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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종일 집에 있었고 그는 하루종일 밖에 있었다.
나는 오늘 꼭 해야 할 일 중에 (아니, 하기로 한 일 중에) 단 한가지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하지 않아도 될(아니,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건 일이랄 것도 없는, 말하자면 보잘 것 없는, 즉,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저녁이 되자 하루종일 밖에 있었던 그와 함께 저녁을 함께할 시간이 되었다. 저녁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춘분과 하지 사이의 시절을 감안하더라도 저녁은 빨리 왔다. 나의 마음이 온전하게 받아들인 체감의 결과라 해도 난 항변할 의지가 없다. 맞는 말이니까. 

막걸리를 사들고온 그는 오자마다 옷을 벗었다. 골이 패인 마른 엉덩이. 얼핏 듬직한 심볼. 난, 이때다 싶을만큼의 수위로  슬몃 나긋한 미소를 지어봤지만 그의 두 다리는 이미 나른하게 풀려있어서 얼른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아 배고프겠구나. 너무나 당연한 욕망. 하루종일 안락하게 집에 머문 대가를 달게 받겠다는 자세로 분주하게 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일은 의외로 전투력을 자극했다. 당신이 샤워하는 동안 저는 밥과 술을 대령하겠나이다.. 뭐 이런 투.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그가 팟빵을 켰다. 잠시 귀를 기울이던 우리는 이내 입을 열었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더이상 경청하지 못하게 되었다. 방송은 뒷전이 되었고 곧바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정치인은 시정잡배 같다는 내 말이 빌미가 되었고, 그가 말하기를, 그건 잘못된 생각, 아니 태도다, 그런 식의 상투적 발언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아니 오히려 보수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결과만 만들 뿐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성토를 했다. 요즘 그는 자주 이런다. 나는 이런 그의 술버릇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는 요즘 더이상 술주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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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어느 님을 본받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딱 10분간 쓰고 나가자. 왜냐면 자야하니까.

 

오늘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책도둑을 조금 읽었다. 아주 조금.

 

책을 읽는 일이 어느날의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난 그런 류의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운명(까진 아니고) 그냥 처지로 인생이 처지게 되는 나날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경험의 뚱딴지 같은 자각에 대해 날벼락과도 같은 축복이라고 해두면 어떨까.

 

아무튼 오늘 몇 페이지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있었는데..

 

그리고 그 와중에 잠깐 잠깐 무기력하게 졸았다는 사실이 차마 부끄럽지만..

 

이젠 부끄럽지 않다.

 

아니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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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4-15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컨디션 2015-04-17 03: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
우리 서로 익히 알고 있는 사이인듯 아닌듯 애매하게..ㅎㅎ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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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읽기엔 밤이 너무 깊었고 누군가 깰까봐, 미친 거 아냐 그럴까봐 조용히 속으로 읽어야겠다.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다. 지겨운 일일수록 빨리 끝내는 연습을 하자. 그러기엔 이 책이 딱이다. 몇 페이지 아니 몇 줄 못읽고 잠이 드는 한이 있더라도 이 책을 읽어야겠다. 잠이 오지 않는 좀처럼 조용한 밤이다. 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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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활동증명서를 출력하고 나니 알라딘에 몇 자 적고 싶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몇 자 적기 전에 딴짓을 하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했다. 내가 항상 이런 식이긴 하지만 내 인생 전체가 이런 식으로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도 뻔한 인생 아니겠냐는 냉소를 할 뻔도 하지만 그것 역시 너무 뻔해서 하지 않기로 한다. 냉소 끝. 냉소 안해.ㅋㅋ 이건 실소. 이것도 싫소.ㅋㅋㅋ 이거야말로 실소. 더더욱 싫소ㅎㅎㅎ 미친? 그래 미친.
 
 가져올 묘목이 몇 그루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10그루일 것이다. 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은 상추 모종을 심어야 한다. 그가 오면 파란 포터를 타고 오면 그 파란 포터를 타고 밭으로 향할 것이다. 그전에 해야 할 일 몇 가지가 있는데. 이 글을 끝내고 밥 몇 술 뜨고 약간의 선크림을 바르고 아이들이 호랑이바위에 올라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채비를 거들어야 한다. 아, 고담이 응가도 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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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러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즐겁다. 고요하게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그렇다고 고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고요하게 위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고요를 위장하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위장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힘이 내겐 없다. 비관이 아니다. 내 판단의 근거를 취약하거나 하잘것 없는 걸로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좋을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도 되는 상황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일이란, 세상 어떤 일이든 모든 건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 누구의 강제된 지배나 사사로운 욕구에 이끌리지 않고 가장 선선하게, 가을바람처럼 쓸쓸하게, 봄바람을 모르는 듯 쓸쓸하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게 힘들다면 노력을 해서라도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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