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에세이에서는 소설 이상의 묵직함과 창작의 깊이가 느껴진다. 신변잡기로 흔히 낮춰 평가되는 경향도 있고 나도 종종 그렇게 깎아내리는 경우가 있지만 가끔씩 이렇게 좋은 에세이를 만나면 그런 일반화가 무척 부끄러울 정도.
읽는 내내 베를린의 '그'는 누구인가 궁금했었다. 기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허구의 인물로써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을 읽은 지금에도 확실히 '그'가 허구인지는 알 수가, 아니 믿을 수가 없다. 허구의 인물이라고 하기에 '그'는 너무도 생생한 캐릭터를 갖고 있었다. 집에 두고 온 탓에 문장을 정확하게 인용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하나의 같은 책을 시간을 두고서 사들이는 모습을 정당화(?)하는 문장 하나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요컨데 젊은 홍안의 청년이 사들인 어떤 책 (이를테면 Great Gatsby라고 해두자)과 그가 세상을 살아낸 후 필경 지천명을 넘긴 어느 즈음에 사들인 책은 모든 의미로나 표징으로나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분명히 이 문장에서 사들이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다른 나이대에 읽혀 다가오는 책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한 문장에게 사로잡혀 엊그제 하루 내내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늘어진 작년-금년의 우기도 이제 끝나가고 봄이 오려는 지금이지만 여전히 아침과 저녁으로 추운 주말 시간에 그렇게 한 문장이 책 한 권을 끌고간 것이다. 어떤 이야기였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제대로 짧게 설명해줄 수 없어 그저 직접 읽어보라고 말하겠다.
월요일부터 업무시간대가 왕창 늘어난 요즘의 일상의 한 주가 다시 시작되어 오늘도 퇴근이 늦었다. 내일은 그룹으로 새벽에 운동을 할 예정이라서 얼른 마무리하고 가야 한다.