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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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을 열어제치고 조명을 찢은 후에 오르지 말아야 할 계단을 올라간다. 닫힌 문의 손잡이를 비틀자 아득한 수평선이 펼쳐졌다.

트루먼은 그 바다로 뛰어든다. 트루먼쇼는 그렇게 끝났지만, 트루먼의 진짜 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채사장이 살아온 30여년(맞습니까?)의 인생, 아니 그의 지독한 탐독의 세계를 내가 온전히 이해했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그의 첫 책이 <죄와 벌>이었고 나 또한 그랬다는 것 말고는 내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선이해와 선체험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지대넓얉의 나름 애청자라는 사실을 붙잡고 늘어진 덕분에 뭔지 모르지만 끝까지 가슴이 두근거렸고 눈 먼 나를 이끌어주는 그 편안함에 모든 걸 맡길 수 있었다. 이 채사장이 대체 책에다 무슨 짓을 했을까, 어떤 환각제를 풀어놨길래 이토록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가, 의심해야 했지만 그럴 틈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된다. 난 절대로 이 책을 단숨에 읽지 못했다. 다른 것에 한눈 안팔고도 며칠이 걸렸다. 그의 주술이 단계적으로 점층적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이어 또 별다섯을 주자니 무슨 빠라도 된 듯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에도 별다섯이다. 빌린 책인데다 워낙 신간이라 조심조심 넘겼다. 이 책을 읽을 수많은(!) 다른 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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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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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7-02-11 01:3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130만 독자라니! 앞으로 이런 책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봐요. 읽기 쉽다고 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젠 독자들이 알아보는 시대가 온 듯요.^^

서니데이 2017-02-1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컨디션님 내일 대보름이예요. 저녁 맛있게 드세요.^^

컨디션 2017-02-11 01:36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도 대보름 둥근달 잘 맞이하시길요. 밤이 깊었으니 잘 주무시구요. ^^
 

서재 브리핑에 올라온 친구들의 게시글을 제목만 일별한다. 클릭을 하지 않았다. 클릭을 하지 않기 위해선 클릭을 하려는 관성적 유혹을 참아야만 한다. 참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요즘은(한달은 넘은 것 같다) 북플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떠나가는 배의 뱃전에 위태위태 발을 얹는 꿈을 꾸게 된다. 언젠가 실제적으로 배를 탈 날이 올 것이다. 바다를 무서워하게 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도 한 사람이라서 배를 탄다는 것은 아주 긴 이별과 아주 힘든 시작이 아닐 수 없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는 아니지만 어제는 열무가 너무 싱싱하고 아담해서 거기다 얼갈이까지 단정하고 청아해서 조금 샀다. 내 뜻은 아니었다. 남편이 임신을 했는지 그게 먹고 싶다는 것이다. 웃는 얼굴로 선뜻 집어들긴 했지만 내 속은 열불이 났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 찬사를 잔뜩 보내며 난 희열을 느꼈다. 아, 살아있구나. 컨디션. 그 열무와 얼갈이가 지금 소금물에 절여지고 있다. 남편은 곧 귀가할 것이다. 그의 산책은 너무나 뻔해서 시계바늘도 바르르 떤다. 허투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벌써부터 경련을 일으킨다. 


어제는 남편과 서편제를 봤다. 1993년에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 서편제를 20년이 훌쩍 지나서야 보게 되다니.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면. 시간이 나를 그렇게 되도록 이끌었던가.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정확히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받아들인 세계를 나 스스로 폄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서편제는 나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 안에서 출발하고 그 안에서 끝이 나는 인생을 내 방식대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나친 걸까. 그렇다고 보지만 그 또한 상관없다. 난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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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14: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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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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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2-09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흐음, 여기도 퀴즈인가요.^^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컨디션 2017-02-10 15:57   좋아요 1 | URL
퀴즈요?? 제 글 어디에 퀴즈의 퀴자가 있단 말인가... 서니데이님의 위트어린 농담을 나만 눈치채지 못하는 건가.. 이 당황스러움을 잠시 뒤로 하고 다시 작정을 하고 답을 드리자면,
혹시 저 문장 때문인가요. 1993년에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도망가는 길에)

여행은 잘 다녀왔습니다. 눈덮인 산길을 걸었는데, 현대판 설피를 태어나 처음으로 착용하고서 산악적응훈련 하는 정신으로 다녀왔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오후시간 보내세요^^
 

일박이일 일정이 잡혔다. 일요일 아침에 출발하여 월요일 오후에 돌아온다. 산간지방으로 갈 것이다. 여기도 나름 산간인데(국토의 대부분이 산이라는 의미에서) 더 산간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순전히 얻어먹으러 가는 것이라서 너무 완전무결하게 거지 행색을 하게 되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조심스레(의례적으로 쓴다지만 내가 쓰고도 너무 싫다) 해본다. 이보다 더(망)할 순 없다는 나름의 결기를 위해서라도, 그러니까 어떻게든 완연한 거지꼴만은 면해야겠다는 취지에서 내일 출발을 위한 준비물을 챙겨야 한다. 한마디로 수중에 가진 돈은 없고 백프로 신세질 노릇을 왜 자처해설라무네 이 맘고생을 하게 되었나, 어처구니가 없지만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뭐라도 챙겨야 하는데 뭘 챙기나. 속옷과 양말. 세면도구와 잠옷. 모자와 장갑밖에 생각나는 게 없으니 그딴 거 집어치우고 다른 걸 생각해 보자. 생각생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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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0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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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0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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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로 꿈꾸는 자유 - 국내여행 편 - 스쿠터 여행가 임태훈의 무모한 여행기
임태훈 글.사진 / 대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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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CT100이다. 한겨울에 떠나는 국내 스쿠터 여행이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사진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에 내놓는 여행기가 이렇게 온통 주관적 사진들로 채워져도 되는지, 이토록 주관적으로 나아가는 코멘트의 질과 방향을 한 점 의심없이 확고하게 주관적으로 나아가도 되는지, 그리하여 그런 게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산물이 분명하다. 애마인 건 알겠지만 CT100에 대한 과한 애정으로인해 중첩된 샷이 너무 많아 가히 바이크 카달로그라고 불러도 저자에게 미안해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으아, 스쿠터 스쿠터 스쿠터.... 스쿠터 스쿠터 스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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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0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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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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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
임태훈 지음 / 대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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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대라면 A4 10장은 채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 이유가 있다면, 이민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김민정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인류의 문명 중에 가장 확기적 견인차가 된 바퀴에 대한 관심은 정작 없다. 굴렁쇠를 굴려봤는데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기억이 너무 비굴하게 남아있어서 그 후로 바퀴에 대한 관심은 끊어버렸다.  

 

스쿠터의 용량을 사랑한다. 타 본 적 없지만 그 소음 또한 사랑한다. 진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 말이 필요없겠지만, 난 오토바이의 승차감에서 진동이 차지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 일찌감치, 그것도 딱 한번 경험했기 때문에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남자(외삼촌)의 등에 붙어서 옷을 움켜잡아야만 했던 막대한 생존본능과 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진동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스쿠터로 유라시아 횡단을 감행한 스물셋의 젊음 앞에 난 절대로 경의를 표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만큼 소박하고 겸손하다. 임태훈의 언어습득능력(영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국어 능력자)과 자칭 살인미소와 건장한 체구와 두둑한 배짱이 '나에겐 없지만'(써놓고도 우습네) 다른 거 다 떠나서 스쿠터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무지막지한 전망을 점쳐본다. 조심스레 점쳐볼려고 했는데, 조심스럽고 자시고 하다간 인생 종칠 게 분명하다. 인생 길지 않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제발 길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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