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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
임태훈 지음 / 대원사 / 2008년 11월
평점 :
스쿠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대라면 A4 10장은 채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 이유가 있다면, 이민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김민정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인류의 문명 중에 가장 확기적 견인차가 된 바퀴에 대한 관심은 정작 없다. 굴렁쇠를 굴려봤는데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기억이 너무 비굴하게 남아있어서 그 후로 바퀴에 대한 관심은 끊어버렸다.
스쿠터의 용량을 사랑한다. 타 본 적 없지만 그 소음 또한 사랑한다. 진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 말이 필요없겠지만, 난 오토바이의 승차감에서 진동이 차지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 일찌감치, 그것도 딱 한번 경험했기 때문에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남자(외삼촌)의 등에 붙어서 옷을 움켜잡아야만 했던 막대한 생존본능과 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진동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스쿠터로 유라시아 횡단을 감행한 스물셋의 젊음 앞에 난 절대로 경의를 표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만큼 소박하고 겸손하다. 임태훈의 언어습득능력(영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국어 능력자)과 자칭 살인미소와 건장한 체구와 두둑한 배짱이 '나에겐 없지만'(써놓고도 우습네) 다른 거 다 떠나서 스쿠터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무지막지한 전망을 점쳐본다. 조심스레 점쳐볼려고 했는데, 조심스럽고 자시고 하다간 인생 종칠 게 분명하다. 인생 길지 않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제발 길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