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보급판 문고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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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읽고 이세욱님의 번역이 좋았다고 남겼었는데 그 당시 이웃이었던 분이(아마 지금은 아닌 듯) 이세욱님 번역의 책 두 권을 추천해주셨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거의 이 분이 번역하신 것 같던데 난 단한권도 베베 작품을 안 읽었기 때문에 알리가 없었다. 어쨌든 북플 읽고 싶은 책에 바로 저장을 해두었고 한참 잊고 있다가 yes24에 중고가 있길래 샀다. 대만 출장때 가져가서 읽다 말았었는데 캐리어 이상한 주머니에 넣어두고 잃어버린줄 알고 있었다가 다시 찾아서 처음부터 읽었다.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잘 쓰인 인터넷 소설을 읽은 기분이기도 하고 끝이 불보듯 뻔한 로맨스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은 아주 발칙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삶에 권태를 느끼며 살아가던 25세 파리지엥 콩스탕스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다가 책에 밑줄과 메모를 발견해. 메모에 쓰여있는 추천책을 찾아보니 역시 수많은 밑줄로 콩스탕스에게 말을 걸고 있어. 밑줄 긋는 남자와 그렇게 은밀한 소통을 하게 되고 실체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게돼.

밑줄에 인용된 책과 내용 중에 수많은 책들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멋부리지 않은 짧은 문장에 담백하지만 솔직하게 글을 쓸 줄 아는 작가임은 분명하니 책 읽는 안목도 믿음이 가서 몇 권이나 저장해뒀다. 우선 시작은 자기앞의 생(읽다 나랑 안맞아서 포기했었는데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봐야지.) 앙드레지드 여인들의 학교, 도그토예프스키 노름꾼 정도는 곧 읽어봐야지.

다 읽고 나니 유치한 감이 없지 않은데(음....적지 않은데, 사실 많은데) 그래도 일상에 이런 상상 정도는 있어야 1년 365일 100년 살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그 상상이 사실 많은 여자들이 품고 있는 판타지를 담고 있어서 함께 콩닥대는게 있었다. 적어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남자를 좋아하고 거기다 문학을 좋아한다면 없던 감정도 생길 인간이라 이야기 내내 꽤 함께 설렜다.

현실이고 뭐고 난 낭만만큼은 놓을 수가 없다.

발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 주고 웃겨 주고 껴안아 주는 일이었다.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최선의 세계에서 최선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 생활은 아주 초라하고 나는 거의 똑같은 일을 매일 되풀이해요. 당신은 어떠한가요? 당신의 생활은 어떠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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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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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제목이고 읽지 않아도 어떤 내용일지 알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책이라 내가 살 일은 없는 책이었다. 나랑 잘 만나보고싶다고 정재가 말을 한 그날 선물해준 책인데 책을 받고는 기쁜 마음 뒤로 바로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얘도 어지간히 책 안 읽는구나. 하는 마음이었던가. 그런데 편견이라는 게 오만이라는 게 위험한 것이, 최근 읽은 책 중에 나에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줄 책이었다는게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를 읽은 후의 감상이다.

정신학전문의로 활동하며 평생에 걸쳐 봉사를 하고 정신병동을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바꾸고, 치료에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하고 이화여대에 첫 여성학 강의를 연 교수이기도 한 이근후님의 행복한 인생의 마무리를 위한 조언이다. 보통은 준비 없이 맞게 되는 `노후`에 대한 생각을 함께 해보자는 열린 태도와 조심스러운 조언이 참 따뜻했다.

언뜻 노후를 곧 맞을 사람들을 위한 책 같지만 나이는 갑자기 드는 게 아니고 매일 먹고 있는 거기 때문에 좋은 노인이 되기 위한 준비는 태어나서부터 하고 있는 게 맞다. `아직 노인이 되려면 멀었지만`이라는 전제를 갖고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내 나이가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부모님도 꼭 읽어보시라 권할건데 아마 안 읽겠지? 당장 내 주변 어른들 하나하나가 이 책을 읽고 행동에 생각에 아주 조금의 변화만 만들어도 삶이 더 좋을텐데.

나 같은 경우는 당장에 노후라는 것은 좀 멀게 느껴졌고 부부와 가족에 대한 조언이 많이 와 닿았다. 아무리 한 사람에게 안착 못하고 이놈 저놈 떠돌고 있지만 서른한살이기 때문에 빠르면 내년 늦어도 5년 내엔 결혼하지 않을까. 난 부인으로서의 모습보단 어머니로서의 모습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인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머니는 지금의 나는 너무 갭이 큰 것 같다. 물론 내가 가진 성향이나 태도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오픈하지 않고 혼자서만 느끼고 지향하는 부분이라 이런걸 누군가와 공유하고 이해받고 실현하는 연습이 필요하겠다 생각했다. 새삼스럽지만 미래의 나는 결국 지금의 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여러 모로 지난 삶을 반성하고 현재를 재정비하고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엄마, 아빠, 언니 기타 소중한 사람에게 가볍게 읽길 권해야지. 아! 여러모로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발췌

러셀은 말했다. ˝재미의 세계가 넓으면 넓을수록 행복의 기회가 많아지며, 운명의 지배를 덜 당하게 된다.˝고.

거절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는 거절에 익숙하지 않다. 내 뜻을 감추고 상대의 말만 수용하면 마음에 앙금이 쌓인다. 억눌린 마음은 죄책감이나 상대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갈등은 미움으로 변한다.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인생의 하루를 그것과 바꾸고 있으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부모는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 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성석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살다가 사랑이 좀 시든다 싶거든 한번 곰곰히 따져 보십시오. 저 사람은 나의 어떤 점을 좋아할까, 나는 저 사람의 어떤 점이 좋은가. 그것을 파악하여 상대의 좋은 점을 사랑하고, 그가 좋아하도록 나를 가꾸십시오. 그런 삶이 어렵겠습니까?

수천 년 전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출토된 파피루스에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없다`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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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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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 것 같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을 위한 꿀팁! 내가 요즘 책을 사는 방법. Yes24 중고샵 - 직배송상품 - 민음사 검색 - 검색된 중 상태 최상급 책 장바구니행 - 30초 정도 고민하며 안 당기는 거 추려낸 후 구매. 난 손때 탄 책을 많이 싫어하기 때문에 최상급에서만 고르는데 그럼 펼친 흔적조차 없는 완전한 새 책이 온다. 그렇게 사서 읽게된 나의 미카엘. 살면서 처음 읽은 이스라엘 소설 되시겠다.

미카엘이라는 남자와 운명적으로 알게되어 짧은 연애 후 결혼까지 한 한나가 옮긴 그 커플의 이야기.

시작은 꽤 로맨틱했고 스윗했지만 로맨스에서 드라마로 장르가 바뀐 듯 얼마 못가 색을 잃은 그 부부의 이야기에 영화 무드 인디고가 떠올랐다. 내리 비관적인 한나의 태도가 너무 불편하고 짜증나면서도 미카엘의 우직함에 괴로워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전반적으로는 미카엘의 인내심에 큰 점수를 줘야하겠지만 언제나 상대를 악역으로 만드는 그 한결같음은 몇년을 함께하면 불평도 할 수 없는 큰 스트레스일 것 같아. 둘이 맞지 않는 상대였다는 정도로 밖에 답이 안나온다.

시댁 어른들 입방아에 오르는 것, 남편의 커리어가 우선이 되는 것, 친정식구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 등 과거 우리 어머니들과 비슷한 환경 속의 한나에게 동정심이 생겼어. 그리고 여자로서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나는 그런 히스테릭한 기분도 잘 알기에 매사 비협조적으로 비치는 그녀의 행동, 리액션도 마냥 비난할 수 없었고. 미카엘과 합동으로 점잖은 아들 야이르에 읽는 나조차 이질감을 느꼈는데 매일 매시를 함께하는 한나는 어땠겠어. 아마 이 책은 여자가 읽을 때와 남자가 읽을 때 감상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영화 `나를 찾아줘` 처럼.

읽는 내내 너무 디테일한 감정 묘사와 부담스러울만큼 필요 이상으로 감상적인 시선에 본인 일 아니고는 이렇게 쓸 수 없다. 이건 자전 소설이겠다 하며 읽었는데 읽다보니 생각이 바꼈다. 작가가 한나였다면 은연중에 스스로를 변호했을거야. 근데 입은 한나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미카엘과 한나 누구 하나도 감싸지를 않더라고. 감상에 편견 낄까봐 아직 작가소개나 작품해설은 안 읽어봤는데 리뷰 후에 읽어봐야지. 어머. 혹시 몰라 성별만 보자 하고 작가 아모스 오즈 검색해봤는데 이건 자전소설일 수가 없구나. 작가가 남자여. 할아버지. 어머. 표지 남자가 젊을 적 아모스 오즈구나. 난 왜 이런 당연한 정보를 놓칠까? 이럴 땐 정말 저능아같다. 위의
추리가 부끄럽지만 우스우니 냅두자.

결혼 생활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문학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지만 이렇게 이렇다할 사건없이 비관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모든 걸 보일 수 없는 상대와 살 경우 시간이 갈수록 처참히 외로워지는 여자의 인생을 봤다. 역시 결혼은 어려운 것이여. 나이 찼다고 함께 있는 사람이 크게 나쁘`진` 않다고 갈 게 아니라니깐.

꿈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나오고 난해한 감정 묘사가 많아 클리어한 표현을 좋아하는 나로선 모두 샅샅이 읽어내기 귀찮은 감은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설정과 흐름 모두 소리없이 인상 깊었다. 결혼 적령기 여자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기혼 여성에게 비추천한다. 행여 한나와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끝없이 한나와 함께 가라 앉을거야.

발췌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인상 깊은 첫 문단. 첫 문장, 첫 문단이 좋은 책은 계속 좋을 책이라는 아직까진 깨지지 않은 믿음.

보통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

사실 이 시기에는 우리 사이에 일종의 불편한 타협 같은 것이 존재했다. 우리들은 마치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운명적으로 옆자리에 앉게 된 두 명의 여행자들 같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고, 예절이라는 관심을 지켜야 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 아는 자신들의 사이를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예절바르고 이해심을 발휘해야 하고. 어쩌면 가끔씩은 유쾌하고 피상적인 잡담으로 서로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야 하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며. 때로는 절제된 동정심을 보이기도 하면서.
-부부 사이

아버지는 위대한 사람은 젊어서 죽는다는 격언을 인용하시고는 다행히도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셨지.

이 남자는 언제 자제력을 잃을 것인가? 아, 한번이라도 저 사람이 겁에 질린 것을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기쁨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미친 듯이 달리고.

모든 행위에 있어서 의심을 해보는 일이 필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심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도 있지요.

나는 모든 것을 적어넣으려 했었다. 모든 것을 적어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것들은 어느덧 사라져 침묵 속에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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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이재익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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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뒷골목 사창가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져. 아가씨들이 트러블을 겪을 때 정리를 해주는 `삼촌`으로 불리우는 남자가 희생자. 주인공 도형사가 나서서 사건을 수사하던 중 그 골목에서 포주를 했던 여자가 두번째 희생자가 돼. 또 같은 골목에서 세번째 희생자까지 나오면서 영등포 뒷골목은 공포에 휩싸이는데......

서평단이니까 그럴 듯하게 줄거리 썼다. 엣헴.

등장인물이 여럿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산만하지 않게 이야기가 읽혀서 오랜만에 참 편하게 책을 읽었다. 또 문장 호흡이 짧아서 문장의 맛은 좀 떨어질지라도 읽히는 속도가 빨랐고 쓸데없는 미사여구가 적어서 소설보다는 시나리오를 읽는 기분이었어. 사건이 벌어지고 주변인물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또 슥 지나갔던 단서가 결정적이 되는 그저 재미, 킬링타임용 추리소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어릴 때 좋아했던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 또 여기서 선덕선덕 등장하는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 한국 소설에 빠질 수 없는 모정과 효. 또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사창가 이야기까지 적당한 감동과 적당힌 호기심을 자극해 한번 펼치면 쭉 읽게 될 수 밖에 없는 재밌는 소설이었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여럿 있을 법한 흔한 추리소설이라 특별히 인상깊진 않았다. 되게 시각화가 잘되는 잘쓰인 소설이지만 영화화 하기엔 너무 뻔하고 신의 퀴즈 같은 추리물 드라마에 한 편 치 정도가 될 것 같다. 즉 쉽고 가볍고 아쉬운 추리소설이다. 그리고 나 책이나 영화 보면서 범인 추리 안하는 앤데 시작부터 감이 왔고 걔가 역시 범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맞췄어.... 이재익 작가님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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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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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반가운 민음사 문학전집! 모래의 여자가 마지막이었던가. 파스칼의 팡세 읽다 GG치고 몇 권의 소설을 떠돌다가 아 좀 좋은 책 좀 읽자! 하고 아껴뒀던 삶의 한가운데를 꺼냈다. 좋은 책인 건 현이 리뷰를 보고 알았다. 스포 때문에 읽지 않았지만 아마 현이가 좋아했었던 듯? 일주일 정도 들고 있었다. 요즘은 집 오면 잠자기 바빠서 책을 빨리 못 읽는다. 출퇴근 때 1번 환승하는 것도 무시 못하는 듯. 읽힐 법 하면 갈아타야하고 다시 읽힐 법 하면 내려야해. 어쨌든 오늘 끝냈다.

니나라는 여자가 그녀의 열 살 많은 언니를 불러. 나이 차도 크고 성향도 엄청 달랐던 자매여서 도통 가까운 적이 없었고 언니가 결혼까지 하면서 남보다도 못할만큼 소식도 모르고 살던 사이였는데 먼저 언니를 필요로하는 동생의 갑작스런 부름에 언니는 의아함과 반가움을 안고 한달음에 동생 니나에게 달려가. 현재 생활을 다 정리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며 떠나기 전 하루만 같이 있어 달라는 요구에 엉겹결에 둘이 평생해보지 않은 긴 대화를 긴 시간 동안 나누게 돼. 이 대화가 소설의 전체이고 언니가 관찰자 혹은 관객같은 역할로 니나의 이야기를 전해줘. 그리고 그 대화는 니나를 18년 동안 끊임없이 아프게 사랑한 슈타인박사의 일기 혹은 편지를 순차적으로 읽어내려가며 진행돼. 형식이 독특하다. 언니의 관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 그 일반적인 시선이란 게 필요해서 앉혀놓은 듯해. 슈타인과 니나만이 중앙에 있고 저 구석에 상황을 지켜보며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관객이 있는 무대 같아.

니나 부슈만이라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가 독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책 표지에 소개가 되어있던데 음.... 스스로 강인하고 빛나면서도 타인으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자아내는 빈틈없이 매력있는 캐릭터야. 어릴적부터 쭉 많은 남자들의 흠모의 대상인 여자인데 정작 본인은 생각이 다른 곳에 가있어. 정치적 신념이나 커리어에도 꽤 집중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몰두한 것은 `삶`이야. 본인이 주인공인 인생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그냥 살아가는 것 `삶`. 니나가 필요로 하는 게 없기 때문에 줄 수도 없어서 그녀를 갖는 건 불가능해. 그냥 멀지 않은 곳에서 찾으면 눈에 띌 정도의 거리에서 서성이다가 니나가 부를 때 슥 나타나서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고 슥 떠나고 다시 또 나가와서 도움을 주고 또 한발치 물러서고 그렇게 18년을 사랑한 슈타인의 순애보가 아마 이 소설의 줄거리겠지.

읽으면서 의아했어. 진짜 이런 걸 사랑이라고 말하는거야?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랑이 존재하기는 하는거야? 남녀간의 사랑은 둘이 즐거우라고 하는 건데 니나는 다른 곳을 보며 혼자 흥얼거리고 있고 슈타인은 그런 니나만 뚫어지 듯 쳐다보며 마음 졸이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그게 뭐야. 남자는 정말 못 가졌을 때의 아쉬움을 이거야 말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변태바보들인건가. 아이리쉬 머독의 `바다여 바다여`안에서 어릴적 사랑했던 여자에게 삶을 바칠 듯 집착하는 남자보면서 히힉 이게 뭐야 대체....했거든. 엇? 그러고 보니 둘다 여성작가다. 어멋 이거 혹시 여자들의 판타지인가. `너의 모습이 어떻든 난 너만 바라봐.` 이런건가... 이상해... 좀! 좋으면! 손 잡고 홍홍대고! 뽀뽀 쪽 하고!! 청혼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서로 어깨도 주물러주고! 섭섭하다고 가슴팍도 치며! 그냥 그렇게 즐겁고 소소하게 늙어가면 안되는거야? 왜 매번 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의 본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야? 난 슈타인을 희망고문에 벌떡벌떡 놀아난 바보 아저씨라고 하겠어. 어디 사랑이야 그게. 집착이고 병이지. 그리고 니나. 이게 진짜 매력있다고? 위에 빈틈없이 매력있는 캐릭터라고했지만 그건 뭐 소설 속 캐릭터로서의 평가고 사실... 되게 피곤한 스타일 같지 않아? 중2병같아. 왜 안정적일 수 있는 상황에 아무 문제도 없는 상황에 이건 아니야! 하고 제동을 걸고 떠나고 등장하기를 반복하는 거지? 혼자 특별한 척하는거 진짜 꼴불견이야.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겠네. 그리고 내가 열심히 먹이고 만져주고 응원해주고 함께 살아온 남자가 중2병 걸린 여전사에게 홀려있다면 뺨때기 세 대 세게 때리고 그 관계에서 빠져줄거야. 어딜 감히.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도 여자인지라 슈타인의 사랑(혹은 니나에 대한 몰입)이 변태적이든 뭐든 니나가 받은 그 한결같고 집요한 관심은 부럽다. 그리고 보고싶은 대로만 보는 게 아니고 진짜 니나에 대한 이해가 잘되어있는 남자라 그 단점도 사랑스런 너의 것이라는 그 시선이 부럽다. 나도 누가 내 표정, 행동거지, 삶의 변화 하나하나 글에 적어가며 날 관찰해주면 좋겠다. 맨날 나 스스로 관찰하는데 질린다. 나 좋다는 남자들도 막상 만나보면 내 시큰둥한 표정은 안중에도 없이 지들 이야기만하고 있고.... 난 내 이야기 들려주고싶은데.

발췌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그녀는, 내 생각인데, 거짓말하지 않고도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본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거예요.

사랑이란 누군가에게 속해 있다는 감정이야. 오로지, 그리고 철저하게 말야.

나는 아직 살아 있었어. 그리고 나는 삶 속으로 다시 내던져졌던 거야.

내 생각에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계속해서 생기에 차 있을 때야. 그리고 마치 미친 자가 자기의 고정 관념에 몰두하듯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야.

내 시가 형편없다면, 정말로 형편없어서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나 자신의 내부에도 감상벽과 싸구려 경향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녀는 집시 같은 데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삶은 잠정적이었다.

우리는 위험과 위험 사이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살고 있다고. 특히 사랑은 훨씬 더 그렇지.

아무도 공적에 따라 보답을 받지 못한다. 아무도 한 인간의 노력에 주의하지 않는다.

전혀 없는 것보다는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 내 나이는 마흔여덟이다.

친구여, 여자들은 우리를 항상 실망시킨다네. 그러나 우리도 여자들을 실망시킨다네. 진정한 결혼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네. 체념만 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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