황.

기발하고 공감됐고 거침없는 이야기 속 섬세한 감정이 나에게 완벽히 좋은 단편소설이었다. 독일에서 주목 받는 작가라는데 꼭 장편소설을 찾아 읽어야겠다. 폴 오스터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 약간 어둡고 비밀스럽고 개인적인게.

발췌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말하는 걸 즐기지만, 많은 걸 경험한 사람은 느닷없이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라고.

몇몇 스위스 기관에서 안락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 협회가 가장 유명하다. 이 협회에 관해 아직도 못 들어 보았다면 주목하시라. 소설에서도 뭔가 배울 게 있으니까.
-뜬금없이 작가가 튀어나오기 ㅋㅋㅋㅋ 천명관이세요?

다들 남의 손자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오로지 자기 손자 이야기를 할 권리를 얻기 위해 잠자코 듣는다.
-이모충 뜨끔

사람은 그 영혼이 자신의 영혼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의 현존만을 갈망한다고 썼다. 그러나 가까운 사이이면서 동시에 자아의 일부인 사람은 가까이 둘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거리와 상관없이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고통스러워하며 그와 나누는 모든 대화는 당연한 걸 쓸데없이 증명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겠다. 비슷한 사람이 좋은 건지 다른 사람이 좋은 건지. 이건 정말 내가 살만큼 살아 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가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름의 경험으로 답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같아서는 비슷한 게 좋다. 비슷한 것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거 아닌가.

신정론*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고통은 왜 있는가? 고독은 왜 있는가? 특히나 신의 부재는 왜 있는가? 그런데도 왜 세상은 선을 지향하는가?(*악의 존재를 신의 섭리로 보는 이론)
-오 관심간다. 관련 책 읽어봐야지.

하느님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두렵고, 신의 아름다움은 부도덕하고, 평화 자체는 살인으로 가득하고, 내가 결코 결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신이 있든 없든 아무 상관 없으며, 비참한 내 죽음이 하느님의 동정을 사지 못하듯이, 내 자식들의 죽음 또는 원컨대, 경외하는 어머니, 먼 훗날 당신의 죽음 역시 하느님의 동정을 사지 못하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자꾸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리에 관심이 간다. 냉수 마시는 기분.

그런 부류에 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이미 오래전에 그 무리에 속해 버린 걸 깨닫지 못한다. 자신도 이젠 예외가 아니며 다르고 싶어 하는 그 기분이 바로 자신이 아주 평범함을 말해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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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6
유디트 헤르만 지음, 이용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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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리스가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내는 이야기야. 사람 이름으로 에피소드가 구분되어있고 애정이 있든 관계가 있든 역사가 있든간에 되게 덤덤하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고 말해. 엄청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자 작가 소설 같은 느낌. 되게 에쿠니가오리 느낌. 에쿠니가오리 읽은지 몇 년 됐지만 학교 다닐 때 많이 혹은 줄창 읽었었으니 인상이 비슷하면 실제 비슷한 거 맞겠지? 전체적으로 회색빛, 몽롱, 흐느적흐느적한 느낌이었어. 어릴 땐 그런 느낌이 ˝느낌있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지금 읽으면선 `무성의`하고 `불친절`하다고 느껴지네. ˝일기는 일기장에....˝ 이런 느낌.

죽음이 슬프지 않은 건 좋았다. 사건이 아니고 과정이니까.

작가는 유디트 헤르만. 책 빌리고 현이랑 점심에 커피마시러 역삼 가서 둘이 클림트의 `유디트`와 헤르만 헤세의 `헤르만` 섞은 것 아니냐며..번역한 이용숙이 쓴 거 아니냐며 되도 않는 농담을 했는데 아마 나중에 지나면 이 농담만 기억날 듯. 안웃긴데 그 때 우린 웃겼어.

발췌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는 계속 혼자 걸으려고 했는데, 아직 똑바로 걷지 못하고 빼뚤빼뚤 걸었다. 아이는 걸음마를 배웠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아니면 바로 그 때문에.

글씨체에는 빨리 익숙해져. 글을 쓴 사람보다 글씨체에 훨씬 빨리 친숙해지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 지속성이 리하르트가 숨을 멈추는 바로 그 순간에 끝날 이 방에, 리하르트가 언제 호흡을 멈출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아직 숨을 쉬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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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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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랑 요즘 잘 안 맞는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2를 시작할 기분도 상황도 아니어서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을 택했어. 우선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고 훌륭한 문장가라고 항상 생각해왔으면서도 막상 리뷰로 단 한번도 남긴 적이 없어서 한 번 쯤은 리뷰용으로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었거든. 가장 재밌게 읽은 ˝여행의 기술˝을 다시 읽으려했지만. 이 것 역시 기분과 상황의 영향으로 ˝우리는 사랑일까˝를 펼쳤어. 사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우리는 사랑일까 / 너를 사랑한다는 건 이 세 편은 읽을 때 모두 재밌게 읽었지만 각각 구분되는 특별한 인상이 없어. 세 권을 다시 연달아 읽으면 알겠지만 그리고 리뷰로 남기면 알겠지만 모두 1-2년 텀을 두고 읽었던지라.

우선 알랭 드 보통은 `성의`와 `지식`이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곱씹으며 읽어야 했던 기억과 스토리보다는 문장을 발견해야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어제 누군가가 알랭 드 보통 작품 읽기 어때? 했으면 저렇게 대답했을거야. 그런데 몇 년만에 읽은 드 보통의 작품은....놀라울 정도로... 유치했어. 너무 쉽고 너무 깊이가 없어. 물론 연애 소설이라고 구분 짓는다면 그 중에서는 최고일건데 그래도 그 분류라는 것 자체가 내가 그간 했던 평가를 확 무안하게 만들더라고. 읽기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나. 그냥 겁나 가벼운 작품이구나.

그리고 요즘 책을 많이 읽고 기록을 많이 남기면서 역사나 작가, 작품에 대한 기억이 상당히 구체적인 상태인데 굉장히 논리에 힘을 더하는 비유나 소개들이 원래는 낯설고 어려워서 드 보통의 지성을 되게 높다고 생각하게 했었거든. 근데 그래봐야 플라톤이고 그래봐야 플로베르고 그래봐야 험버트더라고. 알면 얼마든지 비유할 수 있었어. 지식의 자랑이 아니고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지에 공감하는 재미는 확실히 늘었지만 반대로 아 대단한 지식도 아니었구만 하는 허망한 깨달음. 니가 똑똑한 게 아니고 내가 무식한 거 였다.

이제야 줄거리. 감성적인 보통의 여자와 이성적인 보통의 남자의 연애인데 각각 가진 약간의 트라우마들이 있어. 여느 커플과 같이 드라마틱하게 시작하고 안정적인 연애를 일궈나가지만 즐거움과 환상이 지나고 따라오는 서로의 다름과 공허를 조금 더 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있어. 그냥 보면서 아 섭섭하겠다 아 남자한테 여자가 피곤하게 했네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섭섭함, 피곤, 불안 등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심리를 설명하는 식이야. 그리고 그런 같은 경우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었다는 식으로 문학 속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랑이 저렇게 생긴건 아는데 그래도 왜 저 두 사람의 케이스로 이 책 한 권을 끌어나갔을까? 사랑이란 말이 나오기에 너무 안 아름다운데. 그냥 저건 환상의 시작과 깨짐 아닌가. 그리고 난 남자 여자 주인공 캐릭터 둘 다 거의 공감을 할 수 없었어. 이것 역시 둘 다 한 성을 대표하기에 꽤 일반적인 케이스라고 할 순 있지만 난 그 여자 주인공과 전혀 다르고 내가 사랑한 남자도 남자주인공과 굉장히 다를건데. 뭘 사랑이야. 사랑 아니야. 사랑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점이 4개인 이유는. 우선 재밌잖아. 참 재밌어. 아는 이야기이지만 인정하기 싫어서 외면하는 내 하찮은 감정을 하나하나 비집어가면서 들춰내는 게 참 얄미운 친구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러나 저러나 말을 참 잘해. 그리고 예술 문화를 이렇게 간접적이고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잖아. 다음 책은 뭘까....

​발췌

Your visits and your smile make the mornings seem worthwhile

서투르고 모호하게 사랑을 속삭이느라 평생을 허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조용히 자살하고 마는, 창백한 북구 남자들[베르테르와 같은]의 접근 방식
-이런 식의 인용 재밌다 ㅋㅋㅋ 베르테르 디스. 찌질미 나도 싫었는데

그녀의 자신감은 늘 확인을 받아야만 자라는 불안전한 구조였다-원하는 걸 얻거나,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 같아서 늘 다시 채워줘야 했고, 그게 불가능해지면 이전의 낙관이 오만한 허위로 보이는 상태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많은 여자들의 문제

p.120~122
그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잘 정돈된 상태인 것 같지만, 사실 남보다 더 무질서를 두려워하고 의식한다고 볼 수 있었다.......그렇다 해도 인생의 중요한 요소들이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상황에서만 덤벼들었다.
-엄세윤 만나보셨어요? 에릭 캐릭터와 너무 심각히 비슷해서 오랜만에 역겨운 기억이 스물스물.

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

누군가의 인품을 빨리 알고 싶다면 우유를 한 모금 입에 가득 머금었다가 그에게 뿜어보라. -제니 홀처

나는 나를 사랑해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 일을 즐기기가 힘들었다.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감탄을 늘어놔야 하는 경우에 그랬다. 행복해야 한다고 계속 되새기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있을까.

여자들은 까탈을 부리도록 타고났다는 오랜 통념에 근거하여, 여자가 까탈을 부리는 원인을 제공하는 남자들은 면죄부를 얻었다.
-까탈 부리는 여자도 싫고 저걸로 합리화하는 남자도 싫다. 보통 사람의 보통 기분과 보통 패턴이 싫다.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앨리스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흥미로운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스스로 아주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결론지었다......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어할 수 있는 것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는 증거다.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 누굴 만나느냐. 누구를 통해 내 자아를 만날 것인가. 결국 너를 선택하는 것이 곧 나를 선택하는 것. 누구와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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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ro 2017-08-1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책리뷰 보다가 잼있어서 올리신 다른 리뷰들도 봤는데 글 참 잘쓰시네요.
 
어느 하녀의 일기
옥타브 미르보 지음, 이재형 옮김 / 책세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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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세일즈맨의 죽음` 리뷰에 언급한 남자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의 반대로 이렇게 여자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는 책도 많지는 않을거야. 읽으면서 내내 `마감 보바리`같다는 인상을 받았어. 여자의 욕망과 감정에 솔직한 것. 특유의 변덕스러움을 굳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감정의 기복을 당연하게 기록하는 것도.

일기처럼 끝없이 솔직하게 자잘하게 거침없이 쓰여진 한 여자의 삶을 보며 그 안에 언급된 주변인물들의 부끄럽고 한심하기 짝이없는 `일반적인 여자`의 지저분한 진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물론 화자인 하녀 셀레스틴은 본인 이야기이고 주관이 꼈기 때문에 가장 문제 없는 영리한 여성으로 나와. 그래서 무슨 짓을 한들 다 어느정도 이해가 되고 캐릭터 자체에 애정이 생겨. 아무리 일기 형식이라지만 엄연히 소설인데 본인 변호가 무의식 중에 되고있는 상태라는 것이 재밌다. 본인이 사실 본인도 아닌 것인데 두둔하고 있고 포장하고 있어. 나 역시 내 일기 안에선 제일 괜찮은 사람인걸.

셀레스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하녀이지만 니들과 같은 하녀가 아니다.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도도한 하녀야. 이유는 당연히 훌륭한 외모 때문이고 덕분에 나리들의 예쁨을 받기도 하고 부인들의 관심을 받기도하고. 여성성을 잘 이용해먹어. 그걸 굳이 윤리적으로 변명할 생각 없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한다는 식. 그렇다고 창녀도 아니고 본인의 필요나 기분에 따라 정말 내키는대로 하는 식이라서 뭐 나빠보이지 않아. 결국 같은 하녀라고 느낄 법도 한데 그렇게 유난스럽게 구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같이 고생하고 같은 주인을 모시는데 500페이지 넘게 나오면서 끝까지 고고해. 아.. 발췌 옮기다보니까 저 여자가 행여 여성성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감정이 섞일 때 와르르 무너졌던 모습을 봐서 내가 얘를 비난하지 않는거구나. 보통 사람이다. 보통 영리한 여자. 되게 힘든 삶이고 끝도 안보이는 비극적 삶인데 당차고 쿨하고 강해. 행동이 아니고 정신이. 그게 ... 그러지 않으면 끝없이 무너질 환경이라 그런 것 같아. 살기 위해 무반응하는 것.

크게 보면, 간단히 보자면 1900년 프랑스 배경에 부르주아 주인집을 전전하며 일을 하는 하녀의 삶을 보면서 그들이 고발하는 부르주아의 행태와 진실을 볼 수 있어. 파장이 컸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발인데 실존인물이 나오지 않으니 ˝어머어머 이게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야. 교양없이. 남사스럽게.˝ 하고 모른척 아닌척 낯선척 했겠지.

기승전결이 없어서 중간까진 재밌다가 그냥 하루하루의 에피소드와 주인집들의 우스꽝스러움을 조잘대는 느낌이라서 중간 이후부터 속도가 느려졌어. 그래도 고전의 느낌과 셀레스틴의 캐릭터가 좋아서 제대로 끝내고 싶어서 다 읽었네. 반만 읽든 앞에 20%만 읽든 감상은 같았을거야. 스토리도 그랬을거고.

발췌

이 여자는 수다를 떨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강한 나머지 자신의 고통도 잊어버렸다. 악의가 천식을 제압한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에 관해서는 얻어맞은 기억밖에 없지만, 그 소식을 듣자 마음이 아파져서 울고 또 울었다.

나는 내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그리고 잘 안 알려진 나의 무언가가 드러나는 것을 시시각각 목격하고 있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달콤한 기분을 느꼈다.
-사랑을 받을 때. 진정한 관심을 받을 때. 난생 처음 내 영혼을 보고자하는 참사랑을 참탐색자를 만났을 때의 그 달콤한. 지금 내가 자주 느끼는 하루하루 탐색자를 통한 나의 재발견.

나는 이제 더 이상 그가 너무 못생겼다거나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습관은 사물과 존재에 마치 안개처럼 작용한다. 그것은 결국 얼굴윤곽을 조금씩 지우고, 변형된 부분을 희미하게 만든다.

나는 지나칠 정도로 사랑에 약하기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사랑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으로부터 그 어떤 이득도 얻어낼 수가 없다.

˝당신은 몸을 함부로 굴렸지요? 그러면 안 돼요, 결단코! 그러나 죄를 저지르기 위해 죄를 저지를 거라면 주인이랑 저지르는 게 낫지요. 주인이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면요. 혼자서 죄를 저지르거나, 아니면 자기와 똑같은 신분의 남자와 죄를 저지르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는 거지요. 그게 덜 심각하니까. 그러는 게 선하신 신의 감정을 덜 자극하니까. 그리고 아마 주인들은 사면장을 갖고 있을 거예요.˝
-수녀님...말이에요 방구에요?

뼛 속까지 타락한 그녀의 방탕은 명랑하고 천진난만하고 자연스러울 뿐 전혀 혐오스럽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울고, 울고, 또 울면서.

무無를 지배할 수도 없고, 허공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법이다.

사랑에 대해서는 결코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얼마나 슬픈 것인지! 사랑에서 남는 게 도대체 뭔가? 우스꽝스러움이, 씁쓸함이 남는다. 혹은 전혀 아무 것도 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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