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브리핑에 올라온 친구들의 게시글을 제목만 일별한다. 클릭을 하지 않았다. 클릭을 하지 않기 위해선 클릭을 하려는 관성적 유혹을 참아야만 한다. 참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요즘은(한달은 넘은 것 같다) 북플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떠나가는 배의 뱃전에 위태위태 발을 얹는 꿈을 꾸게 된다. 언젠가 실제적으로 배를 탈 날이 올 것이다. 바다를 무서워하게 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도 한 사람이라서 배를 탄다는 것은 아주 긴 이별과 아주 힘든 시작이 아닐 수 없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는 아니지만 어제는 열무가 너무 싱싱하고 아담해서 거기다 얼갈이까지 단정하고 청아해서 조금 샀다. 내 뜻은 아니었다. 남편이 임신을 했는지 그게 먹고 싶다는 것이다. 웃는 얼굴로 선뜻 집어들긴 했지만 내 속은 열불이 났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 찬사를 잔뜩 보내며 난 희열을 느꼈다. 아, 살아있구나. 컨디션. 그 열무와 얼갈이가 지금 소금물에 절여지고 있다. 남편은 곧 귀가할 것이다. 그의 산책은 너무나 뻔해서 시계바늘도 바르르 떤다. 허투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벌써부터 경련을 일으킨다. 


어제는 남편과 서편제를 봤다. 1993년에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 서편제를 20년이 훌쩍 지나서야 보게 되다니.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면. 시간이 나를 그렇게 되도록 이끌었던가.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정확히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받아들인 세계를 나 스스로 폄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서편제는 나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 안에서 출발하고 그 안에서 끝이 나는 인생을 내 방식대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나친 걸까. 그렇다고 보지만 그 또한 상관없다. 난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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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0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2-09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흐음, 여기도 퀴즈인가요.^^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컨디션 2017-02-10 15:57   좋아요 1 | URL
퀴즈요?? 제 글 어디에 퀴즈의 퀴자가 있단 말인가... 서니데이님의 위트어린 농담을 나만 눈치채지 못하는 건가.. 이 당황스러움을 잠시 뒤로 하고 다시 작정을 하고 답을 드리자면,
혹시 저 문장 때문인가요. 1993년에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도망가는 길에)

여행은 잘 다녀왔습니다. 눈덮인 산길을 걸었는데, 현대판 설피를 태어나 처음으로 착용하고서 산악적응훈련 하는 정신으로 다녀왔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오후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